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소시집 - 이대흠
나는 말을 잃어버려서 앵무새를 키워요 외 4편
앵무새는 복사기 같아서 주머니에 넣는 게 쉽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고 죽지 않는 앵무새라면 휴대폰처럼 가방에 넣어두고 장작을 패거나 카페에 갈 수도 있지요 장작을 패는 카페를 생각했어요 기분이 꿀꿀할 때는 어떻게든 이어지는 생각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앵무새를 샀다고 너는 말합니다
앵무새를 샀다고?
말을 가르치는 중이라고 너는 말합니다
말을 가르치는 중이라고?
앵무새 모이를 특별하게 준비하고 싶다고 너는 말합니다
앵무새 모이를 특별하게 준비하고 싶다고?
앵무새가 말을 만들어야 하니까
앵무새가 말을 만들어야 하니까?
앵무새는 도대체 어떻게 말을 만들까?
할 말이 없어 너는 말합니다
할 말이 없다는 너의 말이 아파서
할 말이 없는 너의 기분 속으로 들어갑니다
너의 기분을 알아내고 싶어서 너의 기분에 입장 해 상영 중인 기분은 필름이 끊어지지 않아 기분이 말을 하는데 그 말을 이해하는 게 어려워 … 화면 속의 기분을 꺼내 펼쳐볼까 기분은 들판을 이루고 산으로 솟고 강이 되어 흘러가 기분이라는 장소 … 외로울 땐 기분에 가자 … 기분에는 습기가 많고 뜨거운 바람이 불고 기분의 폭포는 말랐어 물줄기 흔적만 남아있는 폭포 속으로
첨벙 들어가려 했는데
머리가 돌벽에 부딪혔습니다 나는 너의 기분을 재생하지 못합니다 앵무새가 아니라서
나는 말을 잃어버렸어 너는 말합니다
너는 말을 잃어버렸다고?
나는 내 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아직은 알지 못합니다
설음, 구개음, 연구개음, 유성음, 음음 음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너는 앵무새처럼 밝은색이 섞인 옷을 입고 너는 시커먼 커피를 마십니다 너는 마시고 말을 잃었다는 너는 말합니다 너는 입술이 붉고 앵무새는 아니지만 앵무새 같은 옷을 입고 나는 시를 생각합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시로 써야 하지? 나에게 묻고 궁리하고 입을 벌려 말하지는 않습니다 너는 앵무새 먹이에 대해 궁리해 봤다고
말합니다 나는 말을 만들고 있습니다
과일도 먹고 고기도 먹어 앵무새는 잡식성이거든
닥치는 대로 먹고 샤워를 좋아해
자유롭게 날게 해줘야 한대
너는 말합니다
왜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야?
들었는데
듣는 태도가 문제야
열심히 듣고 있어
그렇다면 말을 해야지
말을 해야 말을 듣는 거라는 너
경청의 기술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결론
가장 따뜻한 배려는 듣는 것입니다
밥을 주는 건 좋지 않대 코가 막힐 수 있거든
키스는 절대 금물
키스는 절대 금물
비싸거나 위험하거나 둘 중의 하나
네 입술이거나 내 입술이거나 둘 중의 하나
말을 잃어버려서 말이 많은 너와
말을 만들기 위해 입을 다문 나 사이로
앵무새가 날아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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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랑랑랑 그것이 인생
나랑 너랑 랑랑랑랑한다 그것이 일생이다 너는 오락을 하는 데 부지런하다 너는 잠을 자는 데 부지런하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는 너의 단점을 찾는데 부지런한 나를 발견한다 사랑에 부지런해야 하는데 사랑은
랑이 네 개면 사랑이겠지
랑랑랑랑
악다구니를 써대는 네게도 골목길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네게도 꽃 피지 않는 네게도 오직 놀 것만 궁리하는 네게도
랑랑랑랑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에게도 장대비를 쏟아내는 구름에게도 아침이 되어도 기지개를 켜지 않는 우울에게도 바위를 표절하며 쌓인 눈에게도 매니큐어를 바른 돼지 발톱에게도
랑랑랑랑
이번엔 랑을 두 개만 넣자 스푼을 저으며 너는 말한다
아니 네 개가 좋아
어제의 랑은 이미 소화되었을 거야
모욕에게도 자괴감에게도 용기 없음에게도 시기심에게도
랑을 네 개쯤 듬뿍 먹이자
집의 네 기둥처럼 자라는 랑
어쩌면 이 세계를 받치는 네 개의 기둥도 랑일 거야
너의 다리 위로 슬쩍 다리를 걸치듯 랑을 얹으면
새로운 말을 만들 수 있다 고랑 노랑 도랑 라랑 마랑
사랑에서 벼랑까지 순식간에 다녀올 거야 그래서 홀랑
랑을 원하고 랑을 쓰고 랑을 먹고 랑을 싼다
랑랑랑랑 그것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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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검색
이모티콘을 많이 쓴다고 되는 게 아니야
이름을 천 번 써 놓는다고 보일 것 같지도 않아
너의 검색 엔진에 나를 노출 시켜야 하는데
네 마음이 스칠 때
내가 떠올라야 하는데
함부로 꽃핀 마음을 들이민다고 될 것 같지는 않고
심심한 들판을 보여주어도 관심 끌 수 없을 거야
허공에서 막 떨어지고 있는
슬픔을 생중계 할까
파도치는 해변 같은 것도 너무 흔해
사막 같은 마음을 찍어 보낸들
너무 많은 사막 중의 또 하나의 사막이겠지
울고 싶지만 울지 않을래
하트 백 개를 보낸들 네 눈을 붙들 수 있을까
어떻게든 네 마음에 들어가고 싶어
로그인
로그인
네게 들어가려고 수십 번 시도해도
안 되는 로그인
다시 처음부터 이름 넣고
주민등록번호 넣고 주소 넣고
그래도 안 되네
너의 손에 닿는 마우스는 얼마나 기쁠까
네 마음이 겨울바람처럼 차갑게 불어가더라도
그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나뭇잎이 되더라도
느끼고 싶어
너에게 들키고 싶은 내 마음이 있어
네가 하늘이라고 치면 내 얼굴이 떠오르고
네가 치킨이라고 쳐도 내 이름이 떠오르는
그런 검색 엔진을 선물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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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내기 활동을 하면서 해당 업체로부터
경제적 대가를 받기로 한 것은 아니고
사랑을 받을 수는 없나 그렇다면 사랑은
정조대 보병진법 원앙진의 군사무예 특성
정조대 마상재의 군사무예 정착과 그
실제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너는 그립지 않다
내 안에 네가 가득 담겨서 넘칠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시창작 실습을 수강한 학생은 작고한 고정희,
김남주, 김만옥, 문병란, 박봉우,
범대순, 이성부, 조태일, 최하림 시인과 아직 작고하지 않은
혀 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랑이 싹트고 있나
혀를 쟁기질해서 미움 같은 잡초가 자라게 할 수는 없다
강인한, 곽재구, 김준태, 김희수,
나해철, 문순태, 박두규, 염창권,
이대흠, 임동확, 최두석 시인 등 총
69명의 무등산 시 69편이 수록돼
있다. 즉, 다시 말해서 아동학대신고 안전관리감독자 교육자교육에
은퇴한 박지성을 최종 엔트리에 넣었던 히딩크 감독은
여전히 감독으로 재직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랑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따뜻한 손인데
나는 손이 차가워서 커피를 그만 마셔야 할까 고민을 한다
악수할 때마다 미안하다 차가운 손 더구나
자기의 재능을 아끼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하려 한다는 것
재능을 미워하지 말라 차범근 감독의 속뜻, 저자에게 인디라는
별명을 지어주며 사이가 돈독했던 히딩크
감독과 이천수의 부상을 두고 한바탕
설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사연, 사랑의 재능은 개발되는 것이다 발로 차면
된다고 생각하는 공은 둥글고
공은 둥글어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보이지만
모두가 공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
사랑도 마찬가지
사랑을 하려 하지 말고 사랑을 잘 해야 한다 병두야
사랑과 놀고 종일 사랑을 생각하고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할까
사랑이 만족할 수 있게 마르고 닳도록 사랑을 사용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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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킬
책을 만드는 중입니다
일종의 자서전이지요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가 잘려야 하듯이
내 생이 싹둑 베어집니다
살아갈 날들을 미리 쓸 수는 없습니다
반죽을 펴듯이 바닥에 나를 납작하게 눕히고
잉크 대신 피의 글씨를 써나갑니다
바람이 읽고 가고
먼 데서 구름은 곁눈질로 스쳐갑니다
나를 가장 깊이 있게 읽는 자는
살해자입니다
표정이 없는 그의 얼굴에
나의 표정을 발라줍니다
피 맛 좀 보세요
이게 살아있음이었거든요
죽음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말을 가진다는 것
활자에서 싹이 나면 읽을 수 없을 겁니다
딱딱한 바퀴들에게 온기를 가르치고 싶지만
완성된 책은 말을 만들 수 없습니다
둥근 바퀴들은 납작한 나를 읽고 갑니다
바퀴들의 상처가 닿을 때면
나도 모르게 내 몸을 조금씩 떼어줍니다
내 자서전은 그렇게 팔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