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보일러
김영아
군불때는 아궁이에 군고구마
숯검뎅이 군고구마 절반으로 나무면
검정, 주황, 노랑 뜨거운 아이스크림
낮에 먹던 군고구마 껍질 삼색은
군불로 눌어 붙은 아랫목 장판색이다
그 군고구마 껍질같은 낡은 장판이
연탄보일러 등장으로
집집마다 벗겨져 나가던 그 해
전기선이 거미줄처럼 널려진 지붕위에선
찬바람이 밤새도록
휘바람을 불며 칼바람으로 날을 갈았다
꿈결에도 무섭게 울부짖던 그 바람소리는
외아들 연탄가스로 잠 자듯이 보내버린 서울아줌마
창백한 얼굴에 기타치고 노래하던 멋진 그 오빠!
***
그가 방안에 있던 날이면 언제나 흘러 나오던 노래
네잎크로바~
어느날 우리집에도 연탄보일러로 교체되었습니다
하마처럼 큰 입을 벌리고 있던 아궁이가 없어지자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군고구마도 없었습니다
찬바람이 문풍지 사이에서 서걱대는 밤이면
잊고 있던 그 지붕위의 휘바람 소리가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내 귓전에서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잠결에도 놀라 벌떡 일어서려다
어머니 다리위로 '철퍼덕' 주저 앉으니
잠에서 깬 엄마는
"뭔일 이다냐 이것이 뭔일 이다냐!" 울음섞인 고함소리에
새벽시장에 가시던 순자 어머니 놀라 집으로 달려가
동치미 국물 가져와 내 입에다 부어 넣으며
"작은 방 문열어라~ '
오메 내 새끼들 오메 내 새끼들~" 하며 소리쳤습니다
어머니가 기어가 방문을 여니 허연 유령같은 연기가 스믈스물 기어나왔습니다
그 방엔 어린 조카들이 잠에 취해 있었고
뺨을 때리고 흔드니 기침을 하며 울어댔습니다
"살았다 살았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두손을 합장하며 어머니는 동서남북으로 절을 했습니다
그 날 어머니는 꿈에 구슬피 우셨는데 그 울음소리가 우리 가족을 살렸습니다
난리법석이 끝나고 안정이 되자 우리는 그 꿈 내용이 궁금했지만
어머니는기억을 못하는 건지~ 그 꿈이 어떤 꿈인지 말을 안하셨습니다
연탄가스에 생목숨 잃은 많은 사람들...,
지금도 가끔 불러보는 네잎크로버 노래 밀물처럼 밀려오는 쏴한 느낌이
슬픈노래도 아닌데 슬프게만 불러집니다
첫댓글 시의 질료는 기억(추억)에 있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삶의 지나간 자리에 서면 우리는 애잔한 감동과 함께 시적 서정과 만나게 되지요. 영아씨의 연탄보일러의 추억이 까마득하게 아름다운 가난한 세월 속으로 끌고가는 것 같습니다. 군고구마의 삼 색을 아랫목 장판색으로 언명한 솜씨가 바로 탁월한 영아씨의 시적인 해석능력을 보게 하고.... 오늘도 시와 함께 가을을 맞네요.
제가 꼬마였을 때, 서울간 사촌형이 연탄가스에 갔는데... Recollection기억(추억).. 이제 알았습니다...
제 기억에 기억이라는 영어 단어가 recollection 말고 또 있었던 것 같은데요... 뭘까요? 영어로 문장을 읽을 수 있어서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