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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교회 / 20160306 주일오전예배 / 정광수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나는 어떤 중직자인가? |
성경 | 에베소서 6:21~24 |
정리 | 성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에베소서 6:21~24)
21.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22.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23.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2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녹취자료 |
이사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장부터 39장과 40장과 66장으로 나누어지는데 1장부터 39장 까지는 왜 유대 나라가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설명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나무라고 매를 때릴 때도 매를 왜 맞는지 이유를 설명을 해야겠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똑같이 왜 망하는 것인가 이유를 설명을 해야 망하는 이유를 알고 또 돌이킬 수 있는 길도 열려지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망하게 만드는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고 갱신하고 회복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40장에서 66장까지는 포로 잡혀가서 그들이 고통에 있을 때에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바라볼 수 있도록 위로하는 메시지를 계속 주시게 됩니다. 내가 전능자요 창조주가 너의 기도를 들을 것이라고 40장에서부터 약속을 합니다. 41장 10절 말씀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내 의로운 오른손으로 내가 너를 붙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42장을 보면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긍휼로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43장을 넘어 오면 너는 내 것이라고 내가 너를 존귀하고 보배롭게 여기겠다고 내가 새 일을 행하겠다고 계속해서 하나님은 포로 잡힌 그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메시지를 계속해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심지어 여인이 자기 태어난 자식을 혹시 잊어버릴 지라도 난 널 결코 잊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하지요. 그래서 하나님 내게로 돌아오라고 오면 값없이 돈 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주님께서 말씀한 장면들이 이사야서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것을 보는 겁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회복하여서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겁니다. 복음의 증인되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참된 목적이 그 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멸망 받을 나같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죄 사함 입어서 하나님 자녀가 되어 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말과 살리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칭찬과 격려 보다는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 비판하는 말, 정죄하고 수군수군 하는 말들이 너무 익숙합니다. 우리 눈은 상대방의 장점은 잘 보이지 않고 단점이 잘 보여요. 저는 장점보다 단점이 잘 보이던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래서 또 남을 위하는 척 하면서 남을 비방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깜짝 놀라요. ‘내가 수준이 이거 밖에 안 되는 구나..’ 그게 우리 속에 들어있는 영적인 문제들입니다. 남은 세워주는 것보다도 오히려 남은 비방하고 비판하는 것들이 우리 속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칭찬과 아첨은 다릅니다. 동기를 갖고 칭찬하는 것은 아첨이 되겠지요. 마음의 중심이 없는 칭찬들은 속보이는 칭찬밖에 사실 안 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우리가 상대방을 격려하고 칭찬할 때 그 사람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도 진심으로 우리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을 얻으라고, 그래서 우리는 위로의 메시지를 우리가 묵상하게 돼졌을 때 우리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되지요.
복음을 누리는 자들은 사람들의 잘못을 보고서 정죄하기 이전에 상대방의 영적상태가 눈에 보이는 겁니다. ‘아, 저 사람이 창세기 3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로구나. 저사람 신분이 마귀 자식이 되어 창세기 3장 안에 묶여져서 저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로구나.’ 이 눈이 열려진다면 우리가 그 분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겠죠. 정죄와 비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 저분에게는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구나.’ 그래서 진심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기다려주고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상대방을 세워주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목이 무엇입니까? 나는 어떤 중직자인가? 중직자는 교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거죠? 남을 비방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격려하고 사랑하고 세워주는 사람으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친구하자고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아 내가 이게 안되고 있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해야 해요. 교회 안에서 혹시 외톨이십니까? 그러면 내가 뭐했다는 얘기인가 하면 상대방을 격려하고 배려하지 못했다는 것이에요. 멋있는 중직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람을 살려주는.. 권면하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모든 중직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서로 돌아보아서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이것이 중직자의 기본적인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데는 중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위해서는 중직자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지도자만 선택하신 게 아니라 조력자도 만나게 만드셨어요. 다윗왕 참 위대합니다. 우리가 다윗왕을 높입니다. 그러나 다윗왕을 왕되게 만든 데에는 수많은 조력자들이 있었어요. 이 분들이 하는 행위자체가 얼마나 귀했던 것인지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어보면 일일이 다 기록했어요. 광야길 걸어가는 모세를 도왔던 사람들, 족장들의 이름을 다 기록합니다. 사무엘하 20장 이하를 보면 다윗을 도와서 이스라엘의 건국을 도왔던 장군들의 이름까지 다 기록해요. 왜 기록해두었죠? 이들이 협력해서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국을 다윗왕 혼자 세운 것이 아니요. 이들의 수고와 헌신의 바탕위에 세워졌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사도바울을 높이고 대단한 전도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 혼자서 세계복음화 한 거 아니거든요. 바울의 1차, 2차, 3차 전도 여행 속에 함께 했던 인물들을 성경은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 16장을 보면 30여명의 인물들이 일일이 별명과 함께 기록되어 나옵니다. 왜? 그들이 뭐했기 때문에? 함께 로마에 교회를 세우는 곳에, 세계 복음화에 이들이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조력이 없었다면 바울의 선교는 사실 실패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성지교회에 이와 같은 중요한 보호자로, 동역자로, 조력자로 여러 중직들을 보내주신 겁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유지된 것도 우리 장로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의 헌신과 노력 속에 교회가 세워진 것이지, 만약 여러분들이 없었더라면 교회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 여러분을 만난 것을 감사드리고 있어요.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곳에는 언제든지 헌신했던 중직들이 반드시 있었어요. 대형교회가 세워지고, 큰 역사가 일어났던 교회들은 반드시 충성되고 헌신했던 중직들이 있었어요.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해서 마하나임으로 도망가게 되었을 때 그 곳에 나이든 바실래가 그를 공경하면서 섬겼어요. 사실 그게 굉장히 위험한 거예요. 만약 다윗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역적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도 다윗을 섬긴 겁니다. 이것을 성경은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북쪽 이스라엘에 가장 악한 왕 아합 때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엘리야와 엘리사 두 선지자를 세우게 됩니다. 그럼 이들을 누가 공궤했죠? 사렙다 과부가 공궤합니다. 그 아합왕의 궁내 대신인 오바댜가 그 3년 6개월 동안 가뭄이 있던 때에도 50명씩 동굴에 숨겨서 이들을 양육하고 키웠어요. 이들이 없었다면 엘리사의 도단성 운동은 사실 일어날 수 없는 겁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위대한 선지자였지만 이들의 배후에는 이와 같이 충성된 중직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의 사역 현장 속에 보면, 복음을 기록한 누가가 끝까지 수종을 들면서 그 헌신 했던 중직자의 모습으로 나오죠. 그런가 하면은 바울의 선교를 끝까지 도왔던 한 가문이 있어요. 브리스길라 아굴라 한 가문, 가정이죠. 사도행전 2:9-11을 보면, 10절에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라고 표현을 합니다. 학자들은 그중에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도 이속에 들어가 있지 않았겠나.. 그렇게 추측을 합니다. 이 부부가 와서 무엇을 보았나요? 바로 초대교회에 일어나졌던 놀라운 성령의 운동을 체험하게 되죠. 그리고 이들이 로마로 돌아갔다가 아굴라는 유대인이고 브리스길라는 헬라인입니다.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그 유대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추방을 당합니다. 갈 곳이 없어 어디로 간 것인가 하면은 고린도로 갔는데 고린도에서 누구를 만나죠?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이 만남을 통하여서 이들의 인생이 바꿔지게 되죠. 이들은 일평생 동안 바울을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브리스길라는 동역자로서 말씀을 증거하고 아굴라는 천막을 통하여서 돈을 벌어서 이제 바울의 선교를 돕고서 어느 정도 한 것인가? 로마서 16장 4절을 보면은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어 놓았나니 이들은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 하느니라.” 중직자의 모델된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명을 감당 하도록 아굴라에게 축복 하셨습니다. ICC 주석을 보면 아굴라가 로마 군부의 수많은 군대가 야영을 해야 하니까 천막이 필요하겠죠? 나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아굴라가 로마 군부의 천막을 납품하게 되면서 준 재벌이 될 만큼 부자가 됩니다. 그리고 일평생동안 바울의 선교를 돕는 사명을 감당하는 가정이 된 것이죠. 생각해 보면 만약 브리스길라 아굴라 가정이 없었다면 바울이 정말 선교를 제대로 했을 것인가? 바울이 바울되게 만드는 데는 반드시 뭐가 있어야 하는 겁니까? 이런 중직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한번 사는 인생인데 나도 이와 같은 중직으로 나를 세워지게 만들어 달라.” 고 기도해야 합니다.
2. 나는 어떤 자세로 중직자의 자세를 감당할 것인가?
요즘 두기고 메시지가 인터넷에 자꾸 뜨죠. 두기고.. 중직자를 대표해서 두기고라는 이름을 든 겁니다. 본문 속에 누가 나오죠? 두기고가 나와요. 6:20에 두기고가 나오는데 바울은 자기 자신이 꼭 가야하는 현장에 누구를 보내는 것인가? 두기고를 보내요. 그래서 두기고를 보내는 장면이 오늘 에베소 교회에도 바울이 두기고를 보내는데 그때 바울이 로마 감옥소에 이미 갇혀 있을 때거든요. 1차 감옥에 있을 때에 두기고를 에베소로 자기 대신에 심부름을 보냅니다. 골로새서 4:7-8을 보면은 여기도 감옥에 있으면서 골로새 교회에 두기고를 또 자기 대신 심부름을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디도서 3:12에도 그레데섬에서 사역하고 있는 디도에게도 두기고를 보내요. 1차 감옥뿐만 아닙니다. 2차 감옥에 갇혔을 때도 디모데후서 4:12을 보면 또다시 두기고를 에베소 교회로 보내는 장면이 나오죠. 성경에 뭐라고 표현한 것인가 하면은 “자기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자.” 로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그것을 알려주기 위하여서 두기고를 보냈다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바울의 마음을 누가 알았다는 겁니까? 두기고가 알고 있다는 겁니다. 이심전심이라는 이야기를 하죠. 눈빛만 통하여도 안다는 이심전심이요.
“염화시중의 미소” 석가의 어록에 나오는 말인데 석가의 제자 중에 가습이라는 제자가 석가가 연꽃을 딱 드니까 다들 왜 드는지 몰라서 쳐다보는데 가습이 씩 웃었어요. 미소를 싹 지었어요. 그 말은 왜 들었는지 이유를 알았다는 거죠. 그래서 보통 우리가 고상한 말로서 “염화시중의 미소” 라고 염화시중이란 말은 이심전심과 같은 의미로 쓰고 있는 그런 말로 되지는데 뭐한다는 말입니까? 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목회자와 중직자가 통해야 하는 겁니다. 중심이요. 지금 목사님이 뭘 원하고 있고 뭘 지금 기도하고 있고.. 이게 통해야 합니다. 무엇으로 통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강단 메시지를 잡고 기도하고 목사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면 성령께서 뭐하게 만들어 주시는 겁니까? 통하게 만들어 주는 겁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의 사역 자체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역으로 바꿔지게 되는 겁니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내용 중에서 가슴에 와 닿는 참 통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누군가 하면은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모든 재산을 엘리에셀에 100% 다 위임합니다. 종이 맡아서 도망가 버리면? 당시의 아브라함은 그 시대의 최고 부자, 거부입니다. 근데 엘리에셀에게 그 다음에 뭐 하라고 것인가 하면 자기의 친척이 살고 있는 하란땅에 가서 우리 아들 이삭을 위해서 네가 가서 며느리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신뢰했으면 자기의 종에게 가서 네가 가서 보고 마음에 들면 우리 며느리 하도록 데리고 오라고.. 무엇이 통한다는 이야기입니까? 아브라함이 안 가도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의 마음을 100% 알아서 어떻게 할 것인지 알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 신뢰한 그대로 엘리에셀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기도하면서 계속 인도를 받아서 하란에 도착하고 거기서 리브가를 만나는 장면들이 창24장에 참 상세하게 기록되어 나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사명에 기도응답이 오자 즉각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리브가를 데리고 바로 돌아오는 장면을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보면서 '야.. 진짜 기가 막힌 중직자로구나!' 교회의 중직자의 모델들입니다. 두기고도 모델이고 브리스길라 아굴라부부도 모델이고, 엘리에셀도 모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축복하실까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오늘 기도제목을 삼으셔야 합니다. '아.. 나는 어떤 중직자가 될 것인가..' 두기고를 두고서 골로새서와 에베소서 6장 21절 말씀에 “사랑받는 형제여 주 안에서 신실한 일꾼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에게 알게 하리라.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에게 보내었노라.” 바울이 1차 2차 감옥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도여행 속에 누가 함께한 것인가? 두기고가 함께 했어요. 그리고는 바울을 대리하여 꼭 바울이 가야할 장소인데,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으니까 대신하여 항상 누구를 보냈다고요? 두기고를 지금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기고를 표현할 때에 “사랑 받는 자” 라고 표현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사랑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라나신 것을 보면 누가복음 2장 52절 말씀에 그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 사랑스럽다는 단어가 누구에게 또 쓰인 것인가 하면, 솔로몬 이름의 별명이 “여디디아” 입니다. 이 이름 뜻이 무엇인가 하면 여호와께 사랑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하나님에게 사랑 받는 자, 사람에게도 사랑받는 모습으로 가야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사랑 받을 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자 입니다. 그 분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것.. 잠언 25장 13절 말씀에 보면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우리는 칭찬 받을 만큼 시원하게 중직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정목사가 보면서 ‘저분은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것이로구나.’ 이런 느낌이 들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6장에서 일곱 집사를 뽑게 됐을 때, 6장 3절 보면 성령과 지혜가 충족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했다고 이야기하며.. 뭐 하는 사람?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우리 중직은 무슨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의 근심되는 사람으로 '아이고.. 저래서 어떡하나..' 이런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 칭찬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신실한 자라고 두기고를 표현합니다. 우리가 중요한 심부름을 누구에게 맡길까요? 신실한 자에게 맡기는 겁니다. 그 신실한 자의 대표가 누구인 것인가? 바로 엘리에셀이더라고요. 얼마나 신실했으면 아브라함이 자기 며느리감을 네가 가서 데리고 오라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신실한 자로 인정받아야 하나님이 무엇을 하신다는 이야기입니까? 진짜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맡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면 여러분들이 정말 엘리에셀처럼 충성을 다해서 지킬 자가 되어야 맡기는 것이지.. 하나님은 내 속을 다 알고 계세요. 맡겨나 봤자 안 할 거니까..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안 맡깁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 보다도 누구 앞에 신실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신실해야 합니다. 강단에서 메시지가 선포되었을 때, 광고가 나왔을 때, 나는 어떻게 이 일을 신실하게 감당할 것인가.. 그것이 신실한 사람인 것입니다. 찾아야 하는 겁니다. 지난 토요일에 우리 함께 모여서 함께 훈련 속으로 임하자. 하나님이 누구를 찾을까요? 정말 내가 이번 기회에 훈련 받고서 이에 쓰임 받기 원하는.. 그 사람이 신실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너희 마음을 위로할 자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정말 내가 복음을 누리면서 내가 만나는 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중직자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 사람만 만나면 마음에 상처를 입고 믿음이 떨어지고.. 이러면 안 되잖아요. 힘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왜 감옥에 갇혔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겁니다. 내 인생의 문제가 생겼을 때 왜 인생에 하나님이 문제를 주셨는지 그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3. 나는 무엇을(절대사명) 위하여서 나의 인생을 드릴(절대헌신) 것인가?
그래서 나는 무엇을 위하여서 나의 인생을 드릴 것인가?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내가 사명을 깨닫고 절대헌신을 할 것인가? 두기고와 함께 조력자로 등장했던 인물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하나님의 절대목표를 발견한 자들입니다. 절대목표.. 엘리에셀은 무엇을 본 것인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여서 창세기 3장 15절 말씀에 여자의 후손의 혈통으로, 메시야의 혈통을 위하여 하나님이 가나안 땅으로 보내신 아브라함이라는 사실 자체 이것을 알았어요. 그러면 그 혈통을 위해서 누가 찾아져야 되는 것이죠? 이삭의 아내감을 구하는 것이 보통 일이에요? 이 하나님의 절대목표를 깨달았던 엘리에셀이 뭐하는 겁니까? 이것을 절대사명으로 깨닫고 헌신하는 겁니다.
다윗을 도왔던 자들이 그냥 다윗을 도왔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 나라의 왕으로만 세운 것이 아니라, 그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야가 오도록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그 사실 자체를 그들이 안 것이거든요. 그리고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준비하셨습니까? 성전을 건축할 이 놀라운 일들을 다윗이 해야 되기 때문에.. 이 절대목표를 깨달았던 사람들이 절대사명을 깨닫고서 절대헌신한 것이, 다윗을 도왔던 사람들의 모습들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뭐로 부르셨습니까? 이방인의 사도로 불렀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땅끝까지 이르러서 내 증인되도록 만들라고.. 이 언약의 비밀을 바울이 잡고서 나간다는 사실 자체를 그들이 알았어요. 그래서 뭐했다는 이야기입니까? 이 절대목표를 이루기 위하여서 각자마다 자기 자신의 달란트대로 자기 사명을 깨닫고서 절대헌신을 통하여서 세계복음화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 안에 3천제자 운동과 서남아 선교와 렘넌트들을 남길 운동들을 하도록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절대목표를 정말 깨닫고서 ‘그렇다. 나는 성지교회의 중직자로서 내가 가져야 할 사명을 정말 깨닫고서 절대헌신 속으로 들어가야 되겠구나.’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뭐가 된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런 중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뭐가 필요한 것인가?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겁니다. 브리스길라 부부는 소위 말하는 교포 디아스포라입니다. 해외에, 로마에 가서 살았어요. 그러면 여러분 로마에서 예루살렘까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온다고 그러면, 제가 거리를 한번 재 봤어요. 최소한으로 한 5천킬로에서 6천킬로 거리가 되어요. 부산에서 서울까지 우리 고속도로가 지금 4백킬로거든요. 그러면 5천킬로, 6천킬로를 배타고 걷고 해서 예루살렘에 온다고 그러면, 아마 보통 보름 안에도 못 올 거 같아요. 한달 정도를 걸려야 배 타고 올 수 있는 거리에요. 뭐하기 위해서 왔죠?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하여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그 돈 들여서 그 먼거리를 고생하며, 풍랑을 만나가며 배 타고 왔어요. 우리는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리죠?
사도행전 8장 26절 내용에 나오는 에디오피아 국고를 맡은 내시.. 그 또한 거리를 한번 계산해 봤다고요.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한 이천킬로가 넘더라고요. 그 거리를 마차를 타고 오게 되면 얼마나 걸리겠어요? 아무리 빨리 달려도 한 열흘은 온 거 같아요. 뭐하기 위해서 왔나요? 단 한번의 예배를 위하여서..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리고 있나요? ‘하나님, 나는 꼭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정말 오늘 예배를 통하여서 내가, 정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것을 내가 믿습니다.’ 그 가슴을 안고서 달려온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가 어느 현장 속에 서게 되었죠? 바로 초대교회에, 마가다락방에 일어났던, 그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가 임하는 그 현장 속에서 하나님은 그것을 체험하도록 만들어 주신 거라고요.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될까요? 거기에서 브리스길라 부부가 무엇을 깨달았죠? 조상 때부터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바로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로구나.. 그 예수님이 바로 참 선지자요, 참 제사장이요, 참 왕되신 것을 거기에서 깨닫게 된 겁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나라, 성령충만을 받아서 땅끝까지 증인이 될 것이라는 그 비밀 자체가 브리스길라 아굴라 가슴에 이것이 박혀지게 된 겁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예배를 드리죠? 신앙생활의 성공은 예배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배시간에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겁니다. 여기서 힘을 얻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되는 겁니다. 여기에서 성취될 기도제목이 나와야 되는 겁니다. 왜 기도실패하죠? 예배실패하기 때문에.. 왜 기도가 안 되죠? 기도가 안되는 영적상태거든요. 이것을 우리가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뭐할 때에? 복음의 누림 속에 들어가게 될 때에, 우리가 되어지는 기도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복음을 진짜 깨닫게 되면, ‘내가 이 복음의 비밀을 깨닫지 못해서 실패하는 인생을 살아왔구나.. 내가 지금까지 실패한 것은, 내 속에 잘못 각인된 것들이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내 인생에 이와 같이 묶어있고 잘못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로구나..’ 이것을 깨닫게 되면 새로운 결단들을 우리가 하게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왜 실패하고 왜 망하는 것인가? 이 복음 한 가지가 없어서 실패하고 망하는 것이로구나.. 나 자신이 예배성공하고 나 자신이 복음의 비밀을 정말 깨닫게 되면, 내 눈이 열려져서 세상이 왜 실패하고 왜 망하는지가 보이게 되는 겁니다. 이게 보여지는 것이, 그때부터 우리가 뭐가 깨달아지는 것인가? 하나님의 절대목표가 깨달아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절대목표는 나 자신이 뭐하는 겁니까? 이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서 나 자신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 절대목표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하면 절대목표는 뭐가 절대목표입니까? 멸망 중에 빠진 자들을 건져 구원하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목표라는 사실 자체가 깨달아지게 될 때에 우리에게 뭐가 나옵니까? ‘그렇다면 내가 해야 될 것이 바로 무엇인가?’ 그것을 천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여기에서 우리는 절대사명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절대사명을 깨달은 자가 절대헌신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에서 누가 이와 같은 충성된 중직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나님의 절대목표가 깨달아져야 되잖아요. 깨닫는 순서가 바로 예배를 성공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복음 누림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랫동안 체질 자체가 불신앙의 체질 속에 우리의 영적상태가 응답받지 못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각인된 것이 너무나 우리에게 뿌리내려 있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가 바꾸기 위해서 뭐하자는 이야기입니까?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그리라고 표현을 하는 겁니다. 구원의 길을 우리가 그리게 되면, 두 가지가 우리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구원의 길을 정말 그리게 되면, 내 자신을 여러분들이 구원의 길로 점검하면서, ‘아, 이래서 내가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로구나. 복음만 누리면 정말 이 안에 모든 답이 다 들어있구나.’ 성령께서 그것을 깨닫게 만들어 주고, 우리가 복음 누림 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구원의 길을 통하여서 현장을 진단하게 되는 겁니다. ‘아, 저 사람이 이것을 몰라서 실패하고 망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예수를 믿어도 이것을 놓쳐서 실패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그러면 당연히 우리가 뭐하는 것이죠? 그 사람에게 정말 권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내가 바꿔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 구원의 길을 그리라고, 3오늘을 하라고 말씀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정말 중심을 담아서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절대목표가 깨달아지게 되고 이제는 내가 해야 될 일들을 깨닫는 절대 사명과 함께 헌신의 사람으로 바꿔지게 될 때에, 한번 사는 인생입니다. 하나님 그 인생을 최고의 중직으로서, 아굴라가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재벌이 되도록 축복하셨던 하나님.. 우리가 중직자로서 이런 축복 속으로 들어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지금까지 잘 안되었던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왜요? 안 되도록 살아왔으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멋있는 중직으로 변화를 받아서,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 때문에 살아나게 되는.. 사람을 살리는 중직이 되어서, 나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게 되고, 내가 있는 직장과 내 모든 현장과 나의 가문까지도 나 한 사람 때문에 살리게 되는.. 이런 중직으로 쓰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하나님은 두기고와 같은 중직자를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다윗을 다윗되게 만들었고 바울을 바울 되게 만들었던 사람들이 바로 그를 도왔던 중직자들이었고, 하나님이 중직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셨음을 우리가 이 한시간 살펴봅니다. 나는 어떤 중직자가 되어야 할까요? 바로 두기고와 같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목회자와 마음의 중심이 통할 수 있는 가장 멋있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중직자의 모습으로 세워지기로 결단하는 이 한시간 주님 삼아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 중직을 통해서 성지교회가 성남의 대표적인 교회로 세워지고 우리 중직을 통해서 가문이 살고 가문과 직장이 살아나게 되는 귀한 증거를 나타내는 가장 멋있는 중직으로 쓰임 받도록 저희를 권고하사 하나님이 축복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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