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백초등학교 ‘학교 가는 길’ 트래킹
● 일시 :2015년 4월 4일 오전 09시 30분~13시
● 장소 : 죽백1동 옛 섶길
● 트래킹 일정
죽백초등학교 출발 → 강당말 → 수여지 → 꽃밭재 → 참나무숲 → 갓골근처 → 용이동 신흥마을 배오개 → 돌아서 → 능골 → 마차길 → 용수골(옛 반제 주정골 가는길) → 월곡동 가는 길 → 허국효자비 → 산장너머 → 속뜸 → 방아다리 저수지 → 죽백초등학교(약 6km)
-죽백동 :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양성군 반곡면의 침교리, 내촌, 죽백리가 통합되어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가 되었다. 1983년 시군(市郡) 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평택군에 편입되어 평택읍 죽백리가 되었고, 1986년에는 평택읍이 시(市) 로 승격되면서 평택시 죽백동으로 편재되어 비전1동 사무소의 관할을 받게 되었다. 자연마을은 방아다리(침교), 내촌, 재빼기가 있다.
①죽백1동 방아다리
-속뜸(모퉁이), 강당말, 산장너머(모퉁이) : 죽백1동 방아다리의 자연마을이다. 속뜸은 안쪽 마을이어서 유래되었고, 강당말은 서당이 있었던 곳이며, 산장너머는 일제강점기 과수원 운영을 위해 거주했던 일본인 집이 있어 유래되었다.
-방아다리(침교) : 조선시대 양성현 반곡면 지역. 내촌과 사이에 흐르는 청룡천에 방아다리를 놓고 넘어 다녀서 유래되었다. 방아다리에는 100여 년 전 마을 사람 김종학씨 조부께서 혼자 3백근짜리 바위를 져다가 개울가에 걸쳐 놓고 건너다니게 하면서 돌다리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일제 말 소화14년 가뭄(1939)에 수여지 아래쪽에 방아다리 저수지를 만들면서 둑방으로 건너다니게 되었다.
-방아다리 ‘학교 길’ : 방아다리 사람들은 1944년 이전까지 원곡초등학교를 다녔다. 원곡초등학교까지는 6km였다. 원곡초등학교는 월곡1동보다는 청룡동 작은고개와 큰고개를 넘어 저수지를 지나다녔다. 월곡동 방향으로 갈 때는 용수골, 월구리, 관동, 개천교개를 넘었다.
-죽백초등학교 : 1944년에 개교하였다. 개교할 때는 방아다리 마을의 유지인 양천 허씨 집안에서 학교 터를 기부하고 마을 주민들이 부역노동을 하여 지었다. 교가는 꽃밭재 농원을 운영했던 지주이며 원곡면장을 지낸 이규성씨가 작사하였다. 신축 당시 유엔군의 폭격을 받아 개교 후 2년 동안은 원곡초등학교 창고를 빌려 공부했으며, 해방 후 민군정의 지원을 받아 다시 지었다. 죽백초등학교가 개교하면서 죽백동, 청룡동, 용이동, 월곡동 학생들이 이 학교를 다녔다.
-방아다리 저수지 : 죽백초등학교 앞 수여지 아래쪽에 일제강점기(1939)에 만든 논방죽이다. 논방죽은 관정이 발달하고 아산만 수로가 연결되면서 점차 필요성이 적어지다가 매립하여 현재는 식당이 들어섰다.
-용소골 : 용수골로도 부른다. 방아다리와 월곡1동 월구리 사이 골짜기에 형성된 노논사지대다.
-수여지 : 효지골로도 부르며, 죽백초등학교 앞 논농사지대다. 물이 많은 논이어서 모내기를 하고도 물이 남아 유래되었다.
-맹자골 : 찬우물이 있어 냉정골로도 부른다. 기남방송국 앞의 논밭경작지다.
-옻우물 : 맹자골 부근 양성이씨 세장지 아래의 우물이다. 우물을 파면 병장기가 나온다.
-해뜸이 : 방아다리와 청룡동 사이의 너른 들판이다. 방아다리의 주 경작지다.
-선바위 : 경부고속도로 너머 공도면 경계에 있다. 입석이 있어 유래되었다.
-점촌 : 선바위 옆의 지명이다. 옛날 방아다리 마을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해끼미 : 점촌 옆에 있다. 옛날에 화약더미가 쌓여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샘골 : 해끼미 옆에 있으며 조선시대 역적모의를 하던 기지라고 전해진다.
-갈매울 : 강당말과 용이동 신흥동 사이의 골짜기다. 일제강점기 갈매울 과수원이 있었다.
-꽃밭재 : 강당말에서 신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1944년경 방아다리 마을의 천석꾼 이규성씨가 꽃밭재농원을 조성하여 운영하였다.
-능골 :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상행선) 앞의 논농사지대다. 오래된 능(陵)이 있어 유래되었다. 풍수지리적으로 제(帝) 자의 중심에 해당되는 명당으로 전해진다.
-당산 : 고속도로 안성휴게소 뒷산에 있는 산신당이다. 음력 10월에 산신제를 지내다가 1970년대 중단되었다. 당집도 마을 청년들이 때려 부쉈다.
-기와집 : 산장너머에 있는 기와집. 서울시 보안과장을 지낸 마을출신의 이씨가 서울에서 집장사를 하다가 돈화문 옆 대 저택의 행랑채를 구입하여 이전한 건물이다.
-서낭댕이 : 용수골에서 양성면 반제를 주정골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다. 옛날에는 서낭목과 돌무더기가 있었고 도깨비가 나와서 혼자서는 넘어 다니지 못했다.
-기타 : 길우리, 둑골터, 무지미, 버들러지, 시계배미, 시어지, 안수자리, 매봉재, 모래봉
②죽백2동 내촌
-내촌 : 안골이라고도 한다. 주로 양성 이씨 군사공파가 모여 산다. 토질이 척박하고 물이 귀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1970년대 이후 농업용수 확보가 쉬워지면서 지금은 과수농업을 비롯한 다양한 농업이 발달했다.
-내촌우물 : 마을 회관 옆에 있는 공동우물. 물이 귀해서 옛날에는 여자들이 새벽부터 줄울 서 기다렸다가 뭘을 길어갔다.
-삼태봉 : 내촌마을 뒷산이다. 삼태기처럼 생겨서 유래되었다.
-안산 : 마을 입구를 비보하는 언덕이다.
-골품고개 : 골콤고개라고도 한다. 내촌에서 죽백3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곰봉고개 : 골품고개 다음에 있는 고개다.
-왕지미고개 : 마을 뒤를 돌아 죽백3동 재빼기 마을이나 왕지미들로 질러가는 고개다.
-행금틀 : 왕지미고개 고개 너머 골짜기에 형성된 경작지다.
-쇠마답 : 큰 길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곳의 경작지다.
③용이동 신흥동마을, 구룡동마을, 현촌(폐동)
-용이동 : 조선시대에 양성현 구룡동면 지역이었다. 구룡동면의 영역은 구룡동마을, 현촌, 용두리, 진사리 일대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안성군에 편입되어 안성군 공도면의 영역이 되었다. 그로다가 1983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이웃한 소사동, 죽백동, 월곡동, 청룡동과 함께 평택시에 편입되었다.
-구룡동마을 : 용이푸르지오아파트 뒤에 있는 마을로 백운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느름골, 배오개골, 신선골, 오른가리골, 미나올골, 옥골, 소사물골, 자바사리골 등 아홉 골짜기를 휘감아 도는데 그 형상이 아홉 마리의 용이 용트림을 하는 형국이어서 유래되었다. 마을의 규모는 50호 내외이며 아랫말과 윗말로 나뉜다. 성씨는 평산 신씨가 많다.
-현촌 : 본래는 달성 서씨가 많아서 서촌이었다가 연주 현씨가 많아지면서 현촌(玄村)으로 바뀌었다.
-신흥동 마을 : 용이초등학교 뒤쪽 마을로 쑥밭갓이라는 곳에 있다가 도둑이 많아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전한다. 마을규모는 70호쯤이다가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줄었다. 파평 윤씨가 대성(大姓)이지만, 밀양 박씨와 고령 박씨, 진주 강씨도 많았다.
-배오개(들) : 신흥마을에서 방아다리 방향으로 서북쪽 길게 형성된 골짜기와 들판이다.
-등지리 : 고속도로 너머 공도 산수화아파트 부근의 구릉지대이다.
-쑥밭갓 : 신흥마을의 옛 터로 마을 동남쪽 평안교회 주위다.
-왕좌방 : 구룡동 마을의 북서쪽으로 왕이 지나가다가 잠시 쉬어갔다고 해서 유래되었다.
-원고개 : 구룡동 남동쪽 푸르지오아파트 가로질로 신흥동마을로 넘어갔던 고개다.
-현촌고개 : 구룡동 서쪽 현촌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각골고개 : 구룡동마을에서 평택대학교방향으로 넘어가 38번 국도와 연결되었던 고개다.
-작다논틀 : 구룡동 북쪽으로 죽백동 방아다리 방향으로 넘어가는 곳의 논밭이다.
-구룡동 서낭댕이 : 원고개 정상부에 있던 서낭당이다.
-자반사리 : 현촌 서쪽 서촌에 있었던 지명이다.
-오룡굴 : 오룡가리라고도 하며 현촌 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서바탱이 : 현촌 서북쪽 구릉지대다.
-원두골 : 현촌 서남쪽 골짜기로 경작지다.
-선거자리 : 현촌 서쪽 배다리방죽 부근으로 옛날 배가 닿았다.
-헝가불 : 현촌 북쪽 고개 넘어로 죽백초등학교를 갈 때 넘어갔다.
-삼태봉 : 현촌 서북쪽 봉우리다. 현재 금호어울림아파트가 건설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