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로 보든 모양새로 보든 석류는 성지에서 나는 모든 과일 가운데 가장 아름 답다.
그래서 석류 모양의 예쁜 장식이 많이 쓰였는데,
특히 대사제 겉옷에 금 방울과 함께 석류 장식을 달기도 했다.(탈출 28,33-34)
석류 장식은 제1 성전 안, 지성소 문밖에 서있는 기둥 머리에 만들어 놓기도 했다 (1열왕 7,18; 2역대 3,16)
주로 은으로 세공하여 만드는 석류는 오늘날에도 옛 성전을 기억하기 위해 토 라 두루마리에 장식한다.
기원전 2세기 중반에서 1세기까지 이스라엘을 다스 린 유다 왕조 하스모네아가는 석류가 새겨진 동전을 주조하여 솔로문 성전의 영화를 기억했다.
후에 로마에 대한 항거의 표시로 석류 3개가 새겨진 동전이 나왔다.
민수 20,5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과일은 커녕 석류도 나지 않은 땅으로 데려왔 다고 불평한다.
그들은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에서 가지고 온 과일 가운데 석류 가 있는 것을 보고 안심했을 것이다.
석류는 기원전 1600년경 힉소스 (가나안 또는 시리아의 셈족 군주) 침입때 이 집트에 들여온 후 즐겨 먹는 과일이 되었다.
기원전 13세기의 이집트 파피루스 에는 파라오가 주최하는 환영만찬 준비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식단에는 콩 과 무화과와 시리아산 석류와 사과가 있었다.
고대 이집트는 석류 쥬스를 최음제로 생각했으며 석류술도 만들었다.
석류는 과일로 먹었는데 로마의 음식저술가 콜루멜라에 따르면 피클로도 만들어 먹었 다고 한다.
석류의 쓰임새도 다양해서 껍질은 장내 기생충 구제로, 꽃은 빨간색 염료로, 노 란 속껍질은 가죽의 얼룩을 닦아내는 데 쓰였다.
석류는 다른 일곱 가지 주요 농작물과 마찬가지로 파스카와 오순절 사이에 꽃 이 피고 여름이 끝날 무렵 익었으며 가을 추수축제인 초막절에 성전에 바치는 봉헌물로 적합한 과일이었다.
석류나무 가지는 파스카 때 예루살렘에서 번제물로 바치는 양을 꿰는 꼬챙이 로 썼다. 그
것은 가지에 물기를 많이 품고 있어 장작으로 때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였다.
솔로몬은 석류의 아름다움을 ‘너울 뒤로 얼보이는’ (아가 6,7) 아름다운 여 인의 두 볼 같다고 비유했다.
아가 6,11은 새빨간 석류 꽃봉오리가 맺히는 것으로 봄이 왔음을 알린다.
지금도 여전히 갈릴래아와 유다 지방 구릉을 뒤덮는 봄꽃 가운데 석류꽃이 가장 아름답다.
요엘 1,12와 하까 2,19에서는 일곱 가지 농작물과 석류나무가 시들어 말 라버리는 것을 유배의 상징으로 표현한다.
특히 아름다운 석류는 왕관 장 식에도 사용되었으며, 그래서 석류를 ‘토라의 왕관’이라고 부르는 모세오 경과도 연관시켰다.
씨가 많은 석류는 ‘석류에 가득찬 씨만큼 덕행 (지혜)으로 가득하다.”는 옛 탈무드 표현의 기원이 되었다. 이 표현은 오늘날까지도 사용된다. 한 현인 은 솔로몬의 노래에 대한 해석에서 교실에 줄지어 앉은 어리이들을 빽빽 하게 들어찬 석류알에 비교했다.
Miriam F. Vamosh (2006년), ‘성경시대의 음식’ (바오로딸 출판)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