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동 주공아파트와 함께 서울 강남 재건축 ‘빅3’로 꼽히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잠실동 주공5단지. 한동안 아파트 가격 동향의 풍향계로 통하며 서울지역 집값을 호령했던 곳이다. 은마는 2003년까지 서울 주택시장의 시세를 주도했고, 잠실 주공5단지는 그 이후 은마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이후 손발 묶인 ‘잠룡’ (潛龍·아직 하늘에 오르지 않고 물 속에 숨어 있는 용)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임대주택의무건설, 개발부담금 부과, 분양가상한제 적용 등의 ‘규제 폭탄’이 이곳에 집중 투하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각종 재건축 규제가 모두 적용돼 현재 재건축 사업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빨 빠진 ‘종이 호랑이’ 은마아파트
강남 재건축 ‘빅3’ 중 맏형격인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14층 28개동 4424가구 규모로 대단지다. 1979년 12월 입주 이후 일명 ‘교육 특구 1번지’로 불리며 높은 인기를 구가해왔다.
가구별 크기는 102㎡형(31평형)과 112㎡형(34평형)으로 두 가지 타입이다. 최초 분양가는 102㎡형 1800여만원, 112㎡형 2000여만원 선. 현재 시세를 기준으로 한 평 가격에도 못미친다.
재건축 추진 ‘답보상태’
재건축사업 추진은 2003년 12월 재건축추진위원회 설립 승인 이후 답보 상태다. 사실상 재건축의 첫 단추에 해당하는 예비안전 진단 단계에서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는 2004년말까지 세 번에 걸쳐 예비안전 진단 평가를 강남구에 신청했지만 모두 거절 당했다. 2003년에는 일부 아파트 주민들이 중심이 돼 강남구청을 상대로 예비 안전진단 반려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2005년 12월20일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수도 누수나 주차시설 부족 등 주민생활 불편은 인정되지만 보수나 리모델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건축추진위는 여전히 재건축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가 여전히 은마아파트 재건축에 대해 사실상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라 사업추진은 당분간 제자리 걸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서울 강남권의 핵심지역으로 꼽히는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정부 규제로 재건축 사업이 답보
상태다. 사진은 서울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리모델링, 주상복합 건축 등 움직임도
서울시의 용적률 강화 방침으로 재건축 사업성이 크기 떨어지자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재건축 추진을 중단하고 리모델링을 하거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를 대신 지으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용적률이란 대지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의 비율로 재건축의 수익성을 좌우한다.
리모델링은 현재 리모델링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은마아파트 리모델링추진위원회측에서 내놓은 계획은 기존 102㎡형(31평형)을 138㎡형(42평형)으로, 112㎡형(34평형)은 148㎡형(45평형)으로 증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러면 기존 102㎡형의 경우 개정 주택법에 따라 전용면적 기존 30㎡(9평), 분양면적 36㎡형(11평)까지 면적 증가가 가능하다는 게 리모델링 추진위 측의 입장이다. 이러면 조합원 입장에서 추가 부담금은 2억원 안팎으로 주변 132㎡형대 아파트 시세를 감안하면 투자 대비 수익률 측면에서도 리모델링이 재건축보다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리모델링 공사비가 당초 주민들이 예상했던 금액을 웃돌 것으로 예측되자 주민들의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어 현재는 이마저 지지부진한 상태다.
재건축 추진을 중단하고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은 은마아파트 상업지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상업지추진위원회의 계획은 현재 제3종 일반주거지역인 은마아파트를 상업지역으로 용도를 변경해 용적률 800%를 받아 8000가구 규모의 초고층 주상복합으로 짓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그런 일은 선례도 없고 실현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일축해 실현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은 편이다.
용적률 규제로 수익성이 크게 떨어져
설령 재건축 추진을 위한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하더라도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성은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서울시가 지난해 2월 ‘2010 서울시 재건축 기본계획’을 통해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계획 용적률을 210%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은마아파트의 현재 용적률은 197%이다. 이 상황에서 소형평형의무비율제, 용적률 증가분의 25%를 임대아파트로 짓는 개발이익환수제, 기반시설부담금제 등 규제를 적용받아 서울시가 허가한 210%로 재건축을 할 경우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다.
대지지분이 평균 50㎡(15평) 내외로 적어 재건축을 해도 현재보다 가구수를 별로 늘릴 수 없어서다. 이러면 당연히 일반분양은 거의 불가능해지고, 조합원들이 원하는 대로 평형을 늘리기도 어렵게 된다. 이미 안전진단에서 3번이나 탈락한 은마는 현재 용적률이 197%로 서울시가 규정한 210%로는 1~2평 늘리기도 힘든 상황이다.
대치동 은마, 지금 투자해도 되나
전문가들은 그동안 정부가 발표한 재건축 규제를 모두 적용하면 기존 평형과 비슷한 평형을 배정받게 돼 은마아파트의 투자 수익률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데 112㎡형(34평형)을 재건축해도 개발이익환수제를 도입하면 115㎡형(35평형)을 배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1대 1 재건축인 은마아파트가 당장 재건축을 시작해 3년후 112㎡형을 재건축해 115㎡형에 입주한다고 가정해보자.
현재 이 아파트 착수시점 가격(현 시세)은 12억원선이다. 이 아파트의 조합원당 예상 개발비용(추가분담금 가정)은 2억6500만원이다. 대치 우성아파트 등 주변 시세(평당 4000만-4500만원)를 감안해 재건축 후 은마 115㎡형의 시세가 15억80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계산상 투자 수익금은 현 시세(12억원)와 개발비용(2억6500만원)을 제외한 1억1500만원선이다.
여기서 3년간 금융비용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선영 연구원은 “금융비용과 건축비 부담 등을 감안하면 수익이 나지 않는다. 112㎡형의 경우 현재 시세가 ㎡당 1000만원대인데 이는 용적률이 250%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수준이다”고 말했다.
기대감은 여전해, 대기수요 적지 않아
하지만 기대감은 여전히 기대감이 사그라질지 않고 있다. 비록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4000가구가 넘는 대규모인데다 강남권의 핵심 아파트로 입지 여건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선거를 전후로 발표될지 모르는 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정부가 개발이익환수제와 기반시설부담금제를 도입하는 등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지만 세금을 다 내고서라도 ‘남는 장사’일 것이라는 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여기에는 용적률 완화나 안전진단 통과 등의 난제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란 '장밋빛 미래'에 대한 꿈까지 더해지면서 가격이 급락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유앤알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이른바 강남 ‘명품’ 인 블루칩 아파트로 꼽혀 선호도는 쉽게 사그라질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급매물을 노리는 대기수요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손발 묶인 ‘잠룡’ 잠실 주공5단지
1978년에 입주한 잠실 주공5단지는 15층 30개동으로 3930가구 규모다. 가구별 크기는 112·115·118㎡형(34·35·36평형)으로 세 가지 타입이다.
1978년 3월에 입주했다. 서울 지하철 2·8호선 환승역인 잠실역과 가까운 역세권 대단지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다.
재건축 추진은 ‘지지부진’
잠실 주공 5단지도 안전진단강화, 재건축 개발부담금, 소형 평형의무제 등 각종 규제로 재건축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재건축 추진위원회 승인은 완료된 상태지만 아파트 입주자들은 '규제가 완화되는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도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해
재건축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하다.
시점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며 재건축 추진을 미루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해 3월 예비안전진단을 신청했으나 은마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유지·보수’ 판정을 받았다. 재건축이 필요할 정도로 건물이 낡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잠실 주공5단지의 재건축 시업이 당분간 본궤도에 오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예비안전진단에서 퇴짜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신청하더라도 좀 더 기다려야한다. 지난해 8월 재건축 안전진단 규정이 까다로워지면서 문은 더 좁아졌다.
이에 따라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지난해 리모델링 추진위원회가 결성됐지만 1년이 지나도록 조합설립을 위한 주민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시공업체에서 제시하는 공사비가 당초 주민들이 예상했던 금액보다 많아 리모델링 후의 가치상승효과를 웃돌 것으로 예측되자 주민들의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어서다. 리모델링은 재건축과는 달리 가구수가 늘지 않아 일반분양을 할 수 없어 조합원들이 시공비를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기존 용적률 138%로 그나마 ‘숨통‘ 틔여
현재 잠실 주공 5단지의 용적률은 138%로, 용적률 230%까지 재건축이 가능하다. 서울시가 2005년 9월 개발기본계획(정비계획)을 확정해 최대 용적률을 230%까지 허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용적률 230%를 적용하면 99㎡형대의 경우 165∼198㎡형(50~60평형)대까지 재건축이 가능할 정도로 조건이 좋다. 하지만 기존 아파트의 최소 평형이 112㎡형(34평형)이라 소형 평형을 의무적으로 짓도록 하는 재건축 규제로 일부 99㎡형대 거주자가 재건축 후에도 99㎡형대에 입주해야 한다.
112㎡형 소유자는 평형 증가 없이 오히려 전용면적이 줄어든 상태로 아파트를 배정받을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재건축사업 진행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그러나 한강 조망권을 확보한데다 비교적 기존 용적률(138%)이 낮고 대지지분이 커 기대감은 사그라 들지 않고 있다.
현 시점에서 볼 때 잠실 주공5단지의 투자성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많이 나온다. 118㎡형 현 시세는 14억원에 추가부담금 2억원, 그리고 세금 등의 각종 부대비용을 합하면 40평형대 새 아파트를 배정받기 위해 대략 17억원 가량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최근 입주한 레이크팰리스 142㎡형(43평형)의 호가가 15억원 선임을 감안할 때 투자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고 본다.
잠실 삼성공인 관계자는 “용적률이 상향 조정되더라도 재료가 이미 가격에 반영돼 지금 구매하는 경우 투자가치는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입지여건이 뛰어나 미래가치는 여전히 충분한 것으로 주변 부동산중개업소에서는 보고 있다. 또 주변에 대형 개발재료가 많다는 점에도 기대감이 높다.
유앤알컨설팅 박 대표는 ”주변에 제2롯데월드 등의 재료가 여전히 살아 있어 장기적은 관점에서는 한번 관심을 가져볼만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