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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쇠수업 콘서트와 풍물굿의 신명
punuri 추천 0 조회 518 07.07.04 08:22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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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0.06 07:14

    첫댓글 ....보름굿이 어쩌면...매스미디어가 없던 시절의 나이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과 만나고 놀고 즐긴다는 측면이 너무 비슷합니다. 나이트클럽이 서양식이라면 우리식 나이트가 보름굿의 판굿같은게 아니었을까하고요... 우리네 정서와 서양식 정서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노는 방식이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정서의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그 정서의 차이의 출발점을 더듬다가 형식의 작은 차이를 하나 발견하게됩니다. 분명한 차이점을 하나 보게 되고, 이로 인해 완전히 다른 정서가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작은 차이는 간단합니다. 연주의 주체가 '나'라는 겁니다. 무대를 만

  • 09.10.06 07:17

    드는 것도 나고 연주하는 것도 나며 뛰노는 것도 납니다. 모든 이가 연주자 입니다. 소리있는 연주와 소리없는 연주인 춤이 있기 때문에 연주를 할 수 없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만든 무대에 내가 만든 소리로 뛰어놀면서 만들어진 주체성이 곧 굿을 형성합니다. 재주가 부족한 사람조차도 부족한 재주 이상의 정성을 판에 들이기 때문에 주체로서 분명히 서게 되고 당위성을 갖게 되고 당당히 한 몫을 하게 됩니다...이것이 나이트클럽과 굿판의 차이점입니다...저는 많은 경우에 서양의 매스미디어에 컴플렉스를 갖습니다. 그 엄청난 문명의 이기와 상업성에 주눅들 때가 많습니다. 너무나 쉽게 수백가지

  • 09.10.06 07:01

    소리와 춤을 손쉽게 구현하고 문화화시켜 버립니다. 굿에 대해 얘기하고 신명에 대해 얘기할 때 부질없음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이런 손쉬운 매스미디어 세상을 이겨내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그 이면의 마음가짐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매스미디어의 허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너무나 흔하고 모두가 알고 있는 허점입니다. 바로 외로움입니다. 아무리 같이 뛰고 소리질러도 '나'가 없는 매스미디어는 결코 내 마음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내가 없는 그 판에 '너'역시 존재할리가 없습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서는 외로움, 고독을 결코 극복하지 못합니다...굿판의 확대와 생존전략이 시발점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매스미디

  • 09.10.06 07:18

    어는 주지 못하는 동질감과 주체성, 깨어있음...이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굿판 아닐까요. 문제는 이를 느끼게 해주는 공연물과 무대가 적다는 것입니다. 이 무대를 마련하고 이러한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공연물을 만든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많은 방식을 고민하고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놈의 매스미디어를 따라잡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이쯤되면 저는 매스미디어를 굿판의 라이벌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라이벌에게서 배워야한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많은 시행착오와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계속해서 배워나가고 만들어간다고 했을 때, 차이와 동질성을, 가능성과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진

  • 09.10.06 07:13

    정 굿판이 판을 치는 대동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콘서트와 비교한 노수환 님의 글이 평소 생각하던 바와 유사한 점이 많아 몇 자 거들어 보았습니다. 주저리주저리 말만 많아서 눈만 피곤하게 한 것 아닌가 생각하며 이만 줄입니다. 읽어 주신 분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노수환님 글 항상 감사합니다. 푸너리님 고생 너무 많으십니다. 건승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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