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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15 03:30
슬로로리스
▲ 깜찍하게 생긴 슬로로리스는 사실 침과 앞발 안쪽에 독을 갖고 있어요. /위키피디아
일본에서 운영 중인 이색 동물 카페 가운데 60%는 국제 거래가 금지된 보호종을 키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 게 '슬로로리스(Slow Loris)'였죠. 왕방울처럼 동글동글하고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가진 이 동물은 원숭이 무리인 영장류예요.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열대 우림에 살고 있죠. 로리스는 네덜란드말로 '어릿광대'라는 뜻이래요. 오랜 옛날 동남아시아까지 배를 가지고 왔던 네덜란드 사람들이 나무 위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이 녀석들을 보고 '느림보 어릿광대' 같다며 이런 이름을 붙였대요.
원숭이라고는 하는데 어찌 보면 나무늘보나 너구리를 더 닮은 것 같아요. 원숭이 중에서 이처럼 진화가 덜 된 무리는 원시적인 원숭이라는 뜻의 원원류(原猿類)라고 해요.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유명한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도 원원류에 속하죠. 반면 고릴라나 침팬지 같은 유인원, 일본원숭이 등 진화한 원숭이는 진원류(眞猿類)라고 부르죠.
슬로로리스는 깜찍한 생김새와 잘 어울리지 않는 섬뜩한 특징이 있어요. 바로 원숭이 중에서 유일하게 독이 있다는 거죠. 침에도 독 성분이 있고, 앞발 안쪽에도 독을 흘려 보내는 분비샘이 있는데요. 위협을 느끼면 분비샘을 핥아서 침 속의 독과 분비샘의 독을 섞어서 독성을 두 배로 높인대요. 실제로 작은 포유동물이나 곤충 등은 슬로로리스에게 물리면 바로 죽을 수 있고, 심지어 사람이 물렸다 목숨을 잃은 사례도 있대요.
새끼를 키우는 암컷 슬로로리스는 자신의 혀로 분비샘을 핥은 다음 새끼 털을 다듬어주는데요. 이는 방어 능력이 부족한 새끼도 독성 물질을 품고 있다는 걸 과시해 천적들이 함부로 물어가지 못하게 해주는 거죠. 슬로로리스의 얼굴을 보면 동글동글한 눈 주위를 감싼 물방울무늬가 있어요. 이런 털 무늬는 슬로로리스의 얼굴을 더 귀엽게 보이게 하는데요. 그런데 이 독특한 얼굴 무늬는 천적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역할도 한다고 해요. 흑백 털 무늬를 한 스컹크나 다채로운 색깔을 가진 중남미의 독개구리, 선명한 빨간색을 한 무당벌레 등은 화려한 색깔로 천적들에게 자신에게 무기가 있다는 걸 알리며 접근을 막는대요. 이를 경계색이라고 해요. 슬로로리스의 앙증맞은 얼굴 무늬도 이런 경계색 역할을 한다는 거죠.
슬로로리스는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면서 잡식성이랍니다. 즐겨 먹는 먹이 중에는 꽃꿀과 나무 열매도 있는데요. 꿀을 마시러 이 꽃 저 꽃 다니면서 자연스레 가루받이 역할을 하고요. 또 배설물에 열매 씨가 섞여 나오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식물이 널리 퍼지도록 돕기도 하죠. 슬로로리스는 열대 숲 생태계에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귀여운 생김새 때문에 이색적인 애완동물로 키우려는 사람이 적지 않아 밀렵꾼에게 산 채로 잡혀가는 등 수난이 끊이지 않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