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인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며 예수의 거룩한 말씀이라고 자랑스럽게 인용하는 바이블의 귀절은 무엇일까?
아마 예수가 산상설교를 할 때 사용했던 여러 경귀 중의 하나인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과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한 격언이 아닌가한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 5:44)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마태 5:13,14) >>
사실 이러한 교훈적인 설교는 바이블만의 전유물이 아니지만 우리 인류가 사회 생활을 영위하는 한 포기해선 안될 거룩한 경귀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이블의 문제는 이러한 교훈적인 경귀를 기록하는 한편 그 반대의 주장도 서술되어 있으며 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설교를 한 그 사람의 말과 행위가 상반되는 데 있다고 본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선언한 예수가 실제 그의 행동은 오히려 핍박과 증오로 일관했으며 오른 뺨을 치면 왼뺨을 마저 내주라며 설교하던 그가 실제 상황에서는 격렬하게 항의했다는 에피소드는 바이블을 한번쯤 통독한 그대라면 모두들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혹시 좀더 자세히 확인하고 싶은 분들은 필자의 전작 [원수를 사랑하라고?...예수가 바리새인을 증오한 진실한 이유 ] 등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
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화두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이블을 확인하는 기회를 갖기로 하겠다.
1)원수를 사랑하라고?
마태복음에 묘사된 산상설교의 한 귀절이지만 같은 내용이 누가 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함께 찾아 보기로 하자.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누가복음 6:27) >>
원수를 사랑하라는 격언은 분명히 무저항 주의를 가르친다. 예수의 또다른 말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라"는 격언과 일맥 상통하는....정말 귀를 열고 경청해야할 큰 가름침이 분명하다. 그러나 간디와 같은 힌두교 신자에선 이러한 격언을 실천한 예를 볼 수 있으나 유사 이래 기독인이 무저항 주의를 주장했다는 예는 들은 바 없다.
그러면 왜? 예수는 자기가 내뱉은 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을까?
산상 수훈이 다른 경전을 모방한 혹은 복사한 내용이라서 그냥 무시하고져했을까?
정답은 상기 가르침이 기독교의 원 가르침에 위배된다는 사실이 실상이 아닌가한다.
문제의 해답은 같은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바 아래에 인용하겠다.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9:27) >>
*사랑해야할 원수는 누구이며 죽여야할 원수는 누구일까?
*기독인들의 사랑 타령이 주안에서의 사랑 즉 조건부 사랑인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인들의 증오를 모면하는 방법은 그들의 교조 예수를 왕으로,부언하면 신으로 믿는 방법 밖에 없다는 뜻이다.
기독교가 포교되었던 역사의 현장 그리고 오늘날 전도라는 명목하의 기독교인들의 선교 현장에 언제나 분열과 증오 그리고 피 그림자가 함께 했던 그 연유가 이러한 바이블의 강요에 있지 않나 확신한다.
2)빛만 있으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모두 소금되기만을 자처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마태 5:13,14) >>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격언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자는 언제나 소수의 입장에 서야하며 그 행위에 당위성을 가지기 위해 극기의 생활 그리고 좀더 선한 마음과 힘겨운 실천이 요구된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 기독인들이 빛과 소금 역활을 했던 그리고 하고 있는 경우의 수는 얼마나 될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정답은 역시 바이블이 제공해 준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14 ) >>
*기독인들의 소망 대로 지구촌 인류가 모두 예수를 영접하여 세상이 모두 빛만으로 가득하면 어떻게 될까?
*빛이 필요한 만큼 어두움도 필요하고 빛이 가득한 중에도 가끔은 그늘에서 쉬고 싶은 게 우리네 사람인 것을 알고는 있을까?
*소금도 마찬가지이다.
*어머니가 만들어 준 간고등어는 정말 맛있었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고등어가 소금이 너무 들어가면...그러하다. 소위 소태가 되어 버린다.
기독인들은 세상이 땡볕으로 가득해 우리 인류가 타는 목마름으로 고생할까봐 혹은 소금 사태로 세상이 고통받을 것을 이미 눈치챘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반증일까?
기독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 역활을 하리라는 기대는 이미 포기된 전설이 아닌가한다.
다시 부언하자.
기독인들의 숫자가 한명이라도 더 늘면 늘수록 세상은 소태가 되고 땀 한방울 식힐 그늘이 줄어들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기독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그 화려한 말만의 성찬을 중단해야만 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사회에 그러한 진실을 제공할 의도가 있다면
*세상 끝까지 전도하여 그들만의 세계를 건설하겠다는 불가능한 욕심을 버려야겠고
*소위 이신칭의론으로 불리는 믿음 지상주의를 폐기하고 사회 공동체에 대한 의무적인 율법을 강조하는 도그마를 우선으로 채택해야 겠으며
*인류와의 관계 즉 무엇보다 인간은 아름답고,선하며,진실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판단되는 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첨언:원수를 사랑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던 예수가 같은 입으로 내뱉은 다른 말을 하나만 더 인용하겠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 10:34) >>
첫댓글 소금이 소태 맛을 낸다는 것은 소금의 제기능을 잃었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드님 말씀처럼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이 소금의 맛을 잃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우리 한국엔 우리가 모르는 숨어있는 의인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왜?? 한국이 아직 멸망하지 않았기에..ㅋ 물론 이것두 지 생각입니다만...^^*
"기독인들의 숫자가 한명이라도 더 늘면 늘수록 세상은 소태가 되고 땀 한방울 식힐 그늘이 줄어들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 저는 늘 기도합니다. 이 땅위에 의인 5섯명이만이라도 남아있게 되기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14 ) >> 이는 천국 복음이 온 세상 끝까지 전파되면 끝이 온다는 말이지 지구촌 인류 모두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바로 아래 구절부터 읽어 보시면 아실 일인뎅...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 10:34) >>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요한복음16장 8~11과 연결하여 전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는 저의 믿음의 생각입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간의 유대인의 율법의 위선적인 신앙이 드러나게 되고
그런 유대인들의 신앙에 대한 예수님의 꾸짖음이며 성령님이 오심으로 인하여 죄와 정의와 심판에 관한 그릇된 것을 바로 잡아 주심을 의미 함이라 생각합니다.
평안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