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帛書
125년 만에 도착한 편지
이상훈 역사소설 책마실 2026
---------------------------------------------------------------------------July 26, 2026
김범우 명례방 모임 / 이벽, 이승훈, 정약용
이벽(李蘗, 1754년~1785년 31세)의 누나(1783년 졸)가 정약용의 큰형 정약현과 결혼
정재원 – 정씨 형제 아버지
정약현의 딸 정명련이 황사영과 혼인
이승훈은 정약용(1762-1836)의 누이와 혼인. 정명련의 고모부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은 정약용의 외사촌
정약종의 아들 정철상
정약종의 막내아들 정하상 – 김대건 신부와 함께 한국 천주교회의 수호성인
이벽 – 정약전, 정약용, 권철신, 이승훈 등과 함께 천진암에서 성경을 강독(1777)
정약용의 형제들
정약현 – 황사영의 장인 / 정약전 흑산도 유배 <자산어보> / 정약종 1786년 세례 받음. 최초의 천주교 회장 순교, <주교요지> 정하상, 정정혜의 아버지 / 정약용 강진 유배 18년 / 정약황(丁若鐄, 1785년~1829년 44세) 이복동생
신해박해(1791년) 제사를 거부하고 순교한 윤지충의 고모 윤씨는 정약용의 어머니다. 이승훈과 정약용은 배교하고 풀려남.
예수회에서는 중국의 상황에 맞게 제사를 허용했으나 도미니크회가 교황에게 제사금지령을 제안한 이후 북경교구가 교황청의 훈령을 받고 제사금지령을 내렸다. 78
북경에서 아담 샬이 1645년 1월 소현세자가 귀국할 때 천주실의(마테오 리치)와 함께 선진 기술과 중국어로 번역된 서양의 책들을 소현세자에게 건넸다.
황사영의 백서 – 가로 62센티, 세로 38센티, 흰 비단 13,311자
황사영 1775년 생 1790년 16세의 나이로 진사과에 장원급제, 정조 배알.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서 2장 14절
1784년 이승훈 북경에서 세례를 받음
假聖職制 열 명의 신부
이승훈, 이벽, 정약용, 정약전, 권일신, 홍낙민, 이존창, 최창현, 유항검 41
명례방 사건 – 을사추조적발사건 1785년 3월
김범우의 명례방 집터 위에 1898년 명동성당이 건립됨
김범우는 고문 후유증으로 유배 가다 죽음. 김범우의 동생 김이우, 김현우도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여 복자품에 올랐다.
1785년 7월 이벽의 아버지 이부만이 목을 매고 스스로 죽자 이벽도 뒤를 따라 열흘 후 죽었다.
바위 언덕 첩첩으로 절집을 싸고 있어
불경이며 향로며 그윽하고 깊어라
개울가 풀이야 청, 황, 녹색으로 섞여 있고
산새들은 열에 백에 천 가지 소리로세
이벽이 책 읽던 곳이야 있건마는
원공님이 머물렀던 곳 아득하여 못 찾겠네
풍류와 문채도 신령스러운 곳이라야 제격인데
한 나절은 술잔 돌리고 한 나절은 시 읊었네.
1797년 정약용이 천진암에 올라..
유학은 통치의 기술과 인간관계에 관한 현실의 문제에 해답을 주는 데 그칠 뿐 인간이 왜 태어났고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은 없었습ㄴ다. 인간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겠습니까? 61
<황사영>
최인길 – 통역관, 초기 천주교 모임을 주도했다. 주문모 신부를 모시고 미사를 봉행.
최인길, 윤유일, 지황은 혹독한 고문으로 끝내 죽었다.
이존창 – 신유박해 때 정약종과 함께 순교. 이존창의 딸 이 멜라니아는 신앙을 이어받아 김대건의 할머니가 되고 이 멜라니아의 질녀인 이 마리아는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이다.
“오늘 우리는 하늘나라에 함께 있을 것입니다.”
정약종 / 이승훈
마카오 신학교 입학생 /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기해박해 1839년
조선인 신자 및 최초의 조선 교구장인 앵베르(L.-M. Imbert) 주교, 모방(P. Maubant) 신부, 샤스탕(J. Chastan) 신부 등 외국인 성직자도 순교했습니다. 약 100여 명에 가까운 신자들이 참수되거나 옥사했습니다.
순교자 70명은 1925년 시복되었다가 1984년 시성되었다.
정하상(1795-1839 44세) 上宰相書, 정정혜, 유체칠리아(79세 최고령으로 순교)
정약종, 정철상은 신유박해 때 순교.
오늘 너는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제주 대정현의 관비가 된 정난주(명련)는 대정현 김석구의 집에 위리안치되었는데, 김석구는 한때 별감으로 관속이었고, 현감과는 막역지우로 그의 자문역을 자임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여서 동헌 바로 뒤에 살았다. 이곳에서 정난주는 김석구의 아들을 양자처럼 기르며 살면서, 또한 풍부한 교양과 학식으로 주민들을 교화시켰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황사영의 백서는 그가 죽은 지 125년 후 1925년 7월 로마의 교황 비오 11세에게 전달되었다. (그동안 의금부 문서 더미속에 있었다)
병인박해 1866-1871년 절두산에서만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대문 밖 사형장, 당고개, 새남터, 절두산
1891년 박해가 끝나고 교회 전통에 따라 서소문 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약현 성당을 1892년 세웠다.
너희가 너희의 신앙을 목숨과 바꿀 수 있겠는가?
진정한 믿음이라면 능히 목숨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떠오른 생각이다.
오늘날의 종교는 목숨을 걸고 믿는 신앙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2026.7.30. 오후 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