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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문안 하라3(10월 11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성경 : 로마서 16:1-16(신약 261)
[어떤 기도 / 이해인]
적어도 하루에
여섯 번은 감사하자고
예쁜 공책에 적었다.
하늘을 보는 것
바다를 보는 것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기쁨이라고 그래서
새롭게 노래하자고
먼 길을 함께 갈 벗이 있음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서 감사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슬픈 중에도 감사하자고
그러면 다시 새 힘이 생긴다고
내 마음의 공책에
오늘도 다시 쓴다.
2주에 걸쳐서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에게 안부를 부탁한 분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바울이 언급한 분들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바울이 언급한 분들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면
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11절에 보면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내 친척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친척’ 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게네’ 는 7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울의 가까운 ‘유대인 동료’, ‘동족’, ‘이스라엘 사람’ 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이나 가까운 동료들을 친척으로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나 이 사람이 진짜로 바울의 혈육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헤로디온이란 분이 바울의 친척일 가능성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친척이기 보다는 친한 동료 유대인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헤로디온은 아리스도 불로의 권속처럼 헤롯의 가계에 속한 유대계 그리스도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주로 이방인을 향한 선교 활동을 폈지만 항상 그의 동족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동족 중 대부분이 현재는 비록 복음을 거절하고 있지만 장래에 하나님께서 그들도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 중심의 사역을 했음에도 바울의 주변에서 바울을 돕는 많은 유대인 동역 자들이 있었습니다. 헤로디온은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으로 로마에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2. 나깃수의 가족 중에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에 대해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나깃수를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나르킷수스 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노예의 신분으로 있다가 해방된 자유민으로서 권모술수에 능한 부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클라우디우스 황제 치하에서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으로 A.D. 54년에 네로가 즉위한 직후 네로의 모친 아그리피나의 미움을 사서 그녀의 명령에 의하여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음 후 그의 재산은 몰수되었고 그의 노예들은 황제의 소유로 예속 되었는데 황제 가문의 다른 노예와 구별하기 위하여 나깃수에게 속한 모든 노예들에게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처럼 ‘나르키시아니’ 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합니다.
권모술수에 능하고 극악무도한 나깃수는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았지만 그 권속들 중의 일부와 노예와 가족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가 온갖 종류의 사악으로 들끓는 나깃수의 집에까지 들어간 것은 의미가 깊은 일이며 놀랍고 대단히 경이로운 일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바울은 나깃수의 권속에 속한 종들로서 그리스도인 된 사람들에게 문안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나깃수의 권속 중 ‘주안에 있는 자들에 문안하라’ 는 말은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신분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 문안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또한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을 인정하고 함께 동역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합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드루배나와 드로보사에게 문안하라
12절을 보면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두 사람은
주 안에서 수고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두 이름의 뜻을 보면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의 뜻은 ‘화사하다.’ 혹은 ‘우아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동일한 어근 ‘트뤼파오’(‘호화롭게 생활하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아마 이들은 같은 자매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학자들 간에는 이 두 사람이 쌍둥이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당시 같은 어근에서 유래된 이름들은 쌍둥이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이름은 같은 일반 평민이 아닌 귀족 계층에 어울리는 이름으로서 그들은 당시 귀족 집안의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주 안에서 수고한’(타스 코피오사스 엔 퀴리오) 자들이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귀족 가문의 사람들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귀족의 풍요로운 생활에서 안주하지 않고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헌신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핍박과 박해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다음 이 두 사람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실한 믿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믿음이 참 믿음입니다. 그런 면에서 드루배나와 드로보사는 주님을 만난 뒤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고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만 살려고 애쓴 분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버시에게 문안하라
12절을 다시 보면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버시’의 헬라어는 ‘페르시다’ 로 ‘페르시아 여인’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 외국인들은 흔히 그들 출신 지역을 따서 이름으로 부르곤 했습니다.
이러한 이름은 로마나 기타 다른 지역에서 헬라어나 라틴어로 쓰여진 묘비명에서 노예나, 자유인 여자의 이름으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런 점을 참고하여 그녀가 해방된 여종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배네도, 암블리아, 스다구에 대해서는 ‘나의 사랑하는’ 이란 말을 붙였으나, 여기서는 그냥 ‘사랑하는’ 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그녀가 독신녀로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하였으므로 바울 뿐 아니라 모든 교회가 ‘사랑하는’ 여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시제 상 앞의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 대해서는 현재 시제를 사용했고 ‘버시’에 대해서는 과거 시제를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의미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추측해 보건대 ‘버시’가 수고를 많이 한 것은 이미 지난날이었고 사도가 편지를 쓴 현재는 아마도 나이든 노령의 여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버시는 연령이나 허약함으로 인해 더 이상 과거처럼 활동적으로 일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시제를 과거로 썼는지 모른다고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위해서 헌신했지만 지금은 나이가 많아서 예전처럼 열심히 일할 수는 없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5.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13절을 보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루포’의 헬라어는 ‘루폰’으로 ‘붉다.’ 또는 ‘머리카락이 붉다.’ 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이름은 로마나 헬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루포는 막 15:21에 언급되어 있는 루포와 동일 인물로서 골고다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진 바 있는 구네레 사람 시몬의 아들로 보고 있습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마가는 주로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마가가 구레네 시몬의 두 아들을 언급한 것은 로마 성도들이 그들을 알고 있었고 특히 루포는 그들 교인들 가운데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은 루포를 ‘택하심을 입은 자’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에클레크톤’은 보통 의미의 ‘택하신 자’ 라기 보다는 다른 성도들에 비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봉사와 충성이 뛰어나게 구별된 자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부 영역 본은 ‘톤에클레크톤’을 ‘주님을 탁월하게 따르는 분’ 으로 번역했습니다. 또한 그는 그의 아버지 구레네 시몬이 겪은 십자가에서의 사건 때문에 로마의 성도들 사이에서 어떤 명성을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루포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라고 표현한 것은 문자 그대로 바울의 친 어머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바울이 한때 루포의 어머니의 모성애 어린 돌봄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헤리슨은 추측하기를 수리아 안디옥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바울이 루포를 생각할 때면 반드시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 회상할 만큼 그녀는 바울에게 특별한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여 자기 가족들을 떠난 후에 인간적으로 외로웠었는데 잠시 루포의 집에 유숙하는 동안 루포의 어머니가 그의 외로움을 알고 친아들처럼 그를 따뜻한 친절과 사랑으로 돌보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그녀가 당시 로마에 있었다는 사실은 바울로 하여금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로마 방문을 고대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에게 특별한 사랑과 존경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온 가족이 그리스도를 위한 신실한 믿음의 일꾼들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레네 사람이 시몬이 자진해서 십자가를 대신 진 것이 아니지만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갔지만 그의 아들과 아내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그의 가족들이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6.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4절을 보면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이들에 대해서는 단순히 이름만 나오고 그들에 대한 칭찬이나 설명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그들과 바울과의 유대 관계가 앞에 언급된 사람들과의 관계보다는 덜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남성으로서 아마도 어떤 특수한 지역이나 직업에 종사하던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의 이름을 통해서 공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이들 모두가 노예나 혹은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로 노예 계급 중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에 있던 많은 노예 계급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교회 안에서 중요한 일꾼들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예들은 전쟁에서 패배함으로 잡혀 온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전쟁에서 패하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로마에 끌려왔는데 로마서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던 노예 출신들이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듣고 복음을 통해서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아무 희망 없이 절망의 삶을 살다 주님을 만나 희망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통해서 많은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복음은 절망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복음을 세상 속에 전해서 절망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희망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복음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7.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 울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15절을 보면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빌롤로고’(필롤로곤)는 황제 가문의 권속들 중에 특히 노예나 노예에서 자유롭게 된 자들의 헬라와 라틴 묘비명에서 발견됩니다.
‘율리아’(율리안)는 로마 여성들의 가장 보편적인 이름으로 황제 가문의 노예들 사이에도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이들 둘은 한 부부이거나 오누이로서 황제 가문의 노예로 생각 되어집니다.
또한 ‘네레오’(네레아)와 그 자매는 빌롤로고와 율리아의 아들과 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올름바’(올륌판)는 올림피오도루스의 약칭으로서 전 로마 제국에 널려있는 흔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앞 절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로마에서의 다른 가정 교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앞 절과의 차이점은 본 절에서는 ‘모든 성도’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구성원에 남녀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체(가정교회)가 여러 단체들 가운데 가장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이 도시에는 여러 구역의 가정 교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나오는 무리들도 로마의 여러 가정 교회 중 하나로서 정기적으로 한 곳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는 신앙 공동체를 형성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문안하라고 언급한 사람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잘 알려진 사람이고 어떤 사람들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귀족이고 왕의 가문에 속한 사람인가 하면 노예 출신도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8. 서로 문안하라
16절을 보면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표로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입맞춤으로 인사를 나누는 습관이 있었습니다.(고전 16:20;고후 13:12;살전 5:26)
이와 같은 인사법은 전체적으로 고대 근동 지방에 퍼져 있었고 유대 전통에서도 이러한 유사한 인사법이 행해지고 있었는데 당시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 역시 사랑의 표로 이를 실행했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의 이런 인사법은 결코 호색이나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과 거룩한 형제애의 구체적인 표현인 것이었다. 교회와 성도는 서로 거룩한 영적 입맞춤으로 문안하고 서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특이한 표현입니다. 바울은 대개 ‘하나님의 교회’(고전 1:2;10:32;11:22;15:9;고후 1:1;갈 1:13;살전 2:14;살후 1:4;딤전 3:5, 1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특히 ‘교제’ 의 측면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이 용어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몇몇 경우에도 ‘모든 교회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바울 사도가 ‘모든 교회들’ 이라고 할 때는 그의 선교 사역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본문의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도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들은 실제로 서신을 통해서 바울과 접촉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사도가 여기서 모든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한다는 인사를 전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의 일체감을 상기시키며
(2) 흩어진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줄로 함께 묶여져 있음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로 문안하라고 말한 바울의 말을 중심으로 해서 3주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은 세심하게 로마에 있는 성도들과 지도자들 중에 본인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문안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서로 교제하고 문안하고 돌아보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 사람들과 믿음으로 교제하고 돌아보는 사랑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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