6주차
풍유, 동식물을 등장시키자
3. 에머슨과 홍윤숙의 우화
서양은 기원전 6세기에 쓴 『이솝우화』, 17세기 프랑스의 라퐁텐의 운문 우화, 초서의 『수녀 시승 이야기』,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동물 우화를 확대시켜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지속된 풍자로 발전시켰습니다.
프랑스 라퐁텐(1621~1695)의 저작 『우화』는 일부 제재를 이솝에서 빌려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우화 중 최고 걸작이라 할 만한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하였다고 합니다. 형식은 먼저 격언 비슷한 교훈담을 말하고 최후로 교묘히 도덕적으로 유도하였다고 합니다.
가스코뉴나 노르망디 태생이라는 여우 한 마리
배고파 쩔쩔 맬 때, 포도밭 높은 곳에 매달린
보기 좋게 익어서 붉그스럼한
먹음직한 포도가 눈에 띄었다.
교활한 여우는 따 먹으려 아무리 노력하였으나
워낙 높아 포도를 딸 수 없었다.
“아직도 설었구만, 군대 졸병이나 먹을 포도야.”
불평 말고야 다른 수가 있었을라구?
-라퐁텐, 「여우와 포도」 전문
여우의 출신지가 어디라는 구체적 지명 제시를 통해 시의 구체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여우의 행위를 통해 자기 합리화를 잘하는 인간을 우화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가스코는 프랑스의 지명인데 이 지방 출신은 거짓말을 잘하기로 유명하다고 하며, 노르망디 사람은 소송을 좋아하며 교활하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라퐁텐 우화집을 12권이나 내어 우화를 문학전통형식으로 계승하였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크릴로프(1769~1844)는 1809년 최초로 『우화』 시집을 발간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평생 우화시 창조를 천직으로 205편을 써서 우화시를 민중의 생활에 도입하였다고 하는데, 동물과 식물 등 온갖 것이 등장하여 인간의 우매함, 아침, 허영, 사회관습, 전제정치 체제를 풍자하였다고 합니다. 우화에 민중의 말을 도입하여 민중정신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산과 다람쥐가
말다툼이 났다.
산이 다람쥐더러 “요 쪼그만 건방진 놈아”라고 하니,
다람쥐가 대답하기를
“너는 과연 큼직하구나,
하지만 온갖 물건들이나 날씨는
함께 모아 놓아야
땅덩이도 되고,
1년도 되지.
그러니 내가 차지한 자리는
아무 불명예가 아니란 말이야.
내가 너만큼 크지 못한 것같이
너는 나만큼 작지 못하지,
그리고 절반만큼도 날쌔지 못하지.
네가 나를 위해 고운 오솔길을
만드는 건 부인하지 못하겠다마는,
재주란 각기 다른 것 적재적소로 되었지,
내가 삼림을 등에 못진다면
너는 밤알을 깔 줄 아느냐.”
-에머슨, 「우화」 전문
이 시는 산과 다람쥐의 대화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거대하고 힘있는 것을 의미하는 산과 작고 약한 것을 의미하는 다람쥐의 대화를 통해 존재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음을 우화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힘이 있는 인간이나 힘이 없는 인간 나름대로의 살아갈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지요.
여름날 파랑새는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며 즐거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느님 주신 천직 고운 목청 힘껏 뽑아 신명을 다하여 불렀습니다. 하늘의 아버지도 땅 위의 사람도 파랑새의 노래에 귀 기울이고 흐르는 이마에 땀을 씻으며 이따금 이 세상 사는 아름다운 의미를 생각하곤 했습니다.
들판의 들쥐들도 파랑새의 노래를 공으로 들으며 열심히 겨우살이 알곡들을 실어 나르며 하늘의 아버지가 파랑새의 몫으로 남겨놓으신 나뭇가지 빨간 열매까지 몰래몰래 물어다 쌓았습니다.
이윽고,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고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파랑새는 들쥐의 집을 찾아갔지만 그는 깔깔 웃으며 목에 힘주며 “안 되지 안 돼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 말아야지 아버지가 그렇게 일러 주었지” 뚱뚱하고 뚱뚱한 배를 흔들며 연신 깔깔 웃었습니다.
불쌍한 파랑새는 물론 옛날 이솝동화 속의 베짱이처럼 겨울 벌판에서 죽었는데요. 오늘은 그 뒷이야기를 마저 하지요. 그렇게 파랑새가 죽은 지 얼마 안 가서 이번에는 무쇠 같던 들쥐가 병이 났지요.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마르고 공연히 숨이 차고 식욕이 없고 꿀처럼 달던 잠도 간데없고 식탁에 그득한 산해진미 뜰의 보리나락도 시들했어요. 마음의 동맥경화 빈혈 결핍이 들쥐를 시름시름 앓아눕게 했지요.
백약이 무효한 병석의 들쥐는 문득 파랑새의 노래가 그리웠어요. 지금은 죽어 이 세상에 없는 파랑새의 노래가 생각났어요. ‘아 그 노래 한 곡조만 내가 들으면 답답한 가슴 뚫리겠는데’ 생각하며 힘없이 보릿단위에 쓰러졌지요. 그러고서는 다시는 눈뜨지 못했지요. 하늘의 아버지가 처음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고 계셨지요.
-홍윤숙, 「동화공부」 전문
익숙한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 구조를 파랑새와 들쥐의 이야기 구조로 바꾸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짐승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사회의 삶을 암시하고 있는 우화입니다. 파랑새는 정신노동 내지는 예술을 들쥐는 육체노동이나 경제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파랑새와 들쥐는 인간을 대신하는 보조관념이지요. 이 보조관념 속에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라는 원관념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⁸²⁾
김순일은 현대사회에서 왜 사는지도 모르고 바쁘게 허둥지둥 사는 인간의 삶을 우화 형식으로 풍유하고 있습니다.
쥐 소 호랑이 토끼가 달려간다
용 뱀 말 양도 달려간다 식식거리며
잰나비 닭 개 돼지도 달려간다 허둥지둥
앞만 보고 달려간다 죽을 둥 살 둥
벼랑 끝으로 가랑잎 같은 해가 지고
왜, 달려왔지?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잰나비닭개돼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두리번 두리번
-김순일, 「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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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오규원, 『현대시작법』, 문학과지성사, 1990, 318쪽 참조.
2024. 3. 10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