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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다음주 수요일로 다가왔다. 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게 되는 것이 큰 특권이요 성도의 가장 큰 기쁨이 된다.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은 인간의 타락 사건으로부터 생각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에덴 동산에 두셨다.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과 그 후손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의와 공법을 따라 사는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심이었다. 복된 질서와 평화와 사랑이 충만한 나라를 건설하며 살도록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온 세상은 아름답고 조화를 이루며 활력이 넘쳤다. 그런데, 한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주로 모시고 섬겨야 하는 거룩한 영적 질서를 받아들여야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에덴 동산 중앙에 심어놓고 그 나무 실과는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 것이라는 경고도 주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 명령을 어겼다. 그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사탄의 꾐에 빠져 따먹고 말았다. 이로써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보다, 자기 뜻대로 살 것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이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자유인이 아니라 마귀의 종이 되었고 죄의 종이 되었다. 저주와 사망의 처참한 열매를 거두고 말았다. 그리하여 인간 세상과 자연 세계가 저주를 받고 파괴되고 질서가 무너지고 말았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인간의 평화와 질서가 바뀌었다. 노동은 하나님의 재창조의 기회가 아니라 땀흘려 먹고 사는 고통의 저주가 되었다. 자연은 인간의 권위에 순종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제공하는 존재가 아니라 가시와 엉겅퀴가 나며 인간을 도려 공격하는 자연의 역습 현상이 일어났다. 동물들도 아담에게 순종하던 상태에서 인간을 공격하였고, 자연재앙들이 일어나 인간은 늘 전전긍긍하는 신세로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게 되었다. 그리고 영원한 형벌 지옥에 떨어지는 신세가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을 거절한 심령 깊은 곳에 공허함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만들어 숭배함으로써 그 허무감을 더욱 헛된 것으로 채웠다. 물질을 하나님처럼 숭배하기도 하였다. 쾌락을 숭배하였다.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삶의 무의미에 시달렸다. 그러면서 헛된 신화와 철학에 의지하여 신적 세계를 혼돈 속에서 자기 식으로 그려갔다.
선교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모든 종족들은 아무리 미개할지라도 그들은 종교성을 다 갖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텅빈 마음의 공간이 모든 인간의 공통점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그러한 타락 후에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악함이 심판받아 마땅하지만 하나님은 이 엄청난 대 반역 후에도 인간에게 아무런 의무도 없고 책임도 없으시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다. 그의 자유로운 전적인 긍휼하심으로 그렇게 결정하신 것이다. 그럴만한 아무런 책임은 결코 없으시다.
그러나 그러한 구원은 결코 하나님의 성품과 불일치하게 진행될 수 없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의 방도를 그의 공의의 법도에 맞게 결정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방도는 모든 인간의 죄가 합당하게 그 죄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죄값이 치러지지 않은 채 용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전의 관계로 돌아간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공의의 하나님이실 수 없기 때문이다.
죄란 무엇인가? 죄의 근본적 성격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죄를 무죄방면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죄의 값은 무시한 것이며 그 죄의 심판은 영원한 것일 수밖에 없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죄에 대한 공의로운 형벌은 엄격하고 무섭고 파괴적이다.
마태복음 5:29~30,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이처럼 지옥이란 무엇인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불꽃인 것이다. 지옥의 불은 영원한 불이다. 그 불못은 유황불이요 결코 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지옥에 떨어진 자는 죽고 싶으나 죽을 수 없는 영원한 고통 중에 사는 형벌이다. 그것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열매다.
이러한 하나님의 거룩하심, 공의로우심을 만족시키면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죄인된 인간이 구원을 받는 길은 무엇인가? 이와 같이 죄로 말미암아 이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건져낼 구원자는 어떤 존재인가?
그 구원자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래야 그는 하나님의 공의도 만족시키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죄인들인 우리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중보자가 될 수 있다.
세 가지 조건 중 그 하나는, 그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담은 인간의 첫 사람으로서 인간의 대표로서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이 범죄했기에 구원자도 역시 인간이어야 한다. 하나님만으로도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한다면 그는 인간의 죄값을 지불하지 않은 채 용서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죄를 범한 자가 인간이기에 구원의 중보자도 인간이어야 했다. 천사도 안된다. 하나님도 안된다. 하나님과 사람의 혼합체도 안된다. 그는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그는 죄가 없는 자라야 했다. 죄가 있는 자라면 그는 자기의 죄값으로 자기 목숨을 지불하는 것으로 족할 따름이다. 다른 죄인의 죄까지 감당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죄가 전혀 없어야 했다. 그러나 인간 중에 그 누가 죄가 없을 수 있는가? 모두가 다 아담의 혈통을 따라 죄를 타고난 죄인들이다. 그러므로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죄인의 구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조건은 그는 죄의 대가인 죽음을 맛보아야 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모든 진노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구원자는 죄의 삯인 사망의 값을 지불해야 했다. 이를 위하여 구원자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신 죽어야 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그는 아담의 원죄와 모든 인류의 자범죄를 처리하고 구원하실 수 있는 구원자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신 자만이 구원자가 되시며 그가 죽으심으로써 우리 인간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첫 사람 아담과 그 아내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에 구원의 방도가 되는 구원자를 보내시는 복음을 처음부터 이렇게 계시해주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네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여기 창세기 3:15 말씀에서 여자의 후손은 장차 죄와 형벌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려 오실 구원자를 가리킨다. 여자의 후손이니까 여인의 몸을 통하여 태어나실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러면 어느 민족, 어느 가문에서 태어날 것인가? 그가 황인종인가, 백인종인가, 흑인종인가? 그 중에서 어느 민족, 어느 나라인가? 이것은 아담 이후로 수천년 동안 감추인 비밀이었다. 그러나 때가 차매 그 비밀이 조금씩 벗겨졌다.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 세 아들 중에서 하나님은 셋을 축복하여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하셨다. 이로써 셈의 후손에서 구원자가 태어날 것이 계시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셈의 10대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드러내주셨다. 그에게 이러한 언약을 주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한느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1~3)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를 계시하시고 그 자손을 번성케 하사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주셨다. 이로써 타락으로 어두워진 마음에 우상을 섬기며 죄의 종으로 살던 세상 민족들 가운데 아브라함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유일하게 하나님을 알고 그를 섬기는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계시하시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받아 그것을 준비하는 계시 수납자들이었다. 창조주시며 구원자시며 역사의 주관자시며 심판장이신 하나님,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모시는 복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특별한 특권이자 또 한편 큰 짐이었다.
어찌 그 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사람으로서 감당할 수 있으랴?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의 공동체가 어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 위엄, 영광, 그의 자상하신 인도하심과 축복하심을 늘 경험하며 살았지만, 타락하고 완악하고 거역하는 아담 자손의 부패한 본성 때문에 거역하고 우상 숭배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숱하게 매를 맞고 시련을 당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축복 이면에 그들이 치른 대가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하고 넘어질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늘 소망의 약속을 주셨던 것이 있다. 그것이 곧 메시야 언약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장차 메시야가 오시면 그 때는 너희가 완전해질 것이다. 그 때는 너희 순종이 온전해질 것이다. 그 때는 너희가 완전한 영광 중에 새로워질 것이라는 놀라운 비전들이 반복하여 주어졌다. 그러한 맥락 속에서 구약의 모세 오경이나 시편이나 선지서들은 장차 오실 구원자에 대한 약속들로 가득 차 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북 이스라엘 멸망이 가까운 시기에 남 유다 왕 아하스 왕에게 이 구원자의 약속을 주신다. 사실 이 언약이 실제 이루어진 것은 700년 후이다. 그러나 당시 아하스 왕에게 여러 언약을 주시면서 이 언약을 주시는 것은 궁극적인 구원은 처녀의 잉태로 오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구원자는 노아 후손 중에서 아브라함 후손을 택하시고 그 족보 중에서 유다 지파를 택하시는 예고가 있으시더니 다윗을 왕으로 삼으신 후에 왕의 아들이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그리고 이제 그 후손의 이름으로 임마누엘이라고 일컬은 바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구원자는 처녀의 몸에 잉태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징존느 참 이해가 되지 않고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징조다. 하지만 이 말씀 그대로 훗날 이루어졌으니 다윗 가문의 혈통에서 남자 없이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남으로써 이 예언이 성취되었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인 것이다.
구약 성경의 모든 기록들은 궁극적으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그의 오심에 대한 예언들이 중심적 내용이다. 여러번에 걸쳐 장차 오실 구원자에 대한 예언들이 주어졌으니, 몇 곳을 찾아서 알려드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문을 알려주는 내용이 이새의 뿌리 곧 다윗 가문에서 구원자가 태어날 것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이사야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여기서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다. 메시야가 다윗 가문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뜻이다. 그에게 성령의 강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언인데, 예수님은 세례받으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에게 임하셨다.
둘째, 구원자가 어디에 태어날 것인지 탄생 장소가 예언되었다.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셋째, 구원자가 오셔서 하실 사역에 대하여 이렇게 예고되었다.
사 61:1~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놓임을,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넷째, 구원자의 기적 이적 행하실 일 예고도 있다.
사 35:5~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가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다섯째, 구원자의 대속의 고난 예고가 있다.
사 53: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가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며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그의 십자가 고난이 상세하게 예고되었다. 그의 죽음과 그의 시신이 아리마대 요셉의 묘에 매장된 것까지 예고되었다.
이 외에도 많은 예언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하여 예고되었다. 그리고 그의 죽으심을 예고하였다.
마침내 때가 차매 다윗의 후손이던 요셉과 정혼한 마리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이렇게 계시하였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놀라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라고 대답하였다. 천사가 대답하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그리고 가브리엘 천사는 얼마 있다가 배가 부른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오기를 망설이는 정혼한 남편 요셉에게 임하여 이렇게 말했다.
“다윗의 후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니라”(마 1:20~21)
이 모든 일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함을 이루려 하심인 것이다.
즉 이로써 모든 예언 곧 아담의 범죄 이후에 여자의 후손을 주시겠노라 하신 예언으로부터 시작하여 계속된 계시, 구원자를 보내시겠다는 언약이 예수님께 다 성취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예언대로 예수님이 처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남으로써 인간의 죄성에 물들지 않고 죄없는 인간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는 완전한 하나님이요 또 한편으로는 우리와 동일하신 사람인 것이다. 오직 한 가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죄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구원자에게 이루어질 각종 예언대로, 많은 이적과 기적을 행하셨다. 소경을 눈을 뜨게 하였고 절뚝발이로 뛰게 하였고, 귀머거리로 듣게 하고 벙어리로 노래하게 하셨다. 죽은 자를 살리셨고, 문둥병자를 고쳐주셨다. 수많은 상처와 슬픔을 치료해주셨고 다들 기쁨으로 노래하게 하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역인 십자가에 죽음을 친히 당하셨다.
이로써 인간의 죄로 인하여 내려진 인류의 모든 저주, 죽음과 영원 형벌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열리게 되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 언약대로 사흘만에 죽음을 깨뜨리고 다시 살리심으로써, 죄와 사망의 권세에 매여 있던 인간의 결박이 그를 통하여 부서지게 하셨다. 그럼으로써 예수님이 바로 그토록 오랫동안 계속하여 보내시겠다고 예언하셨던 구원자심을 만천하에 선포하셨다.
이제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의 권세와 저주받은 사망과 영벌의 지옥에서 건지실 유일하신 분이심이 확실하게 증거된 것이다.
이로써 예수님이 오셔서 확실하게 한 것은 다음의 사실이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어떤 죄라도 그를 진심으로 영접하면 죄사함을 받는다. 예수라는 이름이 그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진심으로 믿으면 그의 모든 죄가 사해진다.
또한 저주가 속량된다.
또한 죽은 뒤에 사망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부활의 영광에 동차하게 된다.
또한 예수께서 약속하신 바 영광스러운 천국의 상속자가 된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가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
또한 영원한 사망의 불꽃에서 종말의 심판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우리가 수고한 대로 영광스러운 면류관과 상급으로 갚아주신다.
이 같은 약속은 주님이 친히 보장하신 약속들이다. 그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이 이러한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보장한다.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 이러한 축복의 구원을 누릴 길이 없다. 다른 종교, 다른 구원은 없다. 오직 구원의 길은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시며 죄가 전혀 없으신 분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감당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 뿐이다. 주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이 사실을 명심해라
죽으면 끝이 아니다. 죄는 반드시 우리를 찾아내고야 만다. 죄는 이 땅에서도 그 죄를 범한 자를 끝까지 추적한다. 하지만 이 땅에서 그 죄값을 지불할 뿐 아니라 저 지옥에서 반드시 영원히 죄값을 묻는다. 이 죄를 씻고 그 결박에서 자유하게 되는 길은 그 죄값을 지불하는 것뿐이다.
그 죄값을 치르는 길은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본인이 그 값을 치르는 것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다가 주어서 저 영원한 지옥에서 죽지도 못한 채 영원히 고통을 겪는 것이다.
또 하나는 죄가 전혀 없으시나 친히 죄인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피 흘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 내 죄를 넘겨 드리는 것이다. 그에게 넘겨드리는 것은 그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그를 나의 주님으로 모시면 이루어진다.
구약 시대 예루살렘 성전에서 속죄제사를 드릴 때에 죄인은 죄를 깨달으면 소와 양과 염소를 끌고 와서 제사장 앞에 선다. 그리고 제물된 짐승의 머리에 자기 손을 얹고 지은 죄를 입술로 고백한다. 그리할 때 그 짐승에게 그의 죄가 넘어간다. 그리고 난 후에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제단 밑에 쏟고 그 피를 그 사람의 몸에 뿌려서 그 죄를 사한다. 이 짐승은 장차 오실 어린양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을 상징한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가리킨 것이다. 예수님이 어린양의 본체로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 이제 그의 죽으심의 피를 뿌리는 자만이 죄를 사함받는다. 성경에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고 하셨다. 이것은 철칙이다.
우리 주님께서 피 흘려 죽으신 십자가 아래 피하여 그 피로 몸과 마음을 적시지 않은 자는 자기 스스로 죄의 값을 지불하겠다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자기를 던지는 무모한 자요 지옥의 유황불에 자기 몸을 내던지는 무지한 자다.
그러나 기뻐하라. 감사하라. 우리 주님께서 이 모든 죄와 형벌을 대신 담당하셨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죄사함을 받는다. 그를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이를 위하여 피흘리려고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날이 바로 성탄절이다. 이 성탄절은 그러므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마땅히 기뻐하고 춤출 날이다.
구원자가 우리를 구하시려 세상에 오신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날의 의미를 알고 크게 기뻐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육신적인 즐거움으로 이 날을 넘긴다. 우리들은 동방박사들처럼, 베들레헴 목자들처럼 기쁨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축하자. 마음을 다하여 날 위하여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자. 정성을 다하여 경배하자.
그러나 아직도 이를 진심으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가족 친척 자녀들이 있다. 이 귀한 은혜를 진심으로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구원하시려 이 땅에 오셔서 대신 죽으셨고 부활하셨다. 이를 믿는 자는 구원받는다는 이 복된 소식을 전하자. 믿는 자는 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