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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요한복음(48)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말 씀 : 요 한 복 음 14장 4절 - 14절 (신약성경 p.171)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아멘!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까지의 말씀을 “예수님의 다락방 강화” 라고 말합니다.
다락방 강화는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락방 강화는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말씀, 고별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복음서, 특히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산상 설교말씀과 함께 유명한 가르침입니다.
오늘 본문 앞장인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의 세족식과 성만찬이 나옵니다.
세족식과 성만찬 예식을 마친 후, 마귀의 유혹에 넘어진 배반자 가룟 유다가 나간 후에,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말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아멘!
제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될 것을, 간절히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을 포함한 요한복음 14장의 너무나 귀한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둔 상황에서 제자들이 근심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곧 십자가를 지실 예수님은 오히려 담담하신데, 제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왜 제자들이 더 근심했을까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가 영광이라는 것을 아셨지만,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이 지시고 죽으실 십자가의 은혜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는 것에 대해서 근심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두려워하고, 근심하는 제자들의 마음의 상태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지금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절 말씀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근심은 오늘날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마음의 상태입니다.
4년 째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많은 분들이 염려와 근심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대화와 교제의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따분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아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여러 근심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왜 근심하지 않아도 되는지” 에,
대해서 요한복음 14장 2절부터 4절까지,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아멘! - 예수님이 떠나가시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염려가,
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할 집을,
마련하고, 다시 와서 데리고 가서 함께 있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천국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이미지를 통해 설명하신 것입니다. 천국을 아버지 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집에는 거할 많은 방들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대해 이중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가는 곳도 천국입니다. 미래의 천국입니다. 또한 천국은 지금 현재 누리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백성이 되었으므로 천국 백성이 되었으며,
현재 이미 임한 천국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 전에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은 아닙니다. 미래의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죽은 후,
또는 다시 오마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의 재림 때에 부활의 몸을 입고 참여하게 됩니다.
이 구원의 소망은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근심하거나 낙심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집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기쁨의 삶의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은 제대로 잘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제자 중에서도 특히 도마가 손을 들고 주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주님, 질문이 있습니다.”
도마는 의심 많은 제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의심이 많다기 보다는 솔직한 제자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솔직한 것은, 흠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서 보면,
솔직한 사람들의 질문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을 봅니다.
니고데모가 솔직히 질문했을 때, 사람들이 거듭남의 진리를 알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솔직히 생수에 대한 질문 - 예수님이 목마르지 않은 물에 대해 말씀하자,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자가 예배의 장소에 관한 질문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생수가,
되신다는 것과 예배는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적 예배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도마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 길에 대해 질문하지를 않았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는 놀라운 말씀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거나 기도할 때에, 솔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잘 믿어지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음을 말씀드리고 믿음을 구하고, 깨달아 지지 않으면,
성령의 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솔직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4장 5절의 도마의 질문을 보겠습니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죽음과 부활과 승천하실 것과 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가시는 길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은 제자 도마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왜 죽으셔야 했는지,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더더구나 죽음 이후에 있을 일들에 대해서도 더더욱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죽음 이후의 세계, 주의 재림과 천국에 대해 잘 모르며,
우리 인간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의 질문을 받으신 후, 예수님 자신이 누구신지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오늘 본문 6절, 7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아멘!
인간이 타락한 이후, 인간에게 최대의 숙제는 하나님께 가는 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죄악에 빠진 우리 인간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갈 길이, 완전 막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그 길을 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찢어진 사건이,
이것을 증거합니다.(히 10:19-20) 히브리서 기자는 이 길은 인간이 하나님께 이르는,
새로운 살 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다른 길은 있을 수도 없고, 실제로도 없습니다. 정말로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는 다른 진리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진리이십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 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죄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이 모든 말씀이 독선이 되지 않는 이유는, 이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알기 쉬운 비유를 이 진리를 설명했습니다. “불난 빌딩에 갇힌 사람들에게,
소방대원들이 ‘이 문으로만’ 나가라고 명령할 때, 누가 그 명령이 편협하다고, 독선적이라고,
비판하겠습니까? 어떻게 다른 출구를 찾는 사람들을 미워하느냐고 따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의 문이요,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이것은 결코 편협한 주장이 아닙니다. 독선적 주장이 아닙니다.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에서 보면, 사도 베드로가 이렇게 선포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 이것은 결코 편협한 주장, 독선적 주장이 아닙니다. 진리입니다.
사도 바울도 비슷한 주장을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 5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아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고 있고, 영접하신 분들이지만,
다시 한 번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심을 고백하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신가를 밝혀주는 예수님의 대담한 선언이,
두 개 나옵니다. 제가 대담한 선언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선언은 예수님 외에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선언입니다.
하나는, 방금 살펴본 것처럼, 도마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빌립의 요구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너희들이,
안다.” 고 말씀하시자, 솔직한 도마가 물었습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다시 말해 도마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그 길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유명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6절, 7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아멘!
이 예수님의 주장은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할 수 없는 대담한 주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이 진리 the Truth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영적으로 죽은 인간을 살리실 수 있는 생명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을 본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역사상 이런 담대한 주장을 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도 없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대담한 선언은, 빌립의 요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 하시고,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아버지를 알았을 것’ 이라고 하면서,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다.’ 라고,
말씀하시자 빌립이 이 요구를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4장 8절 말씀입니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아멘!
빌립의 요구에 예수님은 더 담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4장 9절 - 11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너희에게 이르는 말을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아멘!
세상에 예수님처럼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 라고,
주장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며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대담한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없는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이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신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기 위해 오신 구원자 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말씀하시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누릴,
특권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을 믿는,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특권 세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누릴 특권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아버지’ 라는 단어 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열두 번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가 있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로마서 8장 14절 - 17절에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특권에 대해 말씀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아멘!
세상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된 특권보다 더 좋은 특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으신 분, 가장 사랑이 많으신 분, 가장 공의로우신 분, 가장 능력이 많으신,
분이신데,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됐으니, 최고의 트권입니다.
두 번째 특권은,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 믿는 자들이 누리는 특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특권’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 3절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은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으로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내가 지금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마련하러,
가는데, 다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도 나 있는 곳에 있게 하겠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앞에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천국에 대한 비유이면서도,
우리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면, 그리스도와 함께 얼마나 복된 삶을 영원히,
살게 될 것인지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는 핍박과 환난을,
당하고 정처 없이 살아야 하는 경우도 많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주님께서 마련하신,
집에서 주님과 함께 살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가난하고 고통을 겪으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통해 한 없는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습니다.
세 번째 특징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은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도 하고, 기도 응답을 받는 특권’ 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4장 12절 - 14절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아멘!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인지 모릅니다.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같이 하도록,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일을 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뿐 만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응답의 약속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런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말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고, 마지막에 꼬리표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고서 우리의 기도를 마무리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 15절 말씀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여기서 사도 요한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곧 예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기도 응답에 관한 약속보다 더 분명한 약속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기만 한다면 담대히 구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할 일을 많이 찾아 감사하시고, 무엇보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어 누리는 축복들과 특권들로 인해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음에 감사하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인해 근심하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고,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기도 응답을 받게 될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