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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태극종주기
○일시 : 2007.7.27~29(무박종주)
○함께한 이 : 비파님, 일엽님. 나
○코스 : 구인월-덕두봉-바래봉-팔랑치-세걸산-고리봉-정령치-만복대-성삼재-코재-노고단-임걸령-삼도봉-화개재-벽소령산장-선비샘-칠선봉-영신봉-세석산장-촛대봉-장터목-제석봉-천왕봉-중봉-하봉-국골삼거리-청이당-왕등재-밤머리재-웅석봉갈림길-벌목봉-수양산-덕산
프롤로그
올해 세웠던 두가지 산행목표의 마지막인 지리태극종주를 하게 될 기회가 왔다. 평상시에도 열심히 체력을 키운다고 노력해서 언제든 기회가 되면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래서 ‘첫 번째 시도에 끝을 내보자’고 하는 나름대로의 당부를 하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실크도전이 철저한 준비가 없이 시도한 끝에 엉뚱한 곳으로 너무 멀리 가서 포기한 경험이 있어서였을까. 이번에는 좀 더 철저한 준비를 한다고 하면서도 역시나 준비는 어딘가 허술한 것은 내 스타일이니만큼 어쩔 수가 없다. 누군가가 도와주는 행운을 바라게 되는 것은 왜인지.... 이번 산행에도 비파님께 신세를 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울산의 김선배님께서 밤잠 못주무시고 안내를 해주시고 해서 무사히 지리태극의 품에 안겨볼 수 있은 무한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출발전
칠월 마지막 주에는 대간을 이어나갈까 하는 계획이 있었다. 그런 어느날 비파님에게서 연락이 온다. 칠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지리태극종주를 가자’고.... 망설임없이 그 자리에서 ‘갑시다’했다. 이런 기회가 언제 올까 싶어서였다. 혼자서라도 가보려고 했던 태극종주를 함께 갈 분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대구에서 한분이 더 계시단다. 한분 더 같이 가자고 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우리 세명이 출발하기로 하고 금요일 저녁 아홉시에 구인월 마을회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식수 위치등을 자세히 읽고 오라는 비파님의 당부도 있어서 나름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된다. 지도를 복사해서 준비를 하고 준비물을 하나씩 챙긴다.
금요일 오후에 반일연가를 내고 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나서 빠진 것이 없나 골고루 짐을 챙긴다. 여벌옷도 바지는 챙기지 않고, 무거운 관계로 맥가이버칼, 사혈침, 호각 등 평상시에 가지고 다니던 물건을 모두 빼어놓는다. 가지고 갈 코펠도 불필요한 것은 빼놓았는데도 먹을 것(누룽지, 미숫가루)을 챙기니 제법 묵직하다.
세시 이십분에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백무동 가는 버스를 타야하기에 두시가 채 안되어 집을 나선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차표를 끊고 버스에 오르니 세시가 넘어서고 있고 정시에 출발한 버스는 휴가철이 시작되지 않아서인지 밀리지 않고 잘 달린다. 중간에 휴게소에 잠시 들렸다가 출발할 즈음에 비파님께 문자를 보낸다. ‘차가 밀리지 않아 빨리 도착 예정’ 이라고....
함양에서는 큰 버스에 나 혼자서 타있다. 뒤쪽 좌석에 앉아있다가 운전석 옆으로 앉아 기사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원래는 백무동까지 가는 버스인데 손님이 없으니 오늘은 인월까지만 운행을 한단다. 시원시원한 기사님 말씀이 재미있다. 지난밤엔 너무 더워서 몇 번 잠이 깨었다고 한다. 날이 더운데 산에 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일곱시경에 인월에 도착한다. 터미널에서 내려 몇 사람에게 인월가는 방향을 물어 찾아가다 보니 저녁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음식점에 들어가 추어탕 한그릇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비파님 일행이 여덟시경에 도착예정이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신인월마을회관을 찾아가보니 사진속의 그 회관이 아니다. 다시 길을 잡아 월평마을 입구를 지나서 걸어가는데 뒤편에서 경적이 울리고 비파님 목소리가 들린다. 사모님이 운전을 하시고 뒷자리에 일엽님이 인사를 한다. 차에 올라 잠시 구인월마을 회관앞에 도착한다. 짐을 정리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길바닥에 앉아서 과일도 먹는다. 동네 아저씨 한분이 옆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건넨다. 준비를 끝내고 마을회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출발한다.(20:24)
산행시작
동네의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한다. 골목길을 지나서 한참을 올라가다 사당이 보이는 곳에서 길을 잘못들은 것 같다고 하면서 한동안 여기저기 들머리를 찾아 헤메다가 비파님이 불켜진 집으로 들어가 물어봐서 길을 잡았다. 사당 옆으로 올라가면 되는 것이다. 한참 올라가다 왼편에 표지기가 있어 들어선다.
날이 덥고 습해서 숨이 꽉 막혀 오는 듯 하다. 땀은 순식간에 몸에서 흘러내린다. 랜턴불빛에 놀란 벌레들이 날아오르고 습기가 있는 땅은 미끄럽다. 땀에 흠뻑 젖어 도착한 곳이 구인월마을 표지가 서있는 느티나무가 있는 사거리이다.(21:05) 나무 아래에 배낭을 내려놓고 사진도 찍으면서 쉰다. 세명이서 같이 있어서 그런지 듣던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이곳이 할머니 귀신이 종종 나타나는 곳이라는데....
하늘에는 달빛이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고 있다. 날이 무더워 물을 자주 마시게 한다. 휴양림과 인월 덕두봉 삼거리에 도착(22:08)하고 덕두봉에 올랐다.(22:25)
땀에 흠뻑 젖었지만 달빛아래서 걷는 발걸음은 가볍다. 첫날이기도 하고 비파님도 그렇고 일엽님도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 숨소리만이 내 귓속에 들린다.
바람이 불면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산아래에서는 바람 한점 없더니 고도가 올라갈수록 바람이 불면서 온도도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다. 바래봉에 도착(22:56)하니 안개인지 구름인지 사위가 보이지 않는다. 물이 얼마 남지 않아서 샘터를 찾아야 하는데 샘터가 보이지 않아서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다. 다시 길을 잡아 내려가다보니 길 바닥에 물기가 있고 바로 샘터(23:10)가 보인다.
이슬로 등산화가 다 젖을 것 같아 비닐로 감발을 하고 물통도 채우고 나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출발(23:43)한다.
작은 풀들이 이슬을 머금어서 우리 발길에 물이 떨어지고 바지가 젖어온다. 감발을 하지 않으면 금방 등산화에 물이 들어왔을테지만 비닐로 감발을 해서 젖지 않는다. 팔랑치에 도착(23:59)하고, 세걸산 도착(01:39)하니 달이 구름에 들락날락거리고 있다.
고리봉에 도착(03:3), 정령치에 내려서서 파고라 의자에 앉아 잠시 쉰다(04:01). 누우면 곧바로 잠이 올 것 같은데 땀에 이슬에 젖어 몸이 식자 추워지기 시작한다. 휴게소 앞을 내려서는데 전에는 안보이던 초소가 있다. 물을 채우려고 화장실에 들렸는데 물은 보이지 않는데 뒤에 오시던 비파님이 초소에 공단직원이 잠자고 있으니 조용하게 랜턴을 끄고 가자고 한다. 발소리도 낮추게 물도 채우지 못하고 조심스레 도로를 건너 오름길을 찾는다.
둘쨋날
만복대 도착(05:05)하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구름사이로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을 하고 헬기장(06:47)을 지나자 성삼재에서 오는 철문이 우리를 맞는다.(06:52)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나서 성삼재 휴게소에 들려 아침식사를 해결하려 하지만 아직 휴게소 문은 열리지 않았다. 휴게소 옆 의자에 등산객들이 산행준비를 하고 있다. 매표소를 통과(06:58)해서 노고단으로 가는 돌로 된 포장길은 지루하다. 길옆에 야생화들이 꽃을 피우고 있어 발길을 잡는다. 길옆에 앉아서 잠시 쉬어 물을 한모금씩 하고 다시 출발을 해서 올라가는데 길옆에 웬 달걀과 바나나가 있다. 아마 힘들어서 가지고 올라가다가 놔 둔것인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아주 반가운 음식이다. 삶은 달걀을 서너개씩 먹고 바나나도 하나를 먹으니 기운이 난다.
코재에 도착하는데 종석대로 가는 길 한켠에 나리꽃이 꽃을 피우고 있다. 카메라를 꺼내들어 난간을 넘어 사진 한 장을 찍고 나서 두분 사진도 찍는다. 다른 분들이 우리 바지를 보고 ‘비가 왔느냐?’고 묻는다. ‘이슬 때문에 그렇다’고 하니 어디서 오는데 그러느냐고 한다. 인월에서 온다고 하면서 출발한다.(07:41)
노고단 올라가는 돌계단길을 피해서 우회로를 걷는다. 노고단대피소에 도착(08:02), 매점에서 햇반 두개, 개스, 깻잎, 참치캔을 사서 취사장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물병에 물도 채운다. 500ml 한병만 채운다. 간단히 세수도 하고 양치질도 하고 나서 출발(08:53)해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돌길을 오른다. 올초에 화대종주시에는 눈꽃이 하얗게 피어있어서 하나도 힘들지 않게 오른 것 같았는데 밤새 걸어서 그런가 다리가 좀 묵직하다. 노고단 고갯길 통과(08:53)하는데 등산객들이 많이 있다. 아이들이 방학을 해서 그런지 아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부자간에 온 팀도 있고 모녀간에 온 분들도 있다.
임걸령샘터에 도착(09:39)해서 물 두병을 채운다.
샘터에서 올라와 길옆에 바위에 앉아 신발을 벗어보니 어느새 양말이 젖어있다. 잠시라도 발을 말리고 쉰 후에 다시 출발해서 언덕을 허위허위 오른다. 지리산 주능선 길은 이제는 헐벗어서 너덜길이다. 흙길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노루목 삼거리에도 정체가 심하다.(10:17) 중간중간 길을 정비하고 있어서 걷기는 조금 편하지만 그래도 지리산 주능선은 돌길이다. 반야봉은 올라가지 않기로 해서 비파님을 기다리면서 앉아서 쉬어간다.
휴식 후 출발(10:24)해서 삼도봉을 통과(10:41)하고 화개재 나무계단길(10:57)에 도착했는데 여기도 등산객들이 많이 있다. 단체 등산객들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어서 시끌시끌하다. 토끼봉을 지나서(11:36) 총각샘에 들리니 한분이 컵으로 물을 뜨고 계시다가 우리에게 물컵을 건넨다. 비박을 했는지 샘터 옆에 이십여명이 북적거린다. 목만 축이고 다시 출발한다. 연하천산장에 도착하기 전 계단에서 지친 몸을 시원한 바람에 맡겨본다.
연하천 산장에 도착(12:35)하니 햇빛이 따갑다.
한여름의 빛이 따가워 물을 두병 뜨고 나서 기념사진 한 장을 찍고 곧바로 출발했다. 연하천 산장 주변에도 지리산을 찾은 많은 등산객들이 있다. 벽소령산장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부지런히 속도를 내본다. 벽소령까지는 두시간이 채 안걸릴 것을 예상했지만 속도가 빨라서인지 13:44분에 도착이다. 매점에서 개스를 하나 사서 취사장이 아닌 창고옆에 앉아 누룽지를 넣고 끓이다가 라면을 넣어 점심을 해결했다. 양말도 벗고 충분히 휴식 후에 출발(14:39)한다.
물병은 하나만 채운다. 중간 나무뿌리가 많은 곳을 지나다보니 처음 지리종주할 적 생각이 난다. 직원들과 같이 와서 쉬던 곳이라서 올 때마다 생각이 난다. 처음으로 지리산종주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이 생생하다. 큰 배낭에 짐을 잔뜩 꾸려서 와서 걷던 그 때의 나처럼 지금도 그런 산님들이 많이 보인다. 선비샘에 도착(15:26)해서 물병을 채우고 나서 천왕봉과 중봉이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도착(15:51)해서 사진을 찍으면서 잠시 숨을 돌린다.
칠선봉의 바위는 아직 그 모습 그대로 있다.(16:04) 계단 오름길을 허위허위 오르다가 기념사진을 찍는다. 예전에 지리종주시에 사진찍던 곳이 생각이 나서..... 계단을 올라 앉아서 비파님을 기다리는데 오실 시간이 지났는데도 보이지 않아서 전화를 걸어본다. 아직도 우리가 뒤에 있는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날이 맑은데 지리산은 뿌연 증기 같은 옅은 운무로 멀리까지 보이지 않다. 햇빛은 따가운데.....
영신봉을 지나(16:49)서 세석대피소는 내려가지 않고 통과한다.(16:57). 선비샘에서 물을 채워 물이 필요치 않기도 하고 장터목에 일찍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촛대봉 팻말(17:13) 아래에서 잠시 쉬는데 아들을 데리고 온 분이 사진을 찍고 있다. 방학을 맞아서 친구 둘이 아들을 데리고 온 모양이다. 촛대봉에서부터 내리막길도 지루하다. 장터목을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이 때문인지 그 거리가 상당히 멀리 느껴진다.
안개가 심해지기 시작한다. 사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르지만.... 길옆에 쑥부쟁이가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어서 가는 발길을 잡는다. 다른 꽃들도 많이 있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연하봉(18:00)을 지나고 한참을 더가고 나서 장터목 산장의 소음이 들려온다. 장터목(18:20)의 넓은 광장에 사람들이 꽉 차 있을 정도로 많이 있다. 비박을 준비하고 있는 듯 바람이 불고 있어서 자켓을 꺼내입고 있는 산님도 있고, 비옷을 꺼내 입고 있는 분도 보인다.
장터목 산장 매점에서 복숭아 통조림을 하나 먹고 나서 출발한다. 바람이 많이 불고 온도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젊은이 둘이서 비박을 하려고 자리를 찾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계속간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잘 못알아 듣는 것 같다. 하루저녁을 자고 나서 내일 천왕봉 일출을 보려했는데 날씨가 안좋아 일출보기가 힘들겠단다.
제석봉은 안개에 쌓여있어서 멀리 보이지가 않는다.(18:38) 지나가면서 사진 몇장을 찍고 나서 통천문(19:02)을 지나 천왕에 도착(19:15)이다. 두분이 천왕봉 표지석 뒤에서 제를 올리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비파님이 잠시 기다렸다가 제물을 좀 먹고 가자 하는 눈치인데 그냥 출발한다.
중봉 못미친 언덕에 쉬면서 감발을 하고 나서 보니 바로 옆에 조그만 별꽃이 많이 보인다. 카메라를 꺼내 들어서 사진을 한 장 찍는다. 안개와 바람, 그리고 이슬이 많이 생기고 어두워진다. 산속의 어둠은 일찌감치 찾아오고 있다. 중봉에 도착(20:04)하니 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있다. 국골삼거리까지 가는 길은 길이 안좋다. 중봉에서 내리막길도 험하고 좁아서 이슬에 온몸이 다 젖는다.
하봉헬기장 아래에 샘터가 있다고 하는데 물이 남아있어서 그냥 통과한다. 길이 뚜렷하지 않아 몇 번 헤매기도 했지만 지도와 나침반으로 해결을 하면서 국골삼거리에 도착했다(21:56).
어느 순간부터 구름이 보이지 않고 밝은 달이 나뭇잎 사이로 우릴 비추고 있다. 새재방향으로 길을 잡아서 청이당 계곡에 도착(22:36)해서 늦은 저녁을 해결한다. 누룽지와 일엽님이 가져오신 밥을 함께 삶아서 만든 저녁을 먹고 나서 출발 준비를 하는데 인기척이 있고 불빛이 비친다. 다른 팀 두분이 우리 위쪽에서 보인다. ‘J3회원이냐?’고 묻자 ‘아니다’고 한다.
청이당에서 다시 출발을 해서 이십여분 갔을까 독바위가 오른쪽으로 보이더니 안개가 심해 앞이 잘 보이지 않고 길을 잃어버린다. 앞장서서 가다보니 길이 사라지고 절벽이 보인다. 다시 뒤로 돌아가보니 길이 여러갈래라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방장님께 통화를 시도하다가 김선배님과 통화를 하던 비파님은 청이당까지 다시 가자고 한다. 다시 길을 되돌려 청이당 방향으로 가다보니 우리가 온 길이 맞는 것 같아 다시 길을 찾았다. 마루금을 찾으면 되는데 밤중이라 마루금이 보이지 않는다. 김선배님이 기다란 밧줄이 달린 곳으로 해서 곧장 가면 된다하는 곳은 우리가 헤매다 한참을 진행하고 난 뒤에 있었다.
마당바위처럼 넓은 바위에 잠시 쉰다(02:03). 하늘에 보름달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잠시 누워있으려니 금새 잠이 오려한다. 다시 일어나 앉아있다가 출발한다. 줄을 잡고 내려가고 표지기를 따라, 아니 여기서부터는 표지기도 별로 없다. 길의 흔적을 따라 억새밭, 산죽길을 끝없이 가다보니 길 오른편에 밧줄이 하나 보이는 조그만 재가 보이고 좀 더 진행하다보니 또 다른 밧줄 아래에 “왕등재 대조구 2”란 팻말이 떨어져 있다. 길을 따라 조금 가니 우측에 왕등재고산습지 안내간판이 달려있고 길이 표시되어 있다(05:30). 앞쪽에서 인기척이 있어 조용하게 김선배님에게 비파님이 통화를 시도하는데 통화가 잘 안된다. 두 번째 안내간판이 나오기 전에 웅석봉 방향으로 언덕길을 올라간다.
셋째날
밤머리재를 향해 가는데 앞쪽에서 등산객들 몇이서 오고 있다. 등에는 큰배낭에 비박용 매트리스를 달고 있다. 태극종주를 시작하는데 우리더러 ‘어디서오시느냐?’고 묻는다. 아침에 출발한 줄 알고 묻는데 인월에서 온다고 하니 조금 놀란다. 밤머리재까지는 한시간 더 걸릴 것이란다. 무박으로 태극종주를 하는 중이라고 하고 다시 서로 인사를 하고 출발하는데 여자분 혼자서 가고 있다. 같은 일행인지는 모르지만.....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도토리봉일 것이라고 올라갔는데 아니고 그만그만한 봉우리를 몇 개 더 가고 나니 그제야 도토리봉이다.(08:37) 비파님이 전화로 식사를 주문하고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다. 햇빛은 따갑게 내리쪼이고 있다. 시간이 아홉시가 가까이 되고 있다. 밤머리재 사장님이 우리를 맞으면서 좀 더 일찍 전화를 하지 그랬느냐고 하면서 시원한 물을 따라준다.
슬리퍼로 갈아신고 발도 닦고 세수도 하고 나서 평상에 앉아 먹는 식사가 진수성찬보다 맛이 있다. 국은 처음 맛보는데 먹을만 하다. 매실장아찌도 맛있고, 차갑게 살짝 얼린 김치는 맛이 좋다. 아침식사를 한 후에 잠시 휴식을 하려고 누웠는데 울산 김선배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식사하고 휴식중이라고 하고 나서 짐을 챙긴다. 점심에 먹을 밥 한공기 분량과 물 두병을 챙긴 후 출발하려는데 부산에서 온 산악회차가 한대 들어와서 등산객들이 우루루 내린다. 웅석봉을 가는 등산객들이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 출발(10:27)한다.
웅석봉으로 가는 언덕길은 둥근 원목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서 올가가기가 쉽지 않다. 햇빛은 뜨겁게 내리쪼이고 있고 바람도 불지 않으니 너무 덥다. 능선에 올라서니 그제야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한다. 뒤따라온 등산객들이 우리 옷차림이 이상했던지 이것저것 물어본다. 무박태극종주 중이라니 같이 가자고 하더니 어느새 앞서 가 버린다.
웅석봉 삼거리에 앉아 쉬다가 웅석봉 들리는 것을 미루고 곧바로 딱바실계곡 방향으로 간다(12:33). 두분은 여러번 다녀왔으니 혼자서라도 갔다 오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지체되고 있는데 갔다온다 소리를 못하겠다. 한동안 가다가 점심을 먹고 가자고 하면서 바람이 부는 시원한 풀밭에 앉아서 밤머리재에서 비닐에 싸가지고 온 밥을 깻잎장아찌 통조림에 밥을 먹고 있는데(14:16) 부산의 산악회원님들이 지나가고 있다.
마근담봉 삼거리에서(14:33) 왼편으로 수양산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이 표지기를 비파님이 달아놓으셨다고 한다. 새로 배방장님이 길을 열어놓으셔서 그런지 길은 아주 편안하다. “926봉 가는길 태극종주 힘내세요” 표지기가 있다.
조금 앞서 내려서던 비파님이 샘터가는 표지가 없어졌다고 하면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한참을 찾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샘터 찾기를 포기하고 오분정도 내려서니 세 개의 표지가 보인다(15:06). 샘터를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하는데 한참을 가야 한다. 샘터 물이 그리 맑고 좋지 않은 것 같지만 이곳에서 물을 채우지 않으면 안되다고 해서 세병을 채우고 나서 다시 출발한다.
김선배님에게서 전화가 와서 수양산으로 가는 중이라고 통화를 하고 났는데, 어느 순간부터 잠이 쏟아지는 것 같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정도로 높은 봉우리를 가다보니 어느새 정상이다. 수양산인 줄 알았는데 벌목봉이란다(16:25).
마지막 봉우리 중에서 높은 벌목봉을 맨정신으로 올라오려면 상당히 힘들 것 같다. 이곳에는 등산객들이 없다. 백두대간의 시작이 천왕봉이 아니라 좀더 길게 잡은 코스가 우리가 하고 있는 태극종주 코스라고 해서 조금은 길이 좋을 것 같은데 길 양편에는 멧돼지들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자리가 곳곳에 널려있다.
수양산에 도착한 시간이 벌써 다섯시가 넘어선다(17:01). 수양산 내리막길은 비가 오면 너무나 힘들 것 같다. 내리막길 한켠에 영지버섯이 하나 보인다. 비파님에게 주니 좋아하는 버섯이란다. 참나무 등이 많아서 그런지 영지버섯은 더러더러 보인다. 이제 산행이 끝나가고 있다. ‘비슬산비파부부’ 표지기가 있어 사진으로 담아보고 J3표지기도 사진으로 담아본다.
편안한 마지막 길이다. 임도를 따라서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날머리에 도착한다(17:55).
휴가차량이 많아서 그런지 도로에 차들이 멈추어 있다가 우리 일행을 쳐다보고 있다. 다리 아래에서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나서 국밥집에서 국밥 한그릇과 막걸리로 하산주를 한잔하고 났는데도 길에 차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때맞춰 멈추어 있던 진주행 버스에 올라 집으로 전화를 하고 원지에 도착하니 어두워지고 있다. 일곱시 오십분 버스표를 끊어놓고 의자에 앉아있는데 서울행 19:30분 버스가 들어온다. 마침 자리가 있어서 맨 뒷자리에 앉아 안전띠를 메고 누우니 바로 잠이 든다.
무릎이 좀 아파 잠결에 자리를 몇 번 뒤척인 듯 한데 어느새 남부터미널이다. 지하철로 안국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우이동 내려 걸어 집에 들어가니 열두시 반이 넘는다.
에필로그
한밤에 달빛 아래에서 걷는 여유있는 산행을 즐겨보고 싶다. 꿈속에서 그리던 그런 산행을 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이 장거리 산행인가보다. 홀로산행의 매력을 하고 싶지만 안해의 만류를 뿌리칠 용기는 아직은 없다. 나이들어 너무 무리한 산행은 하지 않는것이 좋겠다고 하는 안해의 말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장거리 산행을 포기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나뿐이 아닐 것이다. 수십번 땀에 젖고 또 젖어 땀에 절은 그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서도 행복하다 느끼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기쁨은 아닐 것이리라.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래서 더 더욱 내 자신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그저 하루저녁의 무박산행에 만족하고 있었을텐데, 조금은 더 업그레이드 된 내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많은 발전을 했지 않았나 싶다. 장거리 산행의 매력은 바로 이런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이 아닐까!
올해 계획했던 두가지 목표은 달성이 된 셈이다. 실크로드 실패 이후에 꿈속에서 에덴베리 골프장을 헤메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삼주후에 다시 도전해서 아픈 무릎을 끌고 서른시간을 걷던 생각도 난다. 이제 더 이상의 장거리는 없다고 하는 비파님에게 ‘아직 영남태극이 남아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신다. 또 다른 목표가 생겨서 좋다. 아직 내가 도전하고 싶은 산행지가 남아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첫댓글 더운 날 장하십니다. ㅎ. 이번이 장거리 산행은 마지막이다 라는 ..... ㅋㅋㅋㅋ 하루 지나기 바쁘게 그리워 지는 .... 장거리 산행의 묘미는 해본 사람은 알겁니다. 기회가 된다면 영남 알프스종주에 지도 낑겨 주시겠습니까? ㅎ 체력 잘 추스리시고 행복하십시오. ^*^
마지막 구간은 좀 덥더군요. 영알 가실적에 비파님이 연락주신다 했으니 기다리시면 되지 않을까요. 함께 산행할 영광을 주신다니.....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훌륭 하십니다~~ 전 태극태극 노래만부르고... 엉뚱헌데가서 비박만하고..ㅜㅜ 10월안에 꼭 갈꺼라 약속은했는뎅...지킬려고 합니다~~ 아자아자!!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풀들이 너무 우거져서 키보다도 더 큰 억새도 많고 길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산은 즐기면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
산행기가 실감납니다.수고하셨습니다.영남태극까정하실려고요?
불러만 주시면 아무때라도 가야지요. 비파님 아님 전 실크도 태극도 아직 꿈만 꾸고 있을겁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이 더운날 수고가 많으셨읍니다..진정 산꾼의 모습입니다..
고맙습니다. 함께 산행할 날 있겠지요? 항상 즐산, 안산 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그리고 내일과 5일날 j3크럽의 전사들이 지리태극길에서 자신을 담금질 하며 고독과 몸부림치고 있습니다.세분의 지리태극종주 축하드리며 알바는 누구나 합니다. 저의 경우는 지리태극종주 구간구간 50차례정도의 지원과 답사를 했지만 가끔 헷갈때도 있습니다. 새로운 등로는 언제 어디능선에서 생길지 아무도 모르기에 장담을 못하죠.저와 비파님이 써놓은 글을 보니 새삼스럽습니다. 태극종주 축하드리며 지리태극이 장거리의 마지막 종착지가 아니고 이제 장거리산행의 출발과 시작이라는것을... 또다른종주 한판하셔야죠
큰일입니다. 가고싶은 곳은 많은데 체력은 달리는 듯 하고 세월은 자꾸 달려가는데.... 일단 영남태극부터 해야할 것 같네요.
삼복 더위 보다도 더욱 뜨거운 열정으로 이루어낸 지리태극무박종주 성공을 다시한번 축하 합니다. 그 열정 식히지 마시고 연달아 영남태극등 다른 중장거리 종주도 계속 이어 가시길 빕니다^^.
선배님 아니었음 아마 힘들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밤잠 못주무시고 안내하시랴, 소식 전하시랴.... 뵐 때까지 즐산, 안산하십시요. 정말정말 감사하고 맙습니다.
대단한 열정 참으로 대단 합니다.축하합니다.
미인님의 열정도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저야 이제 시작하는,초보 딱지 뗀 정도인데요....
무더위에 태극종주를 완주하신 세분께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초반에 너무 알바를 하셔서 그렇지요. 저도 전번에 실크에 도전했다가 하늘뫼님 처럼 엉뚱한 곳으로 가서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잠깐의 실수가 큰 결과를 낳기도 하더군요. 그렇지만 다음에는 그런 실수를 다시 하진 않겠지요? 천천히 차근차근 준비하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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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평상시에 준비를 잘 하시고 도전하시면 됩니다. 저도 초보딱지 간신히 뗀 정도인데요. 산에 다닌지도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본격적을도 다닌지는 이제 이년 정도 되었나.... 고맙습니다. 잘 준비하시면 가능할 겁니다.
수고 하셨습니다.동부와 달뜨기능선이 눈에 선합니다. 다시한번 완주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덕유산에서 뵌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참의 시간이 갔군요. 벌써 태극을 다녀온지가 일주일이 되어갑니다. 다시 뵐때까지 안녕히계세요. 고맙습니다. 행복하시구요....
태극종주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작년에 연습 야간산행후 태극종주할때 동부능선이 유난히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항상 즐산, 안산 하세요.
맞습니다. 동부능선이 좀 길이 그렇지요. 태극팀 잘들계시지요? 이번에도 태극스페이스 시그널도 보이던데요. 다시 산행할 날 있겠지요? 고맙습니다.
지리태극 무사히 종주함을 축하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같이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랬지요? 더위에 건강관리 잘 하시고 함께 산행할 날 기대해봅니다.
바랭이님! 축하드립니다 올해 목표하신 두가지를 다 이룬 님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또다시 새로운 목표가 생겨셨군요님의 열정에 부러움과 큰 박수를 보냅니다 안산 즐산하시고 건강하십시요...*^^*
잘계시지요?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답사를 하고 나서 실행해야하는 코스인데 답사없이 할 수 있었던것은 비파님 덕분입니다. 대간 잘 이어나가시기 바랍니다. 항상 즐산안산하시구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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