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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영옥의 시와 수필 원문보기 글쓴이: 무곡
오늘 점심시간 식사중 옆자리 초로의 신사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TV화면에는 지금 한창 진행 중인 벤쿠버 동계 올림픽이 진행되고 있었기에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금메달 소식으로 이어지고 모선수 이선수등의 이름이 거론되더니 그중 목성이 가장 큰 분이 대뜸 이런 이야길 하였다. 대충 그 내용을 간추려 본다면, "요즘은 모두 살만해서인지 부모들이 자기자식들이 운동선수가 되는것을 반대하고, 그 결과 훌륭한 선수의 양성이 예전보다 힘들고,그러나 저런 선수들이 진정한 애국자인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홍보효과가 그 어느 외교관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다. 내가 외국을 여러번 다녀보았는데 미국,유럽등에서는 우리나라의 삼성, 현대 ,LG 등등의 기업이 일본 기업인것으로 알고 있더라. 이런 시기에 저런 세계적 대회에서 떡하니 메달을 따므로서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상승되어 우리상품이 높이 평가 되고 잘 팔릴 수 있다." 상당부분 공감을 하면서 우리나라를 자연스럽게 홍보하게 되었던 Elizabeth Keith라는 작가가 떠올라 새해 초에 애국(?)하는 마음으로 그의 작품을 몇점 올리며 함께 Paul Jacoulet의 작품을 소개 합니다. 예술적 가치는 높다고 보진 않으나 정겨운 우리네 선조들의모습을 대하는 것 같아서 저는 무척 포근한 기분을 느꼈답니다.
Paul Jacoulet(폴 자쿨레) 한국인에 대한 사랑,따뜻한 색채로 옮기다.
Paul Jacoulet(폴 자쿨레)1896~1960 - 1896년 파리 출생. - 1899년(3세) 아버지가 프레드릭 자쿨레 동경외국어대학 교편을 잡으면서 일본으로 감. - 1920년(24세) 재일 프랑스대사관 근무. - 1921년(25세) 아버지 사망. - 1928년(32세) 어머니가 경성제국대학(현재 서울대학교) 의학박사 나카무라 히로시씨와 재혼하여,어머니는 서울 거주. - 1929, 1930, 1932, 1934, 1938년 서울 방문. - 1931년(35세) - 1934년 서울 미쓰코시백화점에서 ‘폴 쟈쿨레 판화전’을 개최. - 1949년(52세) - 1954-1955년 세계일주를 하면서 전시회 개최. - 1960년 일본 가루이자와 (輕井澤)에서 사망.
커다란 리본을 꽂은 동양 소녀와 동양 아이(나성순)의 손을 잡고 미소짓는 서양인. 폴 자쿨레
사진에는 '1957년 폴 자쿨레와 기증자 나성순'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옆에는 이들의 특별한 인연과 폴 자쿨레에 대하여 길게 설명되고 있었다. 미소짓고 있는 동양소녀는 한국인이고,또 한사람은 주인공 '폴 자쿨레'였다.
한복의 우아한 선과 질감을 충분히 살린 작품
목판을 눌러찍어서 누빔까지 사실감있게 표현, 만져 보면 올록 볼록 할 듯 싶었다.
돌복을 입은 아이 1934
보물 (1940)
북풍(1947) 북풍(1947)은 폴자클레의 작품중에서도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다. 눈이 쌓인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복을 입은 여인이 서 있다. 옷고름이 바람에 날리고 있고, 머리에 쓴 검은색 조바위를 두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이 사실적이다. illustration (C) Paul Jacoulet/ ADAGP, Paris-SACK, Seoul 2006 ⓒ 국립중앙박물관
폴 자쿨레의 다색 목판화는 수없이 많은 스케치와 수채화를 통해 밑그림을 그리고 색을 정한 다음, 색깔의 숫자만큼 목판을 파고 겹쳐 찍기를 반복하여 완성된 작품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최고의 조각과 찍기의 장인과 공동작업으로 진행되었다.
▲ 어미새를 잃은 둥지를 가져다가 먹이를 먹이고 있는 한국 할아버지를 그린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둥지(1941)>
<둥지(1941)>
1953년작 한국 인물화
밤 나들이
고추 말리기
내면 의 고통
신행
소금장수(1936)Woodblock print
추방자
월동준비.1951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
"Portrait of Miss Elizabeth Keith" by Ito Shinsui, 1922
스코틀랜드의 자그마한 도시 Aberdeenshire 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쓰 키이쓰(Elizabeth Keith)의
가정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런던으로 이사를 해야 했었습니다.
성장기에는 평범하게 가사를 도우는 소녀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28세가 되던 1925년 그녀는 남편 을 따라 동경에 와 있는
Jessie라는 여성을 만나러 일본을 방문합니다.
당시 일본의 적십자사는 결핵환자들을 도울 기금을 마련하느라고 고심하던 중,
사회 유명인사들의 모습을 풍자적인 삽화로 구성하여 책자로 만들어
판매수입을 얻고자 했습니다.
이에 그녀가 발탁되어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책은 즉시 다 팔려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이때 부터 화가로 변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삼일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풍습과 인물 등,
많은 그림을 그려 도쿄에서 전시하였습니다.
이를 본 일본 목판화의 대부인 와다나베가 목판화로 출판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출판된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어 그때부터 자타가 공인하는 화가로 서의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녀의 미술인생은 한국을 서양인들에게 그림으로 소개한 미국여류 화가
Lilian M. Miller나 프랑스인 Paul Jacoulet처럼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순전한 독학이었습니다.
1933년에는 드 디어 영국의 한 미술잡지의 호평을 받아 당시
일본 목판화의 대가인 호쿠사이나 히로시게와 동렬에 설 정도의 명성을 얻게 됩니다.
영국의 여왕도 그녀의 전시회에 참관하였고 전례 없이 일왕의 동생도 전시회를
다녀갔다는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한국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여러 곳에서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사망 이후 45년이 된 지난 2002년 2월에파사데나에 있는 Pacific Asia Museum에서
단독 전시회가 있었으며 책도 출판되었습니다.
연날리기 모습이 자연스런 한국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신년을 맞아 어울리는그림인듯 하여 맨 앞쪽에 올려 보았습니다.
널뛰기
가난한 모녀
새 신부
김윤식 대감 (고종때 외무대신 )
모자가게
미망인
바느질하는 여인
부유한 한 가정
붉은 조복을 입은 청년
사당에서
서당 풍경
수원성
시골의 학자
식당(주막?) 풍경
요즘의 식당 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뭔가 한끼 식사를 끝내고서 어쩌면 탁배기라도 한잔 반주로 마셨을듯한 흡족스런 얼굴로 곰방대를 물고 길을 떠나는 사람 과 웃음을 가득히 머금고 식사를 하고 있는 안쪽 사람들의 표정 과 가옥이며 기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우리의 옛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풍요롭지는 않으나 정겨운 그림이다.
함흥의 아낙네
대동강변
한가로히 장기를 두고 있는 두사람의 사이에는 아마도 무언의 교감이 이뤄지고 있는 정중동의 느낌을 주면서 바로 우리들의 친 할아버지의 생생한 기억이기도 하여 무척 애착이 가는 그림 입니다. 두사람의 가운데를 모락 모락 피어 오르는 담배연기를 재미있게 표현한것도 이채롭게 느껴집니다.
시골 의 결혼식 풍경
(두아이 :크리스마스 씰 의 도안으로 사용 됨)
궁정악사
결혼행렬
귀가
민씨 가문 의 소녀 (명성황후 의 조카이며 민영환 의 친손녀)
사내아이
사찰
서울 동대문 의 야경
서울 동대문 의 일출 광경
평양 의 동문
결혼식 하객
한국 의 양반
세아이
북 연주자
피리 연주자
노상 만남
풍경:소를 타고 가는 두사람이 부자관계인지 조손관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위기상 조손관게로 해두고 싶은 평화로운 정경인데 타고가는 소의 모양이 얼룩소라는것이 요즘의 황소만 보는 우리들 눈에 약간은 낯설어 보입니다.
폭포
어머니 와 아기
고승
굿 판
황실녀?
무관
문관
농부
목부 의 휴식
노인
아녀자 의 외출
공방
Lilian May Miller, 1895 ~1943 미국여류화가
우리나라를 사랑한 미국인 화가
미국인 화가의 목판화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민족의 서정적 감정을 잘 표현한 웅장한 서사시 같은 작품입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지, 돛폭이 활짝 부푼 일곱척의 황포돛배가 노을 가득한 대동강 물길을 따라 유유히 내려옵니다. 참으로 장엄하게 하늘을 뒤덮은 붉은 노을입니다.
'한강의 황포돛배'는 릴리안 밀러가 우리나라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지 10년째 되던 해에 판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그녀의 첫번째 작품은 1918년에 그린 비원의 '향원정'입니다. 그리고 1920년에는 어린 여자 아이들, 시골에서 빨래 너는 모습, 고추 말리는 모습, 한강 어느 나루터에서 애기 업고 있는 아줌마 모습 등 주변적인 모습을 많이 그렸는데 이 초기 작품들 중에는 수작이 거의 없고, 미국에 가서 미술대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인 1927년부터 서사적 구조를 갖춘 좋은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황포돛배에 대한 인상이 매우 깊었는지, 1920년부터 영어로 'Orange-Sailed Junk' 라고 부르며 비교적 많은 작품 속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시켰고, 1928년에 들어와 대동강의 황포돛배와 한강의 황포돛배에 사람과 짐을 채우면서 8년동안의 집념을 완성시켰습니다.
한국 의 사당
◈ 감미로운 팝송과 샹송 모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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