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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단계 노래운동의 현황과 노동가요 창작의 빈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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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사람 박 종 훈(자유기고가)
이 글에 반영된 의견은 꽃다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혀 둡니다. 따 라서 이
글로 인해 꽃다지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인물 이나 단체에 관한
진술은 전적으로 필자의 판단으로, 보편적인 진술이 될 수 없음도 밝혀 둡니다.(필자 주)
80년대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그리고 차후에 노동현장에 까지 급격
하게 확산되었던 노래 운동. 그 당시 노래 운동의 모습은 명약관화 한 것이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노동해방, 그리고 통일을 향한 민중의 열망의 표현인 동시에 동참의 호소
(혹은 선전선동) 그리고 투쟁의 결의였으며, 또한 자본주의적(상업적) 문화의 광야에
민중적(건강한) 문화의 씨를 뿌리는 결연 한 작업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보 운동진영
내부에서 계속 존재했던 미세한 정견의 차이(사람들은 흔히 이러한 대립으로 인한 논
쟁을 사투라 불렀다.)와 같이 노래운동 역시 그 자체에 혼돈의 싹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 여 80년대 노래운동에 뿌리를 둔 오늘날의 노래운동은 여러 갈래로 갈라
졌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이제 '민중 가요' 혹은 '노래 운동'의 개념에 혼란
을 빚게 되었다.
지금 이른바 전문가 집단에서의 노래운동의 흐름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첫째,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노래를 통하여 현장의 (애쓰는) 사람들에 게 힘을 실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흐름이다. 최도은이 대표적인 예이고, 꽃다지도 넓은 관점에서 보
면 이 흐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기존의 대중가요계에 진보적이고 건강한 내
용을 담은 노래와 가수들을 배출시킴으로 써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건강한 문화를 선보
이고 상업적 대중가요계에 긴장 을 불어넣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는 흐름이
있다. 노찾사, 윤도현, 이정열 등이 소속되어 있는 다음기획이 이 흐름에 해당하는 것
으로 보인다.
셋째, 우리 나라에는 없는 개념인 언더그라운드군을 형성하고 비판적 저항가 요를 그
중심으로 삼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는 흐름이 있다. 메이데이, 이스크 라, 천지인 등이
소속되어 있는 뮤직센터 21세기가 이 흐름에 해당하는 것으 로 보인다. 그리고 이 세
큰 흐름에 귀속시키기 곤란한 개별 아티스트들(안치 환, 정태춘 등)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셋 중 어느 것이 진정한 노래 운동이고 어느 것이 아닌가? 이 질문은 사
실 부질없는 것이다. 정치적 관점의 차이에 따라, 혹은 노래 운동의 방법에 관한 견해
의 차이에 따라 이 셋 중 어느 하나만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 겠지만, 나는 이 셋 모두가
노래 운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실상 이러한 결정 을 내리려면 '운동'이라는 단어의 개
념에서 '좌파'라는 색깔을 어느 정도 탈색 시켜야만 가능한 것이므로, '운동'에 대한 의
견 차이가 있다면 앞으로의 논의 에 관한 논쟁은 전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 흐름은 사실, 그 목적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첫째 흐름은 노래를 '통 한' 운동
으로 노래를 수단으로 하여 청취자를 감화시키는 데 그 궁극적 목적 이 있는 반면에 둘
째와 셋째 흐름은 노래에 '대한' 운동으로 대중음악계의 지 도(map)를 바꿔 놓으려는
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는 것이다. 사실 지난 80년 대 말, 90년대 초에는 이 두 가지 목
적이 한 가지 행위로, 예컨대 대학의 집회 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으로 동
시에 달성될 수 있었다. 즉,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
어 주는 일인 동시에 대 학 문화의 지도에서 이른바 민중문화가 차지하는 비율을 넓혀
주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말하자면 운동판 내부에서 업종 분화가 세밀해진 지금도
이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맡은 임무를 전문화시켰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
이다. 따라서 어느 한 쪽만이 진정한 노래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협한 사고이다.
노래 운동의 두 가지 목적은 모두 존중되어야 하고 이 목적을 이루 기 위한 노력은 양쪽
모두에서 있어야 한다.
단,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최근의 동향에서 둘째 흐름과 셋째 흐름에 비해 첫째 흐
름이 상대적으로 열세인 것으로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합리적이고 진 보적인 사회를 위
한 노력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므로 이를 위해 애쓰는 사람 들에게 힘을 주고 일반인들
을 진보의 흐름 속에 동참시키기 위한 노래의 창작 과 연행은 아직도 그리고 어쩌면 영
원히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 흐름이 약화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는 사실 정치적 투쟁의
약화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큰 원인은 아닌 듯하다. 대학가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나 노동현장은 지난 1월의 총파업 기간에 보여주 었던 바와 같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기 위한 투쟁이 계속 되고 있다.
(어찌 보면 진보운동의 중심이 대학가에서 노동현장으로 이동되었다고 할 수 도 있겠
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러한 상황에서 불릴 만한 새 노래는 거 의 만들어지지 않
았다. 이에, 첫째 흐름이 약화된 본질적 원인을 '창작의 빈곤' 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