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14-22
찬송가 :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우상을 피하라(14-22절)
바울은 앞선 1-13절에서 이스라엘 조상들이 출애굽 이후 실패한 사건들을 예로 들며, 고린도 교인들이 신앙으로 바르게 살아가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그들이 피해야 할 것을 강조하며 알려줍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14절입니다.
(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여기서 ‘피하라’는 말은 ‘벗어나다. 달아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우상숭배라는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죄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멀리 피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데 이들은 왜 우상숭배를 했겠습니까? 당시 고린도는 항구도시이자, 상업 도시였습니다. 때문에 그리스와 로마 등 각종 우상들이 유입되었습니다. 10개 이상의 신전이 존재했으며,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비롯한 대부분의 음식들은, 신전에서 거행되던 제사 의식에 바쳐졌던 것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시민들은 물론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제사에 바쳐졌던 음식이든 아니든, 음식 자체와 먹는 행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먹으면서, 은연중에 우상의 종교의식에 동참하여,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15절에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고 말하면서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의 말을 듣고 지혜롭게 분별하기를 원했습니다.
대부분 우상이라고 하면 하나님 외에 신격화하거나 형상화 된 다른 신들을 얘기합니다. 그러나 우상은 눈에 보이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3:5에 ‘탐심’을 우상숭배로 규정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우상숭배는 바로 탐심입니다. 탐심은 무제한의 소유욕을 가리킵니다. 탐심은 만족함이 없습니다. 탐심은 집착을 유발합니다. 탐심이 생기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무언가를 얻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다 탐심은 우상숭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비신자들이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 욕심 때문입니다. 즉 내가 원하는 것을 붙잡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신을 달래서, 혹은 신에게 정성을 다하면, 내가 원하는 바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입니다.
최근 시즌1으로 종영한 ‘펜트하우스’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일명 막장드라마입니다. 드라마의 내용은 명예와 물질의 탐심이 있는 주인공들이, 그 탐심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고, 살인을 하고, 서로 이용하는 등 욕망에 빠진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항간에선 지난 2020년 한해가 스카이캐슬의 욕망으로 출발해서 펜트하우스의 욕망으로 끝났다는 말도 있습니다. 물론 드라마처럼은 아니지만, 주인공들의 탐심으로 얼룩진 모습은, 따져보면 우리 안에도 있는 죄성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어 바울은 16-18절에 우상의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실제로 섬기는 대상인 우상과 연합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성찬식으로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16-18)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성도들이 함께 나눕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다른 지체들과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구약시대에도 화목제로 드려진 제물을, 제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함께 먹음으로, 제단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바울은 우상의 신전에서 종교의식에 참여하고 제물을 먹는 것은, 결국 우상들과 영적으로 참여하고 교제하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이 말을 쉽게 풀자면, ‘우상의 제물이나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성경은 우상에 대해 “더러운 것(행15:2), 가증한 것(롬2:22), 아무것도 아닌 것(고전8:4), 말이 없어 말 못하는 것(고전12:2), 그리고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것(계9:21)”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말을 정리하면 인간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헛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상의 제물과 우상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상 자체가 신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우상들을 통해 귀신, 곧 사단의 세력이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우상의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런 행위를 조장하는 사단의 계략은 무엇일까요? 바로 신앙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헛된 우상에게로 돌리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손해 보는 일이며, 말씀의 길에서 떠나, 세상적으로 편하게 사는 것이 더 유익이고 이익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21-22)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21절에서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성찬식에 참여한 사람이 우상의 종교의식에도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귀신(세상)을 함께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가 무엇이냐면, 주일에 예배드리고, 헌금도 내고, 봉사도 하지만, 세상에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내 탐심대로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 모습은 종교적 거래이지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귐이 아닙니다.
22절을 보면, 우리가 우상을 숭배할 때 주님은 강한 질투를 느끼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노여워하시게”의 뜻은 ‘질투하게 하다’인데, 이 질투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귀신의 잔과 식탁”에서 벗어나, “주님의 잔과 주님의 식탁”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와 양식으로만 취해있고 풍족하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유심히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상에 관심을 가지는 근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사귐이 없어서입니다. 오늘 본문 16-21절에 <참여>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참여는 <어떤 일에 끼어들어 관계함>을 말합니다. 신앙인은 매일의 삶 속에서 ‘주의 잔과 주의 식탁’에 참여해야 합니다. 문제의 갈증을 해소하게 하시는 <주의 잔>과 힘겨운 삶에서 힘을 주시는 <주의 식탁>으로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주님께 참여하는 것이고 주님과의 사귐입니다.
싱크홀이란 현상이 있습니다. 땅의 지반이 내려앉아 지면에 커다란 웅덩이 및 구멍이 생기는 것입니다. 싱크홀이 생기는 대부분의 원인은 땅이 머금고 있는 지하수가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면, 영적인 싱크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영적인 싱크홀이 생기지 않도록,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말씀을 충분히 머금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과의 사귐입니다.
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탐심으로 가득한 귀신의 잔이고, 욕망으로 쌓여 있는 식탁이라면, 그것을 쏟아 던져버리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내게 베푸신 주님의 잔과 식탁의 은혜들을 사모하고 묵상하십시오. 그럴 때 주님과의 깊은 사귐이 있습니다. 그 사귐으로 인해 내 안에 탐심과 욕망이 소멸될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주님과의 진정한 사귐을 통해, 세상의 금그릇과 은그릇을 추구하지 않고, 주님만을 태우는 나귀로서 신실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 세밀한 손길로 저희 삶을 인도하시고 그 사귐에 참여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과의 사귐보다는, 탐심을 추구하며 우상숭배를 행하는 삶이었습니다. 이런 저희를 주의 긍휼로 용서하여 주시고, 온전히 주님의 잔에서 흐르는 은혜와 주님의 식탁에 차려진 말씀만으로 힘을 얻고 살아가며, 언제나 영과 진리로 주님을 예배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죄에 자주 무너지는 삶의 영역이 있나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2. 나의 탐심은 무엇이며, 혹 그것을 이루기 위해 죄를 지은 적이 있나요?
3. 내가 쏟아 버리고 박차고 나와야 할 귀신의 잔과 식탁은 무엇인가요?
4. 주님이 내게 베푸신 주님의 잔과 식탁을 떠올리고, 주님과의 온전하고 깊은 사귐을 위해 어떤 신앙적인 노력이 필요한지 나눠봅시다.
(작성: 백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