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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19구간 제2부
난동마을갈림길-전망대-구리재-구례수목원-
탑동마을-효동마을-부촌마을-산동면사무소
20260721
1.지산정에서 지리산 만복대를 향하여 활을 당기다
2주일 만에 지리산둘레길 탐방을 위하여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방광마을 주차장 참새미마을 버스정류소에 다시 왔다. 지난 번 지리산둘레길 탐방은 토지면 오미마을에서 출발하여 마산면 주요 지역을 통과하여 광의면으로 넘어와 방광마을에서 마쳤다. 이번 탐방은 구례군 광의면(光義面) 방광리 방광마을에서 출발하여 광의면 대전리와 온당리를 통과하여 지초봉 구리재를 넘어, 산동면(山洞面) 탑정리로 내려가 내산리를 거쳐 산동면소재지 원촌리에 자리한 산동면사무소에서 마친다. 구례군 광의면 3개 里와 산동면 3개 里 지역을 탐방한다.
지리산둘레길 사이트에서는 방광-산동 구간을 이렇게 개략한다.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방광마을과 구례군 산동면 원촌리 산동면사무소를 잇는 13km의 지리산둘레길 방광-산동 구간은 지리산국립공원을 이웃하며 걷는 임도와 마을을 잇는 옛길로 구성된다. 광의면 방광리 일주도로 입구에 위치한 천은사도 여유가 되면 둘러볼 수 있다. 난동마을을 지나 당동 예술인마을을 돌아가다 보면 조선시대 남악사터와 대전리 석불입상을 볼 수 있다. 지초봉 일대는 구례수목원과 접해 있어 다양한 숲자원을 만난다.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불이 와서 불로장생 약을 찾았다는 지초봉 옆의 구리재에 올라서면 구례분지의 넓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요 경유지 및 각각의 거리는 방광마을 (4.2km) 난동갈림길 (3.7km) 구리재 (3.7km) 탑동마을 (1.4km) 산동면사무소이고, 전체거리 13km, 예상시간 약 5시간 30분, 난도 中이다." 이 구간 탐방 체험을 2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2부(난동마을갈림길-산동면사무소) : 지리산둘레길 방광-산동 19구간을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放光里) 방광마을에서 출발하여 온당리 난동마을 갈림길까지 4.1km를 걸어왔다. 거쳐온 곳은 광의면 대전리(大田里) 지역과 온당리(溫堂里) 지역의 당동마을과 구례예술인마을이다. 목적지 산동면 원촌리 산동면사무소까지는 아직도 8.6km가 남아 있다. 이제부터 이 구간에서 가장 어렵다는 광의면 온당리와 산동면 탑정리의 경계를 이루는 구리재를 넘어야 한다. 난동마을 갈림길에서 구리재까지는 3.7km 거리다.
구리재로 올라가는 고갯길은 꼬부랑꼬부랑 굽이돈다. '지리산둘레길'에서는 고갯길이 구렁이(구리)가 움직이는 것처럼 구불구불하다고 하여 구리재라 불린다고 설명하는데, '구례군지(求禮郡誌)'에서는 비둘기가 많이 날아든다고 하여 구래재(鳩來峙)라 불리다가 구리재가 되었다고 한다. 고개 지명의 유래를 고갯길의 모양새와 고개의 생태에서 각각 설명하는데, 그 설명이 모두 나름의 타당성이 있지만 길손은 구례군지의 설명을 따르고 싶다.
구리재 고갯길을 오르며 온난제(溫蘭堤)를 지난다. 수원이 부족하여 가뭄이 지속되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난동마을 주민들이 구례군과 국회의원에 건의하여 온난제를 1968~1969년 시설하였다고 하는데, 부지는 주민 자력 부담으로 평당 60원씩 갹출하여 매입하였다고 한다. 역경을 극복하려는 농민들의 각고의 노력과 협동 정신이 온난제에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간미봉-납재-구리재-지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서쪽의 지초봉 안부(鞍部) 구리재를 향해 구리재 고갯길을 꼬불꼬불 따라오른다. 전주최씨 문성공파연촌공 온동종중묘원, 납재 갈림길, 지리산정원 갈림길, 편백나무숲, 전망대를 거쳐 구리재 마루에 조성된 쉼터누각에 올랐다. 구리재 누각에 이르는 고갯길 곳곳에서 서쪽과 남쪽으로 구례 분지 풍경이 활짝 열린다. 그 풍경을 조망하며 가슴이 달아오른다.
구례 분지 풍경의 정점은 광의면과 용방면, 마산면 들녘과 서시천이다. 서시천이 구례군 광의면과 용방면 들녘을 중앙으로 가르며 섬진강으로 흘러가고, 서시천과 섬진강에 에워싸여 구례시가지가 봉성산 자락에 자리한다. 산성봉과 요강바위산 뒤쪽에는 견두지맥 능선이 천마산, 깃대봉, 형제봉, 천왕봉, 병방산으로 이어져 섬진강에 몸을 푼다. 그리고 남동쪽에 계족산과 오산이 솟아 있다. 구례 분지를 높은 곳에서 내려보니 구례 분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며 더욱 아름답게 가슴에 새겨진다. 전망대와 구리재 마루의 쉼터누각에서는 풍경이 나뭇가지에 가려 활짝 열리지 않고 닫혀 있는 반면에, 고갯길에서는 풍경이 활짝 열려 구례 분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어 가슴이 뛰었다.
지초봉에서 노고단과 반야봉 조망이 백미라고 하는데 길손에게는 언감생심, 그리움만 안은 채 시간과 체력 때문에 지초봉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였다. 이제부터는 산동면 탑정리 구리재 고갯길을 따라 내려간다. 구리재 남쪽 광의면 지역은 구름이 잔뜩 끼어 빗방울이 떨어졌는데, 구리재 북쪽 산동면 지역은 햇볕이 쨍쨍하다.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는 엉터리 예보가 되었다. 길가에는 노루오줌 분홍색 꽃과 물레나물 노랑색 꽃이 한여름의 햇볕을 받으며 꿋꿋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빛내며 당당하다. 구리재 북쪽 비탈에도 편백나무숲이 조성되어 있고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저질 체력 때문에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여 쉼터에서 쉴 여유도 없이 구리재 북쪽 골짜기 숲으로 들어가 구례수목원 앞으로 나갔다. 숲에서 나오니 햇볕이 더욱 쨍쨍해졌다.
구례수목원에서 지리산온천로 탑동마을 입구에 이르는 약 1km의 아스팔트 도로인 탑동1길을 따라간다. 정면 맨 뒤쪽에 견두지맥이 이어지고, 구리재 북쪽 골짜기 물은 구례수목원 입구 다리를 지나 탑동1길 동쪽을 따라 넓은바위골을 지나 흘러내리고, 숨은 맛집 수목촌 음식점이 넓은바위골 언덕에 자리한다. 한여름 땡볕이 강렬하여 몹시 힙겹다. 탑동1길 서쪽 길가의 수로를 흐르는 물에 손을 담가본다. 물의 감촉에 몸 일부가 풀어지는 느낌이 든다. 강렬한 땡볕의 고통을 날려주는 것은 배롱나무 붉은 꽃이었다. 탑동1길 서쪽 원깍음골의 비탈밭 배롱나무 재배지에 줄지어선 붉은 배롱꽃의 아름다움에 환호하였다.
산동면 탑정리 탑동마을 서쪽에 자리한 구례성당 산동공소가 검소하다. 비종교인 길손의 눈에는 저렇게 검소하고 단아한 성당 건물에 감동한다. 산동공소 출입구에 그윽한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솟아 있고, 그 아래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그 쉼터정자에서 도보여행팀 한 회원이 편안하게 누워 자고 있다. 부러웠지만 길손은 행동하지 못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산동공소 앞에서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온천로를 건너 효동마을로 이어지는데, 횡단보도 동쪽의 탑동마을을 들렀다가 효동마을로 이어지는 탐방로가 더 나을 것 같다. 탐방로를 벗어나 탑동마을을 둘러보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여 아쉽다.
산동면 탑정리에서 서시천의 효동교를 건나 산동면 내산리로 넘어간다. 효동교에서 서시천 상류 만복대 능선을 올려보았다. 작은고리봉, 묘봉치, 만복대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서북능선이 시원하다. 저곳을 다섯 차례 걸었는데, 남쪽에서 바라보니 감회가 크다. 서시천은 만복대에서 발원한다. 지리산둘레길 오미-난동 구간 탐방 때 서시천을 거슬러 구만제까지 올라왔었다. 이번에는 서시천의 상류에서 발원지인 산수유마을과 만복대를 올려보고 있다.
서시천(西施川)은 만복대(萬福臺)에서 발원하여 산동면 원촌리에서 수락천을 합수하고 광의면 구산리 구만제(九灣堤)에서 호수를 이루고, 광의면 연파리에서 천은천을 합수하는데, 여기까지를 소아천(小兒川)이라 이르며 이후를 서시천이라 이른다고 한다. 서시천은 서불(徐市)이 진시왕의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러 두 번이나 지리산과 이곳을 다녀갔기에 이 하천을 서불천(徐市川)이라 하였는데 불(市) 자와 시(市) 자가 혼동스러워 서시천(西市川)이 되었다고 하고, 또 이 냇물에서 아낙들이 빨래하는 모습이 마치 중국의 4대 미인 서시(西施)처럼 아름다워 서시천(西施川)이라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구례 분지의 젖줄 서시천이 산동면 위안리 산수유마을에서 흘러와 탑정리 탑동마을과 내산리 효동마을을 지나 원촌리 원촌마을로 흘러간다.
효동마을 입구에 궁도장 지산정이 있다. 지산정(智山亭)은 지리산의 궁도장이라는 뜻일 것이다. 궁도장 정면에서 바라보면 북쪽에 지리산 만복대 능선이 장쾌하게 이어진다. 지산정은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산정(智山亭)은 1991년 10월 15일 산동면 원촌리 舊명산중학교 터에서 개정하여 1993년 2월 현 위치인 내산리로 이전하였고, 2009년 군비 3억원 지원으로 철근콘크리트 2층 66평의 건물을 신축하였으며, 2024년 12월 30일 건물 1동과 지산정 사대(射臺)가 준공되어, 2026년 3월 27일~29일 전국 남녀궁도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궁도에 문외한인 길손이 잠시 지산정 궁도장과 궁방을 살폈다. 활쏘기와 관련된 여러 문구들이 지산정 궁방 벽면과 창벽 바깥 유리벽에도 붙어 있다. 사대(射臺)로 나가는 궁방 중앙 출입문 벽에 '활은 마음으로 쏜다' 편액과 '正間'이 붙어 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는 것, 원효의 깨달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활쏘기의 기본이다. '正間'은 아마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이르는 것 같다. 그리고 집궁제원칙(執弓諸原則)과 궁도구계훈(弓道九戒訓)이 걸려 있다. 집궁제원칙은 활쏘기 자체의 기술과 관련된 규범이고, 궁도구계훈은 습사시에 지녀야 할 마음가짐과 다른 사람에 대한 예절에 관련된 내용으로, 궁도는 단순히 활을 쏘는 기술일 뿐 아니라 일종의 정신수련 과정임을 담고 있다.
산동면 내산리 효동마을은 처음에 소(牛)의 배를 의미하는 소통굴이라 불렸으나 마을 뒷산이 청룡고지(靑龍高地) 지세여서 효자가 많이 나온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 이름이 효동(孝洞)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효동마을은 골목의 벽화가 아름답다. 효와 관련된 여러 그림들과 문구들이 적혀 있다. 효의 정기가 서린 효동마을, '부모에 대한 공경'을 뜻하는 '효(孝)' 문자도의 상징물인 왕상의 잉어, 맹종의 죽순, 황향의 부채, 순임금의 거문고가 그려져 있고, '이 세상에 너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까?' 구절은 효를 실천하는 사람을 이르는 것 같다.
효동마을을 지나 서시천을 따라 내려간다. 넘어온 구리재와 지초봉이 남쪽에서 정답게 손짓한다. 저곳을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때는 꼭 지초봉에 오르리라. 동쪽에서는 백두대간 지리산 서북능선인 종석대, 성삼재휴게소, 작은고리봉, 묘봉치, 만복대가 산수유마을 북쪽으로 이어진다. 구례군 산동면 내산리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풍경은 구례 분지에서의 지리산 풍경 조망과 달리 단순하며 장쾌하다. 땡볕을 받는 푸른 여름날의 지리산 서북능선이 늠름하게 하늘에 긴 선을 긋는다.
부촌길을 따라 서시천을 내려가면 부촌마을 이르기 전에 화충법단(和衷法壇)이 있다. 궁금하여 들어가 보았다. 화충공제(和衷共濟)가 걸려 있다. 화충(和衷)은 마음 깊이 화목함을 뜻하며 화충공제(和衷共濟)는 마음을 함께하여 어려움을 함께 건넌다는 뜻이다. 뜻은 얼마나 좋은가? 화충법단 뜰에 영산미륵탑 제1호, 국제도덕협회 일관도 및 화충법단 역혁비, 미륵불이 앉아 있다. 연혁비를 살펴 보면 국제도덕협회 일관도는 1953년, 화충법단은 1962년 설단되어, 1968년 산동면 원촌리에 법단이 신축되었고, 산동면 내산리 현 위치의 화충법단은 1994년 착공하여 1996년 준공되었으며, 연혁비는 2003년 1월 10일에 세워졌다. 미륵불, 영산미륵탑 등이 세워져 있고, "대자대비한 미륵부처님께, 영원무궁토록 자자손손 복을 받고 불심이 충만하여 10800년 불국정토를 이루고자 한다"는 내용이 연혁비에 적혀 있는 것을 보면 불교 계통인 듯한데 불교 종파에 속하지 않는 신흥종교라는 생각이 든다. 길손은 종교를 부정하기에 이 종교 또한 혹세무민(惑世誣民)할까 두렵다.
서시천 둑방에서 내산리 부촌마을로 들어가 수락천(水落川)의 원효교를 건넌다. 원효교는 원효 스님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산동면 원촌마을과 효동마을을 이어준다는 뜻일 것이다. 수락천은 견두지맥 능선 남쪽 산동면 수기리 수락폭포(水落瀑布) 위쪽 양해박골에서 발원하여 원달리와 내산리를 지나 원촌리에서 서시천에 합수한다. 수락천은 원달리 지역을 흘러내리기에 원달천(元達川)이라 불렸는데, 발원지인 수락폭포(水落瀑布)를 중시하여 수락천이라 바뀐 것 같다.
원효교를 건너 산동면 면소재지 원촌리 원촌마을로 들어갔다. 원촌마을은 수락천과 서시천에 에워싸여 민가들이 옹기종기 다정하게 붙어있다. 골목길로 들어가 원촌마을의 중심을 통과하는 원촌길로 나갔다. 산동면주민자치센터 앞에 산동면사무소가 있고, 그 출입구에 지리산둘레길 19·20구간 시종점이 있다. 이곳에서 지리산둘레길 19구간을 마치고 원촌마을 앞 원촌길을 따라 도보여행 버스 대기 중인 곳으로 내려간다. 원촌마을의 아기자기한 벽화들이 마음을 녹이고, 이웃사랑의 신타인능해 나누고가게가 가슴을 물들인다. 박남준 시인의 시에서처럼 지리산둘레길은 낮은 산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작은 산골마을이 풀어놓은 정겨운 사진첩이 있기도 하다.
"순한 애벌레처럼 가는 길이 있다/ 땀 흐르던 그 길의 저기쯤 마을이 보이는 어귀에는/ 오래 묵은 당산나무 귀신들이 수천 천수/ 관음의 손을 흔들며 맞이해서/ 오싹 소름이 서늘한 길이 있다// 두리번두리번 둘레둘레/ 한눈을 팔며 가야만 맛을 보여주는 길이 있다/ 더운 여름날 쫓기듯 잰 걸음을 놓는 눈앞에는/ 대낮에도 백년여우가 홀딱홀딱 재주를 넘으며/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이 무시무시한 길이 있다// 서어나무 숲이, 팽나무 숲이, 소나무 숲이,/ 서걱서걱 시누대 숲이 새파랗게 날을 벼리고는/ 데끼 놈, 게 섯거랏 싹뚝,/ 세상의 시름을 단칼에 베어내고/ 도란도란 낮은 산길이 들려주는 이야기/ 작은 산골마을들이 풀어놓은 정겨운 사진첩// 풍풍풍 샘물에 목을 축이며 가는 길이 있다/ 막걸리 한두 잔의 인심이 낯선 걸음을 붙드는 길이 있다/ 높은 산을 돌아 개울을 따라 산과 들을 잇고/ 너와 나, 비로소 푸른 강물로 흐르고 흐르는/ 아직 눈매 선한 논과 밭, 사람의 마을을 건너는 길이 있다" - 박남준(朴南濬, 1957~)의 '지리산에 가면 있다' 전문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3.9km
전체 탐방 시간 : 4시간 49분
지리산둘레길 17구간 오미-난동 시종점에 오미-난동 시종점 안내판, 지리산둘레길 상징조형물 벅수와 이정목이 서 있다. 지리산둘레길 19구간 방광-산동 남은 거리 난동-산동 8.6km를 계속 이어간다.
난동갈림길의 지리산둘레길 17구간 시종점 맞은편에 지리산둘레길 구례구간 안내도와 19구간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중앙 뒤에 지초봉이 솟아 있고, 지리산둘레길은 앞쪽 구리재 갈림길에서 전신주가 있는 오른쪽 길로 올라간다.
지리산둘레길 구례구간 안내도 옆에 지리산둘레길 19구간 방광-산동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안내도를 보면 8.8km가 남아 있다.
중앙 뒤에 지초봉이 솟아 있다. 왼쪽 길은 지리산둘레길 광의안내센터 방향,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 길로 올라간다.
구리재 갈림길에서 난동갈림길의 지리산둘레길 17구간 오미-난동 시종점을 돌아보았다.
구리재 갈림길에서 구리재 가는 길로 올라간다. 정면에 보이는 고개는 간미봉 능선의 납재이며, 왼쪽의 구리재는 보이지 않는다.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 난동(蘭洞)마을은 난초가 많이 있다고 하여 '난곡(蘭谷)'이라 불렸는데, '난초골', '난죽골'로도 불린다고 한다. 난동길을 따라 난주골 농원을 지나간다
오른쪽 뒤 산봉에서 중앙의 천마산과 왼쪽 깃대봉으로 견두지맥이 이어지고, 오른쪽 앞에 까치절산이 나즈막하다.
난동길을 따라 올라가며 오른쪽 뒤의 납재를 가늠한다. 납재는 제비가 날아오는 형국인 연래재(燕來峙)가 납재로 변한 듯.
중앙 뒤에 간미봉(艮美峰)이라 불리는 갈미봉(갈매기봉鷗峰), 맨 왼쪽에 납재가 가늠된다. 납재는 연래재(燕來峙)가 변한 듯.
난동길에서 구례 분지(盆地)를 내려 보았다. 맨 왼쪽 뒤에 오산과 봉성산, 구례시가지, 중앙의 산성봉, 오른쪽 앞의 요강바위산이 확인된다. 그리고 오른쪽 맨 뒤 형제봉과 중앙 맨 뒤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견두지맥이 섬진강으로 떨어진다.
방광 4.4km, 산동 8.3km 지점, 갈림길에서 위쪽 난동길을 따라 구리재 방향으로 올라간다.
방광 4.6km, 산동 8.1km 지점, 골짜기를 건너 난동길121 배단지내 표지판을 지나 온난제 언덕으로 올라간다.
온난제(溫蘭堤) 뒤쪽 골짜기는 양미봉골이라 이르는 듯.
온난제(溫蘭堤)는 마을 뒤편 349-3, 348-4 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는데 수원이 부족하여 한발이 계속되면 뒷들 약40%가 이앙(移秧)이 불가하여 관계요로와 1968~1969년 당시 이현재(李賢宰) 국회의원 귀향보고시 건의하여 시설되었다. 당시 부지는 주민자력 부담으로 매입하였으며 평당 60원씩 갹출하여 시공은 방광리 거주 고 이경택(李景澤)이 맡아서 했었다. - 求禮郡誌
전주최씨 문성공파연촌공 온동종중묘원 앞을 지나간다.
방광 5.0km, 산동 7.7km 지점, 지리산둘레길은 왼쪽 구리재 방향으로 올라가고, 직진하여 납재골로 올라가면 납재로 이어지는 듯.
납재 갈림길에서 구리재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서시천이 구례군 광의면과 용방면 들녘을 중앙으로 가르며 섬진강으로 흘러가고 왼쪽 앞에 요강바위산이 보인다. 맨 뒤에는 견두지맥 능선이 맨 오른쪽 깃대봉, 중앙 형제봉, 왼쪽 뒤 천왕봉으로 이어진다.
방광 5.6km, 산동 7.1km 지점, 지리산정원 갈림길에 구례생태숲 안내도와 칡대밭골 이정목이 서 있다. 왼쪽은 지리산정원 0.8km 방향,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 구례수목원 4.8km 방향으로 올라간다.
구례생태숲은 지리산정원으로 이름이 바뀐 듯. 다양한 나무숲들이 조성되어 있어 호기심을 끈다.
지리산정원은 2024년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방정원 제3호로 지정된 남도 최초의 숲정원이다. 지리산정원은 지리산 자락의 지초봉(해발601m)을 중심으로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야생화테마랜드, 구례생태숲, 숲속휴랜드, 유아숲체험원, 지리산자생식물원, 숲속수목가옥, 생명치유가옥 등 시설이 있다. 이외에 소나무숲에 조성된 별빛숲정원, 와일드정원과 케스케이드 및 야생화타워와 어우러진 하늘정원, 숙박시설 주변에 조성된 프라이빗정원, 계절별 야생화가 피는 어울림정원 등으로 조성된 숲정원이다. - 대한민국구석구석
방광 5.6km, 산동 7.1km 지점, 구리재 임도는 굽이돌며 구리재로 올라간다.
맨 왼쪽 뒤에 계족산, 중앙 앞에 오산, 그 오른쪽에 섬진강, 구례시가지 앞에 서시천, 그 뒤에 봉성산, 그 뒤에 병방산도 보인다.
구리재 임도가 굽이도는 곳 옆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구리재 임도에서 동쪽의 간미봉을 가늠하였다. 간미봉은 갈미봉, 구봉(鷗峰갈매기봉), 구봉(驅峰)으로도 불린다.
마을을 이루는 뒷봉우리들이 풍수설의 형국으로는 갈매기 같다는 구봉(鷗峰), 말이 달리는 형상이라고 해서 구봉(驅峰) 또는 간미봉(艮美峰), 관모봉(官帽峰벼슬모자형) 등으로 불린다. 풍수의 보기에 따라 달랐던지 여러 가지 이름이 붙여졌지만 그 아래 골짜기를 비약골(飛躍谷)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면 갈매기 형국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으며 구봉(鷗峰)의 서쪽으로 솟은 봉이 매봉(鷹峰) 또 서편으로 제비가 날아든다는 연래재(燕來峙)가 있으며 또한 이어진 서쪽 봉은 비둘기가 날아든다는 구리재(鳩來峙)가 있다. - 구례군지
구리재 임도 산비탈에 편백나무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구리재 임도가 굽이도는 서쪽 공간에 구례 지역을 조망하는 전망대가 있으나 나뭇가지에 가려 전망이 활짝 열리지 않는다.
구리재 마루에 쉼터와 쉼터누각이 조성되어 있다. 구리재는 비둘기가 많이 날아든다고 하여 구리재(鳩來峙)라 불린다고 한다.
난동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구리재에 닿는다. 구리재는 구렁이를 뜻하는 ‘구리’에서 가져온 이름으로 재에 오르는 길의 생김새가 구렁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구불구불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리재에서 산길로 조금 올라가면 지초봉이다. 예전에는 할미성(할미봉)이라 불렀다. 지방관아의 쌀을 보관하는 역할을 하는 합미성(合米城)이 조선 후기 할머니 성쌓기 설화와 결합하면서, 할미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지초봉 꼭대기에는 구례읍의 산성봉과 신학리 함미성을 연결하는 봉화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초봉 정상에 서면, 반야봉과 노고단에서 뻗어나간 서북능선, 종석대에서 뻗어온 간미봉능선, 만복대에서 갈라져 나와 구례와 남원을 가로지르는 견두산능선이 장쾌하게 보이고, 그 아래로 구례의 너른 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 지리산둘레길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생 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의 구절이 구리재 마루 쉼터의자 윗면에 적혀 있다.
구리재 쉼터누각 2층에 지리산둘레길 방광-산동 구간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방광 7.7km, 산동 5.0km 지점, 구리재 쉼터 누각에서 점심을 먹고 구리재를 내려간다.
비둘기가 많이 날아든다는 구리재(鳩來峙) 마루에 조성되어 있는 쉼터와 쉼터 누각을 돌아보았다.
왼쪽 임도는 지초봉 방향,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 임도를 따라 구례수목원 방향으로 내려간다.
왼쪽 방향 야생화테마랜드 1.9km, 지초봉 0.72km 거리이고, 오른쪽 방향 구례수목원 4.0km 거리이다.
구리재의 간미봉 나들목에 이정목이 서 있다. 구례자연휴양림 1.8km, 간미봉 1.5km, 납재삼거리 1.0km 거리이다.
구례군 산동면 탑정리 구리재 임도를 따라 구례수목원 방향으로 내려간다.
산동면(山洞面)은 구례에서 가장 북쪽 끝에 있다. 남원부 산동방(山洞坊)으로 1864년경에 내산면과 외산면으로 분면되었는데 광무원년(1897)에 구례군에 편입되었다. 그런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탑정, 원촌, 시상, 외산, 이평, 신학, 둔사 등 7개 리를 구례군 외산면으로, 계천, 수기, 원달, 내산, 관산, 위안, 대평, 좌사 등 8개 리를 구례군 내산면으로 개편하였는데, 1932년 11월 1일에 내산면과 외산면을 병합하여 산동면으로 개칭하였다. 산동은 지리산 밑의 골짜기이므로 ‘산골’이라 불렀고 고려 때 산동부곡(山洞部曲), 조선 시대에 산동방(山洞坊)이라 불렀으며 산동원(山洞院)이 원촌에 있었다. 동쪽으로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남쪽으로 토지면, 마산면, 광의면, 용방면, 서쪽으로 곡성군 수지면과 고달면, 북쪽으로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닿았다. - 구례군청
산동면 탑정리 구리재 임도를 따라 편백나무숲을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간다.
구리재 임도를 따라 편백나무숲을 오른쪽으로 돌아내려가면 앞쪽에 편백나무 숲속쉼터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지리산둘레길 방광-산동구간을 지나는 객(客)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편백나무 숲속 쉼터입니다. 편백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는 나무가 외부 곰팡이나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물질로 사람에게는 면역력 강화, 스트레스 완화, 피부질환 등에 효능이 있습니다. 깨끗하고 시원한 숲내음 마시며 편백의 기운까지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 안내판
구리재 임도 길가에 노루오줌 분홍색 꽃이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환한 웃음으로 여름낮을 보내고 있다.
지리산정원 4.5km, 구례수목원 1.1km 지점, 구리재 임도가 굽이도는 옆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방광 9.3km, 산동 3.4km 지점, 쉼터정자 바로 아래서 지리산둘레길은 구리재 임도와 헤어져 왼쪽 숲속으로 들어간다.
산동면 탑정리 구리재 골짜기 나무다리를 건너 구례수목원 매표소 방향으로 내려간다.
산동면 탑정리 구리재 골짜기 사방댐 철조망 울타리를 지나간다.
구리재 골짜기의 물이 구례수목원 출입구 다리 아래로 흘러간다. 오른쪽에 매표소가 보인다.
방광 10.1km, 산동 2.5km 지점, 구리재 임도에서 숲속으로 들어와 산동면 탑정리 구리재 골짜기를 따라 내려왔다.
숲길에서 탑동1길로 내려와 구례수목원 앞에서 구례수목원 출입구의 매표소를 올려보았다.
구리재에서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구례수목원에 도달한다. 지리산둘레길은 수목원을 비켜가는 계곡길을 따라 이어진다. 구례수목원은 2020년 전라남도 공립수목원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54ha의 산림면적 곳곳에 힐링숲속 정원으로 아름답게 조성된 봄향기원, 겨울정원, 그늘정원, 외국화목원, 기후변화테마원, 자생식물원, 계류생태원 등 13개의 주제정원과 방문자안내소, 전시온실 및 종자학습관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다양한 자생나무들과 꽃들로 식재되어 생태학습과 체험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 지리산둘레길
탑동1길을 따라 산동면 탑정리 탑동(塔洞)마을로 내려간다. 정면에 견두지맥이 이어지며 중앙 왼쪽에 견두산이 가늠된다.
탑동(塔洞)마을은 백제 의자왕 시대 감부현(甘富縣) 소속으로 마을 입구에 암자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현재 탑 1기만 남아 있다. 조선 중종 때 남원 양씨 공지(公之) 선생이 거주하다가 숙종 시대에 홍주 이씨 재춘(再春)이 남원 보절에서 이주하여 정착함으로써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 입구에 신라시대 탑이 있어 탑동이라 칭하였다. - 군례군청
탑동1길을 따라 구례군 산동면 탑정리 넓은바위골을 지나간다. 오른쪽 숨은맛집 수목촌 아래를 넓은바위골이라 이른다.
산동면 탑정리 원깍음골에 배롱나무 재배지가 있고 그 아래 참깨밭에 참깨꽃이 피었다.
원깍음골 배롱나무 재배지 앞에서 지초봉과 구리재를 돌아보았다. 왼쪽 위는 넓은바위골, 오른쪽은 원깍음골이라 이른다.
탑동1길을 따라 탑정마을 뒤 대나무숲을 지난다. 왼쪽에 산동약수장이 있고, 중앙 뒤 산자락에 내산리 효동마을이 자리한다.
탑정리 비탈밭에 벼들이 푸르게 자라고, 오른쪽에 산동약수장과 그 뒤에 산동성당이 자리하며 중앙 뒤 산자락에 산동면 면소재지 원촌리 원촌초등학교가 가늠된다. 맨 뒤에 견두지맥이 이어지고 툭 튀어나온 산봉이 천마산일 것이라 가늠한다.
산동성당 출입구에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멋지게 솟아 있고, 그 아래 쉼터정자가 있으며, 그 뒤에 산동약수장이 있다.
구례성당 산동공소가 검소한 모습으로 자리한다. 2008년 3월 19일 공소 설립인가를 받아 2009년 5월 30일 첫 미사가 봉헌되었으며, 2010년 5월 2일 축복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방광 11.2km, 산동 1.5km 지점, 오른쪽에 탑정리 탑동마을이 있으며 지리산온천로를 따라 올라가면 위안리 산수유마을이 나온다.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온천로를 건너 효동마을 표석과 지산정 표석 사이의 효동길을 따라간다.
왼쪽에 산동약수장이 있고, 지리산온천로의 회전교차로 아래쪽은 산동면 원촌리 지역이다.
지리산온천로의 효동길 출입구의 일송정 음식점 앞에 궁도장 지산정(智山亭) 방향 표석이 서 있다.
효동길을 따라 임산물 유통센터 앞을 지나 효동교를 건너 내산리로 넘어간다. 서시천은 탑정리와 내산리의 경계를 이룬다.
효동교에서 서시천 상류 방향을 올려보았다. 왼쪽 뒤에 만복대, 중앙에 묘봉치, 그 오른쪽에 작은고리봉이 솟아 있다.
서시천(西施川)은 만복대(萬福臺)에서 발원한 중동천(中洞川)과 수락폭포(水落瀑布)에서 발원한 원달천(元達川)과 율치에서 발원한 계월천(桂月川)이 흘러내려 산동면 원촌에서 만나서 남쪽으로 흘러서 운홍소(雲興沼)를 지나 이평에서 무은천을 받아들이고 구만제(九灣堤)에서 호수를 이루고 다시 구례분지의 중심부를 관류하며 연파리에서 천은천을 받아들인다. 여기가 소아천(小兒川)이다. 용정을 지나온 석곡천(石谷川), 지천마을을 거쳐 흐르는 남계천(藍溪川), 사동에서 홀러나온 백련천(白蓮川)을 받아들여 구례읍의 동쪽으로 흘러서 양정(兩汀)의 합수목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길이가 대체로 30㎞이며 유역 면적이 162㎢이 다. 구례분지의 젖줄이다.「속수구례지」의 기술을 번역해 아래에 싣는다.
소아천(所兒川)으로 부르기도 한다. 산동면 율치(栗峙)와 달음령(達陰嶺)의 묘봉(卯峰)에서 발원한다. 이것이 동원(東源)이다. 둔산치(屯山峙)와 두거치(斗莒峙)에서 흘러 나온다. 이것이 서원(西源)이다. 만복대, 고리봉, 성삼재에서 발원하여 성원(星院)을 지나 중방(中方)에 이르러서 천은사 계곡 물을 합하는데 여기가 소아천(所兒川)이다. 또 광의면과 용방면의 여러 물을 합하여 서시천(西施川)이 된다. 또 구례읍과 마산면의 여러 물을 합해서 양정(兩汀)에 이르러서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길이가 18.07㎞로 광의면 구만제(九灣堤)에 머물러서 유역의 논에 관개한다.
진시왕 때 서복이 동남동녀(童男童女) 3,000명을 거느리고 삼신산에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러 왔다가 구하지 못하고 일본에 머물러 살았다고 일본 사람들은 주장하는데 정수일(鄭守一)은 '서복도한고(徐福渡韓考)'에서, "서불(徐市, 서복과 동일인)이 삼신산에 가면서 이 마을에 들러 샘물을 마셔보니 물이 하도 차서 찬 샘이 솟아나는 곳이라고 하여 마을을 '냉천(冷泉)'이라 이름 지었으며, 서불이 두 번이나 오갔다고 해서 이 강을 '서시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고 지명 유래 전설을 소개하며 서복이 제주도로 갔다고 하였다. - 구례군지
정면 뒤에 지초봉과 구리재, 오른쪽 뒤에 산동약수장, 건너편에 임산물 유통센터, 그 앞 서시천의 효동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시천 북안(北岸)에 궁도장 지산정이 자리하고, 중앙 뒤에 만복대, 그 오른쪽에 묘봉치, 맨 오른쪽에 작은고리봉이 보인다.
지산정 출입구 앞에 지산정(智山亭) 표석이 놓여 있고 그 앞에 강기중 선생 공적비, 지산정 건립비와 사대 건립 기념비가 서 있다.
지산정 건립비 : 우리 지산정은 1991년 10월 15일 지역 주민과 산동중학교 교사들이 공동 발기하여 산동면 원촌리 舊 명산중학교 터에 과녁을 세우고 정자도 없이 개정하였다. 당시 초대 사두로 강기중 산동중학교 교장선생님이 직접 습사 지도를 하여 오다 1년 4개월 후인 1993년 2월 지리산 만복대와 노고단이 사대 정면에 위치하고 아름다운 산수유 군락과 더불어, 깨끗한 물이 흐르는 서시천 상류인 산동면 내산리 천 833-1번지로 이전한 후 현 사대 자리에 조립식 건물을 지어 현판을 달고 명맥을 이어왔다. 그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전 사원 의기투합하여 수련정진해 오면서 전국 각종 궁도대회에서 출중한 실력을 과시하였으며, 매년 산수유꽃 축제에 맞춰 영호남 대회를 개최하여 정(亭)의 위상과 지역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큰 행사를 치르면서도 정(亭) 본건물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구례군으로부터 제9대 김경일 사두 외 전 사원들의 기개와 열의를 인정 받아, 2009년 군비 3억원 지원으로 산동면 내산리 833-4번지에 현대식 철근콘크리트 2층 66평의 건물을 신축함으로서 앞으로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 무예인 궁도를 통하여 국민 정서 함양과 체위 향상에 기여하고, 사풍(射風)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 2010.3.16.
지산정 사대 건립 기념비 : 지산정은 구례군 산동면 효동길 18번지에 위치하며 서시천을 끼고 있고 뒤로는 노고단, 차일봉, 만복대를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에 있으며 전국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1991년 10월 구 명산중학교 앞에서 개정하였고 93년 2월에 이곳으로 옮겨 블럭구조 2평 사대와 과녁 하나로 시작하였다. 사원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조립식 건물을 2회에 걸쳐 확장하고 과녁도 3개로 증설하여 궁도를 연마하였다. 전국 남여궁도대회, 영호남궁도대회, 전라남도승단대회 등을 치르는데 장소가 협소하고 휴게공간이 부족하여 전국대회 규모로 개최하기에는 많은 불편을 겪고 있던 차에 제44대 김순호 구례 군수께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군비 19억원을 지원하여 주셨다. 강봉길 사두와 사원 일동은 33년의 숙원사업인 사대를 현대식으로 건립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신 김순호 군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우리는 선조들이 이어온 찬란한 민족문화 전통을 이어가며 국민정서를 함양하는 모든 이들의 터전이 될 지산정에서 화합과 수련의 기쁨을 나누기를 바란다. 끝으로 사대 건립에 노력하신 모든 분들의 정성과 헌신에 감사드리며 대한민국 궁도 발전을 기원한다. 2024.12.30.
지산정 궁도장이 잘 정비되어 있다. 2026년 3월 27일~29일 전국 남녀궁도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정면 뒤에 만복대 능선이 멋지다.
2년에 걸려 건물 1동과 사대(射臺) 공사를 마치고, 2024년 12월 30일 지산정 사대 준공식이 개최되었다고 한다.
신축된 건물 지산정 궁방과 휴게실이 깨끗하다. 사대 중앙 출입문 벽에 '활은 마음으로 쏜다' 편액과 '正間'이 붙어 있다.
지산정 궁방에 활쏘기와 관련된 여러 문구들이 붙어 있는데, 집궁제원칙(執弓諸原則)과 궁도구계훈(弓道九戒訓)을 살펴보았다.
1.선관지형(先觀地形 後察風勢)(先觀地形) 활쏘기 전 먼저 지형을 살피고, 다음에 바람의 흐름(風勢)을 살핀다.
2.비정비팔 흉허복실(非丁非八 胸虛腹實) 발의 위치는 정(丁)자도 아니고, 팔(八)자도 아닌 자세로 서며, 가슴은 넓히고 배에 힘을 주어 가득 채운다. '흉허'는 '가슴을 비운다'는 뜻이 아니라 '숨을 들이마셔 넓힌다'는 뜻이고, '복실'은 '배에 힘을 주어 단단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3.전추태산 발여호미(前推泰山 發如虎尾) 활을 쥔 손은 태산을 밀듯이 하고, 깍지손은 호랑이 꼬리를 당기듯 뒤로 당긴다.
4.발이부중 반구저기(發而不中 反求諸己) 쏘아서 맞지 않음은 원인이 모두 내게 있으니, 자신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점을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국궁 궁도에서 활쏘기 수련에 입문한 사람이 익히게 되는 아홉가지 교훈. 집궁제원칙이 활쏘기 자체의 기술과 관련된 규범이라면 궁도구계훈은 습사시에 지녀야 할 마음가짐과 다른 사람에 대한 예절에 관련된 내용이다. 궁도가 단순히 활을 쏘는 기술일 뿐 아니라 일종의 정신수련으로서의 성질도 지니는 만큼 의외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1.정심정기(正心正己) 몸을 바르게 함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고, 2.인애덕행(仁愛德行) 어짐과 사랑으로 덕스러운 행실을 하고, 3.성실겸손(誠實謙遜) 정성스럽고 참되며 남에게 나를 낮추어 순하게 대하고 4.자중절조(自重節操) 자신의 품의를 소중하게 하고 절개와 지조를 굳게 지키고 5.예의엄수(禮儀嚴守) 예를 차리는 절차와 몸가짐을 엄하게 지키며 6.염직과감(廉直果敢) 곧고 청렴하며 용감하고 결단성을 강하게 가지며 7.습사무언(習射無言) 활 쏠때는 말하지 말 것이며 8.불원승자(不怨勝者) 나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말 것이고 9.막만타궁(莫彎他弓) 남의 활을 당기지 말 것이다. - 나무위키
궁도장 지산정에서 나와 지산정 위쪽에서, 오른쪽 맨 뒤 종석대에서 섬상재휴게소, 작은고리봉, 묘봉치, 만복대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지리산서북능선을 바라보았다.
효동마을 출입구의 쇠통바위와 쇠통굴 바위 앞에 효동마을 표석이 서 있다. 잠시 산동면 내산리 효동마을을 살폈다.
내산리 효동(孝洞)마을 골목에 벽화가 조성되어 있고, 골목 맨 끝 대나무숲 아래에 효동마을회관이 자리한다.
임진왜란 이후에 남원에서 이주하여 온 밀양 박씨가 정착하면서 설촌되었다고 한다. 당초 소의 배를 의미하는 소통굴이라 불렀으나 마을 뒷산이 靑龍高地 지세여서 효자가 많이 나온다는 설에 따라 마을이 완전히 형성되면서 효동이라 불리게 되었다. - 구례군청
효동마을 골목에 효에 관한 이야기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뒤에 보이는 산줄기가 풍류지리상 청룡혈 지세라고 한다. '부모에 대한 공경'을 뜻하는 '효(孝)'는 유교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시하는 덕목이다. 효 문자도에 주로 등장하는 상징물은 왕상의 잉어, 맹종의 죽순, 황향의 부채, 그리고 순임금의 거문고다.(벽화의 글)
마을 입구에 큰 바위와 길죽하면서도 아담한 작은 바위가 나란히 옛부터 지금까지 자리하고 있는데 이를 일러 큰 바위는 쇠통(자물통)이라 하고 작은 바위는 열쇠를 상징하여 쇠통굴이라 명하던 이름이 소통굴로 변하여 현재의 마을 명인 효동으로 이르게 되었다는 설과 임진왜란 이후 남원에서 이주해온 밀양 박씨가 정착하면서 촌락이 이루어지고 마을 뒷산 줄기가 풍수지리상 청룡혈로 효자를 염원하는 뜻에서 효동孝洞이라 명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마을은 바깥몰과 안몰 두뜸으로 산재된 마을을 1980년에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취락구조 개선사업으로 이뤄졌다. - 마을 유래의 벽화글
산동면 내산리 효동마을에서 부촌길을 따라 내산리 부촌마을로 이어간다.
서시천 건너 왼쪽에 탑정마을, 오른쪽에 산동약수장, 왼쪽 능선 아래 구례수목원, 중앙의 구리재, 오른쪽의 지초봉이 확인된다.
왼쪽 앞에 내산리 효동마을, 오른쪽 건너편에 탑정리 탑정마을이 있다. 정면 뒤 중앙의 종석대에서 그 왼쪽 성삼재휴게소와 왼쪽의 작은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지리산서북능선이 확인된다.
서시천 건너편 오른쪽 앞에 산동면게이트볼장, 중앙에 통큰낙지마을 음식점, 그 왼쪽에 산수관(山茱館)이 자리한다.
서시천 둑방 부촌길을 따라 오른쪽에 보이는 화충법단(和衷法壇) 앞을 지나간다.
오른쪽 맨 뒤 종석대에서 성삼재휴게소와 왼쪽 뒤 작은고리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지리산서북능선을 바라보았다.
서시천 둑방의 부촌길을 따라 내려간다. 오른쪽은 국제도덕협회일관도 산동지부 화충법단(和衷法壇)이다.
정문 처마에 화충법단(和衷法壇) 현판이, 정문 기둥에 재단법인 국제도덕협회일관도 산동지부 표지판이 걸려 있다.
화충(和衷)은 마음 깊이 화목함을 나타내며 화충공제(和衷共濟)는 마음을 함께하여 어려움을 함께 건넌다는 뜻이다.
왼쪽 뒤에 지리산 종석대가 구름에 가려 있고, 중앙 뒤에 산동면게이트볼장 건물이 보인다. 화충법단 뜰의 영산미륵탑 제1호 오른쪽에 국제도덕협회 일관도 및 화충법단 역혁비, 그 오른쪽 뒤에 미륵불이 앉아 있다. 국제도덕협회 일관도는 1953년, 화충법단은 1962년 설단되어, 1968년 산동면 원촌리에 법단이 신축되었고, 산동면 내산리 현 위치의 화충법단은 1994년 착공하여 1996년 준공되었으며, 연혁비는 2003년 1월 10일에 세워졌다.
화충법단에서 부촌길로 나와, 종석대에서 성삼재휴게소와 왼쪽 뒤 작은고리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지리산서북능선을 다시 바라보았다. 오른쪽 서시천 건너편에 산동면게이트볼장, 그 오른쪽 뒤에 산수관(山茱館)이 보인다.
방광 12.1km, 산동 0.7km 지점, 오른쪽 부촌길을 따라 산동면 내산리 부촌마을로 이어간다.
내산리 부촌(富村)마을 입구에서 오른쪽 부촌길을 따라간다.
부촌마을은 설촌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마을 형성은 면소재지에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여 경제 활동이 용이하여 한 집 두 집이 모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옛날에는 원촌마을과 이웃하고 있어 ‘건너뜸’으로 불려 오던 중 1897년경 마을 중앙에 내산(內山)면사무소를 신축하여 면정을 관장하다가 3년 후 원촌으로 이전하였다. 그 후 마을 회의를 거쳐 부촌(富村)으로 개칭되었다. - 구례군청
내산리 부촌마을에서 원효교를 건너 원촌리 원촌(院村)마을로 넘어간다. 원불교 동원교당이 중앙에 보이고, 그 오른쪽 뒤에 산동면사무소가 자리한다. 원효교는 원촌마을과 효동마을을 이어준다는 뜻인 듯.
조선 성종 때 김씨와 공씨가 처음 정착하여 설촌하였으며 임진왜란 전후에 이씨와 박씨, 유씨가 정착하면서 큰 마을로 발전되어 원(院)을 두었다. 여순사건과 6.25동란으로 80%가 전소된 후 다시 복구되었다. 마을 이름은 당초 월천(月川)으로 부르다가 원촌(元村)으로 바뀌었으며 그 후 다시 원(院)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원촌(院村)으로 개칭되었다. 옛날에 계척동에 있었던 산동원(山洞院)을 인조 23년(1645) 운제(雲梯, 지금의 원촌)로 옮겼고 운제를 운제원(雲梯院)으로 개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구례군청
원효교 위에서 원달천(元達川)이라 불렸던 수락천 상류 방향을 올려보았다. 견두지맥이 북쪽을 가로지른다. 수락천은 견두지맥 능선 남쪽 산동면 수기리 수락폭포(水落瀑布) 위쪽 양해박골에서 발원하여 원달리와 내산리를 지나 원촌리에서 서시천에 합수한다.
수락천은 원효교 아래를 지나 서시천에 합수되며, 서시천은 아래에 보이는 원촌교 아래를 지나 산동면 지역을 흘러 구만저수지에 유입되었다가 구례 분지를 가로질러 구례읍 봉서리 양정에서 섬진강에 유입된다. 원촌마을은 수락천과 서시천에 둘려 있다.
수락천의 원효교를 건너 원촌리 원촌마을로 넘어와 수락천 건너편 내산리 부촌마을을 뒤돌아보았다.
원효교를 건너 곧바로 마을 골목 원효2길을 따라나가면 산동면사무소가 나타난다.
산동면사무소 앞에 산동면 주민자치센터가 있으며, 그 앞쪽에 지리산둘레길 방광-산동 시종점이 있다.
산동면사무소 출입구 지리산둘레길 19·20구간 시종점에 지리산둘레길 상징조형물 벅수와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마을 풍치목 수령 240년의 느티나무가 산동우체국 앞에서 마을을 빛낸다.
조선 성종 때 김씨와 공씨가 처음 정착하여 설촌하였으며 임진왜란 후에 이씨, 박씨, 유씨가 정착하면서 큰 마을로 발전되어 원(院)을 두었으나 여순반란사건과 6.25동란으로 전가옥의 80%가 전소된 후 다시 복구되었다. 마을 지명은 당초 '월천'이라 부르다가 원천으로 바뀌었으며 그 후 다시 원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원촌으로 개칭하였다. 기록에 보면, 옛날에 계척동에 있었던 산동원을 인조 23년(1645년)에 운제(지금의 원촌)로 옮겼고 이름도 운제원으로 개칭되었다. - 유래비
산동면사무소 앞에서 원촌길을 따라 마을 풍치목 수령 240년 느티나무를 지나 산동우체국 앞쪽으로 걸어왔다.
운조루의 이웃사랑 정신 '他人能解'를 실천하는 新타인능해 나누고가게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산동면 면소재지 원촌리 원촌길을 따라 바로 앞쪽의 원천교 삼거리에 있는 산동농협 하나로마트와 산동파출소로 내려간다.
산동우체국에서 원촌길을 따라가면 원천교 앞 삼거리에 산동농협 하나로마트와 그 앞에 구례경찰서 산동파출소가 있다.
구례는 전국 산수유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곳으로 봄이면 산동면이 노란 산수유꽃천지가 산수유축제로 들썩인다. 원촌마을은 산동면소재지 마을이다. 두 개의 물줄기가 하나로 만나는 곳에 있으며 원래는 월촌이라 부르던 것이 원촌으로 바뀌었다고도 하고 ‘원’이 있던 곳이라 원촌이라 했다고도 한다. 면소재지의 풍경은 70년대 시골장터를 압축해 놓은 것처럼 아담하면서 정겹다.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체 가옥의 80%가 전소되었다가 다시 복원된 아픈 역사가 있기도 하다. 농협하나로 마트가 있고 산동-주천구간 시종점인 산동면사무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숙박시설은 원촌마을보다는 온천지구인 탑동마을에 주로 있다. - 지리산둘레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