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내가 처음 콩나물 신문 편집회의에 참여하며 발걸음을 시작하면서부터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중학교를 다닐 때 부터 지금까지 오래 함께해온 그 친구는 학창시절부터 소설책이나 시집을 즐겨 읽었고, 낙서같은 일기를, 일기는 아닌 것 같은 글을 즐겨썼던 감수성이 충부한 문학청소년이었다. 대학에서는 문헌정보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업에 종사하는 그 친구가 콩나물 신문의 조합원이 되어 취재도 하고 글도 쓴다면 서로에게 좋은일 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약 두 달을 쫓아다녔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요리조리 빠져 나갔고, 심신이 여유가 없다는 대답만 하였다. 그러던 녀석이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몇 주후 5월 어느 날 술 한잔하자며 날 불러내어서는 만 원짜리 몇 장을 건내며 이러는 것이다. ‘가만 보니 협동조합에서 만드는 그런 신문 필요하겠다. 지금의 이런 언론은 아닌 것 같다’면서 가입신청서를 쓰겠다고... 얼마 못 보태지만 잘 만들어 달라고..
36살 청년 오창석군은 그렇게 콩나물 신문 조합원이 되었다.
그는 최근까지 성형외과에서 사무장으로 근무를 하였고, 직장동료로 만난 여인과 지난 달 결혼식을 올렸다. 그 여인과 작은 까페를 운영해 보고 싶다며 지금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다. 교육을 마친 조금은 늦은 밤 그를 상동의 모처에서 만나 보았다. 가깝게 살고 있지만 각자 바쁘게 살다보니 소주한 잔 기울이기 쉽지 않지만, 인터뷰를 한다는 구실로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자연스레 결혼한 이야기가 오갔다. 때 되면 떠밀리듯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결혼적령기라는 단어는 이제 생소해졌고, 언제 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에 36살의 새신랑.
소감은 어떠한가. “요즘 또래들 보면 그리 늦지도 그렇다고 빠른 나이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에 결혼한 건데, 무엇보다 빠른 시간내에 경제적인 안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 결혼 앞두고 직장을 그만 두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심사숙고 하지 않을 수 없었지. 세상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사람 몇 없다지만 아닌 건 아니지 않나? 내 의견 존중해 주고 기다려 주는 그 사람에게 고맙고 또 빨리 좋은 결과 보여줘야지.” 커피 배우는 것이 제법 재미가 있나 보다. 배운 것을 뽐내기라도 하듯 아는 척 좀 해댄다.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까페 창업은 그 도를 넘어 한집 건너 한집이 까페일 정도이다. 맛과 서비스도 다양해져 이젠 굳이 대형 프렌차이즈 까페를 가지 않더라도 깊은 맛의 커피를 저렴하게 어디서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뭔가 특이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기에 그는 요즘 커피를 이용한 색다른 아이템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소주 잔 부딪치는 소리가 잦아지며 우린 또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이동한다. 오랜 친구와는 추억팔이 처럼 맛나고 값싼 안주도 없다.
그는 학장시절 꽤나 준수한 외모였던 터라 주변 여학교에서는 제법 이름 꽤나 회자되는 친구였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필자 역시 그와 친구인 덕에 이른 나이에 이성교제도 경험했으니 콩고물 잘 받아 먹은 셈이다. 그의 예쁜 글씨체와 달달한 표현력은 아마 그 시절 주고 받은 수백통의 연애편지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주로 혼자 있는 것을 즐겼고, 몽상가이기도 했다. 잠시였지만 가정불화를 겪으며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방식의 사고를 하게 되었고, 결국 고등학교 재학 중 정규교육과정을 스스로 포기하고 검정고시 통해 필요한 공부를 대신 하였다. 그는 작가라는 직업을 동경했고 그 만의 방식으로 접근해 갔다. 보통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삶과는 좀 다르게 사는 것으로 좀 더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으로 감성의 근원을 찾는 듯 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 대입을 준비 했지만 원하는 학교에 낙방 후 진로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였지만 이상과 현실 앞에 그도 별 수 없는 대한민국의 한 청년일 뿐이었다. 군복무 생활을 전환점으로 삶에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적절히 타협하며 약간은 비겁하게 살아오고 있지만, 쓴 소주 한잔을 넘기는 그의 얼굴에서 회한이 느껴진다.
시간은 어느 덧 자정을 훌쩍 넘겼다. 그에게 빨리 멋진 까페가 생기길 바란다. 그에게 어서 예쁜 아기가 생기길 바란다. 그래서 콩나물 신문에 많은 후원도 하고, 신문 만드는 일도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매우 쌀쌀해진 11월 포차에서 그렇게 둘은 서서히 취해갔다.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