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나 비치에는 바지를 걷어올리고 맨발로 걸을 만한 모래사장이 별로 없다. 히피들의 테크노 파티와 수요일 벼룩시장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이 안주나를 찾지만, 해변 자체는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고아주의 해변들은 로컬버스로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오토바이를 대여해서 가고싶은 어느 해변이든 이동하곤 했다. 커플이나 동성끼리 오토바이를 나눠타고 달리는 모습은 보기만해도 자유분방해 보였다. 혼자인데다 오토바이도 탈 줄 모르는 나는 그냥 로컬 버스를 타는 수 밖에.
안주나 옆에는 바가비치가 있었는데, 걷기에는 조금 먼 거리였다. 그렇다고 안주나에서 바가비치까지 한 번에 이동하는 버스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가면 좋을까 궁리하며 버스역을 서성이고 있으니, 허름한 차림새의 인도 남자가 오토바이 택시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바가비치는 long way 라며 50루삐의 택시비를 요구했다. 너무 비싼데, 30루삐에 해주면 안돼? 라고 묻자, 좋아. 타. 라며 오토바이 드라이버는 고개를 까닥했다.
안주나에서 바가비치까지는 15분쯤 걸렸다. 그가 정직한 사람 같아서 3시간 후에 다시 데리러 올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나는 다시 안주나에 돌아갈 거라고. 그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약속하고는 돌아갔다.
안주나에 비해 바가비치는 사람으로 넘치는 곳이었다. 아주 긴 해안선을 따라 수많은 레스토랑과 리조트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앞엔 sun bed들이 늘어서 있었다. 신발을 벗고 두 시간쯤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모래는 고왔고, 물결이 발바닥을 간질였다.
서양인 노부부는 수영복 차림으로 나란히 손을 잡고 걸었고, 인도 남자들은 무리지어 걸으며 일광욕하는 서양여자들의 하얀 엉덩이를 흘끔거렸다. 인도 남자들은 하얀 피부의 그녀들에게 열광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흘끔거림이 너무 눈에 도드라져서 나는 피식 웃었다. 인도 여자들은 절대 수영복을 입지 않았다. 사리나 펀자비를 입은 채로 종아리를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파도에 옷이 젖어도 결코 바지를 걷어 올리지 않았다. 그들 눈엔 비키니 차림의 서영여자들이 얼마나 신기할까.
고아주는 인도에 속한 곳이지만, 이곳의 해변들은 서양인들의 전유물인 것만 같았다. 오히려 이곳에 놀러오는 인도인들이 이방인 같았다. 서양인들은 인도인들의 시선 따위에는 아랑곳 없이, 비키니 차림으로 또는 토플리스로 일광욕을 즐기며 책을 읽었고, 인도 남자들은 무리지어 해변을 걸으며 그런 그들을 힐끔거렸다.
오토바이 드라이버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서, 처음 바가비치에 그가 내려주었던 곳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을 때, 오토바이를 탄 두 인도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그들은 각자의 오토바이에 앉아 내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고아에 온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등등을 묻더니, 나중에는 혼자 여행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혼자 여행한다고 말하면, 치근덕댈 것 같아서 남자 일행이 있고, 지금 나를 데리러 오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내 말에 웃으며, 그럼 내 일행이 올 때까지 같이 기다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테크노댄스 파티에 가 본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말하자, 기회가 된다면 같이 가자며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기도 했다.
시간이 다 되었는데, 오토바이 드라이버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불안해져서 자꾸 손목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오토바이 드라이버가 오지 않는다면, 이 인도남자들은 계속 나를 귀찮게 할 것이다. 같이 테크노댄스 파티에 가자고 조를 것도 불보듯 뻔하다.
그때, 저쪽에서 오토바이 드라이버가 덜덜 거리는 키네틱을 몰고 오는게 보였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 일행이 후줄근한 중년의 인도인 이라는 사실에 두 인도 남자는 적이 놀란 눈치였다.
나는 오토바이 드라이버의 키네틱에 올라타며, 그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내 절친한 친구라구!
첫댓글 ㅎㅎㅎ^^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