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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신앙칼럼 스크랩 자신의 실패에서 출발하다
에바다 추천 0 조회 95 12.01.02 17: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자신의 실패에서 출발하다
              신앙과 교회에 환멸하는 이들을 제자로 세우는 프랜시스 챈


              존 브랜든  John Brandon


   지난 10월 한국을 찾은 프랜시스 챈 목사는 자신이 개척한 코너스톤교회를 사임한 후 세계 곳곳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역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랍 벨의 「사랑이 이긴다」(포이에마 역간)를 비판한 「지옥은 없다?」(두란노 역간)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관련 인터뷰는 이번호 “이 책을 말하다” 참조).
   이 기사는 챈 목사가 코너스톤교회를 그만두기 전까지 그가 추구했던 공동체와 복음 전도를 조명한다. 최근 미국 사회 역시 제도화된 교회에 등을 돌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 챈 목사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려 했는지를 보여준다. 새로운 방식으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려는 그가 어떤 공동체를 바랐는지는 지난 인터뷰(본지 2010년 9월호 “성령의 파도를 타다”)에서 자세히 소개한바 있다. _편집자 주


   프랜시스 챈에게는 두 가지 웃음이 있는데 둘 다 전염성이 있다.
   하나는 변덕스러운 천성과 재치를 보여주는 키득거림이다. 또 하나는 뭔가 특별히 재미있거나, 우습게도 민망하거나, 혹은 그냥 이상한 일이 있을 때 터뜨리는 요란한 폭소다. 마흔한 살의 홍콩 출신 챈은 몇 가지 사역을 동시에 진행한다.


   첫째는 1993년에 개척한 캘리포니아주 시미밸리의 코너스톤교회다. 로스앤젤레스 북부, 벤츄라해변 동쪽에 자리 잡은 시미밸리에는 스타벅스를 애용하는 중산층이 모여든다. 코너스톤교회는 주일마다 네 차례씩 예배를 드리는데,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둔 ‘캠퍼스’ 교회들에 4000여 명이 꾸준히 모여 챈의 설교를 듣는다. 코너스톤교회 건물은 스페인 수도원 건축양식을 한 주변 주택들과 잘 어울리는데, 건물 내부는 휑하다 싶을 만큼 단출하다. 침례 의식을 행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 있을 뿐, 현수막도 스테인드글라스 창도 설교단도 없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챈의 두 번째 사역은 더 많은 사람을 향한다. 그가 시미밸리에서 전하는 주일 설교는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이 내려받아 듣는다. 그의 설교는 존 파이퍼, 마크 드리스콜 등과 함께 아이튠즈의 기독교 팟캐스트 상위 20위 안에 늘 든다. 2005년 열정컨퍼런스(Passion Conference)에서 처음 강연한 이후로 거의 매주 여러 컨퍼런스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챈의 설교는 딱딱하지 않고 유머가 넘치는 스타일이지만, 그리스도를 향한 온전한 헌신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2008년 부활절 설교에서 챈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꺼냈다. 남자친구는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다리며 지켜보겠다는 말만 한다고 했다. 챈 목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처럼 처신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예배만 잘 드리면 충분하니 나를 괴롭히지 말라는 분이 이 자리에 계신다면,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온전히 헌신하고 섬기기 원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챈은 이런 말도 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 노력만으로 건설하는 교회는 사람들을 몰아붙이고 재촉하지 않으면 금세 무너지고 맙니다.”


   챈의 세 번째 사역은 집필이다. 그의 첫 번째 책 「크레이지 러브」(미션월드라이브러리 역간)는 철저한 정통 기독교를 내세우고 있고, 2008년 봄에 출간된 이래 35만 부가 팔렸다. 다음 책인 「잊힌 하나님」은 2009년 9월에 나왔다.


   사역이 번창하는데도 챈은 자기 색깔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네 아이를 키우며 쇠락한 교외지역에 살며 1995년형 스쿠터를 타고 출근한다. 서핑을 좋아하는 그에게는 캘리포니아 사람 특유의 느긋한 매력이 흘러넘친다.


   설교 중에 언급한 바에 따르면 챈은 수입의 90%를 이웃을 위해 쓴다(코너스톤교회 행정직원은 “수입의 대부분”이라는 표현을 선호했지만). 챈은 교회에서 사례를 받지 않고, 50만 달러에 이르는 인세 수입도 해외의 성 노예들을 구출하는 국제정의선교회 같은 단체들을 돕는 데 주로 쓴다. 챈 가족은 지낼 곳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종종 집을 개방한다. 코너스톤교회의 부목사 중 한 사람인 빌 루카스는 아홉 달 동안 챈과 함께 살았고 그가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종교 지도자들을 냉소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많은 청중과 독자들이 챈의 생활방식을 보며 그에게 매력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이끌고자 노심초사하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수고를 마
다하지 않는 모습도 큰 매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홍콩에서 시미밸리로


   무엇이 챈에게 가장 깊이 영향을 끼쳤을까? 코너스톤교회 사람들은 그의 어린 시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챈의 어머니 모이원 챈은 1968년 홍콩에서 그를 낳은 뒤 사망했다. 그는 엄격한 아버지의 훈육을 받으며 홍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챈이 「크레이지 러브」에 적었듯이 그의 아버지는 “말을 안 듣거나 귀찮게 한다”는 이유로 매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 매를 통해 규율과 존경심을 배웠다고 말한다. 챈이 일곱 살 무렵 아버지는 재혼을 했고 가족 모두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챈의 양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챈이 중학교를 다닐 때는 아버지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챈은 결국 친척집으로 이사해 그들과 함께 살았다. 그곳에서 지역 청년 모임에 참여했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로스앤젤레스 북부의 마스터즈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챈은 시미밸리에서 차로 멀지 않은, 캘리포니아주 채츠워스의 록키피크교회에 자리를 잡았다.


   챈은 그 기간 동안 신앙과 분리된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그 몇 년은 내 생애 최악의 시기였습니다. 머리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배웠지만, 악하고 위선적으로 살았습니다.”


   챈은 결국 청년 사역자를 그만두고 동네 식당에서 서빙을 했다. 그는 혼란에 사로잡혔고 환멸에 빠졌다. “산산이 부서진” 그의 영혼은 변화를 바랐다. 이 시기에 그는 미래의 아내 리사를 만났는데, 그녀는 지역교회 찬양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챈은 그처럼 신앙과 교회에 환멸을 느낀 열 가정을 하나둘씩 천천히 모아나갔다. 1993년, 그는 리사와 결혼했고 두 달 후 코너스톤교회를 시작했다.


   ‘모임’을 계획하다


   챈은 자신의 사역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알고 있다. 그는 새 사역을 시작하고자 몇 달 동안 코너스톤교회의 실무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있다. 그는 인근 로스앤젤레스카운티의 목회자들을 훈련시킬 것이며 그들이 사람들을 모아 가정교회를 이룰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카운티로 넘어간 이유는 무엇보다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시미밸리는 인구가 10만 명이지만 15분만 가면 수백만 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뭔가 다른 일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그런데 시미밸리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계획해온 변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뭔가 다른 일이란 “교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프린스턴대학교 사회학자 로버트 우드나우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청년들 중 25%만이 교회에 나가고 그나마도 제도화된 종교를 경계한다. 챈은 복음주의자들이 교회를 꾸려가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교회는 재활센터가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지도자들은 사람들을 휠체어에 앉히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대신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홍보전단을 보내고 텔레비전 쇼도 방영하고 전도도 대신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이웃을 직접 상담할 필요 역시 없습니다. 교회 전화번호만 알려주세요.’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바로 제자 삼는 사람입니다. 당신 안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당신이 이웃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드리겠습니다.’”


   챈의 장기 계획에는 건물 없는 교회를 세우는 일이 들어있다. 매트 무어 부목사는 이 실험으로 교회가 건물이라는 제약을 넘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알아내고자 한다고 말한다. 각 위성 교회별로 지역을 감독하는 장로가 한 명씩 있고 소속 교인들은 시미밸리의 본부 캠퍼스 예배에 참석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코너스톤교회는 자율적으로 모이는 여러 작은 교회로 이루어진 모델을 먼저 활용하려 한다. 챈은 이 “모임들”(그는 가정교회(house church)라는 용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역시 성장을 제한하는 건물을 암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이 한 사람만 이야기하는 강의식 수업이 아니라 학생 모두가 열심히 참여하는 실험 프로젝트에 가깝다고 말한다. 사실 챈은 동네에 자리 잡을 이 모델에서는 교회가 제공하는 예배가 주축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목회자를 대상으로 한 첫 번째 강의에서 챈은 “여기서는 일반적인 모습이란 게 따로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체를 아우르는 비전을 소개한 후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부터 세 달 후 교회가 어떤 모습이 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계획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미친 듯이 기도하고 성령께서 그분의 교회를 세워주시기를 구할 것입니다.” 코너스톤교회의 실행목사 토드 나이스웡거는 영국의 크라우디드하우스와 시애틀의 소마커뮤니티 같은 교회개척네트워크가 로스앤젤레스카운티 실험의 모델이라고 말한다.


   제프 밴더스텔트는 소마커뮤니티의 장로이자 교회 개척자다. 그는 소마가 작은 동네교회 45개로 이루어져있고, 그 모임들이 여섯 개의 큰 그룹으로 나뉘어 매주 모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공식적이고 상업화된 조직이 아니라 같은 지역 신자들을 가리켰다고 지적한다.


   “교회 초기에는 사람들이 집집마다 옮겨다니며 모였고 결국 도시 교회로 정착했습니다.” 밴더스텔트는 신자들의 진정한 제자도를 이끌어내기 위해 이런 구조를 마련했다고 말한다. 신자들이 성장하고 성숙하면서 새로운 교인을 초대하고 그 결과 작은 교회들이 더 많은 작은 교회를 낳는다. 밴더스텔트는 이런 접근이 리더십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프로그램을 운영할 봉사자를 새로 모으는 일로는 안 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장로들이 회사의 이사와 비슷하고, 목회자들은 교회를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관리자나 책임자처럼 보입니다.”


   이머징교회연구소의 에디 깁스 소장은 챈의 모델이 미국이 처한 “탈 기독교국 상황”에 대처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한다. “1600년 동안 서구 교회는 사회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였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운영해왔습니다.” 그는 “구도자 중심” 모델이 이런 접근의 마지막 단계라고 말한다. “제도 종교와 거리를 두는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나는 상황에 발맞추어, 교회는 사람들을 끌어와야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성육신적 선교 모델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가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경계를 넓히다


   밴더스텔트는 코너스톤교회가 천천히 변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챈 목사 역시 이런 시도가 위험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이렇게 느슨한 구조를 가진 교회가 미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설교 시간에 계속 얘기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담 없는 교회” 모델이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설교와 예배 시간이 정해져있는 대규모 모임이 더 좋다는 반대자들도 있다.


   챈은 이렇게 말한다. “예배드리는 일이 물론 잘못은 아니지만, 초대 교회에서는 오늘날처럼 크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선교와 복음전파를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그때는 서로에 대해 깊이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교회는 엉망이 되었지만 처음에 맛본 흥분은 너무나 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오면서 그들을 교회 건물 안에 다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바키대학원대학교의 브래드 스미스 총장은 챈이 교회 건물에 대해 가지는 유연성에 찬사를 보내는 한편, 역사적 균형감각을 갖고 그 입장을 바라보게 해준다. “교회가 가난하고 박해를 받을 때는 건물이나 직원, 프로그램 없이도 번창했습니다. 교회가 부유하고 사회를 지배할 때는 건물, 전임 사역자, 폭넓은 프로그램을 활용해 번창했습니다.” 스미스는 건물이 있건 없건 그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교회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며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챈은 코너스톤교회의 모임들이 초대교회를 본받아 가진 것을 서로 공유하기를 바란다. 그가 지속적으로 밝힌 이 생각은 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어떤 사람들은 그 생각이 너무 “이단스럽다”며 은행 대출과 자동차 임대가 보편화된 시대에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챈은 문화적 순응주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청중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더 많이 아는 데 만족하지 말고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라고 적극 촉구한다.


   “미국의 교인들은 새로운 운동에 참여하고 생경한 아이디어도 쉽게 받아들이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방식을 바꾸고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챈의 말이다.


   챈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 이란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을 때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공인받지 못한 나라, 시민들이 영적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나라의 목회자와 평신도를 도울 방법을 자신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은 빈틈없는 프로그램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성령께서 사람들을 움직이셔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계속 던져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봐야죠.” 이 말을 하며 그는 웃었다.


존 브랜든(John Brandon)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와이어드>(Wired), <파퓰러 사이언스>(Popular Science), <렐러번트>(Relevant)등에 글을 쓰고 있다. (2011.11.22. Christianity Today Korea /  홍종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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