倫洞마을의 由來와 朴可權(判尹公) 先生 由積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동> 노산의 고향/
고령에서 성주쪽 33번 국도의 대가천변을 따라가다 보면
수륜면 소재지 1킬로 정도 못가서 오른쪽 大伽川 건너 倫洞이라는 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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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천 멀리 가야산이 보인다)
이 마을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풍수가인 두사충(杜師忠)이라는 사람이
조선에 귀화하여 대구땅에 머물면서 성주에 명당이 많은 것을 확인하고
성주 5名基 중 하나로 지명한 明堂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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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마을 전경)
이곳의 지형은 버드나무 가지의 앵무새 둥지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앵소유지형(鶯巢柳枝形)”이라고 하는데 윤동마을의 洞名 유래를 보면
고려말 개성판윤을 지낸 朴可權이라는 분이 이성계의 세력에 불복하고
가야산에 들어가 은거할 때 가야산 자락 竹栢村이라는 곳에서 정착
세거를 이루면서 坊名을 志士라 칭하고 洞名을 修倫이라 稱한데서
유래가 되어 오늘날 수륜면 修倫里(倫洞)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 가야산으로 은거한 박가권 선생은
順天朴氏의 성주 入鄕祖이시고 판윤공파의 派祖가 되며
오늘날 많은 후손들이 윤동마을과 수륜면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또 이 마을에는 義城金氏 성주 입향조 문절공 김용초(金用超)의
5세손 四友堂 金關石이 조선 중종때 입향하여 약 500년 동안 세거를 이루고 있으며
김관석 선생은 여기에 입향한 후 성주입향조를 비롯한 8분의 조상들을 세덕사에 모시고 있으며
또 원모재(遠慕齋)를 비롯하여 시골 마을에 10여개가 넘는
재실,정자, 사당이 있을 정도로 의성김씨 후손들이
조상을 지극히 숭배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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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당 전경)
박선생이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가야산 동쪽 7부능선 백척바위에
志同巖이라는 글과 함께 “開城判尹 朴可權”이라고 음각글씨가 새겨져 있다.
지동암이란 박가권이 가야산에 은둔하고 吉再는 금오산에 은둔하여
서로 뜻이 같다하여 지동암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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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박가권 선생 청풍비)
가야산 동북쪽 太平洞(옛지명,
이곳은 조선 10승지의 하나인 만수동의 지척)이란 곳의 계곡 상류 바위에
“不二門” 이란 큰 글씨를 새겨져 있는데 이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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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문 표석)
불이문에서 약 500미터 상류에 올라가면
杖?之所 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집신 신고 지팡이를 짚으며
지동암을 오르내릴 때 이곳에서 쉬면서 망국의 한을 삭이던 곳이라 한다.
태평동은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봉양리와 마수리의 경계에 해당되며
인근에는 40여년전 대구 영남고등학교 재단 이사장인 주덕근씨가
별장과 목장을 지어서 운영하던 곳도 있었는데
오늘날 목장은 폐쇄되고 농촌체험마을이라는 작은 목간판만 달려있다.
분명히 사람이 사는 흔적은 있는데 대문은 항상 닫혀 있고
사나운 진돗개만 짖어댄다.
출처- 해군이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