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보고, 대구의 재실
43. 전통건축물 유형, 궁·전·누·정·대·당·재·사·헌·각·묘
송은석(대구향교장의·대구문화관광해설사)
프롤로그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통건축물에 대한 해설을 하다보면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누구는 재실이라 하고 누구는 재사 또는 정사라고도 하는데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이다. 이는 전통문화, 유교문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탓이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재실·재사·정사는 서로 성격이 비슷한 건물이다. 이번에는 조금 쉬어가는 의미로 우리나라 전통건축물 유형에 대해 한 번 알아보기로 하자.
궁·전·누·정·대·당·재·사·헌·각·묘
전통건축물에 있어 우리 건축물과 서양 건축물의 가장 큰 차이는 건축 재료다. 서양건축이 돌을 주재료로 하는 석조건축이라면, 우리 건축은 나무를 주재료로 하는 목조건축이다. 이런 차이는 그 지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건축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된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인 우리로서는 나무와 흙이 건축의 주재료가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우리나라 전통건축물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대표적으로 ‘궁·전·누·정·대·당·재·사·헌·각·묘’ 등이 있다. 이는 건축물의 용도에 따른 구분으로 전통건축물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개념이다.
○ 궁(宮)
왕조국가시대에 왕의 거처와 국정을 집행하는 수많은 관청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전체 규모가 100칸을 훨씬 넘는 대규모 건축물로 흔히 ‘궁궐·궁전·대궐’이라 부른다.
○ 전(殿)
전통건축물 중에서 격이 가장 높은 건물이다. 왕이나 대신(大神)이 머무는 곳으로 규모 역시 크고 웅장하다. 경복궁의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 공자를 모신 대성전,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등이 해당한다.
○ 누(樓)
기둥을 세워 건물 바닥을 높이고, 높인 건물 바닥에 마루를 설치한 2층 형태 건축물이다. 대체로 지대가 높고 경관이 좋은 곳에 세웠다. 다른 말로 ‘누각·누옥·누관·누대·대각·층루’라고도 한다. 누와 비슷한 것으로는 누문(樓門)이 있다. 1층은 출입문, 2층은 마루로 사용하는 건물로 달성공원 관풍루(觀風樓), 도동서원 수월루(水月樓), 동화사 봉서루(鳳棲樓) 등이 있다.
○ 정(亭)
잠시 머물면서 자연을 즐기고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건립한 작은 규모의 건축물이다. 벽 또는 창을 갖춘 형태도 있고, 벽 없이 사방이 트인 형태도 있다. 정자라고도 하고 누와 합쳐 ‘누정’이라고도 한다. 서계서원 환성정(喚惺亭), 하빈면 하목정(霞鶩亭)과 태고정(太古亭), 구지면 이로정(二老亭), 다사읍 영벽정(暎碧亭) 등이 있다.
○ 대(臺)
높은 지대에 흙이나 돌 등을 쌓아 사방을 조망할 수 있게 만든 지형, 또는 그러한 지형에 세운 누정 형식 건축물이다. 화원읍 화원동산 상화대(賞花臺), 이락서당 금호강변 바위절벽 관란대(觀瀾臺), 현풍읍 쌍계리 치마거랑 마을 풍영대(風詠臺) 등이 있다.
○ 당(堂)
일반적으로 방·대청·주방 같은 주거형식을 모두 갖춘 건물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비슷한 것으로 별당(別堂)이 있는데 이는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본체에 별도로 딸린 건물이다. 참고로 전통건축물 유형은 그 구분이 무 자르듯 정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하빈면 파회마을 삼가헌에 있는 하엽정(荷葉亭)은 정자도 되고 별당도 되고 서당(파산서당·巴山書堂)도 된다. 또 인근에 있는 하목정 역시 하목당(霞鶩堂)도 되고, 하목정도 되기 때문이다.
○ 재(齋)
용도가 무척 다양한 건물이다. 크게 구분하면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공부방이나 기숙사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다. 주로 성균관·향교·서원 등의 동재·서재처럼 학생들이 공부하고 숙소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둘째는 적당한 터에 집을 짓고 정자처럼 한가롭게 거처하거나 서당처럼 교육공간으로 활용하는 예다. 월암동 달암재(達巖齋), 화원읍 동계재(東溪齋) 등이 있다. 셋째는 제사를 앞두고 행동과 마음가짐을 조심히 하는 재계(齊戒), 또는 제사를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예다. 시지동 충효재(忠孝齋), 대곡동 저존재(著存齋), 도동 경운재(景雲齋) 등이 있다. 이처럼 재실은 여러 유형이 있지만 모든 유형에 적용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대부분 재실이 특정 인물을 추모하고 기리는 목적에서 건립되었다는 점이다.
○ 정사(精舍)
재(齋)와 용도가 일부 중복된다. 굳이 구분한다면 재계나 제사보다는 거처나 강학에 좀 더 비중을 둔 건물이다. 화원읍 수봉정사(壽峯精舍), 낙동정사(洛東精舍) 등이 있다.
○ 헌(軒)
넓은 대청과 창·처마를 갖춘 큰 건물이다. 전통시대 군·현 등의 고을수령이 사용했던 관아 건물(동헌·東軒)이 대표적이다. 사가(私家)에서도 넓은 대청과 창·처마를 갖춘 집을 헌이라 칭했다. 참고로 창과 처마가 있는 집을 ‘헌’이라 하고, 큰 마루가 있는 집을 ‘청(廳)’이라 한다. 하빈면 삼가헌(三可軒)이 대표적이다.
○ 각(閣)
석축이나 단상 위에 높게 세운 건물로 건물의 격으로 보면 상당히 높은 건물이다. 하지만 건물의 격이 높다고 건물의 규모도 무조건 큰 것은 아니다. 정려편액·비·영정 등을 보호하기 위해 건립한 정려각·비각·영각이나 사찰의 산신각 같은 소규모 건물도 많기 때문이다. 현풍읍 현풍곽씨12정려각, 대곡동 대곡영각(大谷影閣), 도동서원 한훤당선생신도비각(寒暄堂先生神道碑閣) 등이 있다.
○ 묘(廟)·사(祠)
신주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건물이다. 사당·사우·묘우·묘실이라고도 한다. 대구향교 문묘(文廟), 하빈면 육신사(六臣祠), 구암서원 숭현사(崇賢祠) 등이 있다.
에필로그
‘궁·전·누·정·대·당·재·사·헌·각·묘’. 필자가 전통건축물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익혔던 핵심 키워드다. 하지만 지금은 이 키워드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누·정·대·당·재·사·헌·각·묘’보다는 그 앞에 붙는 한두 글자 당호(堂號)·헌호(軒號)의 의미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통건축물 관련해 이 자리를 빌려 한 가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재실’의 맞춤법 문제다. 의외로 ‘재실(齋室)’을 ‘제실(齊室)’로 표기하는 예가 많다. ‘○○재(齋)’를 ‘○○제(齊)’로 표기하는 식인데, 인터넷 글에서는 자주 볼 수 있고 가끔은 문화재 안내판에서도 발견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우리 지역에 공식적으로 ‘○○제(齊)’로 표기하는 재실이 한 곳 있다. 달성군 다사읍 주곡리에 있는 전의 이씨 주곡(注谷) 숙연제 문중 재실인 숙연제(肅然齊)다. 문중 설명에 의하면 숙연제는 예로부터 어른들이 ‘肅然齊’로 써왔기 때문에 후손들도 선조의 뜻을 따라 ‘肅然齊’로 쓰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