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이 부르는 민요 새타령의 가사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이 부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조용필이 부른 것도 그렇다.
산교곡심 무인초 수립비조 물새들이 농촌화답에 짝을 지어 생긋생긋이 날아든다.
물새가 산에서 날아다닐 리도 없고, 생긋생긋은 웃는 모습이지 날아다니는 모습이 아니다. 다른 단어들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원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산고곡심(山高谷深) 무인처(無人處) 울림비조(鬱林飛鳥) 뭇새들이 농춘화답(弄春和答)에 짝을 지어 쌍거쌍래(雙去雙來) 날아든다.
뜻을 해석하면 대략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어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에 울창한 숲 속을 날아다니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봄을 희롱하고 서로 화답하며 짝을 지어 쌍쌍이 날아가고 쌍쌍이 날아온다.
새타령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남도민요 새타령이고 다른 하나는 판소리 적벽가 중에 나오는 새타령이다.
우리가 주로 듣는 새타령은 남도민요 새타령을 편곡한 것이다. 원래의 새타령보다 길이가 짧은 것은 물론이고 곡도 조금 다르다.
편곡된 곡은 새가 날아든다. 새가 날아든다. 온갖 잡 새가 날아든다...라고 시작하지만, 남도민요는 삼월 삼짓날 연자 날아들고 오작은 편편...하며 촉박하게 불러가다가 속도를 늦추어서 새가 날아든다...라고 본 가락으로 넘어간다. 앞부분은 거의 판소리에 가깝다.
남도민요 새타령은 고 김소희 명창이 부른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적벽가의 새타령은 적벽대전에서 대패한 조조가 간신히 몸을 피해 오림(烏林)으로 패주하는 과정을 노래한 것이다.
80만 대군이 오나라의 화공(火攻)으로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고 조조와 그 친위대만이 구사일생으로 퇴로를 찾아 오림 쪽으로 도망한다.
이 때 울창한 오림에서는 온갖 새들이 제 나름으로 형형색색 지저귄다. 새들의 울음소리는 적벽 싸움에서 전사한 조조 군사의 원혼의 화신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 같은 정황을 소리로 묘사해 낸 것이 판소리 적벽가 중의 새타령이다.
적벽가의 새타령은 오림의 풍경을 묘사하거나 패잔의 비애나 참상을 그린 내용도 인상적이지만, 더욱 인상적인 것은 새소리를 그럴싸하게 꾸며내는 명창들의 소리 솜씨다.
적벽가 중 새타령에 능한 사람으로는 조선 말엽 명창 이날치(李捺致)를 꼽는데 녹음기술이 탄생하기 전이어서 현재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날치가 온갖 새소리를 흉내내면 듣는 사람들이 깜짝 속아넘어갈 정도로 실제 새소리와 똑같았다고 한다.
이날치가 어느 날 익산(益山) 부근의 깊은 절간에서 새타령을 한바탕 부를 때였다. 온갖 새소리를 흉내내 가며 흥취가 도도해 갈 무렵 갑자기 좌중에 쑥국새 비슷한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고 한다.
적벽가 중의 새타령의 앞부분은 다음과 같다.
산천은 험준하고 수목은 총잡(叢雜)한데 만학에 눈 쌓이고 천봉에 바람칠 제 화초목실(花草木實)이 바이없고 앵무(鸚鵡) 원학(猿鶴)이 끊겼는데 새가 어이 울랴마는 적벽(赤壁) 화전(火戰)에 죽은 군사 원조(寃鳥)라는 새가 되어 조 승상을 원망하며 지저귀어 울더라.
오림이란 곳이 과연 산천이 험준하고 수목이 총잡한 곳이었을까?
잘 아는 바와 같이 조조는 이 오림에서 조자룡에게 혼이 난다. 판소리 적벽가 중에서 조조가 조자룡에게 쫓겨 도망가는 대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허저는 창만 들고, 장요는 활만 들고, 정욱이는 패군졸을 연거허여 천방지축 달아날 제 이곳은 오림이로구나. 산고곡심(山高谷深) 험한 길에 눈 우에 찬 북풍은 살 쏜 듯 디리 불고 빙판석거 좁은 길로 반생반사 가는 장졸 죽는 자 태반이라.
오림이란 곳은 산천이 험준하고 수목이 총잡한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음은 한명희 교수의 경험담이다.
언젠가 양자강 연안 적벽대전의 옛터에서 멀리 강 건너 호북성을 바라본 적이 있다. 바로 양자강 대안의 조용한 마을이 오림이라는 말을 듣고는 한참을 어리둥절해야 했다.
적벽의 강언덕에서 바라본 오림은 문자 그대로 일망무제의 끝없는 대평원 속에 묻혀 있는 조용한 농촌 마을에 불과했다.
그 옛날 '삼국지'의 시대에는 초목이 울창했을지 모르나 분명한 사실은 그 시절에도 산천이 험준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끝없는 호북평야의 강안에 자리잡고 있는 오림 마을의 주변에는 어디에도 집채만한 동산 하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벽 강변의 오림 마을은 한국의 판소리 한 대목 새타령 속에서 심심산골의 산간 벽지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