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공부를 하면서, 문예미학의 뒷받침이 되는 근대 철학도 공부하겠습니다.
최대로 간단하게, 쉽게 쓰려고 하니 한 번씩 읽어보시면 근대문학을 공부할 때 도움이 됩니다.
1. 니체
서구 사회를 지탱해 온 두 개의 기둥은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이다. 니체는 두 기둥을 부정하는데서 시작하였다.
서구의 전통 철학이라는 플라톤 철학은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존재론’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은 불멸의 원리를 ‘이데아’라고 하고, ‘진리’라고도 하며 세계의 본질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절대 존재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데아 세계(절대 존재)의 그림자이므로 수시로 변화를 하고, 가치가 없다. 진리 즉 불멸의 존재를 추구하는 것이 플라톤 철학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본질(존재)과 물질(변환이 되는)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앞에서 한강 뛰어들기와 감나무로 예를 들었다.) 존재는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거나 사유함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고 존재 자체로 생생하게 존재한다. 존재(본질-이데아)만 깊이 파고들면 현실의 여러 물질도 알 수 있다. (그림자이므로- 앞에서 자연의 법칙을 알면 자연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일자(一者)로서 존재는(眞理)는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전통 철학은 천상의 존재를 실체(實體-眞理)로 파악하고 현실을 가상으로 여겼다. 실체는 불변하는 불가분의 존재로서 순수 관념이나 개념으로 정의하여 설정한 존재로서 사유의 대상이었다. (이성으로 파악이란, 경험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머리를 싸매고 논리적으로 틀리지 않는 법칙에 따라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서 알아내는 것을 말한다. 철학에서는 관념론이라고 한다.)
니체는 이와 같은 전통적인 존재론을 부정하였다. 존재에는 시간이 들어간다고 주장하였다.(진리에는 만고불변이므로 시간이 들어가지 않느다.) 시간이 들어가는 니체 이론을 ‘영원회귀론’이라고 하였다. 풀이를 하자면 ‘똑 같은 것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영원히 그대로 되돌아 오는 것이 실상이다.’ 라고 하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똑 같은 형태로 무한히 반복하듯이 변하지 않은 형태로 영원히 반복한다. 고 하였다.(회귀를 반복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조금 더 빠를 것입니다.) 그때 서양에서 주장하던 진보사상과는 어긋나는 논리이다.(세상은 이데아 세계를 지향함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앞으로는 더 좋은 세상이 온다.고 하였다) 당시의 서양철학을 지배하던 헤겔의 정과 반이 타협하여 더 좋은 결과물인 합으로 나아간다는 변증법 이론도 부정하는 것이다. 미래에는 더 좋은 세상인 천국에 간다는 기독교 사상도 부정하는 주장이다. 왜냐면 되돌아오는 것은 같은 더 좋아진 모습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같은 모습이 반복하여 되돌아오기 때문이다.(시지프스 신화 이야기와 같다.)
이성으로 파악하는 존재는 절대 존재인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이성이란 의식에서 생기는 것이다. 의식은 우리의 경험과 지식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의식으로서는 절대자를(존재의 원형) 파악할 수 없다. 주관일 뿐이다. 존재자를 파악하려면 의식이나 사유에 의하는 것이 아니고 절대자가 존재할 때만이 가능하다. (머리를 짜내서 만드는 것은 존재가 아니고 실재로 존재(있다,라고 하였다,)할 때만이 존재이다.)
*의식이 무엇이냐 도 현대 서양철학의 명제이다.
의식이란 사람이 경험을 통하여 얻는 것이므로, 경험은 절대로 불변의 진리가 될 수 없다.
니체는 ‘영원회귀론’을 말하였다. 영원회귀론이 니체 철학의 핵심이다. 니체는 영원회귀론을 철학적 사유로서 말한 것이 아니고 직감적이고, 문학적으로 말하였기 때문에 정확히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뜻하는지는 불분명하다. 회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았다.
결국 회귀하는 것은 우리 삶이 똑 같은 형태로 반복한다, 라는 허무주의 사상이라고도 말한다. 밀란 쿤테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며 인생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한다.
(인생의 반복을 보자. 인생은 슬픔, 분노, 비극 등등 온갖 좋지 않은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것이 변하지 않고 되돌아오는(회귀)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것도 영원히 회귀한다고 하였다. 미래에 변하지 않는 천국이나. 좋은 세상이란 것은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니체 철학을 허무주의 또는 회의주의라고 말한다.)
니체는 영원히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가 부정할 수 없다면 그저 기쁘게 ‘한 번 더’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까뮈의 시지프스 신화는 인간은 돌을 산 꼭대기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돌이 산위에 올라가면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러면 인간은 다시 돌을 밀어 올리고------, 끝없이 반복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이것을 형벌로 보았다면 니체와 까뮈는 벌이 아닌 축복으로 보자고 주장한다.)
철학의 입장이 아니고 문학의 입장에서 니체를 보게 되면 19세기 후반까지 서양을 지배하였던 모든 사상과 종교를 부정하였다. 니체의 부정을 현대 철학자들이 계승하여 현대 철학의 세계를 펼쳤다는 것이다.
서구의 철학은 절대 불변의 진리(존재)에서 시작하였다. 니체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의 사유가 만들어 낸 허상이라고 하였다. 존재는 불변이 아니고 시간 속에서 생성하는 것이(이것은 삶이고 인생이다.) 존재라고 하였다. 영원불멸을 찾는 서구 존재론을 부정하고 생성과 창조에서 존재를 찾는 새로운 철학의 단초를 열었다. 니체의 주장을 따른 철학자가 베르그송과 화이트헤드, 하이데거, 들뢰즈, 데리다 등이다.
니체의 철학은 해석에서 모호한 점이 많다. 그러나 서양 사람이 금과옥조로 받들던 이성을 부정하고 감성을 더 우위에 두었다. 20세기를 접어들면서 서구 문명에 대한 회의가 일어났을 때 철학자들이 니체를 허무주의 철학으로 많이 인용함으로 유명해졌다.
(니체는 인간 유형도 아폴론적 인간(이성적 인간)과 디오니소스적 인간(감성적 인간)으로 나누고, 디오니소스 형을 더 높이 평가하였다. 요즘 지능지수 대신에 감성 지수를 따지는 것도 -----.)
고대 철학이 존재를 중요시하였다면 근, 현대 철학은 운동성을 강조한다. 그 시작이 니체부터 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