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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尊重正敎分 第十二 -존중정교분 제12
바른 가르침을 존중된다는 뜻이다,
본분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대승경전 특히 금강경이 있는 곳은
삼보가 계신 곳이 되므로 존중된다는 의미이다,
復次 須菩提 隨說是經 乃至四句偈等 -부차 수보리 수설시경 내지사구게등,
또한 수부리여. 어디서나 이 경을 설하되 4구게만 설하더라도,
當知 此處 一切世間 天人阿修羅 -당지 처처 일체세간 천인아수라,
마땅히 알라, 이곳은 온 세계의 하늘, 인간, 아수라들이,
皆應供養 如佛塔廟 -개응공양 여불탑묘.
모두 응당 공양하기를 부처님의 탑에 공양하듯 할 것이어늘,
何況有人 盡能受持讀誦 -하황유인 진능수지독송,
하물며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을 다 수지 독송함에 있어서랴,
須菩提 當知 -수보리 당지,
수보리여, 마땅히 알지니라,
是人 成就最上第一希有 시인성취 최상제일희유지법,
이 사람이 가장 높고 제일 가는 거룩한 법을 성취할 것이니,
若是經典所在之處 則爲有佛 若尊重弟子 -약시경전소재지처 즉위유불 약존중제자,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라면 곧 부처님과 훌륭한 제자가 계신 곳이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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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법문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바로 불. 법.승 삼보가 자리한 곳이라고 하였다,
금강경 한게송만이라도 그렇지만 전체를 다 공부하고 설하는 데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복덕이 무량한 것이다,
경을 읽는 자 스스로 승보(僧寶)요. 경전 천체는 스스로 법보(法寶)요,
그에열린 마음이 우주광명과 하나되니 스스로 불보(佛寶)인 것이다,
이 경전이 있는 곳에 부처님이 계시니 존중될 만한 제자가 있는 것이 된다는 말씀은
우리에게는 희망이요, 용기를 준다, 금강경은 우리들의 영혼을 저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다이아몬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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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경 회향문, 2018년 1월 14일. 일요일
첫째 : 상없는 공부 즉 사상,법상, 비법상까지도 다 공하여 허공같은 심경을 가질 것이며,
둘째 : 주함이 없는 공부를 하여 색, 성, 향, 미, 촉,법에 끌리지 않는
원만한 심법을 가질 것이며,
셋째 : 묘유의 공부로써 희로애락 원근친소에 편착함이 없이
지공 무사한 마음을 써야 할 것이며,
능히 이러하면 곧 대도를 성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 이렇게 하므로서 금강경을 완전히 신해수지한 것이라 생각하며
무위보시로 지독송하며 4구게만이라도 교화로 전해주는
참다운 대종사님의 제자가 되리라고 다짐하여 봅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사는가?
돈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금강경은 칠보의 공덕을 결코 천시하거나 낮잡아보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인간의 경제적 삶은 인간존재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삶의 가치는 그것을 넘어서는 곳에 있다고 한다,
집에 금은보화를 체워놓는 것이 중요한가?
진리의 말씀 한 구절이라도 참으로 터득하는 것이 중요한가?
깊게 생각하고 또 깊게 생각할지니?
~~~!
아금실언(我今實言)-명심하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고하시되 만일 선남자 선녀인이 이 경 가운데에서 사귀게 등을 받아
가져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 주면 이 복덕이 앞에 말한 복덕보다 더 크리라.
사구게를 받아 실천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하는 것이,
칠보를 가지고 삼천대천세계에 채우는 보시보다 왜 더 크다고 했는가?
①복덕(칠보보시-유루복)은 현실적으로 복을 짓는 것을 말하고
복덕성(사구게-무루복)은 복을 짓는 근본 성질을 말한다.
②사구게를 수지한다는 것은 복덕제조기(自性)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③시간적 한계와 공간적 한계를 초월한 보시를 하는 것이다.
④사구게를 터득하면 혜문이 열리기 때문에 일시적인 칠보보시 보다도 큰 것이다.
혜문이 열린다는 것은 영원한 길을 아는 것이며, 취사도 복 짓는 방향으로만 하기 때문이다.
정산종사 법어 무본편 33장.
의두요목은 자성공부를 하기 위한 것이다,
함 없음에 근원하여 함 있음을 이루게 되고 -무위행,
相 없는 자리에서 오롯한 상을 얻게 되고 - 바른 분별.
나를 잊은 자리에서 참된 나를 나타내고 - 진짜 마음자리 .
公을 위하는 데서 도리어 자기를 이룬다 - 모두 이룬다.
이 33장 말씀은 모든 공생의 도를 포괄하는 간명하나 최상의 도를 제시해주신 말씀이다.
앞의 세가지 덕목에 입각하여 공중을 위해 일한다면(봉공) 그 일은 잘못 될 수가 없고
전체의 발전과 함께 나에게 도움이 되고 종국에는 내가 하고싶은 일을 이루게 될 것이다.
곧 불보살이 된다는 말씀이다.
이리 되는 所以를 알면 주위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보은하며 봉공하는 생활을 할 것이다.
명심 명심 교화와 보은행을 2018년 목표로 마음공부 하겠습니다,
~~~~~~~~~~~~~~~~~~~~~~도올 강의 (제26강 금강경)강의 내용 참조하여 봅니다,.
제 10~11~12~13분 ~~~32분까지
난 대학교시절에 인류 지혜의 서로서, 대학 공부하면서 3개를 꼽았어요.
노자,
불교의 금강경.
그리고 4복음서에서 요한복음.
3대의 인류의 지혜서 나는 대학시절에 인류의 지혜서로서 다음 세 책을 꼽았다.
1.노자도덕경 - 도가사상
2.금강경 - 반야사상
3.요한복음 - 영지주의 내가 한 번 강의를 해보겠다.
노자를 했고, 이번에 금강경 강의를 하면서 전반으로 했고,
다음에 시간이 되면, 요한복음 강의도 해볼려고 해요.
많은 사람들이 이제 내가 기독교 강의를 한다하면, 엄청난 왕마귀가 하려고 하지만,
기독교 사람들이 무지 은혜를 받을 거야. 신학의 틀 속에서 강의를 하게 됩니다.
종교 본질을 파고들어 가야지. 제가 강의를 함부러 나와서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제 마음 속에서 요한복음 강의를 한 번 해보고 싶다.
우리 민족의 한국사상사, 철학사, 한국민족이 어떻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것을 내가 죽기 전 한번은 강의할 꺼에요. 그 외에는 절대적으로 강의를 안해요.
나보고 사람들이 전화해서, 강연부탁하고, 내가 미친놈이야. 내가 목 쓰는 것만해도,
3시간 콘서트 해보라고. 세계적으로 그런 콘서트가 없어요. 난 혼자서. 3시간 동안 1초를 못 쉬잖아요.
이것이 매일하고, 인텐스. 이렇게 집중해서 해야 하는건데, 강연해달라, 쓸데없는 것. 난 그런 강의 안해요.
괴씸한 놈들. 우리사회가 항상 사람의 에너지를 모아주고 정말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지.
상품가치 된다면 다 끝어먹고 앙상한 뼈로. 그러니까 못 크는 거야. 내버려둬야지.
우리사회는 인재를 기를 줄 알아야 한다.
인재의 에너지를 작은 효용을 위해 낭비하기에 앞서
그 에너지가 큰 효용을 위해 축적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정말 하고 싶은 일 하도록 해야지. 이권에 맞춰서 써먹을려고 말이야.
어디 대단한 기관에서 불러도 강의안해요.
연일복! 여래유소실법야. 수보리연. 여아해불소설의. 무위정법명아뇩따라, ~. 여기서 말씀하시길,
싯달타가 출가해서 안욕다라 무상정득 진리를 얻기 위해서 보드가야에 보리수 밑에서 하셨다.
대단한 각자다. 우리가 생각하는 불타의 모습. 금강경은 부처님 자신이 수보리야, 네 뜻이 어떠냐?
여래가 나가 안욕다라 삼보리 얻은 사람으로 보이냐? 정말 내가 설한 바의 법이 있는가?
내가 정말 너희들에게 깨달아서 설한게 있느냐?
그러니까 수보리가 말하길 제가 부처님 설하신 뜻 이해하기로는 정해진 법이 없다.
여래께서 설한 법에 정해진게 있을 수 없다.
연기의 어마어마한, 제 강의 들을려고 지금까지 시간 투자해 들으셨잖아요. 연기가 어떻고. 안일놈아,
빠띨로마, 팔정도까지 어렵게 들으셨는데, 여래가 이야기하길, 연기되어 있는거고. 정해진 법이 어디있느냐.
깨달은 것도 없고 말한 적도 없는 거란 말이야. 이게 보통 할 수 있는 이야기난 말이야.
자기 경전에서 이런 이야기하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이야기야.
예수님께서도 그대들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느냐? 이런 말이 나오겠느냐?
사실 그렇게 이해해야되요. 종교의 문제에서도 신이다. 신조차도, 연기 속에 있는 존재라는 거에요.
인간의 마음에 한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반드시 연기 속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마음 속에 있어도 연기 속에 있고, 밖에 있어도 연기 속에 있다. 그렇잖아요.
세계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연기죠. 신조차 연기 속에서 있는 거죠. 말하기를, 어찌하여 그러하옵니까?
묻는 내용을, 우리를 위해서, 여래께서 설하신 법은, 황 똥메이(1899-1977) 안휘성 동성 사람.
남경 위스컨신대, 철학과에서 수학. 종양 교수. 해방 후. 교수. 동서 철학을 관통하는 유니크한 사상가.
도올의 스승.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모든 법이라는 것은, 취할 수도 없는 것이고, 말할 수도없는 것이다.
얼마나 강력한 이야기에요. 근본적으로 그것은 법이라고 할 수 없는 것.
그런데 그건 법이 아닌 것도 아니다라는 말이야.
우리가 항상 깨닳았다고 할 적에 항상 이건 법이 아니다라고,
부정을 하는 부정의 공의 상태를 그대로 집착하면 그것도 또 하나의 긍정이 되니까
그것을 또 부정해 가야. 공은 끝임없는 부정. 무아는 끊임없는 자아부정이다.
이건 심오한 이야기같지만, 심오한게 아니라, 생활에서 느끼는 거야. 내가 순간순간 자만해서,
아상을 잡는 거야. 끝임없는 잡아야. 좆도 아닌 것이. 내 말이 그래요.
계속 끝임없이 부정해야 들어가야 금강경의 지혜에 들어간다.
제 얼굴 보세요. 신수좋잖아요. 사람이 잠을 잘 자잖아요.
그러면 변비 걸리고. 잠을 잘 자야 똥이 잘 나오지. 무아라는게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 그렇게 좋은 게 없어요.
무아는 우리 건강을 위한 최고의 양약이다. 그렇게 살아야지, 왜 그렇게 폼잡고, 상을 쌓냐? 덧칠을 하고,
살잖아. 우리 인간이. 우리가 벗어나자. 근본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것은 근본적인 것. 아는 것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 모른다고 하라. 공자님 말씀. 아는 것도 모른다고 하고, 왜 그러고 사는냔 말이야.
그래서 까닭은 무엇이냐?
일체 무위법으로써 차별이 있기 때문에.
원문에, samskrta - asamskrta.
인생의 무엇을 가지고 꾸며볼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차별이 있다는 것은 무위법 가지고 들어간다. 그
랬는데, 일체의 성현들, 무위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르다.
그러니까 결국은 성현이라고 하는 것은 함이 없는 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
수보리야 니가 어떠하뇨? 여기 삼천, 대천 세계라는 것이 뭐냐면, 이 세계가 수미산이 있고,
옆에 사대주라고 큰 바다가 있어요. 여러윤이 있고, 인도인들이 생각하는 세계관이거든요.
세계인데, 수미세계. 하나의 수미세계 이것을 천개 합치면, 소천세계. 그게 소천세계이고,
그개 다시 천개 있으면 중천 세계. 그게 또 천개 있으면 대천세계. 이게 삼천대천세계라고 하는 거에요.
10억개의 수미세계가 있는 거에요.
인도인들 상상력이라고 하는게 현대 천문학적 세게와 같아요. 은하계 속에 있잖아요.
은하계가 또 수없이 있잖아요. 이게 거의 같다니까, 엄청난 거에요.
우리 태양계 자체가 엄청 작은 거라니까요. 여러분 은하를 보면, 이렇게 줄이 쭉 가있잖아요.
근데 이쪽으로 보면 듬성듬성하잖아요. 꼭 납작하게 되어 있다고. 이렇게 보면, 은하계. 이렇게 보면,
듬성듬성. 이게 하나의 겔럭시. 이게 또 수없이. 삼천대천 세계라는게 비슷한, 현대 천문학적 세계.
비슷하게 과장해놔서 득을 봐요. 삼천 대천세계에 가득찰 칠부로, 얼마나 구라를 처도. 칠부,
금은유리산호마노, 엉청난 보석들이 이 삼천대천 세계에 가득찰만한 것을 가지고서 보시를하는 거야.
기막힌 거지. 이 복덕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수보리가 정말 많고 많구요. 수보리가 어째서 그러하오니까.
여래께서 많다고 하는 복덕은 복덕의 성격을 지니지 않는 것이기에, 여래가 생각하는 복덕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약부유일. 만약 또 한 사람이 있어서, 이 경중에서 수지 그것을 받아지니고,
마음 속에 지니는 거에요. 이 사람들, 경전이라도 뱃껴서 하는 건지 아는데, 이게 오디오에요.
인도문화는 오디오문화다.
경전을 독송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판소리를 완창하는 것과도 같은 느낌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 노래를 마음에 간직하는 거야. 우리가 항상 노래부르듯이. 유행가 대신에,
금강경을 부르라는 거야. 인도는 보는 것보다 오디오 문화야.
여러분들이 받아들여서 깨닳아서 전해줘.
이른다면, 이 사람의 복이 그 삼천 대천 세계에 가득한 칠보로써 뛰어넘는다.
우리가 생각해보세요.
IMF거대한 기업이 무너지잖아요. 무너지면 자취없어요.
한 인간에게 진실된 말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게 인간세계에 끼치는 영향은 크다는 거에요.
카네기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도서관 7천개 지었어요. 미국사회에 문화적 기반이 된 거죠.
어마어마한 문화적 투자. 그것이 록펠러 가져되는게 아니에요. 이 사람들은 이 문화적 축적이 있어왔어요.
어떤 사람이 있어서 경중에서, 어떤이 미련하게 4줄 달린 것만,
인도사람들 가타라는게 대게 4구개의 운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4줄이라고 한 거지.
어느부분이라도 좋아요. 욀 수 있다면, 칠부로써 보시를 하는 것보다 어느 것보다 큰 거다.
엉청난 보시를 하는 거에요. 자손들에게 가르쳐주고,
너희들에게 아상이 없어야 건강하지 않겠느냐.
삼천, 대천 칠보 공덕을 뛰어넘는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19:24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각자, 부처라 하는 사람들, 안욕다라 삼약삼보리가 모두 여기서 나오기 때문에.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이른느 불법이라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난 여기에 충격이 오는 거에요.
어렸을 적에 봤을 적에,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열고 제자들에게 예수의 말이 예수의 말이 아니다,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너희가 다시 불법이라고 할 때, 아상,중상, 달라붙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니다.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
그 생각에서 근본적으로 떠나라. 이러한 것을 가르쳐주고, 이 말씀을 받아듣고,
한마디라도 전해주는 것이 칠보공덕을 뛰어넘는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강인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마6:19-20
그러나 결국 삶의 가치라고 하는것은, 물질적으로 부유해지고, 충족되는데 있는게 아니다.
진리의 말씀 받고, 전하고 이해하고, 모든 사람들이 공동의 선을 위해 살아야지, 잘살면 뭐해요.
정토라는게 있잖아요. 문자그대로 깨끗한 땅.세계. 이건 예토라는 말하고 대비되는 말이죠. 예토는 더럽다.
항상 우리는 더럽다고 생각하죠. 집을 짓더라도, 지저분해지면, 교외로 살고 싶어하고.
사실은 항상 예토에 사는 인간들은 예토를 그리워해요.
그래서 종교는 내세정토 내세정토 -
앞으로갈 정토 미래의 내가 죽으면 갈 곳. 미륵신앙이라든가, 모두 정토의 세계란 말이에요.
기독교도 마찬가지에요. 기독교에서도 천국이라는 것.
내세정토 - 천국 하늘나라, 불교 정토와 같아요.
그래서 어떠한 의미에서 천국의 도래라는 것을 사도바울도 굉장히 믿었단 말이에요.
예수가 재림할 것 믿었어요. 이 세계 다시 천국으로 만들 것이라고.
사도바울 예수님 내려오실 적에, 자기가 올라가서 영접해서 데려온다.
구체적.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살전4:16-17 그러니까 사도바울 선생만해도, 금방 재림하려는 것을 믿었어요.
어떤이 추상적으로 해석하는데도 있는데, 엇갈려요.
기독교에서 초대교회라고 하는 것은 항상 천국이 도래한다고 하는 긴박한 재림사상을 가지고 형성이 되었어요. 그런 전재하에서, 파루시아 - 긴박한 예수의 재림사상. 초대교회에 팽배한 믿음이었다.
평창동에, 휴거파. NHK에서도 비취고. 온다했는데 안왔잖아.
초대교회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생겼다고.
긴박한 교회 사상이 교회론으로 바꿔요.
재림사상 - 교회론 교회론 이 속에서 우리가 지체로써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상이 전환이 온다고.
불교도 내세정토가 있다하지만,
내세정토 기독교,
재림사상 - 내세정토 교회론 -
정불국토 현실속에서 항상 이 세계를 깨끗하게 만드는 현세사상으로 바뀐다.
미래에만 있는게 아니라, 지금이야말로 불국토다.
여러해석. 연등불 - 싯달타 전생애에서 그에게 붓다가 되리라고 예언한 부처님 구원하리라.
각자로 태어나서, 지금 불국토로 만들려고 꾸며나가고 있다.
장엄하게 만들리라. 되냐? 아니되옵니다.
불교를 장엄하게 한다는 것은 장엄이 없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 우리가 이 세계를 장엄하게 만든다.
정치가도 그러죠. 아름답게. 부처님의 나라로 만들겠다. 천국. 그렇지만, 노자에도 그런말이 있거든.
세계라는 것은 신령스러운 기물이라. 보이는 기물이 아니야. 우리 그릇 만들 수 있잖아요.
우리 사기그릇같은 것. 주물러서 만들 수 있잖아요.
노자가 말하기를 우리가 천하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뭔가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미친놈이라는 것.
노자 사상을 또다시 중국인들은 맞춰서 해석. 불국토 장엄하게 한다는 것이 말이되냐?
없기 때문에만 장엄하게 한다는 것이 말이되는 것이다.
금강경하면 간지스강의 모래가 생각나죠.
이 모래알만큼의 간지스강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이렇게 많은게 있지 않겠느냐.
이 말씀이 금강경에서 음악이라면 치켜 올라가는 거에요.
모래알 수만큼 또 간지스강이 있다고 하자.
그 모래의 수.
이건 상상하기 어려운 거죠.
과장법을 해도 이정도는 해야.
네 뜻이 어떠하뇨.
이 모래 참으로 많다하지 않겠느냐.
많습니다.
이 수만해도 헤아릴 수 없겠느냐는,
수보리야. 선남자선여자, 칠부. 모래수만큼 보시한다고 한다면,
복을 얻음이 많겠느냐? 정말 많습니다.
부처님이 이르시되,
이 가운데 사구경를 지니게되어 잘 설명해준다면, 복덕이 크니라.
인더스 문명. 인도아리안.
부처님 시대 그게 동쪽으로 문명이 간지스 강으로. 인도의 고문명은 하라파,
모헨조다로 등 인더스강 유역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다가 서서히 갠지스강 유역으로 그 문명의 중심이 이동하였다.
부처님시대의 문명은 갠지스강 중심이었다.
갠지스강 신화도 만들고, 어떠한 낭만이 걸쳐있죠. 지금 오염으로 똥물이 되어 있어요.
간지스강의 가득찬 모래의 수많큼, 모래알수만큼 보시를 한다해도,
사구경 외워서 전해주는 것이 뛰어넘을 것이다.
잔잔하게 울려펴져요. 그
렇게 엉청난 부처 불사하고, 교회도, 큰 교회 짓는 것.
왜 그렇게 지랄스럽게 짖는지. 건물짖는 병. 생색내고.
여기 진리하나를 우리 사회가 한국의 기독교,
불교는 모두 큰 건물짓기 대회를 벌이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망국의 병폐다.
그 종교가 소개하는 진리의 말씀을 전해야지,
지어서 뭐하는 거야.
주중에는 텅텅비는 건물이잖아.
효율성 떨어지는 건물.
그러면서 피크죠.
금강경 하나를 외워서 독송하는 자리가 곧 사찰이요,
부처님의 어마어마한 탑이 되는 것이란 말이에요.
교회를 따로 갈 필요가 없어요.
독송하고,
살면 최고의 진리가 되는 거에요.
성경을 꽂아두면 그 방이 곧 교회가 된다.
교회가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이것이 금강경의 메시지다.
이것은 단순한 금강경의 메세지가 아니라,
부자들 서로 과시하고,
불교운동하는데 대해서 굶주렸지만,
전파하시려는 대승적 움직임이란 말이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5:3
우리 사회의 진실은 거대한 기업이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삶의 진리를 전할려는 사람들의 그 가치관과 물줄기가 없으면 우리나라 금방 혼탁해지는 것.
단순한 불교의 말씀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 귀를 기울일 줄알고,
부처의 탐유한 것이 되리라.
그러면서 이것이 쭉 가죠.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금강반야바라밀이라 하라.
이름으로 마땅이 받들어 모실 것이라 .
이 경이 13경에서 사실 끝난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덧 붙여졌거든요.
금강경의 오리지날한 파편은 제13분 제2장에서 끝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 다음은 다시 덧붙여진 후대의 파편 층대이다.
마지막에 또 다시 같은 주제가 반복됩니다.
모든 지은 법이여!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거품과 같고 그리자 같네.
이슬과 같고 또 번개와 같아라.
그대들이여 이같이 볼지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말씀을 남기고,
부처님 설을 마치셨다.
모든 비구, 비구니,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 들어 기뻐하며 믿고 받들어 행하였더라. 끝나는 것입니다.
여시아문으로 시작 신수봉행으로 끝남.
금강경에는 더 붙여 있습니다.
딴 경전에 없는 진언이 붙어 있습니다.
해인사판에만 있어요.
진언(mantra) -신을 부르는 말.
기원의 구절. 그 자체로 신성한 힘을 지니는 말.
같이 읽으면서 대단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나모 = 남무 신을 경배하는 접두어적 탄사
스바하 = 아멘 나모로 시작해서 스바하로 끝나는 진언이죠.
이것으로 제 금강경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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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구게를 수지한다는 것은 복덕제조기(自性)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