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모처럼 가을 바람을 쐬려고 길을 나섰다.
가을바람을 한아름 안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참 좋다는 느낌이다.
산에는 록색의 나무잎들이 그새 노릇하고 불그스럼하게 물들어 가고
들판에는 벼들이 황금 물결을 이루고 산들한 가을바람에 너울거리는 것을 보니
그 모진 곤파스도 잘 이겼구나 하는 대견하게도 느껴진다.
푸르름과 시원함과 풍요의 계절!
가을이다.
옛날 오성중학교에 근무할 때 잠깐 짧을 소감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어떤 녀석이 가을은 어떤 계절인가? 라는 질문에
자기는 고민하는 계절이라고 해서 그 이유를 물으니
무엇을 먹을까 고민한다고 하여 짜식! 고민도 많겠다 하면서
모두가 한바탕 웃고 떠들던 생각이 난다.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고민을 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을바람 쐬려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이순간 그날들이 그리워진다.
서평택을 지나고 서산을 거쳐 당진 다음 남당리로 가려던 길을 바꿔서
태안의 작은 항구로 길을 잡았다.
확실하게 목표지를 정하고 간 것은 아닌데 가다가 보니 안흥항이라는 곳으로 갔다.
작은 항구를 끼고 양쪽에 마을이 서로 마주하고 중간에 높다란 다리가 놓였는데
그 아래로 푸른 바닷물이 가을 바람과 함께 한결 시원함을 더하는 것 같다.
조촐하게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를 갔는데 바닷가 언덕에 우뚝 선 화장실이 앞뒤로 탁트인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너무 시원하고 푸른 바다물을 내려다 보니
바로 바다위에 떠있는 느낌이다.
이색적인 화장실의 위치와 시원함에 상쾌한 기분을 막끽하며 항구를 한 번 둘러보고
꽃게를 조금샀다.
마침 올해는 꽃게가 풍년이라서 평소에는 셍각도 못하던 꽃게를 풍성하게 살 수 있었다.
큰 것은 1kg에 10,000원 작은 것은 1kg에 5,000원이란다.
섞어서 5kg을 사가지고 항구를 벗어나 채석포로 가서 대하를 사려고 하였더니 냉동을 한 것이 1kg에 37,000원이라고 하여 감히 엄두를 낼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돌아 나오는데
벌판이 온통 회색빛이다.
이상하여 자세이 보니 길가에서 보이는 논의 벼가 모두 같은 색깔이다.
아무래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방송에 보니 지나간 곤파스 때문에 천수만 일대와 그 지역이 전부 벼가 결실을 제대로 못하고 하얗게 말라서 그렇다고 한다.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그렇게 땀흘려 농사를 지었는데 한해의 농사를 망쳤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태풍에 과수가 다 덜어지고 농토가 급류에 휩쓸려 간 모습들이 연상이 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농자는 천하의 근본이라는 말처럼 농사가 잘돼야 우리네 삶도 풍성할텐데 말이다.
그래도 안흥항의 꽃게는 양념장으로 담근 게장맛이 정말로 딱 제맛이다.
아내의 솜씨가 좋은 건지, 게가 좋은 건지는 모르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된 게장맛으로 입맛을 댕기며 이 가을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 같다.
2010. 9. 30. 가을 햇살이 좋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