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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표현
화장품 냄새
솔솔 풍기는
향기로운 엄마
뭐든지 척척
도와주셔서
고마운 엄마
바른길로 가라고
회초리로 찰싹 때리는
사랑하는 엄마
엄마라는 말을
부르면
목이 메입니다.
사랑한다고
말도 떨려서
못합니다.
ㅡ 어떤 어린이가 쓴 시, 「엄마」
작은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하게
뚫려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만하게 뚫려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 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 한다 한다.
엄마는 새걸로 갈아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배한권, 「엄마의 런닝구」 전문³⁸
이 두 편의 동시를 비교해서 읽어보면 시에서 사랑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의 「엄마 」는 아이가 엄마라는 대상을 피상적으로 바라본 시이다. 이 말은 엄마의 사랑을 피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엄마라는 말을 입 밖으로 하면 그만 목이 멘다는 과장된 표현을 하게 되고, 사랑한다는 말도 떨려서 하지 못한다고
짐짓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이다. 엄마에게 굳이 사랑한다고 말해야 사랑을 전달하는 것일까? 이 아이가 크면 "사랑하는 사람들은,/너, 나 사랑해?/묻질 않어"라는 황지우의 시 「늙어가는 아내에게」를 읽어주고 싶다. 그러면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될까?
이에 비해 「엄마의 런닝구」는 사랑이라는 말 한마디 없이 사랑의 본질을 구체화하고 있는 시이다. 이 동시에는 아빠, 엄마, 작은누나, 나가 등장하는데 작은누나가 있으니까 큰누나도 있을 것이다. 이 다섯 식구의 살림을 위에서 훤히 내다보는 것 같다. 머릿속에 그림이 하나 그려지면 대체로 좋은 시에 가깝다. 아버지가 엄마의 째진(찢어진'이 맞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째진이라는 사투리가 오히려 울림을 증폭시킨다) 런닝구를 쭉쭉 찢는 행위는 폭력이 아니고 아버지의 엄마에 대한 배려, 즉 새로 사 입으라고 찢는 것이다. 이게 사랑이다. 가족 간의 사랑' 이라는 딱딱한 말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그리는 데 성공함으로써 이 시는 감동을 준다. '런닝구'라는 말은 사전에 없다. 이것을 맞춤법에 맞게 바꾸면 어떻게 될까? '엄마의 내의' '엄마의 속옷' '엄마의 메리야스' 등으로 바꿔보라. 어휘 하나로 시의 감동이 급 전직하해버린다.
사랑이 거짓말이 님 날 사랑 거짓말이
꿈에 와 뵌단 말이 그 더욱 거짓말이
나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오리
조선시대 김상용의 시조다. 님이 날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꿈에 와서 나를 만나겠다는 약속도 거짓말이다. 님 생각으로 깊은 밤엔 잠도 오지 않는데, 잠을 자야 꿈이라고 꾸지 어느 꿈에 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인가. 절묘하지 않은가?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마음을 투정하듯, 그러나 간절하게 표현했다.
누군가 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시는 사람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사람의 사랑을 노래하면 다 좋은 시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글쎄, 하면서 고개를 흔들 것이다. 또 누군가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람을 지독하게 사랑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한마디 보탤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 쓰려면‘사랑'이라는 말을 시에다 쓰지 말아야 한다고, 제목으로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사랑'이라는 말을 아예 잊어버려야 한다고 훈수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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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이호철, 『살아 있는 글쓰기』, 보리, 1994, 27쪽.
안도현의 시작법 [가슴으로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중에서
2024. 11. 25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