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지키지 못한 약속
“뭐해?”
“오빠! 이거 봐! 여기가 어디야?”
“카리브해라고 써 있잖아!”
“그게 어디 있는데? 너무 좋다. 오빠! 여기서 멀어? 우리도 갈 수 있어?”
“야! 바보야! 우리는 죽어도 못가는 곳이야!”
“그래? 오빠도 못가는 데가 있어? 같이 가보고 싶은데….”
동생은 보리밭 모퉁이에서 찢어진 잡지책 한 장에 칼라로 인쇄된 사진을 보고 말없이 쳐다보더니 곱게 접어서 주머니 속에 넣는다. 나는 나를 하늘처럼 믿는 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괜히 섭섭하게 한 것 같아 다시 말을 했다.
“그곳에 지금은 못가지만 언젠가 오빠가 너가 어른이 되면 함께 갈 테니 이제 집으로 가자.”
순간 동생의 얼굴이 해맑게 밝아지면서 신이 나서 말했다.
“오빠! 정말이야! 그럼 우리 약속해. 자 손을 걸어. 빨리!”
나와 동생은 새끼손가락으로 약속을 했다. 동생은 오빠와 천국에라도 갈듯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폴짝폴짝 뛰면서 푸른 보리밭 사이 길로 앞서 달려 나갔다. 나는 동생이 수평선 너머 남녘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넘실대는 청보리 너울 위로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속으로 뛰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런 느낌이 처음은 아니지만 동생을 만날 때마다 친동생은 아니지만 영혼에 각인된 아마 전생에 어디선가 인연이 있었던 것처럼 정겨움을 느끼며 한 동안 바라보았다. 그때 어디선가 꿈결처럼 보리피리가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50여년이 지났다. 동생은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데 난 아직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잊었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때 그 피리소리가 아직도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 그곳으로 찾아가서 청보리를 바라보며「보리피리」라는 시를 썼다.
실바람으로
흐르는
피리소리 들으면
청보리 넘실대는
아지랑이 너울 따라
흩날리는 소녀의 머릿결
초록 물결 사이사이
햇살처럼 화사한
소녀의 해맑은 미소
푸르른 언덕에 누워
파아란 하늘 바라보며
그리던 희망의 수채화
청보리 피리소리
그리움으로 흐르면
연둣빛 소녀가 미소 짓는다
-「보리피리」전문
첫댓글 그 순수한 시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네요.
안타까운 현실이 더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