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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人 肉
녹여버릴 것 같은 무서운 열기였다. 나뭇잎은 모두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나뭇잎뿐만 아니라 식물은 모두가 누렇게 타죽어 가고 있었다. 최대치는 나무 밑으로 기어갔다. 이제는 서서 다니는 것보다 기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는 짐승보다 더 흉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뼈만 남아 완전히 제모습을 잃고 있었고 옷은 걸레조각이 되어 몸의 중요한 부분만 가리고 있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앙상한 갈비뼈가 금방이라고 부러질 듯 팽팽히 불거져 나오곤 했다. 한쪽 엉덩이가 그대로 누더기 자락을 헤치고 드러나 있었는에, 살이 완전히 빠져 몸의 움직임과는 따로 노는 것 같았다. 기는 것이 끝나면 다음에는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며칠이 걸릴까. 1주일 이상은 걸리겠지. 여기서 살려면 다시 일어나 걸어야 한다. 무엇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먹어서 힘을 만들어야 한다. 아, 먹을 것이 없을까. 아무 거라도, 쥐고기라도 좋다. 마지막 식량을 먹어치운 지가 언제 였더라. 기억이 안 난다. 그는 나뭇가지로 땅을 후벼팠다. 뿌리가 나오자 그것을 칼로 자라라 입속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무슨 나무인지 이름을 알 수 없었으나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 나무 뿌리에 수분이 제일 많았다. 사고기능이 정지된 지는 벌써 오래다. 겨우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서로 연결도 되지 않는 단편적인 것들뿐이다. 이대로 며칠만 더 지나면 완전히 짐승처럼 되어버릴 것이다. 아니, 이미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들어 그는 눈을 감은 채 나무 뿌리를 씹었다. 무엇보다도 비가 오지 않아 갈증을 견디기 어려웠다. 나무 뿌리로 겨우 목을 축이고 나면 그 뒤에 오는 갈증은 더욱 심했다. 그는 입을 벌린 채 헐떡거렸다. 몸이 마를대로 말라 더이상 수분이 나올 것 같지도 않은데 계속 땀이 흘러내렸다. 대때로 여옥과 동진의 얼굴이, 늙은 부모님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갔지만, 그것은 다만 하나의 영상으로 그쳤을 뿐 그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런 것은 아득히 먼 엣날에 흘러가버린 꿈같은 것으로 그의 가슴 속에서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삶에 대한 본능적인 욕망도 이젠 쓰러지고 없었다. 다만 배가 고프기 때문에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는 손바닥을 펴보았다. 껍질이 허옇게 벗겨지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툭툭 튀어나와 이상하게 보였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한숨을 쉬었다. 울려고 해보았지만 울음이 나오지 않는다. 가슴이 빈 나무통처럼 텅 비어 아무 느낌도 일지 않는다. 그는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별로 감각이 없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고 있었다. 조금 지나자 시야가 흐릿해 왔다. 이글거리던 그의 눈빛은 이젠 빛을 잃고 멀거니 떠져 있을 뿐이었다. 초점도 없었고 생기도 없었다. 입술도 허옇게 벗겨지고 있었다. 입속도 헐고 있었다. 아, 물......물......물...... 그는 죽어가는 짐승처럼 우우 하고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겨우 입가에서 맴돌다가 말았다. "죽어야지." 그는 중얼거렸다. "나는 죽는다." 그는 손톱을 세워 허벅지를 긁었다. 어느새 그의 머리 위로 독수리들이 날고 있었다. 이곳 독수리들은 사나운 놈들이었다. 사람을 뜯어먹는 이놈들은 여기저기가 털이 빠져 흉하기 짝이 없었다. 이윽고 놈들은 바로 앞에 있는 나뭇자기에 날아와 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대치를 바라보았다. 부리가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고 있었다. 꺼억 꺼억 꺽. 한 놈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자 나머니 자른 놈들도 따라 울었다. 꺼억 꺼억 꺽. 꺼억 꺼억 꺽. 매우 음울하고 기분 나쁜 소리였다. 이놈들이 나를 뜯어먹을 모양이구나. 나쁜 놈들. 오기만 해봐라. 목을 비틀어 죽여버릴 테니까. 그는 돌을 하나 집어던졌다. 그러나 돌멩이는 나무 중간에도 오르지 못하고 떨어졌다. 다시 하나 던져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독수리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도망치려고 몸을 움직이는 놈 하나 없었다. 움직이는 것은 파리떼뿐이었다. 내가 쓰러지면 저놈들이 달려들겠지. 그리고 먼저 내 눈알부터 파먹겠지. 내 눈알을 파먹다니. 그는 한쪽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앉아 있는 자리로 벌레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는 다시 다른 나무 밑으로 기어갔다. 파리떼가 윙 소리를 내면서 뒤따랐다. 그 나무 밑에 해골이 하나 있었다. 그것과 함께 뼈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일본군 모자와 걸레조각처럼 해진 옷가지도 있었다. 그것을 봐도 대치는 아무 감정도 일지 않았다. 시체를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무서운 마음도 없었다. 나도 이렇게 되겠지. 살은 모두 뜯겨나가고 뼈만 남겠지. 그는 해골을 들어보았다. 해골의 입속에 구더기가 들끊고 있었다. 구더기들은 살이 쪄서 굵직굵직 했다. 그는 해골을 집어던졌다. 이름 없는 병사의 죽음을 누가 이야기해 줄까. 그는 미소했다. 그 이상은 생각되지가 않았다.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 남쪽 하늘로부터 세 대의 비행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너무 높이 떠 있어 별로 움직이는 것 같지가 않았다. 가끔씩 멀리서 포 소리도 들려오곤 했다. 그러나 처음 인팔작전에 참가했을 때보다는 훨씬 누그러져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끝없이 졸음이 밀려든다. 눈을 감으면 바로 환각상태로 빠져든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뒤엉켜 뒹군다. 탕. 갑자기 총소리가 났다. 그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가까운 곳에서 발사한 모양이다. 그는 몸을 움츠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떤 놈이 나를 겨누고 있는 것이 아닐까. 웬 놈일까. 적군이 아닐까. 적군 같으면 나같이 힘 못 쓰는 놈은 생포하겠지. 그러나 둘러봐도 적군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본군이 아닐까.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은 모두 세 명이다. 그중 총을 가지고 있는 놈은 오오에뿐이다. 놈의 총에는 아직 탄환이 남아 있다. 놈은 아직 나보다는 기력이 낫다. 이상하게도 나처럼 많이 굶었는데도 놈은 아직 기운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원래 힘이 좋은 놈이긴 하지만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대치는 총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슬금슬금 기어갔다. 갈대처럼 생긴 잡초 속을 한참 헤쳐가자 맞은편에 누가 걸어오는 것이 오였다. 생각한 대로 오오에 오장이었다. 저놈이 짐승을 잡았나. 대치는 땅 위에 납작 엎드려 오오에의 동정을 살폈다. 오오에는 눈을 휘번덕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주위를 잔뜩 경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조금 후에 오오에는 칼을 빼어들고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짐승이 아닌 사람의 신음 소리였다. 그러나 잡초에 가려 잘 보이지가 않았다. 오오에가 무엇을 하는지는 보이지 않아 알 수가 없었다. 저놈이 누구를 죽였구나. 누굴까. 혹시 이등병이 아닐까. 이등병을 왜 죽였을까. 대치는 소름이 끼쳤다. 아사(餓死)지경에서 이처럼 공포를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세 사람뿐이었다. 그중에서 오오에가 누구를 죽였다면 그 앳된 이등병밖에 없다. 이등병은 곧 죽을 것 같으면서도 죽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아주 끈질긴 놈이고 생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놈이다. 그런데 왜 그를 죽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오오에는 허리를 굽힌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대치는 숨을 죽이고 오오에가 떠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한참 후에 오오에는 몸을 일으켰다. 그가 뒤로 돌아섰을 때 대치는 깜짝 놀랐다. 놀랍게도 오오에의 입은 온통 피에 젖어 있는것이 아닌가. 저놈이 목이 말라 피를 빨아마신 모양이구나! 대치는 사지가 덜덜 떨려왔다. 오오에는 손등으로 입을 쓱 무지른 다음 동굴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무엇인가 핏덩이를 양손에 들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모습이 흡사 대낮의 도깨비 같았다. 그가 사라진 뒤에도 대치는 한참 동안 그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공포가 극에 달했던지 그때까지 기어다니기만 하던 몸이 저절로 일으켜 세워졌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예상했던 대로 이등병이 죽어 있었다. 이등병의 시체는 흡사 실험실에서 해부를 당한 것처럼 온통 갈갈히 찢겨 있었다. 살점이 많은 허벅지와 엉덩이는 숫제 칼로 도려내어져 있어 허연 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복부도 길게 갈라진 채 창자가 밖으로 쏟아져나와 있었다. 벌써 주위에는 벌레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피 냄새를 맡았는지 독수리들도 가까이 날아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대치는 억 하고 소리치면서 허리를 굽혔다. 그러나 워낙 먹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입속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뒷걸음으로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 현기증이 일어 몸이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그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나무를 붙들었다. 오오에가 저렇게 기운이 남아 있는 이유를 대치는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 고기에 맛을 들였다면 앞으로도 계속 사람을 죽일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 아닌가. 오오에가 자기를 잡아먹을 거라고 생각하니 대치는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오오에를 먼저 죽이든가, 아니면 그와 헤어져 도망치는 것이다. 첫번째 방법은 오오에가 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쪽이 실수할 가능성이 많다. 두번째 방법은 위험은 적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아무리 상대가 위험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곳에서는 그래도 사람이 그리운 법이다. 이런 곳에 혼자 남는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더구나 도망친다고 해야 기력이 좋은 오오에가 금방 따라잡을 것이다. 어떻게 할까. 대치는 한참을 망설였다. 나중에 붙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가보는 대까지 갈 수밖에 없다.이렇게 생각한 그는 북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내어 걸으려고 해도 빨리 가지지가 않았다. 겨우 흐느적거리며 걷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을 때 뒤에서 오오에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오오이, 거리 서라!" 대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오오에 오장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이봐, 어디 가는 거야? 도망치는 거지?" 대치는 대답할 힘마저 없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기진한 몸으로는 재빨리 피할 수도 없었다. "이리 와! 탈주병은 어떻게 되는 줄 알지?" 대치는 하는 수 없이 오오에 앞으로 다가갔다 오오에의 총이 금방 불을 뿜을 것을 생각하니 앞이 보이지가 않았다. 모든 것이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이제 나는 저놈 오오에 총에 맞아 죽는 것인가.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땀방울이 눈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눈을 바로 뜰 수가 없었다. 오오에가 총대로 어깨를 후려치자 대치는 그 자리에 힘없이 쓰려졌다. 오오에는 대치 앞에 버티고 서서 일장 훈시를 했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너는 죽을 때까지 나하고 행동을 같이 해야 한다. 우리는 부대로 돌아가야 해. 절대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낙오병이 된 것만 해도 수치스러운 일인데 도망을 치다니 너는 총살감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살려준다. 여기선 도망칠래야 갈 곳이 없다. 적군한테 투항할 생각인 모양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여기엔 적군도 오지 않는다. 적군이 있다해도 투항하기 전에 내가 먼저 네놈을 죽이겠다. 나는 반드시 부대로 돌아간다. 나는 불사신이야. 내가 이렇게 아직도 건강한 이유를 너는 모를 거다. 이것이 바로 대일본제국 군인의 군인정신이라는 거다.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항복하지 않고, 어떠한 경우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황군의 빛나는 정신이다. 일본군은 절대 죽지 않아. 너 같은 죠센징이나 죽을까, 나는 죽지 않아. 너는 아직 군인정신이 덜 들었어. 똑바로 서봐. 내 말을 잘 들으면 넌 살 수가 있어. 말을 안 들으면 다꾸찌처럼 너두 죽는다." "다꾸찌 이등병이 죽었습니까?" 대치는 그 경황에도 시침을 떼고 물었다. 오오에는 피가 말라 붙은 입술을 씰룩거렸다. "아까 총소리 못 들었나. 도망치려고 해서 내가 쏴 죽였다. 둘이 남았다고 해서 딴 수작하면 너도 그 꼴이 된다. 우리는 엄연한 군인이다. 단 둘이라도 상관에게 절대 복종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있는 한 군기는 살아 있다. 나는 군기를 지킨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대치는 힘없이 대답했다. 당분간이나마 위험을 모면했다고 생각하지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앗다. 다꾸찌를 먹어치운 것이 발각된 줄 알면 이놈은 즉시 나를 죽일 것이다. 절대 모른 체해야 한다. "목소리가 작다. 큰 소리로 대답해 봐. 알겠나 모르겠나?" "알겠습니다." "아직 작다. 좀더 큰 소리로 열번 복창하라!"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음, 좋아. 됐어. 너는 지금부터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서 본부로 와라. 맛있는 것을 주겠다." 오오에는 동굴을 본부라고 부른다. 군인정신이 투철한 놈인지, 아니면 미쳐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오오에가 먼저 동굴로 돌아가자 대치는 나무를 하기 시작했다.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 놈을 안심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기회를 노릴 수 밖에 없다. 누가 먼저 죽이느냐가 문제다. 대치는 숨을 몰아쉬었다. 오오에가 당장 대치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그나름 대로 계획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꾸찌 이등병을 먹어치웠으니 우선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다시 먹을 것이 떨어지면 그때 가서 대치를 잡아 먹어도 늦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미리 대치를 죽여 놓으면 시체가 썩어벼려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죽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치가 오오에의 이러한 계획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위험이 목전에 다가온 것을 직감으로 느꼈고, 거리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오에가 자신을 잡아 먹을 것을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짐승중에 이보다 더 무서운 짐승은 없을 것이다. 잠깐이지만 그는 사람이 그 정도까지 변할 수 있다는 데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오에 놈을 거꾸러뜨리기 위해서는 나도 그놈처럼 사람고기를 먹어야 하지 않을까. 우선 힘을 내려면 무엇인가 먹어서 배를 체워야 한다. 그런데 주위에는 먹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타죽어가고 있다. 대치는 다꾸찌 이등병의 시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시체를 들여다보자 다시 구역질이 났다. 살점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굶어죽는다 해도 그것을 먹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자기 살을 잘라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치미는 구역질을 손으로 틀어막으면서 그는 돌아섰다. 마른 나뭇가지가 많아서 나무는 얼마든지 할 수가 있었다. 나무를 해가지고 동굴로 돌아가자 오오에는 대치를 떨어져 앉게 했다. "가까이 오지 마. 네놈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오오에는 잔뜩 경계를 하고 있었다. 대치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인 대검까지 빼앗은 그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더 멀리 떨어져 앉게 했다. 동국은 깊이가 10미터 남짓했고 높이는 사람이 서서 다닐 수 있을 정도였으므로 두 사람이 지내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오오에는 동 틈을 뒤지더니 이윽고 성냥을 꺼내들었다. 오오에의 용의주도함에 대치는 새삼 놀랐다. 아직까지 성냥을 지니고 있다니, 매우 치밀한 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성냥알이 네개 남았다. 함부로 쓸 수 없단 말이야. 이제부터 내가 불을 붙일 테니까 너는 불을 죽여서는 안 돼. 숯불을 만들어서 잿속에 파묻어두란 말이다. 불만 죽이면 넌 혼날 줄 알아라." 오오에는 대치를 노려본 다음 나무에 불을 붙였다. 그는 연기가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불을 피웠다. 대치는 이렇게 더운데 저놈이 왜 불을 피울까 하고 의아해 했다. 그러나 그러한 의아심은 곧 놀라움으로 변했다. 오오에는 돌 틈에서 이번에는 시뻘건 살고기를 꺼내더니 그것을 나뭇갖에 끼워 굽기 시작했다. 살점에서는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대치는 치미는 구역질을 참느라고 목에 힘을 주었다. 오오에가 그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왜 그래? 고기 냄새를 맡으니까 속이 뒤집히나?" "네, 그런 모양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먹질 못해서......" 대치는 놈에게 자기가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이지 않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오오에는 대치의 말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워난 치밀한 놈이라 경계심은 풀지 않고 있었다. 고기는 이글이글 기름을 튀기면서 익어갔다. 노린내가 굴 속을 가득 채웠다. 다꾸찌 이등병이 한점 고기로 잘려 저렇게 불에 익어가는 것을 보니 대치는 기가 막혔다. 약육강식이 생활의 원리였던 원시시대로 자신이 갑자기 돌아간 느낌이었다. 오오에의 표정이 그러한 느낌을 더욱 짙게 해주었다. 놈의 표정은 완전히 원시인 그것이었다.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 가운데서 조그마한 두 눈이 원숭이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놈은 사람고기에 맛을 들였는지 벌써 입맛을 쩍쩍 다시고 있었다. "이건 그야말로 귀한 고기다. 멧돼지 고기야. 내가 때려잡은 거야." 오오에는 대치의 반응을 살피려고 눈을 치떴다. 대치는 그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려주었다. 그는 멧돼지를 본 적도 없었고, 과연 그것이 이 지역에 살고 있는지 조차 알 수 가 없었다. 고기가 충분히 익자 오오에는 그것은 두 손에 올려놓고 후후 불어가면서 뜯어먹기 시작했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먹는 것처럼 매우 맛있게 우적우적 씹었다. 먹으면서 그는 대치를 줄곧 감시하고 있었는데 한점 먹어보라고 권하지도 않았다. 먹이를 차지한 개가 그것을 빼앗길까봐 주위를 흘깃흘깃 감시하면서 허겁지겁 먹이를 먹어치우는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대치는 놈이 고기를 먹으라고 던져줄까봐 조마조마했다. 차라리 혼자 모두 먹어치웠으면 하고 바랐다. 놈이 먹으라고 던져주면 억지로라도 먹을 수밖에 없다. 먹지 않으면 놈이 의심할 것이다. 오오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기를 먹었다. 먹다 지친 그는 비스듬히 뒤로 기대앉아 소가 새김질을 하듯이 느릿느릿 입을 놀렸다. 더이상 먹을 수 없게 되자 그제서야 그는 고기덩이를 놓고 눈을 스르르 감았다. 곧이어 그는 끄덕끄덕 졸았다. 그러나 이내 눈을 뜨고 불안한 듯 대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먹다남은 고기덩이를 집어 대치에게 던졌다. "그거 먹어." "전 괜찮습니다." 대치는 당황해서 말했다. "뭐라고? 네가 사양을 하는 걸 보니까 아직 배가 덜 고픈 모양이구나. 잔소리 말고 먹어." 오오에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쪽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분명했다. 대치는 더 거절할 수가 없어 고기덩이를 집어들었다. 고기는 겉만 익어, 오오에가 뜯어먹은 안쪽은 아직도 시뻘건 피로 뭉쳐 있었다. 고기를 입에 대자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참지 못해 억억 하고 토했다. "어, 이 자식 봐라. 먹기 싫은 모양이구나. 배가 고플 텐데 왜 토하는 거지?" 오오에의 두 눈이 날카롭게 치켜 올라갔다. "아, 아닙니다. 너무 굶었다가 먹을려니까 얼른 먹히지가 않아서 그랬습니다." 대치는 당황해 하면서 다시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아무 것도 생각지 않고 아무 맛도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고기를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고기는 질겼고 노린내가 심하게 났다. 그는 입속에 든 고기를 꿀컥 삼켰다. 오오에를 보니, 여전히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대치는 다시 고기를 뜯었다. 이상하게, 실로 오랜만에 분노가 살아났다. 그것은 갑자기 전신을 휩싸면서 그로 하여금 어떤 결단을 내리게 했다. 사람 고기면 어떠냐. 살기 위해서는 내 살이라고 베어먹어야 하지 않는가. 굶어서 죽은들 무슨 뜻이 있겠는가. 그 누가 과연 나의 죽음에 참새의 눈물만큼이라도 눈물을 흘려주겠는가. 네놈이 사람 고기를 먹고 산다면 나는 사람 고기뿐 아니라 그 똥이라고 먹고 살겠다. 대치는 어금니에 힘을 주면서 고기를 어적어적 씹었다. 단단히 결심하고 먹어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그때까지 치밀어오른 구역질이 없어졌다. 노린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대신 입안에는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는 맹렬히 씹었다. 그것이 사람 고기라는 생각이 차츰 사라져갔다. 침과 뒤섞여 가루가 되면서 고기는 구수한 맛을 풍기기 시작했다. 이 놀라운 변화에 그는 멈칫했다. 입의 놀림을 멈추고 기다렸지만 구역질은 나지 않았다. 그대신 마비되어 있던 식욕이 걷잡을 수 없이 몸을 엄습했다. 그것은 고통이 되어 몸 속을 쿡쿡 찔렀다. 문득 이러다가 정말 내가 사람 고기나 먹는 짐승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고 그는 다시 맹렬한 식욕에 사로잡혀 몸을 떨었다. 지금 내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미 나는 짐승이 아닌가. 그렇다. 나는 짐승이다. 짐승이다. 짐승이 무슨 쓸데 없는 생각을 한단 말인가. 짐승 같은 놈. 모두가 짐승이다. 모두가 짐승처럼 미쳐가고 있다. 그는 다시 힘차게 씹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는 더 고기맛이 돋았다. 소금 생각이 간절했다. 소금에 찍어 먹는다면 맛이 한결 나을 것 같았다. "맛이 어떠냐?" 오오에가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 좋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이 자식. 좋아서 눈물까지 흘리는 구나. 나한테 감사해. 누가 너를 그렇게 생각해 주겠어." "감사합니다." 대치는 절을 꾸벅했다. "은혜를 잊지 않겠지?" "네, 잊지 않겠습니다." 이놈이 나를 안심시키려고 갖은 수작을 다하는구나 하고 대치는 생각했다. 죽어가던 그의 몸은 한 덩이의 인육으로 해서 생기를 되찾은 듯했다. 놀라운 변화였다. 나중에 그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주먹만한 고기덩이였기 때문에 그것으로 공복을 채울 수는 없었다. 일단 고기에 맛을 들인 터라 배고픔은 더욱 극심했다. "더 먹고 싶나?" 오오에가 물었다. "네." 대치는 피에 접은 입술을 혀로 핥았다. "안돼, 이 자식아. 지금 모두 먹어버리면 나중에 굶어 죽는다." 오오에는 엉덩이를 온통 도려낸 듯한 큼직한 고기덩이를 꺼내더니 그것을 얇게 썰기 시작했다. 칼이 잘 들지 않자 그는 돌에 대고 그것을 썩썩 갈았다. 고기를 모두 썰자 그는 그것을 대치 앞으로 모두 던졌다. "이걸 밖에 가지고 나가 말려라. 파리가 달라붙지 못하게 지키고 있어. 만일 썩기만 하면 넌 기합이다. 한 점이라도 먹어서는 안돼.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대치는 고기를 들고 일어섰다. 그가 밖으러 나가려고 하자 오오에가 다시 소리쳤다. "이 자식아! 경례도 안 해?" 대치는 차렷자세로 서서 경례를 했다. 오오에는 만족한 듯 그의 경례를 받았다. 졸리운지 그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대치는 밖으로 나가 고기를 널었다. 그리고 그 곁에 앉아 파리를 쫓았다. 냄새를 맡은 파리들이 시커멓게 몰려들고 있었다. 쫓아도 쫓아도 파리들은 자꾸만 달라붙었다. 대치는 나뭇가지를 꺽어 휘저었다. 고기를 먹고 싶었지만 오오에의 명령을 어기고 그럴 수는 없었다.놈에게 기합을 받으면 배겨낼 것같지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