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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투정
*
종일 불안했다.
아니, 나 자신에게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작업을 못하고 있는 나날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이 6 월의 마지막 날인데, 한 달 동안 드로잉 세 개만을 했을 뿐이라니......
물론, 흙 작업도 하긴 했다. 그렇지만 새로운 것은 없이 해 놓은 걸 복사한 것뿐이라서, 일을 의욕적으로 했다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일들이 점점 나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날은 흐렸고, 내린다는 비는 저녁까지 이따금 몇 방울의 비를 뿌릴 뿐이었다.
저녁 무렵엔 배를 타고 호수에 나갔다.
호수 한 가운데에 배를 띄워놓고, 하모니카만 불었다.
그런데,
'내 하모니카 소리가 남들에게 어떻게 들릴까?' 하는 눈치는 이제 보지 않는다.
그만큼 여기에서의 내 생활이 뻔뻔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밤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었다.
몸이 작업방으로 들어가야 뭐든 할 텐데, 오늘도 나는 작업방의 문조차 열어보지 않았다.
그리곤 종일 펼쳐져 있던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6 . 30
# 투정(?)
이른 아침에( 8 시 조금 넘어서)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의 구 병태였습니다.
그는 대뜸,
"전화도 한 번 안 걸어주고..." 하고 불평, 아니... 투정을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럼, 언제 수업인지도 모르는 바쁘게 일하는 사람에게...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전활 걸어서, 귀찮게 하는 게 뭐가 좋겠소?" 하고 오히려 내가 투덜거렸습니다.
사실 그는, 내 전화를 받을 때마다 유유자적하는 내가 '자기를 약 올린다(?)'는 투정을 하곤 하거든요.
그러다가,
"요즘, 무슨 일 없소?" 하고 안부를 묻습니다.
며칠 전, 산장 아저씨와 얘기 끝에... 그 집에서 키우는 커다란 수탉이 얼마나 사나운지, 사람에게도 달라든다면서... 키큰 아저씨에게 안 사갈 거냐고 묻기에,
그러면 나에게 달라고 했었거든요.
그 것을 떠올리면서,
"그런 싱싱한 닭이 있는데......" 하고 미끼(?)를 던졌더니, 구 병태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아, 닭 먹으러 가야겠다!" 하면서 좋아하드라구요. 그래서,
"걱정 마슈. 당분간 그 닭은 그대로 키우되, 언제라도 내가 달라고 하면... 산장아저씨가 잡아 줄 것이니(그런 약속을 산장아저씨와 이미 해 두었음), 당신이 여기에 내려오면, 마늘을 까 넣고 엄나무도 좀 넣어서... 백숙을 끓여 몇 명이 둘러 앉아, 뜯어먹읍시다!" 했더니,
"알았어. 알았어!" 하고 너무 좋아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만,
'순진하긴......' 하고 말았는데요,
그는 서 창모와 함께, 내가 여기로 이사올 때...
"우리가 갈 때를 대비해서, 닭 몇 마리 정도는... 키워 놓아야 되오!" 했던 장본인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의 나는,
"무슨 닭?" 이냐며 펄펄 뛰었고(사실, 나는 닭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설사 내가 닭을 키운다고 해도, 누가 닭을 잡을 것이며... 또 어떻게 내가 키우는 동물을 잡아먹느냐면서,
"그 건 동의할 수 없다!"고 딱 잘라 거절했었거든요.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바뀐 거랍니다.
그런 뒤 점심을 먹고, 모처럼 산장 집에 한 번 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전주에 갔다가 막 도착했다는 산장아저씨는,
"웬일로 우리 집엘 다 왔디야?" 하면서 반가운 표정이셨습니다.
나는,
"그냥, 한 번 와봤어요." 하면서도,
아저씨의 표현이, 묘하게... '비비 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웬일이어야만 그 집에 가는 것이 아닌데, 그러니까... 그 분 말로는, 내가 너무나 오랜만에 왔다는 표현일 것이었습니다.
아닌데...... 비록 매일은 아니지만, 이따금 한 번씩 그 집에 마실을 가곤 하는 게 일상인데......
그러니까, 내가 들른 것이 뜸했다는 뜻이겠지만(아마 백풍이를 데려다 주면서도 그냥 지나쳤고, 정읍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오는 사이에, 이 양반은 내내 '夢想?'을 주시했던가 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아무튼, 내가 그 집에 자주 들르지 않는다는 투정(?)이라는 것이 느껴지면서, 상대적으로... 그 양반이 날 상당히 반갑게 여기는 것이라는 것도 느껴지드라구요.
허긴, 그런 그 분의 언행이... 나도 어째,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사실, 나는 장사하는 집에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것이 썩 내키지가 않아, 가능한 그 집에 가는 걸 삼가고 있기는 하거든요.
손님이 많아 바쁜데, 날 위해 아주머니는 수박과 누룽지를 내오고, 아저씨는 점심을 먹고... (날더러도 점심을 같이 먹자고 야단이었지만, 난 이미 점심을 먹은 뒤라 사양하느라 몇 번의 손을 내젖고)
몇 년 전에 제초기계를 소유한 걸 관에 신고했었는데, 무슨 일인지... 그 명단에서 제외되었다며...
"장씨, 시간이 있으믄... 농협에 같이 가 줄텨?" 하시기에,
그렇게, 트럭을 타고 농협에 가서 기계 상표와 제조 번호 등을 새로 신고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뭣 때문인지 신이 나신 아저씨는, 운전대를 잡고 카셋을 틀어놓고서도... 흥얼흥얼 따라 부르십디다.
노래도 썩 잘하는 거 같지 않은데, 혼자 신바람을 내드라구요.
미스 고, 미스 고~
푹푹 찌는 땡볕의 시골풍경은 그 나름대로 아름다웠습니다.
도로 가의 논에는 푸른 벼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고, 세상은 녹음으로 우거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 가을이 되면... 이런 길을 가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울 것인데......" 저절로 그런 말이 내 입에서 튀어 나왔습니다. 그러자 산장아저씨가,
"장씨는, 가을을 상당히 좋아허는 게 벼?" 하시기에,
"예......" 했더니,
"막걸리 한 잔 사 주까?"
"아니요. 요즘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가 많다보니... 술 마실 기회가 잦아, 가급적 술을 마시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려? ... 그럴 꺼여..."
모처럼 나와 함께 나들이에 나선 산장아저씨는, 나와 뭔가... 기분을 내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 마음을 읽으며 나는 빙그레 웃고 맙니다.
이렇게...
서울이거나 시골이거나, 나에게 투정을 해대면서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내 맘을 푸근하게 합니다.
힘입니다.
혼자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 세상에 살아가도록... 보이지 않는 힘이 오늘 날씨만큼이나 끈적끈적하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7 . 1
*
밤새 비가 내렸다.
새벽에 나가보니, 이번 비는 얌전하게 내린 것 같다. 토방에 있던 슬리퍼엔 거의 물기의 흔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추질추질 내리는 비는 앞산을 안개에 덮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호수가 평평한 평지같은 느낌까지 들게 했는데,
나는 개와의 인사가,
"밥도 안 먹는 것이......" 로 되어버렸다.
나는 개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개가 나에게 꼬리를 칠 때마다... 개 밥그릇을 보며, 눈에다 힘을 주면서 그 말을 하곤 한다.
근데, 격이... 왜 이렇게 비실비실대는지 보통 신경이 쓰이질 않는다. 나에게 꼬리치는 것마저 힘겹게 보이는 것이다.
'아이, 밥도 안 먹는 것이......'
나팔꽃이 제법 그 모습을 갖춰간다.
각 줄마다 무성한 이파리들이 지붕을 향해 올라가고 있고, 그 줄마다 매일 꽃들도 한 두 개씩 피고 있다.
그리고 코스모스도 많이 자랐다.
이렇게 자라다간 가을이 오기 전에 다 피고 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요즘엔, 왜... 꽃들도 철 이르게 피고 지는지 모르겠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이따금 도로 주변의 코스모스가 몇 송이씩 피어있는 모습을 보곤 한다.
나는 그게 반갑기는커녕, 보기 싫어서... 눈쌀을 찌뿌린다.
모처럼 밭에 올라가 보았다.
이제 상추와 쑥갓도 끝물 같다.
그렇지만 씨앗은 남아있으니까, 다른 곳에 또 심어봐야겠다.
그런가 하면, 토마토와 고추는 이제 시작이다.
왕성한 생명력으로 열매들을 맺어가는 모습이 여름이란 걸 느끼게 해준다.
잠깐씩 해가 비추다가 구름에 숨고 있는데, 그 잠깐의 햇살도 등이 뜨겁도록 강하기만 했다.
진짜, 여름인 것이다.
허기야, 음력으로도 6월이니......
'夢想?'을 제외한 이 마을 이집 저집에 있는 자두 나무의 열매들도 보랏빛으로 익어가고 있다.
아직은 그 맛이 시큼하지만, 멍든 것처럼 푸른 빛에서 보라색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이다.
라면을 끓여 저녁으로 먹고 났는데도, 해가 산에 넘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배를 탈까 하다가 관뒀다.
양말을 신어야 되고, 또 신발을 갈아 신는 일이 번거로워서였다.
어제 배를 타러 나가다 수수밭에서 뱀을 만나, 나는 또 다시... 껑충껑충 도망쳤었다.
그래서 오늘은,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서...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땅거미가 지고......
전기 불을 키면서는 작업 방에 들어와 앉아버렸다.
방바닥이 차거웠다.
나팔 꽃 이파리를 소재로 7 월 달력을 하고, 모처럼 드로잉 하나를 해서 벽에 붙여 놓았다.
7 . 1
# 비몽사몽(非夢似夢)
어렴풋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작업 방에서 자다가 전화벨 소리를 듣고 일어나, 전화를 받으러 안방 문을 여는데... 문이 열려야 말이지요.
장마철이라 습기가 차서 나무 문이 서로 끼었나 보았습니다.
실랑이를 하다가, 그렇게 전기 스위치를 누르고 정신없이 전화를 받았는데... 김 선생님이셨습니다.
"자는데 깨운 건 아닌지 모르겄네..." 하시는데,
눈 앞의 시계를 보니, 막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예, 자다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 목소리는 띄엄띄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비가 너무 와서, 걱정스러... 전화혔어."
"아, 예......"
"물가에 사는 사람이라, 혹시 비에 떠내려가지 않나... 궁금하고 걱정스러워서......"
"하 하 하, 선생님도... 무슨 청개구리 이야기도 아닌데요...... 여기는 물이 범람한다해도, 아무 이상이 없을걸요? 오히려 댐 아래 사는 사람들이 문제지......"
"그 걸 몰르는 게 아닌디, 그래도 비가 너무 오니 걱정스러워서 전화헌 거여... 무슨 비가 이렇게 온대?"
"예......"
전화를 받으면서도 모기장 사이로 밖을 내다보니, 가로등에 반사된 흙탕물이... 마당에 이리저리 흘러 내려가고 있었고, 빗소리는 정말 주룩주룩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음성으로 보나 전화 속에서도 음악이 크게 들리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소주 한 잔을 걸친 뒤인 것 같았습니다.
이따금, 선생님은 '취생몽사(醉生夢死)'란 말을 잘 쓰거든요......
비오는 한 밤중에 자다가 일어나서 받은 전화라, 나 역시도...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다시 작업 방에 갔는데...
저녁에 지핀 군불 때문에 방은 따끈따끈했고, 모기장 안에 커튼식으로 붙여놓은 창호지가 이따금 들썩이며 들여보내는 바람은 시원하기만 했습니다.
바닥은 뜨끈하고, 공기는 상큼한... 그러니까 퍽 이상적인 상태여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비록 자다가 일어나 전화를 받은 것이라 억지로 잠에서 깨어났지만, 군불을 땐 방에서 잠을 자서였는지... 몸은 개운했습니다.
겨울엔 위풍이 센 방이라 이런 상황이라면 걱정스럽겠지만, 한 여름이라서 모기장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더 없이 좋기만 했습니다.
선경지명이 있어(?)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려가며 군불을 지펴놓았던 것인데, 이렇게 좋으니 된 거지요.
기왕에 잠에서 깬 것, 뭔가를 하자며... 나는 노트북을 키고 자판을 두드렸습니다.
요즘, 생각이 잡혀서 뭔가 쓰고 있는 얘기가 하나 있거든요.
어떻게 되어 나올지는 몰라도, 일단은 시작해 놓은 것이니... 언젠간 마무리도 짓게 되겠지요.
가장 짧게 그리고 단순하게 표현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군더더기가 붙는 것 같아... 고심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일을 하는데, 잠이 쏟아졌습니다. 따끈한 아랫목의 유혹도 심했구요......
세 시가 되고 있었습니다.
일을 멈추고, 전기를 끄고 방에 누우니... 군불의 온기가 기분 좋고 포근하게 나를 감쌉니다.
줄기차게 내리는 빗소리는 나를 나른하고 아득한 잠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밤중에 나에게 있었던 일이...
꿈속에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지금부터 꿈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기분이기도 했습니다.
역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夢想?'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7 . 2
*
몸이 끈적끈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조금 추운 것 같기도 했다.
일어나 보니, 아직 세 시도 안 된 시각이었다.
밖으로 오줌을 누러 나가니, 격이 느릿하게 일어나 꼬리를 흔들었다.
"일어나지 말고, 자! 밥도 안 먹는 것이..." 라고,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보일러를 틀어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 홈페이지 업그레이드 시키고... (그 사이에도 지붕에선, 지난번에 따다가 남은 매실이 노랗게 익어 지절로 떨어져 구르는 소리도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 시도 안 된 시각이어서,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통나무집에서 아침을 챙겨먹고 오는데, 뭔가 빨간 색이 눈에 띄었다.
채송화 꽃 한 송이가 막 피어올랐나 보았다.
마당의 풀을 뽑다가 지절로 나 있던 채송화를 옮겨 심었던 것이, 며칠 전부터 꽃봉오리가 맺힌 것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이쁘게 필 줄은 몰랐다.
그 꽃이 어찌나 이쁜지... 나는 카메라를 꺼내 두어 컷 사진을 찍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은행 계좌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서울의 인터넷요금 때문에, H에게 전화를 걸어 그 상황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렇잖으면 내 통장은 마이너스로 될 것이라서......
그리고 서울의 L씨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그는, 요즘 바빠서 사진을 아직 빼 놓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조만간에 사진을 보내고 전화를 하겠다고 했는데,
그러는 와중에, 알고 그런 것처럼... 서 창모한테서도 전화가 왔다.
지금 시험기간인데, 19 일에나 방학을 하리라고 한다.
이불을 볕에 널고 빨래를 하려고 세탁기를 돌렸다.
오늘 밤부터 다시 비가 온다기에, 비 오기 전에 후다닥 해치우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저녁 무렵엔 작업 방에 군불을 땠다.
"이렇게 더운디... 무슨 불여?" 하고 키큰아저씨가 평상에 앉아 말했다.
"내일은 비가 온다는데, 방이 눅눅한 것 같아서요......"
그러다 생각하니, 내일은 비가 내려 배를 타지 못할 것 같아, 얼른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갔다.
역시 배를 띄워놓고 하모니카를 불었다.
날씨가 흐려져서 시간이 어찌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잠깐 쉼터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려, 뒤 돌아보니...
산장아저씨가 아래서(길에서) 살금살금 돌맹이 하나를 줍고 있었다.
그러다 내 눈하고 마주치자, 깜짝 놀라며,
"히히히... 어떻게 알었어?" 했다.
그러니까, 멍청히 앉아있는 나를 보고, 놀려고 오다가... 그래도 그대로 앉아있자,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하여 놀려주기 위해 돌멩이를 던질 요량이었나 보았다.
그런데, 신발을 끄는 소리에 내가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들켜버렸던 것이다.
조금은 겸연쩍어 하는 그 모습이, 마치 애 같았다.
그 때까진 더운 듯했으나 호수에선 조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집에 돌아 가야한다는 산장아저씨를 따라 내가 그 쪽으로 가게 되었는데,
"우리집 가서 저녁 먹지." 하는 것이었다.
"아니요. 장사집에서 맨날 얻어먹으면 안 되지요."
"아녀, 지금은 손님도 한 팀밖에 없응게 가자고..."
"그래도......"
"에이, 어서 와. 저기 연한 깻잎을 벼다가 놓았거든... 그 거 우리 안 사람헌티 나물혀달라고 혀서 먹자고..."
"아니, 저는 그냥 돌아가고 싶은데요......"
"안 되야! 여까지 왔응게, 저녁 먹고 가." 하며, 어리광을 부리듯 내 팔을 잡고 끌었다.
"아니, 이 양반이... 왜 이러십니까?" 하면서 인상을 확 썼는데도,
"아이고! 그려봤자, 하나도 안 무선디? 더 혀 봐라, 더 혀!" 하면서, 옆구리를 쿡 찌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애들 장난하는 것처럼 산장 아저씨에게 질질 끌려 부엌 쪽으로 가니,
언제나처럼 산장아주머니는 웃는 얼굴로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고,
손님이 많아 바빠서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아저씨도 나 혼자 밥을 먹는 어색함을 달래주려는 듯, 생각도 없다는 저녁을 먹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저녁을 산장 집에서 먹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산장 집 입구에 있는 자두나무의 자줏빛은 어제보다는 조금 더 눈에 많이 띄었다. 그 중 몇 개를 골라 따서 맛을 보니 아직은 셨다.
두 개를 가지고 와서 격의 장난감으로 주었다.
비오는 소리가 들리기에 마루에 나갔다.
우두커니 비오는 걸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고 있었다.
7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