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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사용능력과 국어 과목 내용 구성
글쓰기를 할 때 무척 신경쓰이는 게 문법이라는 건 아마 다들 공감할 겁니다. 그래서 쓰기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문법]을 공부해야 한다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학] 과목과 [독서] 과목은 쉽게 [문학], [비문학]으로 구분하면 될 것입니다. 쉽게 문학은 시, 소설, 수필 같은 작품을 말하고 비문학은 논설문, 설명문 같은 글을 말합니다. 이 두 그룹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알기 위해서는 과학과 예술의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문학은 예술의 하위 장르 (개념 파악)
[문학]을 먼저 개념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학이 어디에 속하고, 문학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 개념이라는 말이 좀 어려운 말인데 개념을 한자로 쓰면 槪念(대개 개, 생각 념)이 되는데 [대개 개] 글자를 풀어보면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글자는 木(나무 목)과 旣(이미 기)가 결합된 글자로, 어디에 속하고 어떻게 나뉘는지 나무 가지 뻗은 것처럼 다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념을 파악한다는 것은 상위 개념과 하위 개념을 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문학은 예술의 한 갈래
문학이란 무엇일까요? 문학을 연애술이락 얘기하면 관심들을 많이 가질까요? 문학을 연애술이라고 얘기한 것은 문학이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언어의 산물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요즘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문학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느낌이 있는 문학 이야기를 펼쳐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끌어보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은 연애술'이라는 설명은 문학의 본질을 흐리는 말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정서를 형상으로 표현하여 다른 이와 공감하기 위한 언어 조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서]의 서(緖)가 '실(絲)'이란 뜻을 갖고 있는 글자인 걸 보면 '정서'와 '연애'는 거의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애의 '연(戀)'도 '마음의 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문학을 좀더 이론적으로 살펴볼까 합니다. 앞에서는 문학을 자구해석하여 풀어보았다면 이제는 문학을 다른 예술 장르와 비교 대조하여 문학의 특징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어 보겠습니다. 보통 어떤 대상을 명확히 드러내는 방법으로 제일 많이 쓰는 것이 비교 대조의 방법입니다. 동물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식물과 비교 대조하는 방법보다 더 수월한 게 없겠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문학을 무엇과 비교 대조해야 할까요. 이럴 때 흔히 상하위 개념을 살펴봅니다. 여기서 '개념'이라는 말은 참 어려운 말인데 그냥 분류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생각합시다. 나중에 '개념'에 대해 다시 살펴볼 것입니다. 문학의 상위 개념은 '예술'입니다. 예술에 속하는 것으로는 문학말고 미술, 음악, 무용이 있지요. 사진, 영화도 예술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진이 시각적 이미지를 이용해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니 미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영화는 이런 예술 장르가 합쳐진 것이니 기본 장르로 언급하지 않는 게 맞을 겁니다.
예술(藝術)을 파자하면 참 복잡합니다. 藝는 埶(심을 예)와 芸(시운 운)으로 일단 나눌 수 있습니다. 埶는 土와 丸(둥글 환)이 결합된 글자로 땅에다 풀을 심는다는 뜻을 갖고 있는 글자입니다. 芸은 풀(艹 = 艸 = 草)과 구름(雲) 또는 云(말할 운)이 결합한 글자로 풀이 나부끼듯 구름이 피어나듯 묘한 노래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니 종합하면 藝는 ‘재주’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術(재주 술)은 行(갈 행)과 朮(차조 출)이 결합한 글자로 찹쌀처럼 착착 달라붙어 가다는 의미로 이 글자도 결국 ‘재주’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재주는 재주인데 여럿이 손발이 척척 맞으며 뭐든 잘 일구어내는 재주를 말합니다. 예술이 감동을 불러일으켜 너나없이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니 글자가 담고 있는 의미가 참 기막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각의 예술 장르는 표현수단(매재)에 의해 나뉩니다. 문학은 언어로 그린 심상(心像 ; 마음 속으로 그린 그림), 음악은 청각 이미지, 미술은 시각 이미지, 무용은 몸짓 이미지를 표현 수단으로 합니다. 차이점에 대해서는 많이들 얘기를 하는데 공통점(이미지, 형상)에 대해서는 별로 말은 안 하는 게 이상합니다. 사실은 표현수단의 차이보다는 각각의 감각 이미지가 전달하려고 하는 느낌(정서)이라는 공통분모가 더 중요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문학 교육이 이 문제를 소홀히 하여 아이들이 교육받을수록 문학을 싫어하게 된다고 봅니다. 뭐든 감동하지 않는 건 다 소용 없는 법이거든요. 감동(感動), 느껴서 마음이 꿈틀 하고 움직인다는 의미잖아요. '感'을 보세요. '咸'과 '心'이 붙어서 만들어진 글자인데 '咸'은 '戈(창 과)'과 '口(입 구)'가 합쳐서 된 말로 원래는 '병사가 함성을 지른다'는 의미였답니다. 그러니 '感'은 마음 속에 느끼는 바가 있어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른다는 의미이지요. 어떻습니다. 뭐든 이래야 하지 않습니까. 마음이 꿈틀거려 절로 입이 벌어지고 탄성이 나오는 그런 일이 벌어져야 비로소 문학현상이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문학은 예술의 하위 장르로서 예술이 갖고 있는 일반적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일반적 속성이란 마음 속에 일어나는 느낌(정서)를 이미지(형상)에 실어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술은 정서의 형상화라고 말하면 간단하고 정확합니다. 예술을 과학과 대조하면 예술의 특성이 더 분명해집니다. 예술이 주관적 정서를 형상에 실어 표현한다면 과학은 객관적 사실을 개념으로 논증합니다. 예술이 이미지를 사용한다면 과학은 개념을 사용합니다. 개념(槪念)이라는 말은 꽤 까다로운 말이지만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말입니다. 과학적 이론도 다 언어로 전달되는 것이니 전달 수단인 말(개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형상이 예술의 전부라면 개념은 과학의 전부입니다.
문학은 연애술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文'은 말글을 뜻하니 언어로 된 것은 다 문학의 대상이 된다고 해도 되긴 합니다. 그런데 '學'이라고 하니 뭔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겠거니 하고 대답하기 꺼려지기도 합니다.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말에 대해 배우는 게 바로 문학입니다. 문자 그대로 살펴보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지만 사실은 동어 반복(했던 말 또 하기)에 지나지 않음을 곧 알게 됩니다. 이런 식의 풀이는 감동, 마음의 꿈틀거림을 불러일으키지 못 합니다. 그렇다면 문학을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요?
저는 문학을 '연애술'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戀愛', 이 말이 통속적으로 쓰이다 보니 너무 즉물적(그냥 신체적이라고 이해합시다)으로 들리는데 문자를 풀어보면 '연애'는 '문학'이라는 어려운 말을 아주 쉽고 정확하게 풀어놓은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워할 연戀'은 '말로 마음을 맺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말씀 언言, 실 사絲, 마음 심心 세 글자가 합쳐진 글자이지요. '애愛'는 어떻게 만들어진 글자일까요. '마음 심心' 아래 위는 두 손이 맞잡은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그러니 '두 손을 맞잡고 마음을 나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니 문학을 쉽게 설명하는 말로 '연애술'이라는 말이 안성맞춤이지요.
아이가 성장하면서 사춘기 무렵이 되면 짝짓기가 가능해집니다. 일단 몸의 변화가 먼저 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인간의 문명은 사회적 관계를 굉장히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몸의 변화만으로 짝짓기는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연애라는 짝짓기 이전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때부터 문학적 언어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고 봐야합니다. 그러니 문학은 청춘의 꽃이요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문학이 연애관계만 노래하는 건 아니고 인간이 맺는 관계가 연애관계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이 이성에 눈을 뜨면서 타자(나 아닌 남)를 통해 대자적 존재(관계 속의 존재)로 거듭나게 되니 연애관계는 모든 관계의 바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연애를 통해 비로소 타자를 인식하게 되고 타자와의 소통이 점점 정교해지면서 인간 관계는 복잡해집니다. 복잡해진 인간관계는 다시 연애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진정한 첫 관계인 연애관계는 인간관계의 알파(처음)요 오메가(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연애를 통해 진정한 관계에 눈뜨면 분열된 자아의 관계(철학적 관계)에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진정한 연애관계에 눈뜨지 못하면 다른 관계 즉, 우주론적 관계나 사회적 관계, 영적 관계를 맺는, 사유하는 존재로 성장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학은 연애를 위한 언어이고 문학을 통해 진정한 관계를 배우며 문학에서 출발하지 않은 관계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인간이 위대한 문명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짝짓기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고 인류의 문명은 문학이라는 독특한 짝짓기 방식을 만들었습니다. 연애를 위하여 이제 문학의 세례를 기꺼이 받읍시다.
예술(문학)의 본질 ‘공감’
문학의 개념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학의 본질은 공감인 만큼 함께 느껴야만 정서 발달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정서 발달이라는 게 좀 어려운 문제라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문학을 연애에 비유해 봤습니다. 그런데 분석해 보면 문학은 곧 연애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문학은 예술에 속하는 데 예술의 본질은 함께 느끼는 것, 곧 공감하는 것입니다. 분석하고 따져 밝혀내는 과학과는 완전 반대이지요. 연애의 戀(사모할 연) 자는 말로 서로 마음이 연결된다는 뜻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愛(사랑 애)는 손(爪)과 발(夂)로 마음이 통한다는 뜻인데 연애한다는 것은 말로 통하고 몸으로 느낀다는 의미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을 이루는 지성, 감성, 의지
좋은 사람은 전인(全人)적 인격을 갖춘 사람인데 전인이란 인성을 잘 갖춘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인성은 지성, 감성, 의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식 습득을 하고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지성이 필요하고 아는 만큼 이루기 위해서는 실천적 의지가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뭔가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협력해야 합니다. 협력하려는 마음이 서로 통해야겠지요. 연애든 우정이든 효행이든 모든 인간 관계는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걸 필수로 합니다. 정서가 풍부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잘 공감할 수 있는데 예술은 바로 이 정서를 풍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문학을 느끼고 즐기는 건 인성 발달에 필수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개념으로 사실 증명 예술은 형상으로 감정 표현
개념이란
槪念(개념)의 '槪'는 나무(木)과 旣(이미 기)가 결합된 글자입니다. '旣(이미 기)'는 참 재미있는 글자인데 사람들이 어려워 합니다. 이 글자는 '食(밥 식)'에 '旡'가 결합된 글자입니다. 밥상과 뒤돌아 앉은 사람을 본따서 만들어진 글자로 '밥을 이미 다 먹었다'는 뜻입니다. 槪는 '대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인데 木 부분이 뜻을 담고 '旣(이미 기)'는 소리를 담는 부분입니다.
槪念(개념)에 왜 나무가 들어가는지 이해가 잘 안 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나무'가 들어간 게 기막히게 잘 맞습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 개념이 생긴다는 것은 그 대상이 어떻게 분류되는지 파악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이 참 어려운데 쉽게 얘기해서 '식물'이라는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은 '식물'이 '동물'과 어떻게 다르며 '동물'과 '식물'이 '생물'에 속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좀 어렵게 얘기하면 개념이 생긴다는 것은 상하위 개념을 안다는 뜻입니다. 어떤 개념에 대해 정의를 내릴 때 이 상하위 개념을 이용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에 대해 정의를 내리면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여기에서 '동물'이 바로 '인간'의 상위개념입니다. 생각은 동물에 속하는 많이 종들 중에 인간이 다른 종과 구분되는 차이점이지요. 정리하면 개념이 생긴다는 것은 수형도(나뭇가지가 뻗어나간 모양) 모양의 계통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개념'이라는 말에 '나무(木)'가 들어가는 게 기막히게 적절하지요.
사람들은 왜 개념을 어려워 할까요? 글을 읽으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건 바로 추상 개념 때문입니다. 추상 개념이 정확히 잡혀있지 않으면 글을 독해하기도 어렵지만 논리적인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논리적인 글은 객관 사실을 근거로 주장하는 바를 추론하는 글인데 이런 글에서는 추상 개념이 사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추상 개념이라는 말이 자꾸 나오는데 '개념'이라는 말은 앞에서 살펴봤으니까 '추상(抽像)'이라는 말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抽(뽑을 추)'는 손(手)과 由(말미암을 유)가 결합한 글자입니다. '由'는 밭에서 뭔가를 뽑아내는 모양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抽'는 '뽑아낸다'는 뜻을 갖게 되는 겁니다. 뭘 뽑아낼까요. 바로 모양(형상)을 뽑아내는 겁니다. 그래서 '추상'이라는 말은 대상사물을 대표하는 줄기(뼈대)만 뽑아낸다는 뜻이 됩니다. 예를 들어 사과, 배, 복숭아 등을 '과일'이라고 하는데 사과, 배 등이 어떤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한 데 묶어서 '과일'이라고 한 것이겠지요. 바로 그 공통 분모를 뽑아내는 것을 추상화(抽像化)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일' 정도면 그리 어려운 개념도 아니지요. 과일을 포함하는 '식물', 식물을 포함하는 '생물', 생물을 포함하는 '물질', 이 정도만 추상화 해도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추상화에는 계층이 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추상화가 심해져 구체적인 사물로부터 멀어집니다. 그러니 쉽게 감잡히지 않지요. 그런데 이 추상 개념은 논리적 사고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추상 개념을 쓴다는 것은 개념들 사이의 위계(상하 계층)을 안다는 것이니 사물들 간의 공통점 차이점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개념 구사하는 것을 보면 세계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이제 예술 언어와 과학 언어의 차이점을 정리해 봅시다. 언어를 매재(전달하는 재료)로 하는 예술 장르는 문학이니 예술 언어와 과학 언어의 차이는 문학과 비문학의 차이라고 쉽게 이해해도 좋습니다. 다만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하는 것은 문학은 예술에 포함되고 과학은 인문과학, 자연과학, 사회과학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술과 동위(같은 계층) 개념이 과학이고 문학은 이들 개념의 하위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층위를 분명히 알지 못하면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형상(이미지)이란
과학이 객관적 사실을 개념으로 드러낸다면 예술은 주관적 정서(느낌, 감정)를 형상으로 드러냅니다. '드러내다'는 말이 의미가 모호해 확실히 구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술은 '표현한다'고 하고 과학은 '규명한다'고 합니다. 사실 표현과 규명은 으미가 그리 다르지 않은 말입니다. 表現(표현)은 겉으로 드러난다는 뜻이고 糾明(규명)은 풀어 밝힌다는 뜻입니다. 둘다 드러내어 알게 하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규명하다와 증명하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證明(증명)의 '證'도 말이 들어있고 糾明(규명)의 糾에도 말을 뜻하는 '丩'가 들어있습니다. 표현의 '表'는 옷(衣)에 털이 붙은 모양으로 겉(표피)라는 의미를 갖고 있고 '現'은 구슬이 보인다는 의미로 '나타나다'는 뜻입니다. '糾'는 실마리를 찾아 말하다는 의미로 푸는 게 적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니 과학이든 예술이든 뭐가 잘 모르겠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과 과학의 차이점은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분명히 구분됩니다. 예술이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주관적 정서(느낌, 감정)이고 과학이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입니다. 정서가 무엇인지는 앞에서 얘기했으니 다시 말하지 않겠습니다. 事實이란 개념을 살펴봅시다. 事는 손(彐)이 무엇(깃발?)을 들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제사 지내는 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글자입니다. 實은 집(宀)과 돈(毋;꿰어놓다, 貝;재물)이 합친 글자로 재산이라는 의미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事實은 재물과 제사로 보면 되는데 이는 문질과 문화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적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니 事實은 事物이라고 해도 되는데 事物의 物에는 소(牛)가 들어있으니 사물(事物)도 정신 문화적 요인과 실물적 요인을 포괄하는 말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과학이 다루는 사실은 상당히 넓은 의미라도 할 수 있는데 외형을 갖고 있는 물건이나 문화적 행위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보면 어느 정도 맞을 거라고 봅니다.
과학이 드러내려고 하는 '사실'에 대해 좀 장황하게 말했는데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예술이 다루는 '정서'와 과학이 다루는 '사실'의 차이점입니다. 보통 예술은 '주관적 정서의 표현', 과학은 '객관적 사실의 규명'으로 대비를 시키는데 한자를 풀어서 설명하면 그 뜻의 차이가 비교적 분명해집니다. '정서'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심리현상임에 비해 '사실'은 외형을 가진 물건 또는 행위라고 보면 맞습니다. 과학은 객관적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개념'을 사용하고 예술은 주관적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 '비유'를 사용합니다. 개념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상하위 개념들과의 위계 질서를 드러내어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정의, 분류, 분석은 모두 개념들 사이의 층위를 분명히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예술이 주관적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비유'에 대해 살펴봅시다. 비유(比喩)는 견준다는 의미의 比와 깨우친다는 의미의 喩가 결합된 말입니다. 比는 사람이 나란히 앉은 모습이니 견준다는 뜻이 되고 喩는 입(口)과 兪(점점 유)가 결합된 글자이고 兪는 배(舟)가 물결을 가르고 나아가는 모습을 본뜬 글자로, 전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喩는 말로 깨우쳐 알게 하다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유는 유사한 속성을 갖고 있는 두 사물을 견주어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바로 원관념인 '정서'이고, 이 정서(느낌)을 빗대는 사물이 바로 보조관념이 되는 것입니다. 정서는 감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눈으로 볼 수 있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물(이미지, 형상)에 빗대어(견주어) 간접적으로 드러내어 보여 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문학 이론에서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유사한 속성을 갖고 있는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보고 문학 창작은 결국 두 사물의 유사점을 발견하여 빗댐으로써 묘한 '정서'를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구체화(具體化)는 앞에서 배운 抽像化(추상화)의 반대말로 具(갖출 구)는 두 손(卄)으로 재물(貝)을 받들고 있는 모양으로 눈에 보이는 물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구체화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형체를 갖게 한다는 의미로 풀면 됩니다. 따라서 '정서'를 구체화한다는 것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마음 속 느낌을 어떤 사물에다 빗대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의 갈래는 세계와 나의 갈등 양상
문학의 장르(갈래)는 서정, 서사, 극, 교술로 나눈다. 내 감정 기분을 그냥 토해 내면 서정 장르가 되고 세상과 내가 갈등을 일으키면서 엎치락 뒤치락 하는 모습을 서술하면 서사 장르 즉 소설이 된다. 교술은 세상 이치를 깨달은 어른이 독자에게 교훈이 될 만한 말씀을 들려주는 것이라 보면 된다. 서사와 극은 본질적으로 갈등 양상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같지만 사건을 들려주는데 얘기 들려주는 사람의 생각을 집어 넣으면 소설이 되고 그냥 겉으로 보이는 장면만 보여 주면 극이 된다. 극 장르로 대표적인 게 연극 대본(희곡), 영화 시나리오가 있다는 건 잘 알 것이다. 본질이 이러니 대체로 수필은 나이 드신 분들이 주로 쓰고 젊은이들에게는 서정 장르가 맞을 것이다. 서정이라 하면 좀 느낌이 안 나니 그냥 가요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가요는 역시 젊은이들이 많이 즐기는 게 맞지 않을까.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력을 가지려면 다양한 장르를 골고루 감상하는 게 좋을 듯하다.
시 소설 작품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연설과 영화 중 어느 게 더 재미있나요? 당연히 영화가 더 재미있지요. 확실히 강의나 연설보다 가요나 영화가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강의가 훨씬 더 비싸고 공부가 많이 되잖습니까. 그런데 강의 토론에서 감동을 받기에는 참 어렵습니다. 아무리 가치 있고 쓸모 있다 하더라도 감동이 없으면 재미 없어요. 재미 없으면 빠져들 수가 없지요. 먼저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나 소설을 많이 즐겨야 합니다. 즐기다 보면 나도 한번 써보고 싶어지지요. 시나 소설 한번 써봅시다. 장담하는데 창작의 기쁨을 즐기기 시작하면 어려운 논설과 강의에도 빠질 수 있게 됩니다. 시나 소설을 잘 쓰려면 구성 요소를 알아야 합니다. 좀 분석적인 일이라 재미 없을 수도 있는데 창작을 하다 보면 이 이론을 꼭 배우고 싶어집니다. 먼저 주제을 살펴 봅시다. 시나 소설의 주제는 모두 표현하려고 하는 감정을 의미합니다. 그 감정을 분석하는 이론은 무척 많은데 동양 철학의 4단7정론을 권합니다. 그 다음에는 소설의 구성과 시의 이미지가 잡혀야 합니다. 제일 어렵고 전문적인 요소가 문체인데 소설에서는 시점이 중심이고 시에서는 운율이 중심입니다. 초보에게 제일 편한 시점은 1인칭주인공 시점이고 영화 시나리오와 제일 유사한 시점은 3인칭 관찰자시점입니다. 시의 문체는 운율이라고 보면 됩니다. 글자 수를 조절하고 일정한 위치에 억양이나 음을 반복하면 노래 가사로 쓰기에 참 좋습니다.
수필이란 무엇인가?
수필(隨筆) 따를 수, 붓 필
좋은 수필 작품을 쓰려면 수필이 뭔지 알아야겠지요. 수필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문학의 갈래(장르)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문학의 4대 장르는 시, 소설, 수필, 희곡이라고 흔히 외웠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시, 소설, 희곡, 수필 순으로 기억합시다. 왜 그런지 알면 수필 이해 거의 다 된 겁니다. 시, 소설, 희곡, 수필을 문학 비평 용어로 서정, 서사, 극, 교술이라고 한다는 걸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서정(敍情)은 정서(감정) 서술, 서사(敍事)는 사건 서술이라는 뜻이고 극(劇)은 연극, 교술(敎述)은 가르침을 서술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이 갈래들이 구분이 잘 안 되지요. 그래서 서정을 '자아의 세계화', 서술과 극을 '자아와 세계의 갈등, 교술을 세계의 자아화로 이해하기를 권합니다. 더 쉽게 풀면 '자아의 세계화'는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것, '세계의 자아화'는 세상 이치를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잘 안 맞아 갈등이 일어날 때가 있는데 이때 내 속을 털어놓는 게 시(詩)이고 세상 이치를 깨닫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게 수필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소설과 극은 그 갈등 양상을 그대로 그려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소설은 서술자가 개입하는 것이니 자기 중심인 시에 좀더 가깝고 극은 개입 없이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니 객관 세계 중심인 수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자아와 세계가 서로 충돌하여 일어나는 감정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사람의 감정을 몇 가지로 나누어 분석한다는 게 가능할까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우리 감정을 이해하기 위한 첫 작업이 이런 분석 작업인 건 분명합니다. 문학을 시, 소설, 희곡, 수필로 나누고 문학, 음악, 미술, 무용을 묶어서 예술이라고 하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런 식으로 분류 분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정 표현은 예술의 공통 분모이니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감정을 제대로 분석하는 작업이 가장 기초 작업입니다. 검정을 나누는 이론이 참 많은데 우선 우리 동양 철학, 성리학의 사단칠정론을 맛보기 하도록 합시다. 사단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로 나눕니다. 쉽게 풀어서 불쌍히 여김(측은지심), 정의로움(수오지심), 양보하는 마음(사양지심), 지혜로움(시비지심)이라고 합니다. 칠정(七情)은 희노애락애오욕(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으로 나눕니다. 예술은 이런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표현수단인 언어, 미술, 음악, 몸짓으로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장르를 나눕니다. 문학 중에서 특히 서정 장르가 감정 표현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감정에 대해 이해와 공감이 제일 중요합니다.
서정 장르가 감정 표현이 주된 장르라 한다면 수필 장르는 반대로 자신을 낮추고 세상 이치를 받아들이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시가 감정을 형상화 한다면 수필은 세상 이치를 형상화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 시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기 위해 '빨래줄'이라는 형상을 그린다면 수필은 추운 겨울날 빨래를 하시면서 손이 다 튼 엄마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 하면서 인간의 도리 '효심'를 이야기하는 식이지요. 수필이 깨달음을 말하는 장르이다 보니 웬만큼 나이가 들지 않고는 좋은 작품을 쓰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시는 청춘 장르이고 수필은 어른 장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성숙한 사람이 깨닫는 세상 이치라는 게 어떤 게 있을까요. 예를 들어 법정 스님이 쓰신 '무소유'같은 작품은 젊은이들이 쓸 수 있는 게 아니겠지요. 소유욕에 찌들어있는 우리 같은 소인배가 무소유를 깨닫는다는 게 말이 안 되지요. 그래서 수필은 참 어렵다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수필을 잘 쓰려고 노력하면 엄청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성숙한다는 건 아파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 자라면서 모든 것에 다 만족할 수는 없지요. 다 만족하면 육체적으로는 잘 성장할 수는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성숙할 수 없습니다. 성숙이라는 게 그 본질이 갈등이요 아픔이거든요. 청소년기에는 자기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짜증을 많이 내지요. 자기 중심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 중심적이라고 하니까 이기심을 부정적으로 말한 것이라 오해할 수 있는데 성숙의 본질이 아픔이라면 이 불만으로 인한 짜증을 나쁜게만 볼 일이 아닙니다. 이 짜증을 문학 이론에서는 자아와 세계의 갈등이라고 하는 겁니다. 갈등이 일어날 때 속상한 걸 토로하면 서정이요, 그 갈등이 일어난 상황을 되돌아보면 서사요, 반성하면서 자기 부정을 하게 되면 그게 곧 수필이 됩니다. 이런 과정이 깊이 있게 자주 일어나면 내면이 많이 성숙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 성숙이란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일단 자아와 세계가 충돌이 일어나 짜증이 나면 이를 나쁘게만 보지 말고 성숙의 기회라고 보고 겉으로 표현하고 되돌아보고 합시다. 되돌아보면서 그 장면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면 그게 곧 소설입니다. 아직 깨달음의 깊이를 잘 느끼지 못하겠다 싶으면 그냥 되돌아보고 그대로 기록하도록 합시다.
기록하는면 그게 곧 소설이 되는데 뭘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막연할 때에는 소설의 3요소를 생각합시다. 소설은 주제, 구성, 문체로 이루어지고 구성은 다시 인물, 사건, 배경으로 이루어집니다. 주제와 문체는 나중에 다듬기로 하고 우선 그 때 일을 기록할 때 누구와 갈등이 일어났는지 인물을 설정하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사건을 순서대로 떠올려 봅시다. 이 사건이 일아나면서 갈등이 증폭된 단계가 바로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입니다. 대판 싸우면서 폭발한 사건이 곧 절정이니 그런 대폭발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된 사건도 있겠지요. 그렇게 사건을 순차적으로 배치하여 기록하면 소설이 한 편 탄생하는 겁니다. <끝>
첫댓글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 알고 싶으면 다음 글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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