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바이블의 앙상블 - 7]
- 도니체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지난주 소개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 반목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두 남녀의 불꽃같은 사랑과 비극적인 결말을 그렸다. 그런데 17세기 초 스코틀랜드에서 비슷한 얼개의 사건이 발생한다. 원수 가문의 남자와 사랑에 빠진 딸을 그와 갈라놓기 위해 엄마는 다른 신랑감을 물색하여 급히 결혼을 추진한다. 이 억지 결혼에 큰 압박을 받은 딸은 신혼 첫날밤 순간적인 정신착란을 일으켜 신랑을 칼로 찌른 기괴한 일이다. 이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1819년 극작가 월터 스코트(Walter Scott, 1771 - 1832)가 [래머무어의 신부(The Bride of Lammermoor)]라는 소설을 발표한다.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뿐 아니라, 당시의 정치상황에 의해 몰락한 귀족가문과 권력을 얻은 신흥가문을 대비시킨 일종의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이것이 당시 오페라 소재를 찾고 있던 이탈리아 작곡가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1797 - 1848)의 주목을 끌었고, 그 결과물이 [람메르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이다. 줄거리인즉슨....
순수한 마음을 지닌 아름다운 루치아는 서로 갈등관계에 있는 집안의 아들 에드가르도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당연히 집안의 반대에 부딪치고. 더욱이 그녀의 오빠 엔리코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이루기 위해 여동생을 유력한 아르투로와 정략결혼시키려 한다. 이를 거부하는 루치아를 회유하고 협박하던 오빠는 잠시 외국에 가 있는 에드가르도의 편지를 위조하여 그가 변심한 것처럼 꾸민다. 슬픔과 좌절에 빠진 루치아는 아르투로와 억지로 혼인을 하는 수밖에.
아무런 내막을 모른 채 결혼식에 나타난 에드가르도는 약혼 반지를 빼던지며 루치아를 맹렬히 비난한다. 너무 큰 혼란과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루치아는 신방에 들어가 신랑을 칼로 찔러 죽인 후, 피 묻은 옷차림으로 나와 <광란의 아리아(Il dolce suono)>를 부르며 절규한다. 흔히 '광란의 장면(Mad Scene)'이라고 하는 이 대목에서 소프라노가 엄청난 가창력과 기교를 뽐내는 곡이다. 삶의 의미를 잃은 루치아는 제정신을 회복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소식을 들은 에드가르도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스토리다.
루치아는 자신의 선택을 억압하는 주변을 상대로 외로운 저항을 해보지만, 결국 실성을 한 후 죽음에 이르는 운명에 처한다. 이것이 낭만주의 시대의 일반적인 결말이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나 인권이 거의 인정되지 않던 때이다. 그 당시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결말, 혹은 여성이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방법은 대개 죽음이었다. 그녀들의 주장과 항거가 관철되어 해피엔딩을 맞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로미오를 사랑한 줄리엣, 남편 오셀로에게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은 데스데모나, 사랑을 배신한 여인 카르멘, 애인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경감을 살해한 토스카도 모두 죽음으로 끝맺음을 하지 않았나.
그러고 보면 2천년 전, 예수께서는 시대를 훨씬 앞서가신 것 같다. 여성을 존중하고 남녀를 평등하게 대했던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 이에 대한 사도바울의 증언.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대여섯 남자와 연쇄 동거하며 사랑과 인생에 실패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그 허물을 탓하는 대신 그녀를 긍휼히 여기고 구원과 영생을 약속하신다. 여성과 아이는 인구 통계에도 잡히지 않던 까마득한 시대에.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은 사람 수가 여자와 어린이는 빼고 5천명이었다든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3-14)
간음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사람들이 예수 앞으로 끌고 온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이 여자는 군중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을까.
여인에게 죽음의 위기를 면케 하셨을 뿐 아니라, 죄를 용서해 주셨다. 성경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아무런 웅변 없이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던 말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 8:7)
기세등등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양심에 찔려 하나둘 모두 사라지자, 예수께서 여인에게 다정하게 이르신 용서의 말씀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 8:11)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광란의 아리아>에 이어 주목을 받는 곡은 루치아와 아르투로의 결혼 피로연에 나오는 합창이다. 놀랍게도 이 선율은 남궁억(1863 - 1939) 선생이 지은 가사로 찬송가에 채택되었다. 그는 일제시대에 성경과 하나님을 알리고 기독교 정신으로 학생들을 가르친 교육자요, 무궁화 보급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선각자였다. 그가 암울했던 시기에 백성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하며 쓰신 찬송가가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이다. 하나님 명령을 따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분발하여 일하자는 뜻으로.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일 많아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날에 일 가려고 그 누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강산에 일하러 가세"
이제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 나오는 결혼 합창곡을 들어보자. 이곡에 붙여진 찬송가 노랫말을 음미해 보면서.
동영상단열이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루치아(삼천리반도금수강산, 580장)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 나오는 합창곡. 찬송가 580 장 삼천리반도금수강산은 이 곡에서 가져온 멜로디입니다. 도니제티는 이 오페라 외에도'연대의 아가씨' [남몰레 흐르는 눈물]로 유명한 '사랑의 묘약'등이 있습니다.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