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인은 왜 ‘인간의 영혼’을 ‘갈대’에 비유한 것일까요?
갈대가 바람을 만나면 흔들리듯. 우리가 문제 상황을 겪을 때 우리의 삶은 흔들린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와 수많은 갈등 속에서 고뇌하는 우리는 한편으로는 나약해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갈대를 본 적이 있는가? 그럼 바람에 뽑혀버린 갈대를 본 적이 있는가? 갈대는 매서운 바람에도 뽑히지 않는다. 자신의 뿌리를 굳어버린 땅에 박고는 바람을 견딘다. 그런 갈대에 인간을 비유한 건, 시인이 우리가 흔들림을 극복할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 아닐까? 그건 시인의 믿음 일 수도 있고, 바램일 수도 있지만. 시인은 갈대와 인간을 강인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2. ‘넉넉히 흔들리거니’란 표현을 ‘조급히 흔들리거니’로 바꾸었을 때, 느껴지는 의미의 변화를 고려하여 ‘넉넉히 흔들린다’는 구절의 의미를 추론해 보세요.
‘넉넉히’라는 단어와 ‘조급히’라는 단어를 비교해봤을 때, 조급히는 이전보다 어감이 다소 부정적이다. 갈대가 흔들리는 모습을 우리가 겪는 갈등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갈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며, 전자는 갈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흔들림이란 우리가 살면서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흔들림을 ‘넉넉히 흔들린다’라 표현하면서 갈등의 이점을 일깨워 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모자라지 않는 적당한 갈등은 우리를 성장하게 해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3. 인간의 영혼이 고통에 직면함으로써 얻어지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세상에는 견딜 수 있는 고통과,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고통은 될 수 있으면 멀리하고, 그것에서 도망가는 것이 훨씬 현명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요?
고통은 ‘견딜 수 있는가’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란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인데, 그 고통을 극복해 내느냐는 그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사람의 팔과 다리를 남김없이 모두 자른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하지만 팔이나 다리가 하나라도 남아있으면 기어가는 걸어가든 나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고통을 견디고 싶다면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허나 그 대상을 남에게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나 자신에게서도 의지할 구석을 찾아야 한다. 이 시의 갈대가 자신의 뿌리에 의지해 바람을 견디고 있듯이 말이다. 그리고 고통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갈대가 바람을 피해 숨던가? 갈대는 단지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버틴다. 고통은 맞서야만 하는 게 아니다. 버티는 것만으로 족하다. 영원한 고통은 없기에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 혹은 잊힐 때까지 버틴다면 그건 또 다른 극복이라고 할 수 있다.
4. 우리 삶에서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와 같은 존재가 있다면 어떤 사람을 예로 들 수 있을까요?
부평초는 뿌리가 없더라도, 흔들리더라도, 물이 고이면 꽃이 핀다. 이 구절에서 시인은 ‘아무리 힘든 상황이더라도 꽃은 피울 수 있다.’ ‘ 때가 되면 다 극복할 수 있다’ 말해주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 그 부평초는 나와 같은 존재 아닐까? ‘부평초는 개구리밥. 그럼 개구리는 개구리밥을 먹나.’ 실없는 소리만 해대는 나지만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해내기로 마음을 먹으면 끝까지 해낸다. 부평초는 뿌리가 없고, 나는 돈과 백이 없다. 그래도 부평초는 꽃을 피웠고, 나 또한 꽃을 피우며 열심히 살고 있다. 아직 진정한 꽃은 못 피웠을지라도 웃음꽃은 이렇게 활짝 피우지 않았는가.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도 않지만 이렇게 즐겁게 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은가. 내가 써 내리는 말이 정답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답하고 있지 않은가.
5. ‘외로움과 고독’은 우리 인간의 삶에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까요? 혹은 어떠한 의미를 제공해 주는 것일까요?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과거에 고독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남들은 그걸 중2병이라고 불렀다. 그때 내 나이는 겨우 11였다. 혼자 있고 싶을 때, 생각할 게 많을 때 나는 고독을 즐겼다. 엑... 그때는 왜 그랬는지 진짜 모르겠는데 나는 외로움과 고독이 좋았다. 물론 지금은 혼자 있는 게 소스라치게 싫다. 3초 이상 정적이 흐르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것 같다. 으엑... 나에게 그 시절은 부끄럽고 어두운 과거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시간이다. 난 내가 잘하는 걸 찾았고, 좋아하는 걸 만들었으며, 싫어하는 것과 못하는 걸 발견했다. 내가 지금 영화감독이란 꿈을 꾸는 것도 고독을 즐긴다며 혼자 영화를 보던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적당한 외로움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외로움이 지속 되면 자신을 돌아보다가 끝으로 내몰기도 하겠지만. 나는 외로움과 고독이 자신을 찾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6. ‘뿌리 깊은 벌판’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갈대가 땅에 뿌리를 박고 있듯이, 스스로 고통을 견뎌내는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시험이라는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서 우리가 스스로 밤을 새우며 공부하는 것, 코라는 구멍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공부하는 것, 남이 시킨 것도 아닌데 노력하며 버티는 것이 그런 상황 아닐까. 어쩌면 몇몇은 이미 뿌리 깊은 벌판에 서 있지 않을까.
7. 이 시 전체를 고려하여 ‘삶의 고통과 역경, 불행’ 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정리해보세요.
시인은 갈대가 스스로 뿌리를 내려 바람을 견디듯 우리도 주체적으로 갈등을 마주하며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불행이란 게 우리 스스로 노력한다고 사라지기는 할까? 내가 당당히 고통과 마주한다고 고통이 수그러들기는 할까? 다소 부정적이지만, 나는 자신이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인도 마지막에 ‘마주 잡을 손 하나’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 삶의 역경과 불행은 혼자 버텨내는 것보다 내 편이 되어주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 버티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다. 내가 그를 격려해주면 그 또한 나에게 응원을 던질 것이다. 그러면 나의 말이 그의 뿌리가 되어줄 것이고 그 또한 나의 뿌리가 되어 줄 것이다. 시인은 개인의 주체적인 극복을 지향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나는 타인의 응원과 위로가 버팀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향한 공감은 우리가 바람을 견딜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러면 갈대는 곧 갈대밭을 이룰 것이다.
첫댓글 돈과 명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나 순간순간 꽃을 피워내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모두 부평초일 수 있다는 말이 참 많이 와닿는구나~~ ^^
선생님 생각엔 네가 반드시 멋진 영화 감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계속 노력하길~~ 너무너무너무 숙제를 잘한 것 같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