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흙 냄새 더불어 ‘향기 샤워’, 마음이 쏴~ 쉬엄쉬엄 정상 오르면 탁 틘 바다, 점점이 섬
편백나무는 측백나무과의 상록수다.
피톤치드를 다량 방출하는 속성수의 하나로, 일본 특산종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삼나무와 함께 우리나라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심어졌다.
1960~70년대엔 뜻있는 이들에 의해 곳곳에 대량 식재가 이뤄졌다. 국토를 푸르게 하면서 뒷날 목재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뜻이 있었다.
이들의 노력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사철 푸른 숲으로 우거져 빛을 발하고 있다. 전남·경남 지역의 크고 작은 편백숲들이 이런 곳이다.
요즘 피톤치드가 주목받으며 ‘편백 정유’를 이용한 방향제·아토피완화제·화장품 등이 각광받고, 가구나 건축 내장재용 목재로 뜨고 있는
밑바탕에도 이들의 노고가 숨어 있다.
‘한 그루 베면 두 그루 심는다’는 정성으로 일궈
경남 고성 갈모봉의 편백나무 숲도 그런 곳이다. 고성읍과 삼산면 사이 갈모봉(367m) 산자락 60여㏊에 1970년대부터 심어진 20~30㎝ 굵기의 편백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고성 출신 임업인 윤영학(66)씨가 산을 사들여 ‘나무 한 그루 베면 두 그루를 심는다’는 정성으로 숲을 일궜다고 한다. 윤씨는 이곳뿐 아니라 고성·마산 일대의 산 곳곳에 수십년간 편백나무를 심어온 사람이다.
일부 삼나무도 있으나 90% 정도가 편백나무다. 국내 대표적 편백숲인 전남 장성 축령산의 나무들에 비하면 연륜이 짧지만, 울창하고 아름답고 향기롭기는 마찬가지다.
갈모봉 편백숲의 가장 큰 매력은 산자락과 등산로 곳곳에 일직선으로, 또는 굽이치는 오솔길을 이루며 뻗어 있는 편백나무 숲터널이다. 끝없이 도열한 곧고 붉은 기둥들이, 어깨엔 사철 푸른 외투를 걸치고 발치엔 부드러운 낙엽더미를 쌓아두어 탐방객들의 발길을 더디게 한다. 이마에 부딪는 청량한 바람도, 가슴 깊이 드나드는 맑은 공기도 진한 편백향을 품었다. 지금 이 어두운 숲터널엔 초겨울 햇살이 다투어 스며들어 바삭거리고 있다.
등산로와 임간도로를 활용한 산책로를 따라 편백나무숲을 한 바퀴 돌아 내려와도 좋고, 숲을 관통한 1㎞ 안팎의 임도를 따라 거닐며 숲 향기에 빠져도 즐겁다. 더 좋은 건 숲 구석구석을 천천히 둘러보며 오랫동안 머무는 일이다. 비좁은 오솔길도, 번듯한 임도도, 아기자기한 숲터널도, 거닐고 나온 뒤엔 마음 한구석에 진한 편백향이 남는다. 숲길엔 나무의자도 놓여 있고, 푹신한 낙엽의자도 깔려 있다.
갈모봉휴양림 관리인 정오철(48)씨가 말했다. “겨울에도 비 온 뒤면 숲 전체가 편백 향기로 진동합니다. 낙엽 냄새, 흙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능선길 따라 왼쪽으로는 고성 읍내가 한눈에
세월에 닳은 야트막한 무덤들도 숲의 구성원이다. 편백나무숲을 벗어나 작은 무덤이 놓인 삼거리에서 활엽수 숲길로 들면 갈모봉 정상으로 이어진다.
능선길을 따라가며 왼쪽으로 고성읍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바위 문’ 앞에서 왼쪽 산길로 오르면 얼마 안 가 정상이다.
너럭바위 위에 서면 가슴이 후련해지는 남해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고성 삼산면 앞바다(자란만)와 사량도(통영) 주변의 무수한 섬 무리가, 햇살 반짝이는 푸른 바다 위에 흩어져 있다.
내륙으로 눈을 주면 멀리 무이산·수태산 줄기 보현사·문수암의 대형 불상도 또렷하다.
간이식수대가 있는 네거리에서 야외데크 옆 나무계단을 올라 숲터널을 통과해 한동안 편백숲을 거닐면 고성읍내가 바라다보이는 팔각정이 나온다.
정자에서 계속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끝없이 이어진 어둑어둑한 편백숲 터널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연인과 함께 걷고 있다면, 나무에 기대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있기에 좋다.
갈모봉이란 이름은 옛날 이 산 주변에 칡이 많이 우거졌던 데서 나왔다.
갈모봉 남쪽 자락 삼산면 상촌마을엔 부잣집을 털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다는 ‘갈봉’이란 의적에 얽힌 전설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