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초대석(황정산 시인)
겉바속촉-건조한 문체 그러나 깊이 숙성된 감성의 언어
시집 <소수자의 시 읽기> 출간한 황정산 시인
-본인 소개
저는 시인이며 평론가인 한 황정산입니다. 대전에 소재하고 있는 대전대학교에서 20여 년 교수로 재직하다 몇 년 전에 퇴직하고 지금은 시나 평론 등의 글을 쓰고 문예지 만드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소수자의 시 읽기>라는 평론집을 출판했고 올 10월에는 <거푸집의 국적>이라는 첫 시집을 발간했습니다.
-신작 시집 <거푸집의 국적>을 소개하면?
2003년부터 시를 써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20년 동안 여기저기 발표한 시들을 모아 발간한 저의 첫 시집입니다. <거푸집의 국적>은 1부 ‘블랙’으로부터 5부 ‘동사’까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집을 읽은 사람 중 한 분이 ‘겉바속촉’한 시집이라는 평을 보내왔습니다. 건조한 문체로 쓰여 조금은 딱딱한 느낌이 있지만 잘 읽어보면 깊이 숙성된 감성이 잘 느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어떤 분은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없어도 이해가 쉽지 않아 당황했지만, 꼼꼼히 읽으면 여러 의미가 들어 있는 무게 있는 시집이라는 평가를 해주었습니다.
-시집을 내게 된 동기와 에피소드
저는 시를 쓰기 훨씬 전부터 문단에서 평론가로 활동해 왔습니다. 그런데 시인이 가끔 평론을 쓰면 시도 잘 쓰고 평도 잘한다는 말을 듣는데, 평론가가 시를 쓰면 시를 쓰더니 평론도 잘 못 쓴다는 말을 듣습니다. 평론가는 시를 쓸 만한 감성이 부족하다는 선입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비슷한 한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다른 것 하지 말고 평론이나 잘 쓰라는 말이지요. 이번 시집을 통해서 그런 편견을 불식시키고 싶었습니다. 평론가로서 가지고 있는 시에 대한 저의 생각을 한 권의 시집으로 고스란히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독자들께 인기가 많은 이유
솔직히 독자들에서 인기 있을 만한 시집은 아닙니다. 익숙한 감성에 호소하는 시도 아니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생각이나 불편한 현실 인식을 하게 하는 시들이 많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시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 독자들보다는 시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시작법을 실험적으로 구사하기도 해서 시를 쓰고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시집이라는 평을 많이 들었습니다. 또한, 제가 평론가로서 오래 활동을 해온 경력 때문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10년 이상 열심히 해 온 페이스북 활동도 저와 제 시집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감사한 일이지요.
-시에 대한 생각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시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정의와 말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시는 감정의 자유로운 분출이 언어로 바뀌어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좋은 생각이나 감성을 독자들에게 감염시키는 것이 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시인의 수만큼 많은 시론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생각을 얘기하자면, 시는 언어로 언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언어를 통해 언어가 가진 상투성과 그 상투성으로 인해 생기는 우리의 수동적 인식을 깨는 것 그것이 바로 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 시집 시인의 말 “모든 말을 동사였다 / 움직이는 것들이 굳어 명사가 된다 / 아직 굳지 못한 기억 / 동사로 남아 꿈틀댄다”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번 시집을 읽으실 분들께 팁이 있다면?
저는 가급적 담백하고 건조한 어조로 시를 쓰기를 좋아합니다. 저의 생각이나 정서를 독자들에게 직접 보여주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저의 생각과 정서를 해체하고 재조립합니다. 단어의 선택, 시행의 숫자, 시행 안의 단어의 숫자까지 생각하며 마치 건축을 하듯이 시를 씁니다. 독자들도 저의 시를 읽을 때 그런 언어의 구조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다 보면 다소 딱딱한 시들이 재미있게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소개
표제작인 거푸집의 국적을 소개할까 합니다.
거푸집의 국적
길가 공터에 거푸집이 포개져 있다
시멘트 얼룩을 지우지도 못하고
잠시 누워 쉬고 있다
거친 질감이 상그러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흑단과 마호가니도 아니고
삼나무나 편백이 아니라 해도
그들도 이름은 있었을 것이다
와꾸나 데모도라 불리기도 하지만
응우옌이나 무함마드라 불러도 상관은 없다
어디서 왔는지 누구도 묻지 않는다
상표도 장식도 아닌 국적을
구태여 말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들도
타이가의 차가운 하늘을 찌르거나
우림의 정글에 뿌리내려 아름드리가 되길 꿈꾸었으리라
오늘도 도시를 떠받치던 불상의 목재 하나가
비계 사이에서 떨어지고 있다
이제 국적과 이름이 밝혀질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 지금처럼 시와 평론을 쓰는 것이 제 일이고 이 일을 계속할 뿐입니다. 그런 글쓰기 활동을 통해 내년 상반기에는 평론집을 하나 더 내고, 시도 열심히 써서 2년 안에 두 번째 시집을 발간할 생각입니다. 또한, 제가 관여하고 있는 몇 개의 문예지가 있는데 이들이 좀 더 좋은 내용의 잡지가 되도록 좀 더 노력하고자 합니다.
-뷰티라이프 독자들께 한 마디
결국, 시를 포함한 문학은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것을 읽는 사람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를 더 아름다운 사회로 만들기 위해 문학이 필요합니다. 저는 아주 어린 시절 저의 집 앞에서 펼쳐진 바다의 아름다운 석양을 보고 처음으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정서적 충격이 제가 문학을 전공하고 시를 쓰게 된 계기가 아닌가 합니다. 뷰티라이프 독자들도 역시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아름답게 가꾼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마음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를 쓰는 저와 뷰티라이프의 독자분들을 한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모두 지금 여기 이 시간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뷰티라이프> 2025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