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지혜
백남오
간절한 소망을 이루지 못했을 때 오는 절망감이란 어떤 것일까. 일시적으로 하고 싶은 작은 목표가 아니라 평생을 두고 도달하고 싶은 꿈을, 이런저런 한계로 중도에 포기하거나 좌절하게 될 때 오는 아픔이란 실로 엄청난 것이리라. 그것은 상처의 차원을 넘어 깊은 한으로 응어리지고 일생을 안고 가야할 숙명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아찔하고 끔찍한 일이다. 나는 그러한 경우를 딸아이 지혜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혜는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지혜로웠다. 착하고 예뻤으며 공부도 잘하고 열심히 했다. 무엇보다도 아빠의 구불구불한 악필을 닮지 않고 인쇄체처럼 글씨를 반듯하게 쓰는 것이 기특하기만 했다.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냉정하고 객관적인 교사의 입장에서 보아도 호감이가는 창의적인 아이였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초중고까지 무난하게 우수한 성적으로 마칠 수가 있었다. 엄마아빠가 맞벌이를 하는 신산한 환경에서도 속 썩이는 일이라고는 없었으니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대학은 약간의 진통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을해 아빠의 후배가 되었다. 대를 이어 국어교사를 하며 훌륭한 문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내심도 작용한 것이다. 처음에는 적성도 아닌데 억지로 전공 선택을 했는가 싶어 걱정을 했지만 대학생활에 잘 적응했고 학과공부도 불만이 없어 보였다. 학점도 우수했으며 교우관계도 원만했다. 자매대학의 어학연수 시험에도 붙어 장학금으로 4주간 미국을 다녀오는 행운도 얻었다. 졸업할 때는 복수전공으로 일본어정교사 자격증까지 가지고 나왔다.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해 최고수준의 토익점수와 일본어회화 2급 자격증도 땄다. 그 정도가 되니 혼자서 세계여행을 몇 개월씩이나 다니기도 했다. 그럼에도 교사의 관문인 임용고시에는 두 번이나 떨어졌다.
윤인숙 교장의 도움으로 특수학교 기간제 교사로 몇 년간 출강하게 되었다. 일 년 쯤 지난 어느 날, 전공을 특수교육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국어보다는 오히려 특수 쪽에 더 흥미와 관심이 간다는 것이 아닌가.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대학원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해야 한다며 의지가 단호하면서도 확고했다. 다음해, 기숙사가 있는 대학원에 진학을 하여 다섯 학기를 공부한 끝에 석사학위와 ‘중둥국어 특수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해 임용고시에 응시했으나 또 불합격이었다. 두서너 명 모집에 수백 명이 몰려오고, 소수점 차이로 당락이 좌우되는 현실은 처음부터 무모한 싸움이었을지도 모른다. 되는 시험이 아니었다.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 무렵 아내는 아예 바깥출입을 끊어 버렸다. 직장 외는 어떤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아이는 아이고 우리는 우리라면서 타일러 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이러다 몇 사람을 죽이는가 싶어 정말로 걱정이 되었다. 나는 냉정하게 결단을 내려야할 때라 생각했다. 일단, 이 불확실한 전쟁에서 아이를 구해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사실 사투를 벌이는 이 관문을 통과한다 해도 그 끝은 무명의 교사 외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아주 조심스럽게 설득을 해보기로 했다.
“지혜야, 아빠가 선생 30년을 했는데 네 알다시피 지금까지도 이렇게 평교사로 아무런 비전도 없지 않느냐. 지금 네가 그렇게 되고자하는 시험에 붙어봤자 결국은 교사가 아니냐. 너의 능력이면 오히려 더 큰 세상으로 나가 더 웅대한 꿈을 펼치는 것이 맞는 길이지 싶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과감하게 접어버리고 새 출발하는 것이 어떻겠니.”
이런 요지의 발언을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왜 할 말이 없었겠는가. 침묵의 의미는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나 역시 딸아이의 속내를 왜 모르겠는가. 교사가 되고 안 되고는 본질이 아닐 것이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절망과 자존심이 문제다. 오랜 세월 모든 것을 다해 완벽하게 준비를 해 왔는데 구조적인 정책의 모순으로 그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오는 좌절감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수없이도 많은 한 맺힌 젊은 지성들을 어찌할 것이며, 이 나라의 미래는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설득에 실패했고 아이의 신념은 강했다. 이 일을 어이할꼬. 나는 두려웠고 너무 슬퍼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절박한 수험생에게 일 년이란 시간은 처절함 그 자체다. 그럼에도 일 년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는 이판사판으로 특수국어 3명을 뽑는 부산시교육청에 원서를 넣었다. 마지막 배수진을 친 것이다. 지난해도 1차 필기시험과 2차 논술까지는 합격했지만 3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피를 말리는 일이 아닌가. 최종합격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드디어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적멸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피해갈수 있는 그 어떤 방법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숨 한번 크게 쉬고 컴퓨터를 켰다. 백 지 혜....분명, 그 이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오, 하느님. 기뻤다. 내가 기쁜 것은 지혜가 교사가 되어서가 아니라 한이란 응어리를 떨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도 되고 싶어 했던 그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오는 아이의 아픔을 곁에서 지켜볼 자신이 없었음이다.
새봄이 시작되는 3월, 부산 다대포의 파란바다가 보이는 아담한 중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부임했을 때는 꽃다운 20대를 송두리째 날리고 서른이라는 나이를 넘기고 있었다. 또 슬펐다. 그런데도 웬일인가. 그 지긋지긋한 공부의 뿌리를 뽑아 보겠다며 대학원 박사과정에 덜컥 입학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 좋다. 그게 너의 뜻이라면 다시 더 도약해 보아라. 이제 꿈 하나 이루었으니 어쩌면 인생은 지금부터다. 참으로 크고 넓은 세상, 모든 역량을 다하여 뛰고 싶은 만큼 높이, 날고 싶은 만큼 멀리 날아올라 보라. 이 땅의 수많은 젊음들의 아픔과 고뇌도 함께 생각하며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세상을 품을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할 것이 또 하나 더 있다. 임용합격, 그것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가족끼리 화합하고 동료들과 더불어 어울리며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다. 이것은 사람의 기본 도리인 동시에 지도자로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명심 또 명심하길 바란다.
어머니 아버지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마음껏 날아라, 지혜!
백남오: 2004년『서정시학』등단. 수필집『지리산 황금능선의 봄』『지리산 빗점골의 가을』『고등학교 문학』교과서(지학사) 공동저자.
첫댓글 지혜가 임용고사 최종합격 소식을 접했을 때
저도 한 없이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끝까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내 꿈을 이룩한 백지혜 분명 아버지의 대를 이어 훌륭한 국어교사로서 역할을 잘 해낼것이라 생각합니다
딸 곁에서 그 험난했던 과정을 지켜본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제 가슴 한켠 아려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가는 지혜양의 꿋꿋함이 대견합니다.
그럼에도 곁에서 마음졸이며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도 절절하구요.
날아라 지혜, 글에 딱 맞는 제목인것 같습니다. 홧팅 지혜~~
가족에 관한 글은 첫 작품입니다
딸아이를 통해서 시대의 아픔을 표현해보려 했는데 제대로 전달이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파도야 쳐라 그래야 내 가슴도 뛴다는 말이 생각 나네요. 그런 고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그 열매가
더욱 달콤한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 의지가 부럽습니다. 지혜양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계속되길 빕니다.
머리속으로만 댓글을 달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때...
임용고시에 낙방했다는 아들 친구들 소식이 가슴 아프게 전해옵니다.
독서실 칸막이 안에서 희망의 불씨를 키워 오던 아이들의 축 처진 어깨가 떠오르며
교수님의 글이 더욱 절실하게 와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