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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살 것인가
열왕기상 18:21은 결정에 관한 중요한 순간을 전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바알이라는 거짓 우상 사이에서 벌어진 최후 결전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을 구원한 살아계신 하나님과, 너무 매혹적이어서 마음을 빼앗긴 거짓 우상 사이에 서 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바알 중에 하나를 최종 선택하라고 외친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스라엘 백성은 아예 선택할 능력이 없거나 주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물러나 앉아 자신의 선택으로 손해볼까봐 양다리를 걸치고 계속 결정을 미룬다. 21세기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다를까? 여러분은 어떤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최종 선택과, 필요할 때 빠져나올 여지가 있는 선택 중 어느 쪽에 더 끌리는가? 완전한 헌신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자신에게서 발견한 적 없는가? 행사 참석여부를 묻는 질문에 ‘네’ 또는 ‘아니오’ 보다 ‘아마도’라고 응답하지는 않는가? 어느 자리에 있든 스마트폰을 수시로 확인하며 마음을 다른 곳 두고 있지 않나? 심지어 회의 중에도 항상 곁에 두고 들여다보지 않는가? 주일 예배 후에 교우들과 대화하면서 집중하는가? 아니면 그 사람 어깨 너머로 더 즐겁게 대화할 만한 상대를 찾는가?
그렇다면, 여러분도 ‘결정 보류 우상’을 섬기고 있는지 모른다.
학생들은 대학 입학 전 무엇을 전공할지를 놓고 수년 간 고민한다. 사람들은 환불이 보장되지 않는 물건은 구입하기를 꺼린다. 이제 결혼 전에 몇 년간 연애하는 일은 흔하다. 결혼하기로 결정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우리는 성 문제에서 영적 문제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결정을 보류한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선택의 심리학」(웅진지식하우스 역간)에서 왜 우리가 어느 하나에 헌신하기 어려워하는지, 왜 그렇게 결정을 유보하려 드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우리가 선택하는 문화에 젖어 산다고 말한다. 우리는 항상 옵션을 요구한다. 더 많은 옵션이 주어지면 더 자유로워지리라 상상한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들은 무한한 자유가 좋은 옵션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배리 슈워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무한 선택의 자유가 우리의 행복지수를 높이지 못한다고 말한다. 감당 못할 정도로 넘쳐나는 옵션은 물건 하나, 사람 한 명에게 충실할 때 느끼는 희열을 점점 더 잊도록 만든다. 만약 하나를 선택해 전념하더라도, 사회는 곧 우리의 선택에 불만을 갖게 만들어버린다.
최근 한 커피전문점에서 경험한 일이다. 내 앞의 손님은 카페인 없는 특대형 사이즈 커피에 무설탕 바닐라 시럽을 넣고 무지방 우유로 만든 라떼를 주문했다. 거기에 거품을 추가로 넣고 우유는 60도로 데워달라고 했다. 뒤에서 주문 내용을 듣던 나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아마 내 커피도 60도로 데우면 좋을지 몰라. 음…그런데 아마도 커피에 들어가는 우유를 이렇게 뜨겁게 데워달라고 하면 주문할 줄도 모르는 얼간이처럼 보이면 어쩌지.’ 앞의 손님 때문에 갑자기 내가 골랐던 커피에 불만이 생겼다. 그의 커피가 탐났다. 내가 어떤 커피를 마시고 싶은지 확신이 안 섰다.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내가 늘 마시던 커피? 앞 손님의 커피? 확실하게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진정 선택의 자유인가 아니면 노예인가?
커피전문점에서 겪는 가지각색의 사소한 선택을 더 큰 문제에 적용해보자. 어떤 직장을 다닐 것인가, 어떤 학교에서 공부할 것인가, 어디서 살 것인가,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그리고 누구를 경배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다. 대안이 많을수록 우리는 선택하기가 더 두려워지고, 점점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선택의 노예가 돼가는 것이다. 잘못 선택하는 것도 싫고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도 싫다. 선택이 두려운 나머지 선택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우상을 섬기게 된다. 거짓 우상.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바알 중 하나, 그의 이름은 ‘결정 보류’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노예 신분에서 놀라운 방법으로 기적같이 매번 구해내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몇 년 동안 직접 경험했다. 애굽의 우상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대적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였다.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이 섬겼던 우상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체험에도 불구하고 여기 열왕기상 18장에서 이스라엘은 곧 쓰러져 넘어질 또 다른 우상, 바알 앞에 엎드린다.
우리는 이 모습에 혐오감을 느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가? 그리스도의 사망과 부활은 죄의 노예였던 우리를 놀라운 방법으로 기적같이 구원했다.
그런데도 우리 대다수는 그리스도가 이긴 바로 그 우상을 섬긴다. 그 우상이 패배한 거짓 우상인 줄 알면서도, 거짓 우상에 매달리면 사망에 이를 뿐인 줄 알면서도 헤어 나오지 못한다.
우리는 ‘결정 보류’라는 우상을 섬긴다. 이 거짓 우상은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결정 보류 우상은 우리에게 사람들과 너무 깊은 관계를 맺지 말라고 속삭인다. 그렇게 우리의 인간관계를 끝장내버린다. 결정 보류 우상은 너 자신을 위해 주말을 사용하라고 속삭인다. 그렇게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섬기지 못하게 만든다. 결정 보류 우상은 지금은 경제가 불확실하니 언제 돈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속삭인다. 그렇게 나눔을 원천봉쇄한다. 결정 보류 우상은 너무 영적으로 보이지 말라고 속삭인다.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즐거움을 앗아간다.
무엇보다 결정 보류 우상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우리가 그를 섬기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전혀 우상이 아닌 것처럼 실체를 숨긴다.
실제로 결정 보류 우상은 모든 우상과 모든 책임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결정 보류 우상은 말한다. “선택할 가능성을 열어 놓아라. 나를 섬기면 다른 어떤 것, 어느 누구를 섬기지 않아도 된다. 한 곳에 매여 잡힐 필요 없다. 네게 완전한 자유를 주겠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마디도 대답 안 했으니 우상을 섬기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왕상 18:21).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바알 중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은 선택한 것이다. 행동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들을 구원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사실상 등을 돌린 것이다. 그들은 결정 보류 우상을 섬김으로써 영적 간음을 저질렀다. 일부 현대 성경은 이스라엘이 두 가지 다른 선택 사이에서 “망설였다”고 번역한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문의 뜻은 “절뚝거리며 나아가지 못하다”에 더 가깝다. 이스라엘은 자신이 내린 결정 때문에 불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잘못된 선택을 회복시키는 사랑의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사랑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를 결정을 미루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택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도록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화 <히트>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인물처럼 창조하지 않으셨다. 영화 속에서 그가 연기한 인물은 ‘30초 안에 털고 일어설 수 없는 것은 가지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녔고 이 때문에 가정조차 가지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헌신하도록 창조하셨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물론 결정을 내릴 때는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한다.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읽고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에게 조언도 구해야 한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심사숙고해서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잠시 멈춤이 꾸물거림이 되고, 결국은 기다림이 더 이상 현명하지 않은 때가 온다. 선택하지 않으면 우상 숭배가 되는 순간이 온다. 이런 순간은 우리가 내릴 결정을 이미 예정하시고, 흐트러진 것들을 다시 추슬러 우리의 유익과 자신의 영광을 위해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충분히 신뢰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
지혜롭게 행동하되, 하나님의 완전한 권능과 선하심 안에 거하라. 그리고 선택하라.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정하라. 전심을 다해 오직 한 마음을 품으라.
야고보 1:6-8은 이렇게 말씀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이런 사람은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권능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결정을 바로잡아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죽이자는 결정조차도 우리의 영원한 유익(행 4:27-28)으로 회복시킨 분이다. 우리의 선택이 아무리 형편없을지라도 그 분이 결국 선을 이루실 것임을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는가?
선택 보류 우상을 거부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선택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에베소서 1:4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한다. 고린도전서 1:27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라고 한다. 데살로니가후서 2:13에는 “하나님이…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는 말씀이 있다.
만약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처럼 결정 보류를 좋아한다면 우리가 기대할 것은 영원한 기다림의 고통 외에는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결정 보류 우상에 사로잡혀 아직도 밀고 당기는 부분이 내 삶에는 없는가? 아예 선택하지 않기로 거부한 부분은 없나?
특정한 관계에 매이는 것을, 심지어 결혼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나? 일터에서 전심전력으로 매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컴퓨터 화면 한 구석에 페이스북을 열어놓고 누군가 찾아와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더 나은 것, 더 나은 사람을 찾으려고 쉴 새 없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도 이렇게 대접하는지 모른다. 온전한 헌신을 거부하면서 결정을 자꾸 미루는 것이다. 엘리야가 열왕기상에서 우리를 향해 외친다. “선택하라!” 결정에 필요한 하나님에 대한 모든 정보는 이미 가지고 있다. 이처럼 헌신하지 않고, 위험을 회피하고, 생각이 흔들리고, 하나님을 망각한 미성숙 상태에는 이미 머물 만큼 머물렀다. 엘리야 말을 좀 더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아마도 “나이 값 좀 해라”가 아닐까 싶다.
나는 이 글을 눈물로 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난 20년간의 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번번이 결정 보류 우상을 경배하고 섬기곤 했다. 그리고 나와 다를 바 없이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도 많이 봤다. 결혼을 예로 들자면, 그리스도인 중에도 결혼에 헌신하기를 두려워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결정 보류 우상은 결혼식을 싫어한다. 결혼식 때 우리가 “앞으로는 다른 누구도 염두에 두지 않겠다”고 약속함으써 가능한 모든 대안을 폐기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결정 보류 우상은 잔인한 보복의 신이다. 그는 우리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다. 결정 보류 우상은 정말 악의적이어서, 우리가 누군가와 너무 가까워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동시에 누구와도 지나치게 멀어지지 않도록 한다. 관계가 소원해지면 그 사람이 더 이상 선택 범위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좌절감만 주고 지치게 만드는 혼돈스러운 상태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 우리는 밀려왔다가 다시 가버리는 해변의 파도처럼 결코 어느 한 쪽에도 헌신하지 못한다. 우리는 마치 잔뜩 굶주린 상태에서 양껏 먹을 수 있는 뷔페에 갔는데도, 고기를 먹을지 생선을 먹을지 망설이고 서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또한 결정 보류 우상은 우리를 속인다. 그는 우리가 결정을 보류하면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언제든 가질 수 있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누구도, 어떤 것도 얻지 못한다.
예수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라고 했다. 어느 순간에든 우리는 누구를 따를지 선택해야만 한다. 우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다. 결정 보류 우상을 택하는 순간, 우리는 내 생명을 구하려고 모든 옵션을 스스로 버린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다. 자신의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놔두는 것보다 어떻게 더 많이 버릴 수 있을까? 이보다 자신의 선택 가능성을 좁게 만들고 포기하는 일은 없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신 30:19-20).
모든 것이 무한정 가능한 분이셨지만 특정한 때, 특정한 장소, 특정한 백성을 택함으로 스스로를 제한하신 하나님을 선택하라. 다른 모든 대안을 버리고 한 신부만을 택하신 하나님을 선택하라. 승리할 때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기로 작정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을 선택하라. 좁은 길을 선택하라. 결정 보류라는 우상은 이제 그만 섬기라.
배리 쿠퍼(Barry Cooper)는 작가이자 강연가다. 성경공부교재 출판사 “크리스채너티 익스플로러 미니스트리즈”의 교재 개발 담당 디렉터이며, 런던에서 트리니티웨스트교회를 개척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