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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두 지주(人頭蜘蛛)
계 용 묵
I
S시에는 산업 박람회가 열리었다. 구경이라면 머리를 동이고 달려드는 사람
들은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모여들기 시작하여서 넓은 터전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것은 이런 대목을 보려고 각처에서 모여든 마술단·연극단 이외에도 온갖 놀음이 귀가 소란하게 뚱땅거리며 그들을 꾀이는 까닭이었다.
이날도 경수는 빈 지게를 지고 무슨 벌이가 혹시 있을까 하여 이 광장을 빙빙 돌다가 한나절 후에는 그만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가려는 차에 홀연 사람 거미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자ㅡ 구경하시오! 5 전씩. 남양 인도산 사람 거미 ― 사람 대가리에 거미 몸뚱이란 이상한 짐승이올씨다…….”
맞은쪽 막다른 골목에다 가마니와 섬개로 막을 치고 출입하는 문 위에는 새옥양목 바탕에다 사람 대가리가 돋친 거미를 이상스럽게 울긋불긋하게 그려서
걸고 그 옆에는 해진 양복을 입은 장대한 남자가 서서 목이 터지도록 이렇게 외치고 있다.
“참, 세상에 별 괴상한 것도 다 보겠군 ! 허 ! 허. 원 세상에 사람의 머리가 돋힌 거미란 놈이 다 있단 말인가?”
거기는 들고 나는 사람이 연신 줄달으며 나오는 사람마다 희한하다는 듯 모
두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때 경수도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며 오고 가는 사람들 틈에 끼여서 얼마 동안 그 그림을 쳐다보았다.
그는 들어갈까 말까 하고 주저하다가 제일 구경 값이 싼 김에 그만 지게를 벗어 놓고 단풍 한 갑 사 먹을 돈이 5 전 있는 놈을 자선하기로 결심하였다.
들어가 보니 그것은 과연 사람 거미였다. 눈이며 코·입, 모든 것이 영락없는 사람이다 ! 아니 사람 중에도 미남자다.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번듯한데 머리는 왼쪽을 타서 하이칼라로 갈라 붙였다. 그런데 몸뚱이는 사방 한 자 반씩이나 될 놈이 검붉은 빛으로 게 발 같은 발을 뻗치고 있는 것은 보기에도 흉한 큰 거미 몸뚱이가 아닌가. 이런 괴물을 바야흐로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가지가 무성한 큰 나무 두 개를 양쪽에 세위 놓고 그 가지에다 굵은 노끈 같은 거미줄을 늘어놓고는 그 한가운데에 매달았는데 그것은 암만 보아도 사람 대가리가 돋친 거미가 분명하였다.
“아이구 저 얼굴 좀 봐…… 사람 같으면 좀 잘생겼나 !”
기생 같은 여자 하나가 이렇게 말하면서 좀 자세히 보려고 그곳으로 가까이 가 보았다. 이때 거미는 혀를 쑥 빼물고 눈을 이상하게 껌벅이며 고개를 앞으
로 내밀고는 앞발로 줄을 당기며 흔든다. 그것은 마치 기생에게로 달려들려고
하는 것 같이 보이었다.
“아이구머니!”
이때 기생은 정말로 달려드는 줄 알았는지 그만 기절을 하여 뒷걸음질을 치
는 바람에 구경꾼들은 모두 허리를 잡고 웃었다.
그러나 경수는 웃지도 않고 이상한 태도로 똑똑히 들여다보며 이 이상한 괴물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하였다. 마는 아무리 보아야 그것은 사람 거미였다. 그는 다시 생각해 보았다. 사람이 거미의 탈을 썼다고 하자니 두 다리는 어디다 처치를 하였을까? 아무리 다리를 꼬부려 넣었다 하더라도 양쪽으로 쑥 두드러진 무릎 마디는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처음 볼 때에는 혹시 고무로 만들어서 전기 작용을 한 것이나 아닌가 하였지만 결코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괴물의 얼굴에는 분명히 뜨거운 붉은 피가 살 속으로 흘러 있다. 그러면 정말로 사람 거미라는 이상한 괴물이냐? 그러나 이런 동물이 이 세상에 있을 수는 없다. 경수는 이 풀기 어려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속으로 또 풀어 보려던 중 그때 마침 괴물이 기생에게 히야카시를 하는 것을 보고 그것은 정녕 사람을 알아보는 모양이라는 짐작이 되어 마침내 그것에게 말을 시켜 보았다.
“너 지금 몇 살이냐?”
괴물은 머리를 흔든다. 그것은 말을 모른다는 뜻 같았다.
“말을 못 알아들어?”
이번에는 고개를 앞으로 끄덕였다. 그것은 그렇다는 듯이 ― 경수는 비로소 그 동물이 말을 알아듣는 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한 걸음 다가서며 또다
시 물어 보았다.
“끄덕거리는 뜻은 무슨 뜻이냐?”
괴물이 이번에는 아무런 형용도 하지 않고 뚫어지도록 경수를 바라볼 뿐이다. 웬일이냐 ! 그의 눈초리는 실룩하고 안색은 이상하게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변하였다. 그러자 두 눈에서는 눈물이 텀벙 텀벙 쏟아진다. ……이때 경수나 모든 구경꾼도 물론이요, 이 괴물의 주인까지도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괴물에게로 쏠리었다. 그러나 이때 경수의 생각은 저것이 말을 하고 싶으나 말이 나오지 않아서 그러는가 보다 하였지마는 주인이 놀라는 기색은 그 괴물의 평시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괴물이 하필이면 경수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경수 자신도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것이 어째서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릴까?’
경수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리고 마주 쳐다보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괴물의 눈에서는 더 한층 눈물이 똑똑 흘렀다. 나중에는 훗 ! 훗 ! 느껴 운다. 이때 괴물의 안색은 온통 슬픈 표정이 가득찼었다.
2
이 광경을 본 주인은 경수와 괴물 사이에 무슨 심상치 않은 관계가 있나 보다 하였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물어 보다가는 괴물의 정체가 폭로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영업에 방해가 될까 봐서 이때 주인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당황할 때 별안간 공중에서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하자 관중은 우― 하고 휘장 밖으로 몰려나갔다. 경수도 이때 비행기를 구경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그보다도 이 괴물이 무엇인가 알고 싶어서 그대로 서서 괴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때 장내는 주인과 경수 만 두 사람만 남아 있었다.
“경…… 경수 ! 아ㅡ”
이때 별안간 괴물은 이렇게 부르면서 주인에게 무슨 눈치를 한다.
이 괴상한 사람 거미가 별안간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 경수는 소스라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더욱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홀린 듯이 괴물을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때 주인은 거미줄을 풀고 그 괴물을 번쩍 들어서 땅에 내려놓았다. 괴물은
훌떡훌떡 거미 껍질을 벗더니 엉금엉금 경수 앞으로 기어나오는데 그것은 두 다리가 엉덩이까지 잘라진 두루뭉수리인 사람이었다.
“아― 경수…… 그래도 나를 몰라보겠나…… 나는 창…….”
앉은뱅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부르짖자 별안간 경수의 손목을 덥석 쥔다. 이때 경수는 정신이 벌떡 났다. 그는 비로소 그게 누구인지 알았다. 이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은 과연 창오가 분명하였다. 죽은 줄만 알았던 창오가― 창오는 경수의 예전 친구였다. 그때 그 지진 난리통에 서로 헤어진 후로 벌써 3, 4년째나 소식이 묘연한 그는 필경 죽은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이야 실로 꿈에도 뜻하지 못한 일이었다. 비로소 경수도 왈칵 달려들어 창오의 손목을 잡아 후들며,
“아 ! 창오―”
하고 부르짖는 그의 목소리는
절반은 목메인 감격에 찬 소리였다.
3
경수와 창오는 어려서 한 동네에서 자랐을 뿐만 아니라 남달리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다. 그래서 나무를 하러 가도 같이 다니고 일을 가도 같이 다녔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난한 소작인이었으므로 남의 땅마지기를 부쳐 가며 간곤한 생활을 부지하던 터 인데 그들이 부치던 땅이 × ×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그들은 일조에 밥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대로 앉아서 굶어 죽을 수는 없으므로 어디 가서 노동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겠다고 그때 한참 돈벌이가 좋다는…… 으로 그들은 정처 없는 길을 떠났었다.
그러나 급기야 들어가 보니 듣던 말과는 딴판으로 아무런 발전도 없고 말도 모르는 벙어리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놈은 없었다. 그래 그들은 × ×에서 × ×로 다시 × ×으로 무여걸인처럼 방랑하다가 생각만 하여도 끔찍한 저 ― 관…… 통을 치르는 통에 그때 그들은 풍지 박산이 되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어떻게 된 줄을 모르는 까닭으로 그들은 지금까지 서로 죽은 줄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경수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치르고 간신히 몸을 숨겨서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창오는 그때에 ……에게 붙잡혀서 거의 ……맞고 다시 × ×서에 한 달 동안을 갇혔었다 한다.
“그래 그후에 어떻게 되어서 저 지경이 되었나?”
하고 경수는 궁금한 듯이 그의 굼뜬 말을 채치었다.
“아ㅡ 그 뒤에 그 난리가 간정된 뒤에 무사히 놓이기는 하였지마는 그날부터 또 먹을 것이 있어야 살지……, 그래서…… 일을 하면 진저리도 나고 하여 ××탄광을 가지 않았겠나 ― 그때 유치장에 같이 갇혔던 어떤 친구가 그쪽으로
가자는 바람에 ―一一ㅡ',
하고 말을 끊자 창오는 힘없이 또 한숨을 내쉰다.
“그래서…….”
“다행히 일자리를 붙들어서 일을 잘 하게 되었는데 그 이듬해 봄에 탄광이 무너지는 바람에 나도 그때 속에 들어가서 석탄을 파내다가 그만 아랫도리를 치였다네…….”
하고 그는 다시 말을 이어서 ―
그때 자기도 꼼짝없이 죽을 것을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구…… 해서 살기는
살았지마는 두 무릎이 부러졌다는 말과, 그때 그 굴이 무너지는 통에 무정하게
죽은 우리 동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는 말과, 그래서 할 수 없이 자기는 병
원으로 떠메 가서 썩어 들어가는 두 허벅다리를 자르고 몇 달 동안을 죽다시피 했던 말과, 병원에서 나올 때는 위로금 한 푼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앉은뱅 이 병신 걸인이 되어서 노상에 내던짐을 받았다는 말과, 그날부터 할 수 없이 남의 집 문전에다 턱을 걸고 촌촌이 빌어먹으며 앉은뱅이 걸음으로 2 년 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되었다는 말과, 어떻게든지 거지 노릇을 면하려고 그때 탄광에서 같이 병신이 된 친구와 밤낮으로 연구한 결과 마침내 이런 짓을 꾸미게 되었다는 말과, 그것은 그런 생각이 × ×에서부터 들었는데 그때 바로 그 친구가 여간 쉬운 일을 해서 벌은 돈과 자기가 공원과 길거리에 앉아서 벌은 돈으로 그곳 마술가를 찾아가서 그런 사정 이야기를 하고 거미 탈을 만들어 달라고 간청한 결과 그 사람이 무슨 맘이 있었는지 당장에 승낙하여 잘 만들어 줄 뿐 아니라 그곳 경찰서에 교섭하여 흥행 허가까지 맡아 주었다는 말과, 그 뒤부터는 가는 곳마다 그 짓으로 돈을 꽤 잘 벌어서 고생을 덜하고 바다를 건너왔다는 말과, 고국에 와서는 차마 그 짓을 말자고 하였으나, 고향이라고 돌아와 보니 부모는 돌아가시고 아내는 개가하고 역시 노동일을 할 자리도 없거니와 할 수도 없어서 곤란하던 차 마침 이 땅에 박람회가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이런 기회에 돈푼이나 벌어 볼까 하고 그 짓을 또 시작하였다는 말을 일장 설화하였다.
이때 경수는 듣기만 하여도 뼈에 사무쳤다. 그러나 경수는 다시 그를 데려갈 집이 없음을 슬퍼하였다.
“아 ! 그렇게 되었나……. 나는 지금 뭐라고 자네를 위로할 말이 없네…….
그러나 자네가 저렇게 된 것은…… 알겠네그려 ! 그러면 자네가 그것을 안다면
자네는 그것으로써 위안을 얻지 못할까? 이 넓은 세상…… 은 혹시 자네보다도 불행한 사람이 없을 것도 아닌가…… 그러면 말일세 ! 자네는 저렇게 되니만큼 오히려…… 가지고, 누구…… 감하게 우리 × ×에서……지 않겠나…….”
하고 경수는 그를 쳐다보고 말하였다.
“그야 더 말할 것이 있겠나. 그러나 나 같은 병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 또는 나 같은 사람을 누가 같이 할 친구로 알겠나. 다만 병신 걸인으로 알 뿐이겠지……. 아 ! 나는 그렇다고, 자네는 그 후에 어떻게 되어서 지금 이곳에 와 있는가?”
하고 창오도 감개한 듯이 경수를 마주볼 뿐이었다.
“나도 자네와 같이 사고 무친한 나 한 몸이 남아서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중일세. 그러나 나는 여기 온 뒤로는 고독을 느끼지 않게 되었네 ― 하루하루 품팔이해서 살기는 사네마는 나 같은 우리 ……에는 수백 명의 건장한 동무가 있으므로 그들과 함께 ……배우는 것이 나의 지금 통쾌한 생활일세. 그러면 자네도 나하고 같이 가세. 자네 하나 더 있으나 없으나 내 생활에는 별로 다를 것이 없겠네마는 자네는…… 가면 할 일이 많을 줄을 내가 잘 아니까…….”
“아 ! 그럴 수가……. 그럴 수가 있겠나. 그렇다면 가다뿐이겠나. 가다가 죽더라도 가겠네. 참 이젠 자네 보고 말일세마는 내가 이 꼴을 해 가지고 무엇을
더 바라고 살겠냐마는 부모 처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들이나 한 번 만나 보고 죽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고향에 나왔더니 이미 이 지경이 되었으니 다시 무엇을 바라겠나……. 내게는 그런 영광이 없겠네. 그러나 내가 가서 할 일이 무 무…….“
“오늘이 쉬는 날이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에 왔을 리가 만무하였을 것이니 그러면 자네를 못 만났을 것이 아닌가?”
하고 경수는 다시 한 번 그의 손을 힘 있게 잡아 흔든다.
“아 그러면 가겠네 ! 가다뿐이겠나……. 그러나 여기서는 기어이 시작한 것이고, 박람회도 며칠이 안 남았으니 이곳에서 떠나는 날 자네를 찾아가겠네.”
“그럼 그러게. 내일 모레 밤에 그럼 내가 또 오지.”
“아 ! 그럼 모레 만나세.”
“그러세 !”
하고 경수가 창오의 손목을 놓고 나가자 창오는 다시 거미 껍질 탈을 뒤집어 썼다.
“자 ! 구경하시오 ! 남양 인도산 사람 대가리에 거미 몸뚱이란 이상한 짐승을 한 번 보는 데 5 전씩…….”
돌아오는 경수의 귀에 다시 이런 소리가 들리었다. 그는 창오의 아까 그 모양을 연상하고 저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경수는 별안간 까닭 모를 눈물이 핑 ㅡ 들자 그의 두 주먹은 무의식 적으로 꽉 쥐어졌다. 그리고 이런 말이 마치 공중에서 부르짖는 것 같이 자기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1928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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