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京畿)
도관찰 출척사(都觀察黜陟使) 1인, 수령관(首領官) 1인, 의학 교유(醫學敎諭)·검률(檢律) 각각 1인.【다른 도(道)도 이와 같다. 】
본래 고구려의 땅이다. 고려 성종(成宗) 14년 을미에 【곧 송(宋)나라 태종(太宗) 지도(至道) 원년(元年). 】개주(開州)를 개성부(開城府)로 승격시켜 적현(赤縣) 6, 기현(畿縣) 7을 관할하게 하다가, 【고사(古史)에 다만 현(縣)의 수만 기록하고 이름을 적지 아니해서 자세히 상고할 수 없다. 】현종(顯宗) 9년 무오에 【곧 송나라 진종(眞宗) 대중상부(大中祥符) 11년. 】개성부를 파하고 개성 현령(開城縣令)으로써 정주(貞州)· 덕수(德水)· 강음(江陰)의 3현을 관할하게 하고, 장단 현령(長湍縣令)으로써 송림(松林)· 임진(臨津)· 토산(兎山)· 임강(臨江)· 적성(積城)· 파평(坡平)· 마전(麻田)의 7현을 관할하게 하고, 상서도성(尙書都省)에 직속시켜 경기(京畿)라 일렀다. 문종(文宗) 16년 임인에 【곧 송나라 인종(仁宗) 가우(嘉祐) 7년. 】다시 개성부로 승격시켜 도성(都省)에서 관장하던 11현을 모두 붙이고, 또 서해도(西海道)의 임내(任內)인 우봉군(牛峯郡)을 떼어 이에 붙였으며, 그 후 다시 개성 현령을 두어 개성부에 붙이었다. 【연대는 알 수 없다. 】공양왕(恭讓王) 2년 경오에 【곧 명나라 태조 고황제 홍무(洪武) 23년. 】경기(京畿)를 갈라 좌·우도(左右道)로 하여, 장단· 임강· 토산· 임진· 송림· 마전· 적성· 파평현을 좌도(左道)로, 개성· 강음· 해풍· 덕수· 우봉을 우도(右道)로 하고, 또 경기(京畿)를 더 넓혀서 양광도(楊廣道)의 한양(漢陽)· 남양부(南陽府)· 인주(仁州)· 안산군(安山郡)· 교하(交河)· 양천(陽川)· 금천(衿川)· 과주(果州)· 포주(抱州)· 서원(瑞原)· 고봉현(高峯縣)과 교주도(交州道)의 철원부(鐵原府)· 영평(永平)· 이천(伊川)· 안협(安峽)· 연주(漣州)· 삭녕(朔寧)으로써 좌도(左道)에 붙이고, 양광도의 부평(富平)· 강화부(江華府)· 교동(喬桐)· 김포(金浦)· 통진현(通津縣)과 서해도(西海道)의 연안부(延安府)· 평주(平州)· 배주(白州)· 곡주(谷州)· 수안군(遂安郡)· 재령(載寧)· 서흥(瑞興)· 신은(新恩)· 협계현(俠溪縣)으로써 우도(右道)에 붙이고, 각기 도관찰 출척사(都觀察黜陟使)를 두고 수령관(首領官)으로써 돕게 하다가, 【4품 이상은 경력(經歷)을 삼고, 5품 이하는 도사(都事)를 삼았다. 】우리 태조(太祖) 3년 갑술에 【곧 홍무 27년. 】도읍을 한양부에 정하게 되매, 그 이듬해 을해에 평주· 수안· 곡주· 재령· 서흥· 신은· 협계는 새 서울[新都]에 가는 길이 멀므로 도로 서해도에 붙이고, 양광도의 광주(廣州)· 수원부(水原府)· 양근군(楊根郡)· 쌍부(雙阜)· 용구(龍駒)· 처인(處仁)· 이천(利川)· 천녕(川寧)· 지평현(砥平縣)을 갖다 이에 붙이고, 광주· 수원의 관할인 군(郡)·현(縣)을 갈라서 좌도(左道)로 하고, 양주· 부평· 철원· 연안의 관할인 군·현을 우도(右道)로 하고, 7년[戊寅]에 또 충청도(忠淸道)의 진위현(振威縣)을 떼어서 좌도에 붙이었다가, 태종(太宗) 2년 임오에 【곧 홍무 35년. 】두 도(道)를 합하여 경기 좌·우도라 하고, 성관찰사(省觀察使)·수령관(首領官) 각각 1인씩을 두었다. 13년 계사에 【곧 명나라 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 영락(永樂) 11년. 】사방길의 멀고 가까움을 참작하여 연안(延安)· 배주(白州)· 우봉· 강음· 토산을 도로 풍해도(豐海道)에, 이천(伊川)을 도로 강원도에 붙이고, 충청도의 여흥부(驪興府)· 안성군(安城郡)· 양지(陽知)· 양성(陽城)· 음죽현(陰竹縣)과 강원도의 가평현(加平縣)을 떼어다가 이에 붙이고, 좌·우도(左右道)로 나누지 않고 다만 경기 도관찰사(京畿都觀察使)라 일컫고 사(司)를 수원(水原)에 두었다. 동쪽은 강원도 춘천(春川)과 원주(原州)에 이르고, 서쪽은 황해도 강음(江陰)과 배천(白川)에 이르며, 남쪽은 충청도 죽산(竹山)과 직산(稷山)에 이르고, 북쪽은 황해도의 토산(兎山)과 강원도 이천(伊川)에 이르러서, 동서가 2백 64리요, 남북이 3백 64리가 된다.
목(牧)이 1이요, 도호부(都護府)가 8이요, 군(郡)이 6이요, 현(縣)이 26이다.
명산(名山)으로 말하면, 삼각산(三角山)은 도성(都城)의 진산(鎭山)이 되며, 백악(白岳) 북쪽에 있고, 성거산(聖居山)은 옛 서울의 송악(松岳) 동북쪽에 있으며, 화악(花岳)은 가평현(加平縣) 북쪽에 있고, 겸악(鉗岳)은 적성현(積城縣) 동쪽에 있으며, 용호산(龍虎山)은 임강현(臨江縣) 남쪽에 있고, 오관산(五冠山)은 임강현의 임내(任內)인 송림(松林) 북쪽에 있으며, 마리산(摩利山)은 강화부(江華府) 남쪽에 있다.
대천(大川)으로 말하면, 한강(漢江)은 그 근원이 강원도 오대산(五臺山)으로부터 나와 영월군(寧越郡) 서쪽에 이르러 여러 내를 합하여 가근동진(加斤同津)이 되고, 충청도 충주(忠州)의 연천(淵遷)을 지나서 한결같이 서쪽으로 흘러 여흥(驪興)을 지나 여강(驪江)이 되고, 천녕(川寧)에서 이포(梨浦)가 되며, 양근(楊根)에서 대탄(大灘)이 되고, 또 사포(蛇浦)와 용진(龍津)이 되었으며, 〈한 줄기는〉 인제현(麟蹄縣)이 이포소(伊布所)로부터 나와 춘천(春川)에 이르러 소양강(昭陽江)이 되고, 남쪽으로 흘러 가평현(加平縣) 동쪽에서 이 되고, 양근(楊根) 북쪽에서 이 되며, 또 〈 양근〉 남쪽에서 용진도(龍津渡)가 되고, 사포(蛇浦)로 들어가서 두 물이 합하여 흘러 광주(廣州) 경계에 이르러서 도미진(渡迷津)이 되고, 〈다음에〉 광나루[廣津]가 되었으며, 서울 남쪽에 이르러 한강도(漢江渡)가 되고, 서쪽에서 이 되며, 서쪽에서 용산강(龍山江)이 되었는데, 경상· 충청· 강원도 및 경기 상류(上流)에서 배로 실어 온 곡식이 모두 이곳을 거치어 서울에 다다른다. 강물이 도성 남쪽을 지나 금천(衿川) 북쪽에 이르러 양화도(楊花渡)가 되고, 양천(陽川) 북쪽에서 공암진(孔岩津)이 되며, 교하(交河) 서쪽 오도성(烏島城)에 이르러 임진강(臨津江)과 합하고,
통진(通津) 북쪽에 이르러 조강(祖江)이 되며, 포구곶이[浦口串]에 이르러서 나뉘어 둘이 되었으니,
하나는 곧장 서쪽으로 흘러 강화부 북쪽을 지나 하원도(河源渡)가 되고, 교동현(喬桐縣) 북쪽 인석진(寅石津)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니, 황해도에서 배로 실어 온 곡식이 〈모두〉 이곳을 거치어 서울에 다다른다. 하나는 남쪽으로 흘러 강화부 동쪽 갑곶이나루[甲串津]를 지나서 바다로 들어가니, 전라· 충청도에서 배로 실어 온 곡식이 모두 이곳을 거치어 서울에 다다른다.
임진강(臨津江)은 그 근원이 함길도(咸吉道) 안변(安邊)의 임내(任內)인 영풍현(永豐縣) 방장동(防墻洞)으로부터 와서 이천(伊川)· 안협(安峽)· 삭녕(朔寧) 경계를 지나 연천(漣川)에 이르러, 물이 비로소 커져서 징파도(澄波渡)가 되고, 마전(麻田)을 지나 적성(積城)에 이르러 이 되며, 장단(長湍)에서 두지진(豆只津)이 되고, 임진현 동쪽에 이르러 임진도(臨津渡)가 되며, 서쪽으로 흘러 〈 임진현〉 동남쪽에 이르러서 덕진(德津)이 되고, 남쪽으로 흘러 교하현 서쪽에 이르러서 낙하도(洛河渡)가 되며, 봉황바위[鳳凰岩]를 지나 오도성(烏島城)에 이르러 한강과 합하여 함께 바다로 들어간다.
호수가 2만 8백 82호, 인구가 5만 3백 52명【본조(本朝)는 인구(人口)의 법이 밝지 못하여, 문적에 적힌 것이 겨우 열의 한둘이 되므로, 나라에서 매양 바로잡으려 하나, 너무 인심(人心)을 잃게 되어, 그럭저럭 이제까지 이르렀으므로, 각도 각 고을의 인구수가 이렇게 되었고, 다른 도들도 모두 이렇다. 】이요,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1천 7백 13명, 선군(船軍)이 3천 8백 92명이다.
간전(墾田)은 20만 3백 47결(結)이다. 【밭[旱田]이 12만 4천 1백 73결 남짓하고, 논[水田]이 7만 6천 1백 73결 남짓하다. 】그 부세(賦稅)는 쌀[稻米] 【멥쌀[粳米]·흰쌀[白米]··점경미(粘粳米)·가 있다. 】·직미(稷米)·콩[豆] 【콩·팥·녹두가 있다. 】·보리 【보리·밀·메밀이 있다. 】·지마(芝麻) 【속명 참깨. 】·꿀[蜂蜜]·밀[黃蠟]·지마유(芝麻油) 【속명 참기름. 】·소자유(蘇子油) 【속명 법유(法油). 】·가루장[末醬]·겨자[芥子]·모시[白苧布]·다섯새베[正五升布] 【대개 군읍(郡邑)의 구실[田賦]이 머나 가까우나 모두 같으므로, 다시 고을 밑에 적지 아니한다. 】등이다.
토공(土貢)은 모과[木瓜]·개암씨[榛實]·상수리[橡實]·밤[栗]·감[柿]·대추[棗]·느타리[眞茸]·싸리 버섯[鳥足茸]·황각(黃角)·산삼(山蔘)·도라지[桔梗]·마른 멧돼지고기[乾猪]·토끼젓[兎醢]·물고기젓[魚醢]·숭어[水魚]·민어(民魚)·젓[醢]·질그릇[陶器]·사기 그릇[磁器]·목기(木器)·버들 그릇[柳器]·갈소쿠리[蘆簞]·참빗[省帚]·왕골속[莞心]·노화지(蘆花紙)·잡깃[雜羽]·갓[常笠]·새[草]·마의(馬衣)·짚[藁草]·꼴[芻藁]·새끼[藁索]·삼노[麻索]·소나무 그을음[松煙]·송진[松脂]·주토(朱土)·갈탄(葛炭)·향나무[香木]【백단향(白檀香)·자단향(紫檀響)·역목(櫟木)이 있다. 】·굴가루[蠣灰]·명아주재[藜灰]·황회(黃灰)·지초(芝草)·단풍나무잎[楓葉]·영선 잡목(營繕雜木)·자작나무[自作木]·은행나무[杏木]·피나무[椵木]·뽕나무[黃桑木]·앵도나무[櫻木]·장작[燒木]이다.
약재(藥材)는 쇠쓸개[牛贍]·범의 정강이뼈[黃虎脛骨]·곰의 쓸개[熊膽]·돼지쓸개[猪膽]·수달피쓸개[獺膽]·고슴도치쓸개[猬膽]·섣달토끼머리[臘兎頭]·고슴도치가죽[猬皮]·아교(阿膠)·말벌집[露蜂房]·지네[蜈蚣]·누에나비[元蠶蛾]·누에허물[馬鳴退]·가뢰[斑猫]·매미허물[蟬退皮]·뱀허물[蛇退皮]·두꺼비[蟾酥]·청개구리[蝦蟆]·자라껍데기[鼈甲]·뽕나무벌레[桑螵蛸]·마른 잉어[乾鯉魚]·잉어쓸개[鯉魚膽]·굴조개껍질[牡蠣]·누에똥[蠶沙]·오가피(五加皮)·황경나무껍질[黃蘗皮]·뽕나무뿌리껍질[桑白皮]·느릅나무속껍질[楡白皮]·산이스랏씨[郁李仁]·복숭아씨[桃仁]·살구씨[杏仁]·탱자[枳殼]·회화나무열매[槐實]·회화나무꽃[槐花]·송진[松脂]·연밥[蓮子]·조피나무열매[川椒]·오배자(五倍子)·복령(茯苓) 【붉은 것과 흰 것 두 종류가 있다. 】·복신(茯神)·안식향(安息香)·산골[自然銅]·돌고드름[禹餘糧]·하늘타리[天圓子]·새삼씨[兎絲子]·고무딸기열매[覆盆子]·오미자(五味子)·나팔꽃씨[牽牛子] 【흰 것과 검은 것의 두 가지가 있다. 】·질경이씨[車前子]·찔레씨[蒺梨子]·백부자(白附子)·백출(白朮)·창출(蒼朮)·창포말(菖蒲末)·석창포(石菖蒲)·쥐방울[馬兜苓]·쇠비름[馬齒莧]·붓꽃[馬藺]·부들꽃[蒲黃]·택사(澤瀉)·도라지[桔梗]·탱알[紫莞]·삽주[薊草] 【큰 것과 작은 것 두 종류가 있다. 】·수자해좆뿌리[天麻]·수자해좆싹[赤箭]·가희톱[白歛]·삿갓풀뿌리[蚤休]·검산풀뿌리[續斷]·절국대뿌리[漏蘆]·박새[藜蘆]·족도리풀뿌리[細辛]·칡뿌리[葛根]·석죽화[瞿麥]·외나물뿌리[地楡]·승검초뿌리[當歸]·마뿌리[山藥]·하눌타리뿌리[括樓根]·버들옷[大戟]·자리공뿌리[商陸]·검화뿌리껍질[白蘇皮]·매자기뿌리[京三稜]·여우오줌풀뿌리[鶴蝨]·나리뿌리[百合]·감대뿌리[虎杖根]·두룹뿌리[獨活]·두여미조자기[天南星]·쇠무릎[牛膝]·
사자발쑥[獅子足艾]
·도꼬마리[蒼耳]·시호(柴胡)·끼절가리뿌리[升麻]·함박꽃뿌리[芍藥] 【붉은 것과 흰 것 두 가지가 있다. 】·호본(蒿本)·구리때뿌리[白芷]·끼무릇뿌리[半夏]·현삼(玄蔘)·쓴너삼뿌리[苦蔘]·더위지기[茵陳]·진봉[秦]·현호색(玄胡索)·부처손[卷栢]·참외뿌리[土瓜根]·속서근풀[黃芩]·단너삼뿌리[黃耆]·으름덩굴[木通]·으름[林下夫人]·낙석(絡石)·지모(知母)·회초미뿌리[貫衆]·수뤼나물뿌리[葳靈仙]·바곳[草烏頭]·방장초(放杖草)·살남람(殺男藍)·들쑥[漆]·며래뿌리[萆]·이리어금니[狼牙]·하국[旋覆花]·겨우살이꽃[金銀花]·금등화[金燈花]이다. 【이상의 잡공(雜貢) 및 약재(藥材)를, 이제 토산(土産)의 희귀(稀貴)한 것은 각기 그 고을 밑에 기록하고, 그 각 고을마다 나는 것으로서, 다만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만은 다시 기록하지 아니한다. 】
재배하는 약재(藥材)는 백변두(白扁豆)·양귀비[粟]·차조기[紫蘇]·영생이[薄荷]·소야기[香薷]·악실(惡實)·겨자[芥子]·삼씨[麻子]·회향(回香)·생지황(生地黃)·장군풀[大黃]·청목향(靑木香)·정가[荊芥]·해바라기씨[葵子]·무우씨[蘿葍子]·순무우씨[蔓菁子]·참외꼭지[眞苽帶]·맨드라미꽃[鷄冠花]【붉은 것과 흰 것 두 종류가 있다. 】·감국(甘菊)·잇[紅花]·율무[薏苡]이다.【이상의 약재는 각 고을의 풍토에 맞는 것을 따라 의원(醫院)으로 하여금 심어 기르게 한다. 〈이것은〉 본래 산이나 들에서 나는 것이 아니므로, 모두 각 고을 밑에 기록하지 아니하였다. 무릇 한 물건이 밭구실[田賦]·토공(土貢)·약재(藥材) 따위에 거듭 나온 것이 많이 있으나, 이제 그 거듭된 것을 좇고, 오직 꿀[蜂蜜]·밀[黃蠟] 따위는 다만 토공에 기록하고, 인삼·오미자(五味子) 따위는 다만 약재난에 기록하여, 다시 거듭 나오지 않게 하였다. 】
좌도 수군 첨절제사영(左道水軍僉節制使營)은 남양부(南陽府) 서쪽 화지량(花之梁)에 있고,【항상 중대선(中大船) 3척과 쾌선(快船) 10척, 무군선(無軍船) 13척을 거느리고 강화(江華)를 수어(守禦)하는데, 장번 수군(長番水軍)이 69명이요, 각관(各官)의 좌·우령(左右領) 선군(船軍)이 총 1천 5백 97명이다. 대개 배 1척에 각기 땔나무와 물을 실어 나르는 삼판소선(三板小船)이 있으며, 그 무군선은 만일 경급(警急)한 일이 있으면 영선군(領船軍)을 모두 징발하여 태우는 것이니, 뒤의 것도 모두 이와 같다. 】영종포 만호(永宗浦萬戶)는 남양부(南陽府)의 서쪽에 있고,【중대선(中大船) 3척, 맹선(孟船) 1척, 무군선(無軍船) 3척이요, 각관의 좌·우령(左右領) 선군(船軍)이 총 5백 10명이다. 】초지량 만호(草芝梁萬戶)는 안산(安山) 서남쪽 모래곶이[沙串]에 있고,【중대선 5척, 무군선 4척이요, 장번 수군(長番水軍)이 8명이며, 각관의 좌·우령 선군이 총 6백 15명이다. 】제물량 만호(濟物梁萬戶)는 인천군(仁川郡) 서쪽 성창포(城倉浦)에 있다.【병선(兵船) 4척, 무군선 4척이며, 각관의 좌·우령 선군이 총 5백 10명이다. 】
우도 수군 첨절제사영(右道水軍僉節制使營)은 교동현(喬桐縣) 서쪽 응암량(鷹岩梁)에 있고,【항상 쾌선(快船) 9척과 맹선(孟船) 3척과 왜별선(倭別船) 1척을 거느리고 교동(喬桐)을 수어하는데, 장번 수군이 2백 95명이요, 각관의 좌·우령 선군이 1천 18명이다. 】정포 만호(井浦萬戶)는 강화부(江華府) 서쪽에 있다.【쾌선 11척, 무군선 10척이요, 강화(江華) 장번 수군(長番水軍)이 2백 46명이며, 각관 좌·우령 선군이 9백 24명이다. 】
좌도(左道) 충청도(忠淸道) 정역 찰방(程驛察訪)의 관할 역(驛)이 7이요,【양재(良才)·낙생(樂生)·구흥(駒興)·김녕(金寧)·좌찬(佐贊)·분행(分行)·무극(無極). 】우도(右道) 정역 찰방(程驛察訪)의 관할 역(驛)이 8이며,【영서(迎曙)·벽제(碧蹄)·마산(馬山)·동파(東坡)·초현(招賢)·청교(靑郊)·교예(狡猊)·중련(中連). 】경기(京畿)·강원도(江原道) 정역 찰방(程驛察訪)의 관할 역이 22이다.【녹양(綠楊)·안기(安奇)·양문(梁文)·풍전(豐田), 그 나머지 18역은 모두 강원도 지경에 있다. 】
좌도 수참 전운 판관(左道水站轉運判官)【광진 승(廣津丞)을 겸하다. 】, 우도 수참 전운 판관(右道水站轉運判官)【벽란도 승(碧瀾渡丞)을 겸하다. 】, 감목관(監牧官) 1인, 의학 교유(醫學敎諭) 1인, 검률(檢律) 1인, 역승(驛丞) 5인이다.
중림도(重林道)의 관할 역이 6이요,【경신(慶申)·석곡(石谷)·반유(盤乳)·남산(南山)·금수(金輸)·종생(種生). 】동화도(同化道)의 관할 역이 5이며,【장족(長足)·해문(海門)·청호(菁好)·가천(加川)·강복(康福). 】평구도(平丘道)의 관할 역이 8이요,【구곡(仇谷)·쌍수(雙樹)·봉안(奉安)·오빈(娛賓)·전곡(田谷)·동백(冬白)·감천(甘泉)·연동(連洞). 】경안도(慶安道)의 관할 역이 7이며,【덕풍(德豐)·아천(阿川)·오천(吾川)·유춘(留春)·양화(楊花)·신진(新津)·안평(安平). 】도원도(桃源道)의 관할 역이 6이다.【구화(仇和)·백령(白嶺)·옥계(玉溪)·용담(龍潭)·단금(丹金)·상수(相水). 】
【영인본】 5책 614면
【태백산사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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