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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詩人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장미 가시에 찔려 죽다니...' 릴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얼핏 듣기에 낭만적이다. 가문의 문장이 양각된 아래에 적혀 있는 그의 비문 또한 낭만적이다. 릴케는 죽기 1년 전인 1925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듯이 유언장을 작성한다. 다음은 그의 유언장에 자신의 묘비를 위해 직접 지어 놓은 비문이다.
Rose, 장미, 오, 순수한 모순, 그렇게
릴케의 묘비
묘비명만이 아니고 ,릴케는 자신의 시에 수도 없을 만큼 장미를 등장시키고 있다. 또한 장미는 꽃잎의 부드러움만이 영상위에 남는다.
실제로 장미를 심고 가꾸는데도 많은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장미를 가꾸고, 장미 향기에 취해 사색하고, 종국엔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
1921년 부터 릴케는 스위스 론江 계곡의'뮈조트 성'이라는 13세기에 지어진 조그만 古城에 작업실을 갖고 장미를 가꾸며 시작에 몰두하곤 했다. 그는 이 뮈조트 성에서 '두에노 비가' '오르페우스에의 소네트' 등 그의 대표작들을 많이 완성하게 된다.
이 뮈조트 성에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를 비롯하여 많은 릴케의 친구들이 방문하곤 했는데, 1926년 9월, 친구인 한 프랑스 詩人의 소개로 미모의 코카서스 출신의 이집트 여인 '니메 엘루이' 가 그녀의 친구와 함께 이 뮈조트 성을 방문한다. 릴케는 이 여인들에게 주려고 뜰에 있는 손수 가꾼 장미 몇송이를 꺾었다. 그런데 이때 서두르다가 그만 가시에 두 손가락이 찔리고 만다. 이 상처가 곪아서 그는 곧 한 쪽 팔을 쓸 수 없게 되었고 이어서 다른 쪽 팔도 마비되는 불상사를 당한다. 릴케는 장미 가시에 찔리면서 가시에 묻어 있던 파상풍균에 감염 되었던 것이다. 파상풍 균의 특징은, 릴케처럼 근육이 마비되어 버린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이어 심하고 아픈것이 감염되어 오른손을 쓰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붕대를 매긴 했지만 두 손이 열흘 동안이나 쑤시고 아팠다. 또 2주일이나 아주 쇠약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릴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의사의 진찰을 미루다가 11월 말에야 발몽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진단 결과 릴케의 병명은 백혈병으로 저향력이 약해져 있던 릴케였기에 아마도 장미 가시에 찔린 정도의 상처로도 파상풍이 발병한 것 같다.
마지막 가는 길에도 장미는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관앞에는 마치 눈속에서 피어나듯 꽃다발속에 장미꽃들이 피어 있었다고 키펜바르그가 쓴 릴케의 전기는 전한다.
'인생은 멋진 것이다' Das Leben ist eine Herrlicbkeit'
Filippa Giordano / 지난날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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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으로 낭만의 시조답군요. 릴케는 장미조사입니다. 장미종을 세운 선종의 조사답게 느껴집니다. 장미조사 릴케에게는 시가 종교요 선이었던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