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채무
고대 로마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好意)로 다른 사람에게 재물을 주는 증여의 효력을 법으로 인정했다. 로마에서 증여를 받은 사람은 고맙기는 해도 꼭 빚을 갚지 않아도 됐다. 주인이 노예에게 진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게 당연했다. 로마인들은 이런 빚을 자연스러운 빚이라는 뜻에서 '자연채무' ‘불완전채무’라 불렀다. 1~2세기 원수정(元首政) 때 제도로 확립됐다고 한다.
기원전 204년 만들어진 친치아(cincia)법은 증여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받을 사람이 법관을 통해 증여를 이행하라고 요구할 수 있게 했다. 신전과 황제에게 재물을 바치는 증여를 장려하기 위해서였다. 포로나 노예에게 자유를 주면서 몸값을 치를 때도 계약 없이 여러 사람 앞에서 선서만 해도 됐다.
모든 계약과 채권의 효력을 인정하는 근대법에 와서 자연채무는 법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학설상 개념으로 인정받는다. 아직도 실생활에서 '갚지 않아도 되는 빚'이 있기 때문이다. (채무자가 파선선고로 면책을 받은 경우나 채권 채무자가 빚을 없애기로 약정한 경우)
▶1993년 서울지법은 교회 신축 헌금 1000만원을 내지 않은 신도를 상대로 교회가 낸 소송에서 "헌금 약속으로 생긴 채무는 자연채무에 불과하므로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채무자가 파산선고로 면책을 받은 경우나 채권·채무자가 빚을 없애기로 약정한 경우 등도 자연채무다.
해석이 엇갈리긴 하지만 술집에서 손님이 접대부에게 일정한 돈을 주기로 약속한 채무를 자연채무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