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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우
Lee, Han Woo
프랑스 政府에서 共認받은 韓國의 元老畵家
<아름다운 江山展>
김남수 / 미술평론가, 본지주간
세계의 미술시장은 자국 미술의 우월성을 알리기 위해 심한 각축을 벌리고 있다. 21세기 문화예술전쟁이 파리와 뉴욕, 아시아권의 도쿄와 베이징, 홍콩 등지에서 치열한 국제경쟁을 전개하고 있다. 한마디로 문화예술이 그 나라 그 민족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전략산업으로 급변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지금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와는 몇 백년 앞서가는 선진국의 예술들이 쉬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데 우리를 또 한번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미술은 표절과 모방과 위작시비 등 거의 해마다 퇴행을 거듭하면서 문화예술의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등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미술의 현주소요, 자화상이다.
이번호 10월호 표지작가로 선정된 이한우 화백은 지난 2005년 7월13일~동년 8월 1일까지 프랑스 상원 문화예술위원회가 초청하여 프랑스 미술사상 외국적을 가진 생존작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상원의 룩상부르 공원에 위치한 오랑쥬리 미술관에서 역사적인 작품전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이한우 화백은 오래 국내외 적으로 많은 경사를 맞고 있다. 그동안 작가가 받은 훈포장은 프랑스국회가 추천하여 프랑스국가가 수여한 ‘ 문화기사훈장’ 프랑스 문화예술의 선구자 앙드레말로의 국제문화예술의 공로장 및 감사장, 파리 9구청에서의 고로장 및 감사장 등 한 프랑스 문화교류차원의 민간외교에서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다.
2009년도에는 파리의 권위있는 구상전문지 ‘유니버스 데자르 (Univers des Arts)지가 이한우화백을 6월호 표지작가로 선정하여 대서특필하고 있다. 이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에서 화가 이한우의 명성은 점점 더 높아져 가고 있다. 이한우는 그가 1980년대부터 파리를 비롯하여 각지에서 많은 전시회를 가졌는데, 특히 2005년 ‘룩상부르 오랑주리 미술관 작품전시회’와 2007년 ‘파리 제9구 구청 주최 초대 미술전’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당시, 그의 작품에서 한국 풍경의 아름다움을 매우 개인적인 터치로 표현한 기법은 수많은 찬사를 받았다. 이 개성적인 화가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의 전통 미술 성격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현대 미술 경향을 추구하고 있으며, 음악적이고 시적인 메아리가 풍겨 나오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그가 캔버스 상에 옮겨 놓은 주제들은 과감한 기법으로 어울려져 있기도 하지만 풍경의 혼을 살려 내겠다는 엄정한 작업 성격이 반영되어 있다.
화가 이한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바로 자연의 경이함을 자신의 내적인 시각을 통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자신의 시각이 지닌 현실세계는 자신의 상상 세계에 의하여 한계 지어지고, 그럼으로써 작품들은 단순한 묘사의 경지를 넘어서 구현되고 있다. 화가 이한우의 어느 작품을 보든, 우리는 단번에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각 이미지 요소들에 강렬한 검은 선의 테를 두르고 있으며, 각 구성물 내부의 동일한 색을 검은 선들로 분간하여 이미지를 묘사함으로써 생동감을 주고 있다.
지난 3월 서울의 세종문화회관 미술 전시장에서 열린 회고전을 통하여, 그가 한국의 최고 미술 공모전인 <<대한민국 국전>>을 계기로 데뷔한 1970년부터 현재까지의 작품 변모 과정을 보여주었는데, 관람객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매력적인 전시회였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전통적인 기법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는 정물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는 조금씩 개성과 성숙도를 굳혀 간다.
80년대 후반에는 작품의 색체에 전환을 가하며 풍경화로 관심을 돌리게 되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가 감상하고 있는 그의 특유의 작품세계가 구축되기 시작한 시발점이 된다. 본인은 수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서울에서 그를 만나오면서 그의 작업 에너지와 작품에 스며있는 감동이 어디서 나오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자연은 그의 인생과 그의 미 추구 과정에서 너무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자연은 본질에 해당하며, 바로 자연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세계를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제 작품을 통하여 ‘하늘과 땅’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의 조화를 표현할 수 있다면 저는 예술가로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본인은 한국을 여행하며, 한국의 산들과 해변 풍경들을 음미하며 자주 속으로 생각하였다. ‘아, 이한우 그림 같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인간적인 화가의 놀라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라고 호평 하고있다.
<파트리스 드 라 뻬리에르 (프랑스 미술평론가)>
19세기 중반에 룩상부르 미술관이 설립되었고,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 세계적인 거장 루벤스의 대작 시리즈와‘마리 메디치의 일생’ 연작들을 보관했다가 마침내 국립 루브르박물관에 최종 소장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는 파리의 오아시스로 통칭되는 세계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룩상부르 공원, 현재는 상원으로 사용되는 룩상부르궁(그랑 룩상부르 라 불림)과 보티첼리, 라파엘로, 고갱, 모딜리아니, 마티스 등 미술사적 거장들의 회고전을 유치하는 ‘룩상부르 미술관’그리고 생존하는 세계 각국의 저명한 현대미술 작가들만을 초청 전시하는 ‘오랑쥬리 등 룩상부르 미술관’등이 3대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의 거장 속의 반열에 낀 이한우 화백은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민간차원의 외교활동에 큰 수훈을 세운 것이다.
문화의 선진국인 프랑스 등이 외국작가의 우수성을 발굴하여 자국의 일체 비용을 들여 초대전을 유치하고 있는 판국에 우리 스스로가 이를 외면하고 방임하는 것은 예술을 모르는 후진국의 수준을 그대로 폄하하고 있는 꼴이 된다. 한국의 원로가 세계 예술의 고장, 프랑스 파리에서 이토록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것은 미증유의 전무한 사실이다. 한편 2010년 상반기에 프랑스 파리에 소재한 갤러리무방스에서 초대를 받아 「아름다운 우리강산」이 그곳에서 다시 선보일 예정이다.
李漢雨화백의 作品世界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화의(畵意)나 정신주의는 한국의 산하나 풍경등 신표현주의적 구상회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예술의 독자적인 화풍의 제1기는 고향을 소재로 한 통영만 시대를 들 수 있다. 꿈과 낭만이 농축된 몽롱하고 환상적인 그만의 조형언어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장황하고 불필요한 설명을 떨쳐버린 도식적인 화면분할 등 한국의 나폴리를 연상케 하는 유려하고 아름다운 이 화면들은 작가 이한우가 창출해 낸 새로운 조형언어요,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세계였다. 가시적인 현상세계를 설정해 놓고 심상으로 떠오른 상상의 세계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특히 색채에서 보라와 군청, 연두빛과 갈윤의 빛깔 등 모노톤한 색조에 원근이나 음영을 배제한 평면구성 등은 꿈과 환상의 세계 그것이었고 사라져 가는 자연경관을 예술작품으로 남기려는 조형욕구 때문이었다. 사실주의에서 반추상으로, 완전추상으로 잠시 선회한 작가의 예술이 다시 구상으로 회귀한 것은 신념과 확신에 찬 일대 격변의 제2기를 지적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그 작품에서 이미지나 영감으로 오는 통영만의 솔방울 내음이나 짜릿한 바닷바람, 해안선 따라 완만하게 굴곡진 모래톱이나 화사하고 현란한 원색의 빛깔 등이 사라지고 우리민족의 근간을 이루는 ‘산그림(山影)’이 등장한다. 성황당 산신께 기우제를 드리고 주술적인 기복신앙을 산에 의존했던 겨례의 염원을 성취하기 위해 그는 서양화의 풍경화를 원용하여 동양의 산수화로 환치시키는 실험을 거듭하다가 끝내는 작품으로 완성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서양의 풍경화는 논리적이고 구축적이며 피사체의 단순묘사만을 중히 여긴다면 동양의 산수화는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직관에 의한 감동을 내면의 세계에서 수렴하여 재창조해 내는 것이 특징이요, 여기에는 한국인의 혼과 산의 혈맥이 소통되고 있어 자연과 인간의 친화력을 효과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는 마력이 농축되어 있다.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준법과 산자락, 능선과 봉우리가 황토빛깔이나 산의 색깔 등 모노톤한 단색조로 수놓아지고 있는 것도 한국인의 정서와 향수가 담긴 소박하고 담백한 캐릭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히 작가의 ‘산그림’에서 매우 흥미있는 철학적 사유가 발견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산수화는 사람 인(人)자에서 출발했고, 산의 형태가 사람 인(人)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는 곧 인본주의 사상의 기초가 된 것이라고 작가는 주장하고 있다. 비록 그가 주장하고 있는 상형 (象形) 이론이 가설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동양의 회화사상은 사의성(寫意性 )에 바탕한 심상(心象)예술이기 때문에 양화적인 매재를 수단으로 하여 한국성을 천착하고 있는 점은 한국의 화화사에 엄청난 변화이며 민족의 자주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많은 공감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한우 예술의 제3기는 파리 MB 갤러리의 초대전에 발표한 작품을 지적할 수 있다. 제2기와 제3기가 공히 ‘산그림’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2기는 굵고 두터운 선묘와 필선이 활달하고 박진감 넘치는가 하면 3기는 무수한 선묘가 디테일하게 화면을 구성하고 있으며 아기자기한 물상의 소재들이 등장하고 있어 회화성이 매우 강렬하게 어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무수한 가는 핏줄, 오장육부의 이미지(형상) 등 회화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그림을 소장한 콜렉터들이 “그림과 같은 ‘산그림’의 나라 한국에 가고 싶다.”는 헤프닝이나 찬사와 갈채도 쏟아졌다. 그가 즐겨 다루어 왔던 정물화들도 작가의 실험정신에 의한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예를 들면 표현코저 하는 실상과 배면의 마티엘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표현기법, 옛날 떡살문양이나 귀알문양, 격자문양의 배면작업을 해놓고 그 위에 토기나 모과류 등의 물상을 그려 넣는 이원구성방법, 정물의 실재는 극세필, 극채색, 극사실의 표현의 방법론을 구사하고, 그 배면의 톤은 우리의 옛 것을 이미지화함으로써 구상과 추상이 한 화면에서 공존하는 이원 구성법, 다시 말해 옛과 현대가 만나는 회화양식을 그는 일찍이 터득하고 자기만의 조형언어로 연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랑쥬리 미술관에 초대된 작품을 중심으로 심층 분석을 해보기로 한다.그의 예술은 한국의 산하를 그만의 독자적인 문법이나 언어로 완성하고 있다. 현란한 산자만홍(山紫萬紅)의 원색의 코리아 판타지, 치밀하고 정교한 비로드의 텍스춰를 연상케 하는 공필화법의 화면,세라믹의 색분을 깔아놓은 듯한 초가와 논두렁, 밭이랑과, 송림,원경의 굽이치는 산의 준령들, 이 모든 이미지들은 얼핏 보면 평면과 수직의 중간지대에 있으면서 슐리즘에 비교되는 신표현주의를 완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근에는 자개류(貝類)의 생체를 매재로 사용하는 등 기법과 방법론에서 동양인의 혼과 정신을 불어넣는 사유의 예술을 연출하고 있다. 그의 예술이 한국의 대표성을 지닌 예술로서 세계 속에 우뚝 설 것으로 확신을 한다.
COVER ARTIST
이 한 우
Lee, Han Woo
‘아름다운 우리江山’展
2009. 3. 25 ~ 3. 31
장소 : 세종문화회관 전시실
주최 : (사)세계미술연맹
파리에서 韓國美術의 世界性을 公認받은 頂上의 元老
유럽인들을 놀라게 한 ‘아름다운 우리 江山’展
김남수 / 미술평론가
세계의 미술시장은 자국 미술의 우월성을 고취하면서 미술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심한 각축을 벌리고 있다. 21세기 문화예술전쟁이 나라마다 예술양식을 중심으로 하여 파리와 뉴욕, 동경 등지에서 치열한 국제경쟁을 전개하고 있다. 문화예술이 그 나라 그 민족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전략산업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다. 우리와는 몇 백년 앞서가는 선진국의 예술들이 쉬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사이 우리 한국미술은 표절과 모방과 위작시비 등 해마다 퇴행을 거듭하면서 문화예술의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등 빈사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미술의 현주소요, 자화상이다.
본란 3월호 표지작가로 선정된 이한우 화백은 지난 2005년 7월13일~동년 8월 1일까지 프랑스 상원 문화예술위원회가 초청하여 프랑스 미술사상 외국적을 가진 생존작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상원의 룩상부르 공원에 위치한 오랑쥬리 미술관에서 역사적인 작품전을 가졌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소재로 한 대작(500호, 300호, 200호, 100호, 50호) 등 70여점을 초대전에 출품한 작가는 현지에서 세계 각국 참관객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작가는 명실공히 세계미술의 스타덤에 올랐다.
李漢雨화백 招待展의 各國의 反應
한국 미술사상 프랑스 파리에서 초대된 화가 가운데 규모와 성취도 등에서 가장 큰 전시회는 이한우 화백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실 예술의 중심 메카인 파리에 한국 작가의 작품이 접근하기 힘든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공인된 국제 감정가를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 현안문제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이한우화백의 경우 2003년 2월과 3월 초대와 관련한 상원 의장의 우정 어린 통보를 박았으며 실제는 3년여에 걸친 작가의 예술성, 작품성 등 공인되는 심층 분석을 통하여 이 행사를 주관하는 프랑스 상원의 문화위원회가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자국민도 아닌 외국적을 가진 화가에게 초대전을 결정한 것은 이한우화백의 예술성을 국제적으로 공인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오랑쥬리 미술관의 사용규모는 500평으로 오랑쥬리 미술관 사상 처음 있는 가장 규모가 큰 초대전이었다.
룩상부르궁은 앙리 4세의 왕비인 마리 메디치와 세기적 영웅인 나폴레옹이 궁전으로 사용했으며, 프랑스 혁명이후 지금까지 상원으로 용도 변경되어 19세기 중반에 룩상부르 미술관이 설립되었고,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 세계적인 거장 루벤스의 대작 시리즈와 ‘마리 메디치의 일생’ 연작들을 보관했다가 마침내 국립 루브르박물관에 최종 소장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는 파리의 오아시스로 통칭되는 세계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룩상부르 공원, 현재는 상원으로 사용되는 룩상부르궁(그랑 룩상부르 라 불림)과 보티첼리, 라파엘로, 고갱, 모딜리아니, 마티스 등 미술사적 거장들의 회고전을 유치하는 ‘룩상부르 미술관’ 그리고 생존하는 세계 각국의 저명한 현대미술 작가들만을 초청 전시하는 ‘오랑쥬리 등 룩상부르 미술관’ 등이 3대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의 거장 속의 반열에 낀 이한우 화백은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민간차원의 외교활동에 큰 수훈을 세운 것이다. 문화의 선진국인 프랑스 등이 외국작가의 우수성을 발굴하여 자국의 일체 비용을 들여 초대전을 유치하고 있는 판국에 우리 스스로가 이를 외면하고 방임하는 것은 예술을 모르는 후진국의 수준을 그대로 폄하하고 있는 꼴이 된다. 이한우 화백을 초청한 오프닝 개막전야제에 참석한 양국의 주요 인사로는 파리측에서 프랑스 상원의장 비서실, 문화위원회 요인들, 모리스 블랭 상원의원(한, 불 친선의원협회 회장), 프랑스와 벨렉(국립미술협회 회장-S,N, B, A), 에띠엔 (전 국립협회 회장), 파트리스 드라 뻬리에르(유니버스 드라 편집장, 평론가) 한국측에서는 주철기 주불대사, 모철민 주프랑스 문화원장, 최동환 주프랑스공사, 진수남 관광공사 프랑스지사장, 위정복 지방자치단체 관리사무소 소장, 그 밖에 현지 언론기관, 문화계 인사, 교민 등 수 많은 축하객들로 붐볐다.
한국의 원로가 세계 예술의 고장, 프랑스 파리에서 이토록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것은 미증유의 전무한 사실이다. 이번 초대전의 축사에서 당시 김원기 국회의장은 ‘이번 전시회가 한국미술의 높은 수준을 유럽에 선 보이는 소중한 기회이자, 한국미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술회한바 있다.
다음은 주요 參觀客의 反應을 스케치 해 본다.
(1) 크리스티앙 뽕슬레(상원의원) : “파리 시민들과 함께 한국의 산수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는 이한우 화백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2) 당시 정동채(문화부장관) : “이번 이한우 화백의 전시를 계기로 내년 한-불 수교 120주년 문화행사를 포함해 한국과 프랑스 양국 간에 더욱 활발한 문화교류로 이어지는 토대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3) 파트리쓰 드라 뻬리에르 (미술지 편집장, 미술평론가) : “이한우와 같은 예술가의 그림에 대한 평을 쓴다는 것은 평론가에게는 언제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파리에서 그것도 특별한 장소에서 열리는 명망 있는 전시회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국의 다양한 풍경들을 보여주는 일종의 프레스코를 이루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특징적이고 인상적이었으며 많은 감격을 자아내게 했다. 실제로 자신만의 기교에 의해서 한층 가치가 돋보이는 강렬한 독창성을 느끼게 한다. 영감에 이끌리듯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들은 옛 한국 예술가들에 의해 그려진 자연의 전통적인 표현을 연상하게 하는 풍경이지만 이 주제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현실감 있게 표현된 예술가의 한국적 뿌리나 만물 속에 숨쉬는 기(氣)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놀라운 표현주의적 현대성을 캔버스에 표현했다.”
(4) 장 삐에르(화랑관장) : “이미 대중과의 밀접성을 과시한 성공적인 전시회인 만큼 크게 성공한 사례가 될 것이다.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다.”
(5) 당시 주철기 주불대사 : “정부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해 아쉽다. 정부가 하지 못한 외교적 성과가 지대했다. 프랑스와는 지속적인 문화예술 교류에 의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6) 진수남(당시 관광공사 파리지사장) : “우리가 파리에서 1년이 걸려도 해내지 못한 관광 진흥에 큰 몫을 해냈으니 표창이나 감사장이라도 올려야겠다.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모든 관객이 한국의 자연에 대해 관심이 커졌다. 이는 관광자원 홍보에 믿음을 주는 지평이 되었다.”
(7) 유로저널(교민지-62쪽) :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란 제목 으로 고요한 아침의 평화가 기득한 한국의 산수풍경화들을 선보였다. 초기에 아카데믹한 정물로 한국의 고향 풍경과 우리 유물들의 아름다움을 표현 하였으나 1980년대 이후부터 굵은 선과 획으로 향토적 한국의 미를 형상화한 아름다운 금수강산 연작을 발표해왔다. 대형 화면에 민화적 요소를 첨가한 이 연작은 자색과 청색, 갈색과 노랑, 담홍색과 적갈색, 등의 특징적인 색을 주조로 이화백의 고향인 통영과 다도해 일대의 풍경을 대담하게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8) 한 위클리(교민지-10쪽) : “이 화백은 여섯차례의 국전 수상경력을 비롯 지난 2000년에는정부의 보관 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9) UNIVERS DES ARTS(현지 미술지-24쪽) “이한우의 작업은 확실히 독창적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예술적인 비전이 최대한 흥미를 갖게 하는 표현과 근대사상을 결합하여 우리들에게 소개한다. 그의 팔렛트의 여러 가지 따뜻한 색의 배색들, 예술가의 요술과 같은 보색,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 그리고 건축가의 엄격한 설계와 같은 치밀한 구성력으로 독창적인 풍경화법을 보이는 한국 정상의 예술가를 만난 것이다.”
특히 파리에서의 이번 상원 오랑쥬리 초대전은 다양한 계층의 작품 소장가들을 확보하였다는 점이 큰 성과요, ‘상원 문화위원회’ 소속 전시담당관인 이브마렉씨의 집요한 관심에 이은 100호 작품구입과 이에 따른 이한우화백의 상원측의 배려에 대한 보답 차원 의 200호 작품기증은 오랑쥬리 미술관에 한국 원로의 작품을 소장하는 주효한 효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일반인들에 의한 작품구매는 ‘가족의 유대감’과 한국적 풍경과 프랑스 풍경과의 조화‘를 고려한 구매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확신을 가졌다. 작품을 소장한 구매자들은 한결같이 다음 전시 일정에도 큰 괸심을 가지고 있다.
룩상부르 공원 여기저기에 말없이 흩어져 오가는 방문객들로 하여금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 보게 해주는 세계 유수의 조각작품 수백점이 소장 전시되고 있으며 상원의장 공관과 의원회관 곳곳에는 상원의 상설전시를 위해 구입되거나 기증된 현대 작가들의 회화가 걸려 있는데, 이한우 화백의 작품 두 점도 이러한 대열에 합류하였다는 사실에 한국예술의 무한한 긍지를 느낄 수 있다.
미술문화의 국제화가 가속화되면서 한국미술은 국제 경쟁력에 합류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당면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 동안 우리는 극히 선택된 일부 원로작가들이 국제화단에서 공인을 받았고 세계의 예술양식과 공존을 하면서 교류전을 가져왔다.
작가 이한우는 지난 95년 한국일보 초대전으로 서울 백상기념관에서 프랑스 파리의 크로드 피사로와 2인 초대전을 가진 바 있고 지난 2000 년 5월에 중심가 샹제리제 위치한 MB 갤러리(창설 1백50년)에서 개인 초대전을 가져 파리와 세계인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특히 상원 문화위원회가 작가를 선정하는 모티브는 이러한 전시회의 현장을 답사한 후 내린 결정인 것이다. 당시 파리시 문화담당 부시장과 유네스코 대사 부인, 주불 한국대사, 현지 언론과 외신기자 등 약 300 여명의 축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전과 리셉션으로 대성황을 이룬 이 작품전은 민간차원의 국제외교와 한국미술을 세계 속에 심는데 크게 기여를 한 것이다. 현지 언론은 일제히 대서특필하여 찬사와 갈채를 보냈다 .
李漢雨화백의 作品世界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화의 ( 畵意 ) 나 정신주의는 한국의 산하나 풍경등 신표현주의적 구상회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예술의 독자적인 화풍의 제1기는 고향을 소재로 한 통영만 시대를 들 수 있다. 꿈과 낭만이 농축된 몽롱하고 환상적인 그만의 조형언어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장황하고 불필요한 설명을 떨쳐버린 도식적인 화면분할 등 한국의 나포리를 연상케 하는 유려하고 아름다운 이 화면들은 작가 이한우가 창출해 낸 새로운 조형언어요,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세계였다. 가시적인 현상세계를 설정해 놓고 심상으로 떠오른 상상의 세계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
특히 색채에서 보라와 군청, 연두빛과 갈윤의 빛깔 등 모노톤한 색조에 원근이나 음영을 배제한 평면구성 등은 꿈과 환상의 세계 그것이었고, 사라져 가는 자연경관을 예술작품으로 남기려는 조형욕구 때문이었다.
사실주의에서 반추상으로, 완전추상으로 잠시 선회한 작가의 예술이 다시 구상으로 회귀한 것은 신념과 확신에 찬 일대 격변의 제2기를 지적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그 작품에서 이미지나 영감으로 오는 통영만의 솔방울 내음이나 짜릿한 바닷바람, 해안선 따라 완만하게 굴곡진 모래톱이나 화사하고 현란한 원색의 빛깔 등이 사라지고 우리민족의 근간사상을 이루는 ‘산그림(山影)’이 등장한다. 성황당 산신께 기우제를 드리고 주술적인 기복신앙을 산에 의존했던 겨례의 염원을 성취하기 위해 그는 서양화의 풍경화를 원용하여 동양의 산수화로 환치시키는 실험을 거듭하다가 끝내는 작품으로 완성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서양의 풍경화는 논리적이고 구축적이며 피사체의 단순묘사만을 중히 여긴다면 동양의 산수화는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직관에 의한 감동을 내면의 세계에서 수렴하여 재창조해 내는 것이 특징이요, 여기에는 한국인의 혼과 산의 혈맥이 소통되고 있어 자연과 인간의 친화력을 효과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는 마력이 농축되어 있다.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준법과 산자락, 능선과 봉우리가 황토빛깔이나 산의 색깔 등 모노톤한 단색조로 수놓아지고 있는 것도 한국인의 정서와 향수가 담긴 소박하고 담백한 캐릭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특히 작가의 ‘산그림’에서 매우 흥미있는 철학적 사유가 발견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산수화는 사람 인 ( 人 ) 자에서 출발했고 , 산의 형태가 사람 인 ( 人 ) 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는 곧 인본주의 사상의 기초가 된 것이라고 작가는 주장하고 있다 . 비록 그가 주장하고 있는 상형 ( 象形 ) 이론이 가설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동양의 회화사상은 사의성 ( 寫意性 )에 바탕한 심상(心象)예술이기 때문에 양화적인 매재를 수단으로 하여 한국성을 천착하고 있는 점은 한국의 화화사에 엄청난 변화이며 민족의 자주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많은 공감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한우 예술의 제3기는 파리 MB 갤러리의 초대전에 발표한 작품을 지적할 수 있다. 제2기와 제3기가 공히 ‘산그림’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2기는 굵고 두터운 선묘와 필선이 활달하고 박진감 넘치는가 하면 3기는 무수한 선묘가 디테일하게 화면을 구성하고 있으며 아기자기한 물상의 소재들이 등장하고 있어 회화성이 매우 강렬하게 어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무수한 가는 핏줄, 오장육부의 이미지(형상) 등 회화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그림을 소장한 콜렉터들이 “그림과 같은 ‘산그림’의 나라 한국에 가고 싶다”는 헤프닝이나 찬사와 갈채도 쏟아졌다.
그가 즐겨 다루어 왔던 정물화들도 작가의 실험정신에 의한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예를 들면 표현코저 하는 실상과 배면의 마티엘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표현기법, 옛날 떡살문양이나 귀알문양, 격자문양의 배면작업을 해놓고 그 위에 토기나 모과류 등의 물상을 그려 넣는 이원구성방법, 정물의 실재는 극세필, 극채색, 극사실의 표현의 방법론을 구사하고, 그 배면의 톤은 우리의 옛 것을 이미지화함으로써 구상과 추상이 한 화면에서 공존하는 이원 구성법, 다시 말해 옛과 현대가 만나는 회화양식을 그는 일찍이 터득하고 자기만의 조형언어로 연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랑쥬리 미술관에 초대된 작품을 중심으로 심층 분석을 해보기로 한다.
그의 예술은 한국의 산하를 그만의 독자적인 문법이나 언어로 완성하고 있다. 현란한 산자만홍(山紫萬紅)의 원색의 코리아 판타지, 치밀하고 정교한 비로드의 텍스춰를 연상케 하는 공필화법의 화면,세라믹의 색분을 깔아놓은 듯한 초가와 논두렁, 밭이랑과, 송림,원경의 굽이치는 산의 준령들, 이 모든 이미지들은 얼핏 보면 평면과 수직의 중간지대에 있으면서 슐리즘에 비교되는 신표현주의를 완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근에는 자개류(貝類)의 생체를 매재로 사용하는 등 기법과 방법론에서 동양인의 혼과 정신을 불어넣는 사유의 예술을 연출하고 있다. 그의 예술이 한국의 대표성을 지닌 예술로서 세계 속에 우뚝 설 것으로 기대를 해 본다.
다음은 이한우 화백과의 인터뷰내용을 본란에 게재한다.
對談 : 본지 김남수 주간 / 미술평론가
金: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그동안 적조했습니다. 건강하신지요.
李: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동안 많은 성원에 힘입어 열심히 작품제작에 진력하고 있습니다.
金: 프랑스 파리 상원 문화위원회가 추천하여 ‘오랑쥬리’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지셨고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 국가로부터 동양 미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훈장을 받으셨지요.
李:2006년 프랑스 국가로부터 문예기사 훈장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상원 문화위원회가 추천하여 프랑스 국가가 수여한 훈장이며 동양 예술인으로서 생존작가로서는 본인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金:프랑스정부의 초대 문화성장관이요, 프랑스 예술의 산 증인으로 높은 추앙을 받았던 앙들레 말로의 상을 타셨다는데....
李:그동안 파리시의 MB갤러리, 유네스코회관 갤러리, 파리 9구 청 문화세터 초대전, 미로미술관, 서울에서의 한국일보 초대 피사로-이한우 2인초대전 등 본인의 작품활동 등 공로가 높이 평가되어‘앙드레말로국제문화재단 이상장’ 상을 수상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의 종주국이어서 그런지 외국적을 가진 예술인들에게 까지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것을 보면 후진국인 우리의 미술환경개선에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자성의 기회로 삼고자합니다.
金:선생님의 작품은 동양사상이 농축된 사유와 정신주의가 발현 되는 예술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데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요.
李:서구미술은 실용주의, 물량주의 등 논리적인 구성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기준이 동양의 것과는 많이 다르지 않나 생각행요. 동양의 것은 인본주의, 자연신비주의 등 사유의 철학이 투영된 예술이 아닌가 싶어요. 조선조말 오원 장승업을 주제로한 영화 ‘취화선’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서양의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인상주의 화풍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본인의 작품세계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본인의 작품은 나의 분 신이요, 자화상입니다. 내가 그린 선은 나의 산을 관통하는 혈맥이요, 나의 신체의 모든 부위가 구조적으로 이 혈맥과 관통하면서 예술을 완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도양적 사유의 정신주의가 작품 속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유럽의 관객이 나의 그림에 애정과 호기심을 갖는 것은 그림 속에 동양의 사상과 철학이 배여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金: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많은 공감이 갑니다. 선생님은 서구적인 매재나 재료를 쓰면서도 동양정신을 화폭에 담고 있으며 이 방법론과 정신주의 때문에 세계양식과 접목되고 공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젠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는 천안시 근교에 선생님의 미술관이 준공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만...
李:부끄럽습니다. 여생을 이 고장에서 작업을 할까 생각합니다. 약 100여평의 전시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여건이 허용 되는대로 조금 더 확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고장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미술인들의 문화공간이나 전시장소로 제공을 하고 싶습니다.
金:다가오는 3월 하순경 서울에서 작품전을 갖는다는 소식이 있는데....
李:사단법인 세계미술연맹(이사장 徐堯漢)이 주최를 하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작품전을 가질 예정입니다. 주최측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작품 발표전에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金:장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李:고맙습니다.
이한우
Lee, Han Woo
• 1984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졸업
• 2003 단국대학원 문화예술최고 경영학부 수학
• 1976 개인전 (화랑 그로리치)
• 1978 개인초대전 (대구 이목화랑)
• 1980 국전추천 초대작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2 개인전 (미도파화랑), KBS-TV 미술관 45분 방영 (한국방송공사)
• 1983 현대미술관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경남미술대전 심사위원, 대만역사박물관 초대전
(대만국립박물관), 국전출신작가전 (예총회관), 초대개인전 (서울 진화랑)
• 1985 한국현대미술 초대전 (대만역사 박물관)
• 1986 국립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7 미술세계 개관3주년기념 초대개인전 미술세계상
• 1990 90년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전당 개관 기념초대전 (예술의전당),
한국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 1991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남북미술 합동전 (중국북경),
세계꽃박람회 기념초대전(한국현대미술) (일본오사카)
• 1992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93 예술의전당 전관개관기념전 초대 (예술의전당)
• 1995 한국일보사 초청 이한우 크로드피사로 2인전 백상기념관(한국일보사)
• 1997 인도정부초청 한국현대회화전 (인도 국립미술관),
루마니아정부 초대전 (루마니아 국립미술관)
• 1998 사단법인 구상전 고문, 한국미술협회 저작권회 감사 선임
• 1999 UN세계평화미술대전 초대작가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한국미술 ’99 서울시립
미술대전 초대전 (서울시립미술관), 미술진흥기금마련 한국원로 초대전 (선화랑)
• 2000 프랑스 유네스코 미로미술관 초청 (프랑스 유네스코), 한국신비의 빛깔전(조선화랑),
제19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분과위원장)(서양화), 문화보관훈장 수상 (대통령상)
프랑스 파리 MB화랑 개인 초대전 (MB화랑), 프랑스 2002년 아트코 싸롱전 초대 (아트코시)
• 2002 구상전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 2003 프랑스 파리 CMCOINARP화랑 초대 개인전 (CMCOINARP화랑),
대한민국 국회의장 초대전 (국회위원 중앙홀)
• 2005 조선화랑 후원초대전 (조선화랑),
프랑스 룩상브루 상원미술관 초대 개인전 (오랑주리 미술관)
• 2006 이한우 회화 50년전(아름다운우리강산) (갤러리 미화랑),
미화랑 개인 초대전(예술의 전당), 부산 광역시 문화회관 전시 (미화랑)
• 2007 프랑스 몽마르뜨 미술관 초대전, 프랑스 시 자연관 어린이들 완벽한 조화전,
프랑스 9구청장 공로상 및 감사장 수상, 앙드레말로 문화협회 회장 감사장 및 공로상
• 2008 구상전 100대작전, 중국 베이징 올림픽 조직 위원회 초청전,
중국 베이징 올림픽 특별상 수상(올림픽조직위원장), 세계미술연명회 창립전 출품
• 2009 서울시립미술 초대전 구상 작가전
수 훈
• 2006 Chevalier des arts et des lettres (문예기사훈장, France)
수 상
• 1978 문화공보부장관상
• 1985 경남통영시 문화상
• 2005 서울특별시 문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