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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선수 출신으로 4개 국어를 구사하는 손정석 통역(오른쪽)이 2월 21일 구미 LIG전에 앞서 외국인선수 레안드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김수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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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 통역에 종사하는 사람들(4) 프로배구 대전 삼성화재 통역 손정식 경기를 치르기 위해 코트에 들어서는 삼성화재 선수단을 보면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큰 키에 선수에 뒤지지 않는 체격을 지닌 그는 늘 외국인선수 레안드로 다 실바(23,208cm) 곁에 바짝 붙어 있다. 지난 시즌부터 외국인선수 통역을 맡고 있는 손정식 씨(32)다.
그는 통역 일을 하기 전 레안드로처럼 코트에서 몸을 날리고 스파이크를 때리던 배구선수였다. 아버지는 1960, 70년대 국가대표로 이름을 날린 손영완 씨(73)다. 손영완 씨는 1970년대 초 남미로 진출해 지도자로 명성을 떨쳤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페루, 브라질에서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손정식 씨는 어려서부터 배구와 인연을 맺었다.
선수 생활, 미련은 없다손씨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레안드로는 브라질 출신으로 포르투갈어를 쓴다. “9살 때부터 5년 동안 브라질에서 살았다.” 당시 손영완 씨는 브라질로 옮겨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때 익힌 포르투갈어로 레안드로와 무리없이 대화를 나눈다. 손씨는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일본어, 영어까지 4개 국어를 구사한다.
1996년 귀국해 성균관대에 입학한 손씨는 배구선수로 뛰었다. 국내활동을 위해 아르헨티나 시민권을 포기했다. “주위에서 많이 말렸다. 시민권을 포기할 경우 군대도 가야 했지만 한국 국적을 얻고 선수로 뛰는 쪽을 택했다.” 196cm의 키로 센터를 봤던 손씨는 대학 졸업 후 실업팀 LG화재(현 구미 LIG)에 입단했다.
그러나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2002년 브라질 전지훈련 때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그는 수술을 하지 않았다.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재활치료만으로 버틴 무릎은 1년 뒤 다시 말썽을 부렸다. 미련없이 은퇴를 택했다. 수술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어차피 또 다른 미래를 내다봐야 했다. 장신 센터로 기대를 모았던 그는 2003년 선수 생활을 접었다.
“선수생활에 미련이 남느냐”는 물음에 그는 “전혀 없다. 가족도 성급한 판단이 아니냐면서 말렸다. 그러나 미련이 남을 수록 후회가 더 클 것 같았다”고 말했다.
통역 생활에 만족한다운동을 그만 둔 손씨가 통역으로 일하게 된 데에는 형 손정욱 씨(38)와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52)의 영향이 컸다. 일본 후지 TV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손정욱 씨는 2001년 실업배구시절 첫 번째 외국인선수 길슨(현대자동차서비스)의 통역을 했다. 은퇴 후 일본 실업배구팀 NEC에서 외국인선수 통역을 하던 손정식 씨에게 한국행을 권유한 사람이 형이다. 일할 팀을 찾던 그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신치용 감독이다.
손씨는 올시즌 뛰고 있는 레안드로에 대해 “지난 시즌 외국인선수 윌리엄 프리디(29,196cm)는 자존심이 강했다. 그에 비하면 레안드로는 순하다”고 말했다. 손씨에 따르면 레안드로는 잠이 많고 물건을 잘 잃어 버린다. 레안드로는 훈련이 없는 날에는 “졸린다. 잠이 모자란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건망증도 심하다.
통역 생활에 만족한다는 손씨가 꼽은 힘든 일은 식사문제다. “여자친구와 만날 때 레안드로도 같이 간 적이 있다. 여자친구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하는데 레안드로는 스파게티를 먹겠다고 했다. 결국 그날 저녁밥을 두 번 먹었다.”
손씨처럼 음식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프로농구 안양 KT&G에서 통역을 맡고 있는 이창범 씨(32)는 한국음식을 거의 못 먹는 단테 존스 때문에 고생한다. 이씨는 “하루 세끼 모두를 양식으로 먹고 급할 때는 햄버거를 먹는다”면서 “그럴 때는 한국음식을 잘 먹었던 퍼넬 페리가 그리워진다”고 말했다.
SPORTS2.0 제 40호(발행일 02월 26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