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그 만큼 마음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마음을 내 뜻대로 조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 마져도 쉽게 되지 않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옮길 수 없어서 괴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잊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잊어지지 않습니다. 이 정도는 용서하고 살아야 되는데 그리고 용서하고 잊고 살고 싶은데 마음이 허락지 않습니다. 여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는데, 새롭게 시작해야 되는데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데 하는 생각은 하지만 아무리 몸부림쳐도 가슴으로 와 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이 머리에서 가슴까지라고 합니다. 알고 있는 것이 가슴으로 오는데는 일평생이 걸리는 수도 있습니다. 사랑해야 된다는 것은 알면서도 그 사랑을 실천하는데는 수 십년 걸리는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대 예배에서 오후 예배까지 10년이 걸리는 경우를 보면서 몇시간 아닌데도 엄청난 세월이 흘러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새벽기도 까지는 몇 년이 걸릴까요? 평생을 가도 못할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지요 그까짓 것 못할 것 무었있습니까?’라고 생각을 하시 겠지만 그것이 잘 안된단 말입니다. 하면 할 것 같은데 절박하지 않으니까? 옳은 일이고 하면 좋은 것이지만 손이나 발이 움직이지 않는단 말입니다. 학생이 공부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절박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거리가 그렇게 멀리 느껴지는 것입니다. 잠언 13장 4절을 보면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마음으로 원해도 손과 발이 움직이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문 보다 견고한 문은 없습니다. 얼마나 마음의 문이 강하면 예수님도 우리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못 들어 간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3: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이 말씀은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주님도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 만큼 마음의 문은 견고합니다. 세상의 문은 부수고 들어갈 수 있지만 마음의 문은 한번 닫히면 도저히 들어갈 길이 없습니다. 시작은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한번 보고 두 번봐도 자꾸 보고싶은 사람이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마음문이 닫혀 보십시오. 원수가 따로 없습니다. 그 사이에 자녀가 있어도 풀리지 않는 원수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고집이 세면 먹기 싫은 것은 죽어라고 안 먹습니다. 건강에 좋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안합니다. 아무리 설득을 해도 안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연단하는 것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포기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을 돌이키도록 진동 시킨다고 했습니다. 죽음에 직면하는 경우도 있고 망하게 해서라도 고집을 꺽어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마음문을 닫으면 말씀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상하게 열지 말아야 할 부분에서는 굉장히 마음문을 잘 엽니다. 그런데 말씀과 복음 그리고 사랑 앞에는 인색하게 마음문을 닫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마음을 돌이키라고 성경은 끊임없이 경고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뒤틀린 곳이 어딘 줄 아십니까? 마음입니다. 한 이야기 또 하고 한 이야기 또 하고 아주 평생을 울거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빈정되고 비 꼬우고 하는 것이 다 마음이 뒤틀려서 그런 것입니다. 뒤틀린 마음을 바로 펴는 일에 사람들이 참 인색합니다. 바로 펴기만 하면 바로 볼 수 있는데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은 사람이 악하다는 뜻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과거의 잘못을 조금만 이해하고 마음을 펴면 지금 행복을 놓치지 않고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데 자꾸 과거만 생각하니까 현재의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장 험한 곳도 마음입니다. 사람 마음속에 지뢰가 있고 칼이있고 독이 있습니다. 깨진 유리조각이 있고 독침이 있어서 그 마음에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상처 투성이가 됩니다. 사람 마음을 알면 그 만큼 더럽고 잔인한 곳도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미워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그리고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말씀하실 까요? 사람들의 마음에 미움이 도사리고 있으면 그 미움이 칼이되고 독이 되어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마음에만 도사리고 있으면 그렇게 변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미워하는 것을 품고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아주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악한 마음 잔인한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하지 말고 화해하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오라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큰 태풍이 몰아치는 곳이 어딘줄 아십니까? 마음입니다. 바다의 태풍이야 시간이 가면 잠잠해 지지만 마음의 태풍이 몰아치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태풍은 갈필을 잡지 못하게합니다. 마음을 뒤집어 놓고 맙니다. 마음이 한번 상한다든지 마음에 아픔을 당한다든지 충격을 먹으면 몸을 상할 만큼 그 태풍은 큰 것입니다. 유명한 암전문의가 하는 말이 큰 충격을 먹으면 10년 안에 암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만큼 마음의 태풍은 큰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좁은 곳이 어딘줄 아십니까? 마음입니다. 마음이 좁아지면 바늘 구멍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집사님 씨댁형님이 P.D수첩에 영생교에 대해서 나왔든 모양입니다. 이것을 보고 그 날 잠을 못잤다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집사님이 걱정이 되어서 랍니다. 그래서 아니라고 영생교와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교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듣더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좁아지면 누구의 말도 의심하고 자기가 말한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은 좁아지면 바늘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난다고 하는 말이 이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이 좁아져서 남편 가족 이웃 하나 품을수 없는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추운곳이 어딘 줄 아십니까? 바로 마음입니다. 함께 살다가 돌아서면 시베리야 벌판이 따로 없습니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한 번 톨아져서 헤어지면 완전히 시베리아 벌판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곳도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우주와 원수도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아들 둘을 죽인 사람을 양 아들로 삼았습니다. 마음은 이렇게 우주처럼 넓습니다. 누구든지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입니다.
가장 떠거운 곳이 어딥니까? 마음입니다. 모순 부정 괴로움 비난 악한 감정 다 녹입니다. 비수같은 칼도, 홍수같은 오해도, 태풍같은 비난도 마음을 세우면 다 녹입니다. 마음이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되면 그래서 행복한 삶,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문제는 그 문제만으로 보면 별것 아닌데 좁아지고, 차가워지고, 험한 마음 때문에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마음을 옮겨 주소서 ’하고 기도해야됩니다. 본문에서 ‘마음이 확정 되었사오니’이 확정된 마음이 얼마나 큰 복이냐는 말입니다. 마음을 확정하고 걷는 발걸음, 결단은 어떤 유혹과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치고 넘어지는 이 광야같은 세상에서 품고 녹이고 이기고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내 마음을 확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며 말씀은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용서와 화해의 삶을 살아 가야할 우리 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은혜의 예배에 모이기를 힘쓰며 십일조를 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런데 마음을 확정하지 못해 흔들리며 고통스러워 하며 어려움을 당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어 갈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둘람굴로 들어가서 거하고 있을 때입니다. 아둘람의 삶은 지친 삶이였고 두려운 삶이였고 쉴 때 없는 삶이였습니다. 더 이상 숨을 곳도 먹을 것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는 아둘람에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죽어갔습니다. 시펀 142편은 그런 차원에서 절박한 표현을 한것입니다. ‘나의 부르짓음을 들어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 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이 시편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다윗의 절박한 표현입니다.
이 아둘람굴에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 하는데 먼저 가족들이 모임니다. 사실은 이들이 다윗을 얼마나 무시했습니까? 그리고 다윗에게는 가족들을 부양할 힘이나 능력이 없습니다. 결국은 가족 마져 짐이 되는 것입니다. 가족들로 시작해서 사기꾼들 사업에 부도난 사람들 도망자들 할 것없이 모이기 시작하는데 아둘람 굴에 400명이 모입니다. 이들은 환란 당한 자들이였고 억압 당하던 자들이였으며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였습니다. 이들은 마음에 상처투성이요,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하는 자들이였습니다. 이들은 고집이 센 자들이였고 공격적인 성품을 가진 자들이였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부정적이고 헌신할 마음이 없는 자들이였으며 인내하지 못하는 성품이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쉽게 좌절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모인 아둘람 굴에 신기하게도 변화가 왔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다윗은 새로운 정치를 펼칩니다. 다윗의 장차 왕권을 다지는 계기가 됩니다. 다윗이 정권을 잡았을 때 이들이 많은 선행을 합니다. 수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덕을 행하며 다윗의 왕권을 철저하게 보호하며 생명을 걸고 다윗을 따르는 훌륭한 군인이요 정치가가 됩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변화된 것입니까? 비뚫어진 마음이 바로 세워지고 험악한 마음, 견고한 마음, 좁은 마음, 추운 마음을 가진 자들이 변화된 것은 마음을 확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삶의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직 여호와 만이 우리의 구원자시며 축복자라는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다윗은 수 없이 사울에게 쫓기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하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해결이 블레셋에 있는 줄 알고 불레셋으로 도망갔다가 그기서 미친 사람으로 변장하지 않았으면 죽음을 당한 상황을 알고 그는 진실로 구원의 피난처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것입니다.
자기를 쫓아오는 사울을 보면서 수 많은 군사가 사람을 지키는 것이 아닙을 알게됩니다. 다윗이 사울을 두 번 죽일수 있었습니다. 그런 기회가 주어 졌을때 사울을 군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토해 냅니다. 두러운 마음, 무거운 마음, 좁아진 마음을 위로하시고 치유해 주시고 새로운 마음을 주실 이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체험적으로 알았기에 아둘람에 찾아온 모든 사람에게 위로합니다. 시편 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하나님께서만 나의 눈물과 고통을 아시고 들어주시는 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자신이 부서지는 사건이 아둘람에서 있었습니다. 다윗은 다가오는 예수그리스도를 묵상하고 부르짖을 때 살길이 열였든 것입니다. 희망이 없을 때 다윗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구원하심과 축복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원짜리 지페가 구겨지면 쓸모가 없어집니까? 1000만원짜리 수표가 구겨지면 아무 쓸모 없어서 버립니까? 구겨져도 때가 묻어도 찢어져도 그 돈의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찢어지고 구겨지고 때가 묻어도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가치는 그대로입니다.
다윗은 아둘람에서 굳어버리고 두려움에 쌓여 고통의 마음을, 확고한 마음으,로 확정된 마음으로 변화된 것은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아둘람에 찾아온 400용사와 함께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든것입니다. 깨어지기 쉬운 공통체, 싸우며 이기적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공동체가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 서로 위로하며 한 마음과 한 뜻을 품고 다윗의 왕권을 세운 공동체로 바뀐 것은 기도를 통한 치유였고 기도를 통한 약속이였고 기도를 통한 체험이였고 기도를 통한 확정된 마음이였습니다.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확고한 공통체를 형성했습니다.
가정의 공동체가 무너지면 끝입니다. 교회의 공통체가 무너지면 마귀가 역사하게 되어있습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이 가정을 하나님만이 지켜 주신다는 확고한 마음에서 나타나는 기도입니다. 아둘람의 용사들은 지도자를 잘 섬겼습니다. 다윗이 목마르다 하면 생명을 걸고 나가서 물을 얻어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했을때 잘 나가는 정치인들이나 학자들 할 것 없이 모두가 이제 다윗의 시대는 끝났다고 압살롬을 따랐지만 이 400용사는 끝까지 다윗을 따랐습니다.
다윗의 아둘람 굴을 조명해 봅시다. 편히 쉴곳 없는 삶의 방향이 있습니까?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데’절망하는 모습에서 다시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까? 다시 싸울수 있는 힘이 있습니까? 가정을 다시 세울 수 있는 힘이 있습니까? 교회를 부흥시킬 힘이 있습니까? 사업을 다시 일으킬 힘이 있습니까? 험하고 힘든 여정이지만 그 분 앞에 당당히 설수 있는 삶이 있습니까?
무너진 마음을 가지고 오신 분이 있습니까? 두려움과 고통과 눈물로 나오신 분 계십니까? 과거 속에서 사는 사람들 있습니까?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알면 기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면 그 분께 호소하고 다 틀어놓고 의지하고 통곡하며 애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쩌면 아둘람 굴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런 마음을 확고한 마음으로 변화 되려면, 아둘람의 굴에서 왕권을 가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려면 어떻게 해야됩니까?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됩니다. 그 방법 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도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해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그리고 이렇게 고백한 근거가 바로 8절에 있습니다. ‘내 영광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그랬습니다. 이들은 새벽부터 하나님께 부르짖어 마음을 확정했던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3월 1일부터 작정 새벽기도가 있습니다. 부활주일까지 40일 작정기도입니다. 이 기도회에 전원 참석해서 마음을 확정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작년에 해 보았는데 별 수 없더라’이런 마음을 가진 분이 계십니까? 비뚤어진 마음입니다. 옳은 것은, 좋은 것은, 확실한 것은 끝까지 하는 법입니다. 기도도 끝까지 응답될 때까지 하는 것이 기도 아닙니까? 악한 재판관과 과부의 예도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옳은 일에 끝까지 찾아 갔더니 아무리 악한 재판관이라 할찌라도 그 옳은 것에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옳은 것은 들어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번 새벽을 깨우는 헌신과 결단을 통해 마음을 새롭게 확정하십시오. 새벽에 깨어나서 삶의 우선 순위를 확정하십시오. 우리가 살면서 사랑과 미움이 혼돈할때가 있습니다. 간직해야 될 것과 버려야될 것을 혼돈해서 삶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나갈때와 물려갈때를 혼돈하니까, 지켜야 될것과 지키지 말아야될것과 혼돈하니까, 드려야할것과 그렇지 않아도 될것과 혼돈하니까 우리의 삶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이번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가 먼저 해야될 것을 알아 인생의 질서를 가지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 번 새벽기도를 통해 이웃을 보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둘람 사람들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우리 또한 아름다운 교회공동체를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우리는 나와 상관 없는 사람은 짐만 되는 사람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 의미 존재가 하나님 안에서 회복되면 새롭게 보입니다. 새로운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제 우리 이웃에 2100세대가 새로 입주를 합니다. 이웃의 교회가 모두 전도하겠지요. 어쩌면 경쟁적으로 전도를 해서 믿지 않는 사람에게 비난의 대상도 되지 않을까 염려 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 할 사람으로 봅시다. 크게는 천국의 시민으로 좁게는 우리 교회 아름다운 공통체 일원으로 초대하고 우리 영명공통체가 생명을 살리는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하는 결단의 마음을 정하십시오. 새로 이사오시는 분들과 새로운 관계 그러니까 성도의 관계를 형성하도록 헌신하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되면 생명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희생하게 되어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구별하는 복있는 성도가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건설하는 일을 깨닫는다면, 아름다운 공동체 능력의 공동체를 위해, 그런 교회를 위해 생명살리는 일에 헌신하며 시간을 투자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억울하십니까? 빚진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고독하십니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힘듧니까? 새벽을 깨워 주님과 교제하시고 다윗의 노래를 다시 부릅시다. 아둘람의 사람들이 새로워진 것은 그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함께 했기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둘람이 되어 기도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일에 최선의 아름다운 가치의 삶을 사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