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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03
1. 폐창고 안 -N1
암전 상태에서 거친 호흡. 쿵! 퍽! 타격음과 신음 들리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탄식하는 소리.
서서히 밝아지면 흐릿한 시점으로 저만치 서 있는 배중사가 보인다. 흔들리는 초점.
우악스럽게 다가서는 배중사. 그의 주먹이 보이는가 싶더니 우당탕! 나가 떨어지는 태호.
그제야 폐창고 상황이 펼쳐지면... 종구와 해진 등 노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호와 배중사가 파티 중.
태호는 피투성이지만 배중사는 약간 지쳤을 뿐, 살기등등하다.
또 다시 배의 군화발에 나가 떨어지는 태호. 압도적인 열세다.
뒤쪽에서 흡족하게 지켜보는 독사와 악어.
해진 : (초조해서 다가서는) 형님! 어떻게 좀 해봐요! 저러다 죽겠네!
종구 : (무표정하게 태호만 응시할 뿐) ...
창고 벽을 짚으며 겨우 몸을 일으키는 태호. 서 있을 힘조차 없어서 벽을 기대고 버틴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태호. 피가 눈가로 흘러내려 시야가 엉망이다.
위압적으로 한걸음씩 다가오는 배중사.
틈을 노리는 태호, 남은 힘을 쥐어짜서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데... 가볍게 피하며 옆구리를 지르는 배중사.
헉! 숨을 토하며 고꾸라지는 태호.
2. 펜트하우스 -N1
소파에 파묻혀 앉은 흥삼, 서류를 들여다본다. 그 옆에 미동없이 서 있는 사마귀.
서류 다 읽고 툭 내려놓는 흥삼. 태호의 사진과 인적 사항이 기재된 서류다.
흥삼 : 머리는 아까운 놈이다. (돌아보며) 주먹도 그만하겠냐?
사마귀 : ...질 겁니다.
흥삼 : ...지겠지.
사마귀 : 그리고... 죽게 될 겁니다.
흥삼 : (묘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는) ...
3. 폐창고 안 -N1
번쩍! 허공에 빛나는 야전삽날. 배중사, 야전삽을 꼬나쥐고 쓰러진 태호에게 다가간다.
기진맥진 정신 못차리는 태호.
배중사, 비릿한 시선으로 태호의 아킬레스건을 내려다본다. 삽날로 찍어서 끊어버리려는 것!
배중사, 야전삽을 치켜드는데...
종구 : 그만 해!
배중사 : (멈칫 돌아보는)
종구 : (다가오며) 승부는 끝났어. (쓰러진 태호를 흘끔 봤다가 해진에게) 데려 가라.
해진 : (영칠과 얼른 나서려는데)
배중사 : 어이, 동작 그만!
해진 : (멈칫) ...!
배중사 : (삽날 들어보이며) 이걸루 찍어야 끝이 나겠는데요.
종구 : (표정) 파티 규칙에... 연장질하라고 돼 있냐?
악어 : (넉살좋게 나서는) 그건 아니쥬우~ 성님 말씀대루 파티는 끝났으니께, 진 눔은 공장에 보내야허지 않겄슈?
태호 : (소리) 아직 안끝났어!
종구와 독사 등이 돌아본다.
만신창이가 된 태호, 바닥을 짚고 비틀비틀 일어난다. 눈가에 엉긴 피를 닦아내고, 겨우 주먹을 움켜쥐며.
태호 : 덤... 벼... 여기서... 끝낸다... (어질어질해지며) 덤비라구...
해진 : (부축하며) 태호씨!
태호 : 덤... (해진의 어깨에 쓰러지듯 안기는)
종구 : (쯔쯔해서 보다가, 독사에게) 이만 정리해.
독사 : (어깨를 으쓱) 애들이 규칙대로 하자는데... 끼어들지 마시죠.
종구 : (싸늘해지며) 그렇게 못하겠다면?
독사 : (억지로 웃는) ...저도 서열이 있고, 체면이 있습니다.
종구 : (코웃음) 지랄...
독사 : (꿈틀) ...!
종구 : 넘버 투 되고 싶냐? 와서 까봐. (악어와 배중사 향해) 니들도 욕심 나면 덤비든가.
독사패를 향해 격투자세 잡는 종구.
살기등등해진 악어와 배중사, 독사를 쳐다본다.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독사, 여차하면 치고 나갈 참인데...
쾅! 쇼팅유 깡통을 걷어차는 소리. 모두들 돌아본다. 차분하게 걸어오는 사마귀, 종구와 독사 중간에 선다.
사마귀 : 회장님 명령입니다. 보스들은 지금 즉시 파티 중단하고 모이십시오.
(해진의 어깨에 기댄 태호를 보며) 저 친구까지 전부...
태호 : (가물거리는 시선 들어서 보는) ...?
종구 : (관심없이 돌아서는)
사마귀 : 보스들 전부라고 하셨습니다.
종구 : (문을 향해 가며) 죽었다구 그래.
사마귀 : 형님.
종구 : (못들은 척 나가버리는)
4. 더 클럽 앞 ( 밤 ) -N1
차가 멈추고 사마귀가 내린다. 뒷자리에서 끄응, 내리는 태호.
차 바닥에는 피묻은 솜뭉치가 한가득이다. 살짝 찌푸리는 사마귀.
뒤이어 멈춘 차에서는 독사와 악어, 배중사가 내린다.
술집같지 않은 출입문 옆, ‘더 클럽’의 작은 명판을 바라보는 태호. 문을 열고 기다리는 사마귀.
태호, 삐걱거리는 몸을 가누며 안으로 들어간다.
5. 더 클럽 / 홀 -N1
사마귀를 따라 들어서는 독사와 악어, 배중사. 그리고 마지막에 태호.
상석에 앉아있던 흥삼, 시선으로 훑다가 태호에게 멈춘다. 담담하게 마주보는 태호.
깔끔한 수트와 헤어스타일, 넘버원다운 흥삼의 카리스마와 대조적으로 깨지고 터지고, 피얼룩진 태호의 몰골.
독사 : 부르셨습니까? 형님. (옆자리로 가려는데)
흥삼 : 앉을 거 없어.
독사 : (멈칫) ...?
흥삼 : 류씨는?
사마귀 : 먼저 갔습니다.
흥삼 : (언짢은) 내가 오라고 했는데도?
그때, 태호를 지나쳐서 흥삼에게 다가가는 여인.
미주를 알아보고 놀라는 태호. 버스에 찾아왔을 때와 전혀 다른, 요염한 분위기.
미주 : (흥삼만 들리도록 낮게) 지방에 갔다온 모양이에요.
흥삼 : 또? (소리없이 혀를 차는) 며칠 정신 빼놓구 다니겠구만, 그 양반.
(그늘진 미주 표정을 눈치채고) 가서 들여다봐야지. 걱정될 텐데...
미주 : (표정 고치고 술잔 만들며) 넘겨짚지 마세요.
흥삼 : (가늠하듯 잠시 보다가, 고개 돌리고) 독사야.
독사 : 예, 형님.
흥삼 : 인생이 즐겁냐?
독사 : 예?
흥삼 : 정만출이 우리 밥상 뒤집어 엎으려고 눈알이 시뻘건데, 느이들은 식구들끼리 반찬투정이나 하고 자빠졌구...
세상 재미지게 산다?
독사 : 그게... 저 자식이 배중사한테 파티 신청을 해서...
흥삼 : (말 자르는) 아래 놈들이 대소변 못가린다구 너까지 싸구 있으면 안되지요. 서열 4위, 나이롱뻥 쳐서 딴 거 아니잖아요. 네?
독사 : (꾹 참고 숙이며) ...죄송합니다.
흥삼 : (악어와 배중사를 노려보면)
악어,배중사 : (황급히 숙이며) 잘못했습니다, 형님!
태호 : (그냥 선 채로 흥삼의 시선을 받는) ...
흥삼 : (비죽 미소짓더니) 정사장 관뚜껑에 못박을 때까지... 당분간 서열 파티는 중지한다.
식구들끼리 잡소리 안나게 하고, 사채애들 기웃거리는지 똑바로 감시해.
독사 : 알겠습니다.
흥삼 : 알면 됐고... (둘러보며) 이제 가서들 자라.
독사 : (실망스런) 예? 그냥... 갑니까?
악어 : (변죽좋게 나서며) 큰성님. 인자 초저녁인디유? 일어난지두 얼마 안됐고, 우덜헌티는 지금이 아침이어요.
흥삼 : 그러면 더 자 둬. 푹...
용건 끝났다는 듯 술잔 기울이는 흥삼.
대놓고 무시당한 독사와 악어, 모멸감을 참고 돌아서는데...
흥삼 : 넌 남아라.
태호 : (돌아서려다 멈추는) ...?
흥삼 : 술이나 한잔 하자.
태호 : (긴장하는) ...
6. 더 클럽 앞 ( 밤 ) -N1
뚱한 표정으로 클럽을 나오는 독사와 악어, 배중사.
차에 오르려던 독사, 뒤따라나온 사마귀를 돌아본다.
독사 : 장태호 저 새끼 정보, 내가 물어온 거라구 말씀드렸냐?
사마귀 : (말갛게 보는) ...
독사 : 큰형님한테 말씀드렸냐구, 새꺄.
사마귀 : 장태호씨에 대해선... 다들 입단속하시랍니다.
악어 : (비아냥) 워메~ 우리 큰성님은 비밀두 많으셔. (독사에게) 갑시다. 주둥이에 오바로꾸치러.
사마귀 : (악어를 노려보는) ...
독사 : 눈 깔아라. 서열 무시하다가 뽑힌다.
사마귀 : 살펴 가십시오.
목례하고 다시 들어가는 사마귀.
독사 패거리, 영 심기가 불편하고...
7. 더 클럽 / 홀 -N1
빛깔 좋게 섞이는 폭탄주. 무표정한 미주, 태호 앞에 술잔을 놓는다.
흥삼 : 마셔라. 피로가 좀 풀릴 거다.
태호 : (경계심 풀지 않고 보는) ...
흥삼 : 임마. 생명의 은인이 권하면 고맙습니다, 하구 마셔야지. 나 아니었으면 너 지금쯤 공장 실려갔어.
태호 : ...이길 수 있었습니다.
흥삼 : (피식) 객기부리지 마라. 배중사... 너같은 잔챙이들, 한트럭은 짓밟고 그 자리 올라간 거다. 그 위에 악어하고 독사는?
(고개 젓고) 류씨한테 복싱 조금 배웠다고 넘볼 상대들이 아냐.
태호 : (주춤, 알고 있었구나 싶은) ...!
흥삼 : 눈빛이 좋구나. 밖에서 뭐하다 왔냐?
태호 : 개인사업... 했습니다.
흥삼 : (미묘한 표정) 너같은 눈을 가진 녀석들은 기회만 잡으면 금세 치고 올라오지. 내가 그 기회를 줄 수도 있구.
(잔 들고 권하는) ...마셔.
태호 : (마지 못해 술잔 드는) ...
흥삼 : (잔을 부딪히고 한모금 마시더니) 그러니까 사업이니 뭐니... 내 앞에서 그런 설레발 치지 마라
(눈빛 싸늘해지며) ...장과장.
태호 : (마시려고 고개 숙였다가 그대로 굳는) ...!!
흥삼 : 아, 과장은 그냥 명함용인가? 그정도 작전 주포면 이사급 레떼루는 달았어야지.
(미주와 사마귀 돌아보며) 이 친구, 사람이 참 겸손해.
무관심한 미주, 흥삼의 잔에 얼음을 채운다.
술잔에 박힌 시선을 들지 못한 채 파르르... 긴장하는 태호.
흥삼 : (쥐락펴락, 갖고 노는 미소) 술 다 식겠다. 마시라니까...
태호 : (그제야 목이 타는지 단숨에 비우는) ...
흥삼 : 동해 금융 정사장 알지?
태호 : (더 속일 필요 없는, 고개 들어 흥삼을 본다) ...압니다.
흥삼 : 그 인간이 바짝 독이 올랐어. 장과장 잡겠다고 짭새들한테 줄까지 댄 모양인데...
태호 : 저도 당했습니다!
흥삼 : (갸웃) ...?
태호 : 어딘가 정보가 새서 역작전이 걸렸어요. 전... 아무것도 모르고 누명만 쓴 겁니다!
흥삼 : (쓰게 웃는) 이걸 어쩐다? 당한 사람이 여기 또 있는데...
태호 : ...?
흥삼 : 대동 바이오... 정사장 따라 들어갔다가 (손가락 다섯 개 펴는) 나도 50개 날렸거든.
태호 : (흠칫) ...!!
흥삼 : 여우 피하겠다구 숨은 굴이 하필 호랑이굴이네. (입매는 웃지만 눈빛은 살벌한) 우리 장과장, 지지리 운도 없어요.
태호 : (하얗게 질리는) 그건...
순간 숨이 가빠지며 말문 막히는 태호. 시야가 흐릿해지며 어질어질하다.
느린 재생한 변조음처럼 멀게 들리는 흥삼의 목소리.
흥삼 : 그... 약... 쎄네... 얼...마... 나... 탄... 거... 야...
방금 마신 술잔을 보는 태호, 당했구나 깨닫지만 점점 의식이 까무룩 잠긴다.
흥삼의 얼굴이 흐릿해지고, 그의 웃음소리가 에코처럼 울리면서... 화면 암전.
8. 태호의 꿈 N
어두운 밤, 태호의 차가 달린다. 차량 통행이 없는 길에 한줄기 헤드라이트만 비추고...
조수석의 정민, 핸들 잡은 태호의 어깨에 기대 있다.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다정한 눈길을 주고받는 두 사람.
무심코 전방을 보던 태호, 사람 형체를 발견하고 급브레이크!
온 몸이 흠뻑 젖은 민수, 유령같은 표정으로 물을 뚝뚝 흘리며 다가온다.
경악하는 태호, 후진 기어를 넣는 순간... 탁! 태호의 손을 잡는 다른 손!
조수석에 정민이 아닌, 정사장이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본다.
공포에 질리는 태호.
정사장, 태호의 손을 움켜쥐고 억지로 D 기어를 넣게 한다.
태호, 브레이크를 밟지만 오히려 가속하는 차, 민수를 향해 돌진한다.
억울하고 분노에 찬 민수의 눈빛.
사색이 되는 태호, 충돌하는 순간 눈을 질끈 감으며 비명!
9. 호텔 객실 ( 새벽 ) -N1
비명과 함께 일어나는 태호, 숨을 헐떡인다. 벗겨진 상의에 붕대가 감겨 있다.
영문 모른 채 다친 부위를 더듬는 태호.
미주 : (소리) 정민이가 누구에요?
흠칫 돌아보면 미주가 화장대 앞에 가운 차림으로 앉아있다.
미주 : 밤새 그 이름만 부르던데... (돌아보는) 애인인가봐?
태호 :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여기서 뭐하는 거에요?
미주 : 몰라 물어요? 남자 여자가 호텔방에서 뭐하고 노는지?
태호 : (표정) ...!
미주 : (쓴웃음) 안심해요. 약에 취해서 내내 곯아 떨어졌으니까... (창 밖을 보는) 날 새려면 시간이 좀 남았네.
일어나는 미주, 태호에게 등을 돌린 채 한쪽 어깨의 가운을 내린다.
태호 : (당황스런) 이봐요!!
미주 : 사양할 거 없어요. 곽회장이 주는 선물이니까... (고개 돌려 보는) 이제 내가 뭐하는 여잔줄 알겠어요?
표정 굳는 태호. 그 시선에 미주의 등과 어깨에 얽혀있는 흉한 화상 자국이 보인다.
담담하게 나머지 어깨를 내리는 미주.
태호 : (차분한) ...그만 둬.
미주 : (멈추고 보는) ...?
태호 : (침대 내려와 셔츠를 찾아 입는)
미주 : 죽여도 시원치 않은 사람을 치료해주고, 선물까지 보냈는데... 호의를 무시하면 회장님이 언짢아할 거에요.
태호 : 맘대로 하라 그래.
미주 : (가만히 보다가 다시 가운 걸치는) 보기보다 까다로운 사람이네. 애인을 많이 사랑하나봐?
태호 : (멈칫, 불쾌해지는) 당신 애인은 누군데? 곽흥삼이야, 류종구야?
미주 : (표정) ...
태호 : 한쪽은 돈을 주고, 다른 쪽은 마음을 주나? 그러구 사는 게 당당해?
미주 : (뭔가 말하려다 쓴웃음) 진작에 도망쳤어야 하는데... 너무 늦었어요.
태호 : 나한테 변명할 거 없어. (재킷 걸치고 돌아서는)
미주 : 내가 아니구 장태호씨 얘기에요.
태호 : (돌아보는) ...?
미주 : 곽회장 거미줄에 걸린 이상,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요. 서서히 갉아먹히다... 갑자기 버려지겠죠.
(돌아서서 화장대에 앉는) 나두, 아저씨도... 장태호씨하고 같은 거미줄에 걸렸거든요.
태호 : 거미줄은 걷어내는 거야. 도망치는 게 아니라.
미주 : (거울에 냉소어린 표정 비치고) 그새 회장님 명령을 잊었네요? 객기 부리지 말라고 했는데.
매섭게 보다가 돌아서는 태호. 쿵, 객실 문이 닫힌다.
우두커니 거울을 보던 미주,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옷장으로 간다.
10. 폐버스 안 ( 새벽 ) -N1
군용침대에 기대앉은 종구, 퀭한 시선으로 낡은 사진을 보고 있다.
어린 딸(4세)을 안은 채 웃고 있는 아내의 사진, 다른 한 장은 중학생 교복을 입은 딸의 독사진.
충혈된 눈동자가 젖어가는 종구, 괴로워하다가 검은 비닐봉투를 쏟는다. 바늘에 마개가 꽂힌 1회용 주사기.
팔뚝을 걷는 종구, 혈관을 두드린다. 주사기 마개를 입으로 뽑고 팔뚝에 꽂으려는 순간!
미주 : (소리) 안돼요!
멈칫, 돌아보는 종구. 한달음에 달려와서 숨이 찬 미주, 애타는 눈빛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미주 : ...그러지 말아요. 힘들게 끊었잖아요.
종구 : (냉랭한) ...꺼져.
미주 : 아저씨 다시 망가지면, 은지 못찾아요. 찾아도 은지한테 아빠 노릇 못 할 거구요. 정말... 그러구 싶어요?
종구 : ...꺼지라구 했다.
미주 : (울컥해지며) 누가 아저씨 불쌍해서 이러는 줄 알아요? 나도 은지가 걱정되니까 하는...
말을 마치기 전에 와장창! 빈 소주병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난다.
흠칫, 굳어 버리는 미주. 종구, 아차... 싶어 당황스럽고.
미주 : (차갑게 식은) ...아저씨 맘대로 해요. 알콜중독으로 살든, 약쟁이로 죽든... (휙 돌아서는)
종구 : (씁쓸히 보다가) 미주야.
미주 : (잠깐 멈추는) ...
종구 : 이제부턴 말일 돼두... 기차역 가지 마라.
미주 : (돌아보지 않은 채) 그건 제 맘이구요.
종구 : ...
버스를 내려가는 미주, 울음이 터질까봐 입을 막고 걸음 서두른다.
손에 주사기를 든 채 멍하게 내려다보는 종구.
11. 무료 병원 / 병실 ( 오전 ) -D2
잠들어 있는 조회장.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태호. 늙고 지친 노숙자의 주름살이 짠하게 보이는...
그때 해진이 나라에게 인사하고 설레발 떠는 소리 들린다.
표정 고치고 돌아보는 태호. 해진과 나라 들어서다가 태호 발견하고.
해진 : (반색하며 다가오는) 태호씨! 밤새 어디 있었어? 곽흥삼한테 해꼬지당한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태호 : 괜찮아. (나라와 눈인사하고, 해진에게) 근데 오십장, 그 양반은?
해진 : 퇴원했대.
태호 : 벌써?
해진 : 병원 침대 모자라다구 본인이 비워줬대. 지방 어디에 일자리 났다고 거기 간다나?
그 인간, 욱하는 성격이라 오래 못버틸 텐데...
나라 : (태호를 흘끔 보는) 두들겨 패는 사람만 없으면 괜찮겠죠.
태호 : (뜨악해지고) ...
나라 : (반창고를 보는) 생각보다 멀쩡하네... 진짜 싸움 잘하나봐요?
태호 : (빈정 상해서) 이길 만큼 합니다.
나라 : 지는 날도 있겠죠. 그땐 우리 병원 오세요. 원장님이 타박상 잘 봐요.
킥킥, 웃는 해진. 태호, 뭐라 받아치려는데, 조회장이 낮은 신음과 함께 잠에서 깬다.
나라 : (다가가서, 상냥하게) 정신이 좀 드세요, 회장님?
조회장 : (멍해서 사람들을 쳐다보는) ...
해진 : 회장님, 저희 왔습니다. 차이사하구 장이사.
조회장 : (메마른) 나... 회장 아닙니다...
침울해지더니 돌아눕는 조회장.
난처해서 서로를 쳐다보는 태호와 해진, 나라.
12. 병원 앞 ( 오전 ) -D2
병원을 나오는 태호와 해진. 조회장한테 마음이 쓰이는 태호.
해진 : 너무 걱정할 거 없어. 며칠 저러다가 갑자기 회장님 모드로 변신할 때도 있거든.
태호 : 해진씨는 방부터 구해봐.
해진 : 무슨 방?
태호 : (병원을 돌아보며) 저기 오래 계실 수 없잖아. 저 상태로 지하도에서 지내기도 그렇구... 이 근처에 쪽방같은 거 많다며?
해진 : 방이 없나? 돈이 없지.
태호 : 나 서열 7위야. 그 정도는 융통할 수 있어. ...그럼 부탁해. (해진의 어깨를 툭 쳐주고 서둘러 가는)
13. 폐차장 ( 낮 ) -D2
걸어오는 태호. 버스에 오르려다가 멈칫, 주사기를 발견한다. 내용물이 남은 채 버려진 주사기.
14. 폐버스 안 ( 낮 ) -D2
들어서는 태호, 난장판이 된 실내를 보고 놀란다.
군용침대에 구겨져있던 종구, 희미하게 눈을 뜨더니 태호가 들고온 주사기를 본다.
종구 : 그 작대기 하나가 소주 몇 짝값이다. (하품하며) 물가 장난 아냐.
태호 : 진짜로... 전에 마약같은 거 하셨어요?
종구 : 미친 척하구 한번씩 시험해보는 거야. 끊었나, 못끊었나...
태호 : (둘러보며) 무슨 일... 있었어요?
종구 : 개같은 인생에 엿같은 일 밖에 더 있냐? (끙차, 일어나 생수를 들이키더니 크아... 소리내고)
머리털 나고 처음 제자랍시고 받았더니 지 묫자리를 지가 파구 앉았네, 니미...
태호 : ...죄송합니다.
종구 : 죄송한 거 알면 이제 그만 하산해.
태호 : 네?
종구 : 러닝 조금 배웠다고 파티거는 놈이잖아, 너. 그런 놈한테 잽이라두 가르치면? 그 길로 곽흥삼 치겠다고 나설 거 아냐?
태호 : (표정) 어젠...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종구 : 다 들었어. 그게 더 위험한 거야. 어설픈 정의감, 의리... 그런 거.
태호 :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종구 : 아서라. 여기서 관두고 만수무강해, 임마.
태호 : 형님!
종구, 태호를 지나쳐서 버스를 나간다.
표정 굳은 태호, 돌아서려다가 문득 보이는 것. 침대 위에 종구의 아내와 딸 사진.
15. 폐버스 앞 ( 낮 ) -D2
버려진 주사기를 발로 짓이기는 종구. 다가오는 태호.
태호 : 곽흥삼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종구 : (돌아보는) ...?
태호 : 제가 뭐하던 놈인지, 무슨 일로 도망쳤는지... 이미 저에 대해서 다 알고 있었어요.
제가 실패한 작전 때문에 50억이나 손해봤답니다.
종구 : (표정) 근데두 널 살려줬다구? 곽흥삼 그 인간이?
태호 : 주먹이든 머리든, 써먹을 방법을 찾고 있겠죠. 서열 7위 정도는 어차피 소모품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종구 : (코웃음) 이제 좀 주제파악을 하는구나.
태호 : 전, 곽흥삼한테 용도폐기당하지 않을 겁니다. 쓸모있는 부하가 돼서, 최대한 가까이 가서, 그 자가 가진 걸 뺏을 겁니다.
그게 여길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종구 : 미친 눔...
태호 : 기회를 주세요, 형님.
뜨거운 눈빛으로 고개 숙이는 태호.
물끄러미 보던 종구, 자세를 잡는다. 고개 드는 태호. 순간 퍽! 태호의 가슴을 지르는 종구.
숨을 삼키며 상체가 구부러지는 태호.
종구 : 너, 맷집이 약해. 때리는 기술보다 맞는 기술부터 배워야 된다.
태호 : (통증을 참으며) ...네.
종구 : 머리는 한방에 가니까 가드가 필수지만, 보디는 그렇지 않아. 단련만 돼있으면 언제든 비워놔도 돼. (태호 표정에) 아프냐?
태호 : (고통스럽지만) 아... 뇨.
종구 : 방금 그거, 잽이다. 제일 가벼운 놈.
태호 : (어이없는) ...!
16. 공원 ( 낮 ) -D2
잔디밭과 벤치를 차지하고 노닥거리는 노숙자들.
공원 입구에 승합차 두 대가 멈춘다. 우루루 쏟아져 나오는 험악한 덩치들.
어깨띠에는 ‘바른 거리, 밝은 공원’ ‘공원을 시민에게’따위 슬로건이 적혔다.
벤치에 누운 노숙자를 끌어내고, 잔디밭의 노숙자를 걷어차고... 곳곳에 비명과 실랑이.
덩치들에게 쥐잡듯 몰리며 공원에서 쫓겨나는 노숙자들.
17. 달리는 차 안 -D2
운전하는 사마귀. 뒷좌석의 흥삼은 누군가와 통화 중이다.
흥삼 : 과찬이십니다, 의원님. 저같은 장사꾼이 미약하게나마 나랏일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족하지요.
사마귀 : (전화 울린다, 핸즈프리로 조용히 받는) 네...
흥삼 : (접대용 너털웃음) 허허... 예. 그럼 그 건은 그날 뵙고 매듭짓는 걸로 알겠습니다.
최이사하고 문차관님은 제가 따로 연락 넣겠습니다. 예, 끊습니다, 의원님.
전화 끊는 흥삼,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일이 계획대로 풀리고 있어 흡족하다.
낮은 목소리로 통화를 끝낸 사마귀, 룸미러를 본다.
흥삼 : 뭐야?
사마귀 : 영등포역 근처에 우리 식구들이 쫓겨 났답니다.
흥삼 : (표정) 경찰은 귀뜸 없었는데... 구청인가?
사마귀 : 정사장쪽 애들 같습니다.
흥삼 : (꿈틀) ...!
사마귀 : 오늘 수금액도 일부 뺏긴 모양입니다.
흥삼 : (어금니에 힘이 들어가는) 노친네가 용쓰는구만...
사마귀 : 보스들... 모이라고 할까요?
흥삼 : (고개 젓는) 주말에 중요한 회동이 있다. 그 전에 잡음나면 곤란해.
창 밖으로 시선 돌리는 흥삼,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긴다.
18. 식당 / 안채 ( 저녁 ) -N2
식당 뒤편 마당. 공동 수도를 중심으로 나라와 할매가 쓰는 마루, 안방이 있고, 다른 쪽엔 쪽방들이 둘러있는 구조.
나라가 마당에 들어서는데 수도가에서 걸레 빨던 영칠과 마주친다.
나라 : 어? 여기서 뭐해요?
영칠 : (부끄러워서 얼굴 발개지고)
해진 : (쪽방에서 나오는) 나라짱! 하이~
나라 : 어떻게 된 거에요?
해진 : 내일 회장님 퇴원하면 여기 모시려고... 요 옆 방은 나하고 태호씨가 쓸 거구.
나라 : (눈이 휘둥그레) 에에?
해진 : 태호씨가 회장님 땜에 특별히 부탁했거든. 안그래도 영등포 애들 몰려와서 박스 깔 자리도 없이 난리던데, 잘됐지 뭐.
할매 : (식당 뒷문에서 나오며) 방에서 술판만 벌려봐! 빤쓰 바람으로 쫓아내 버릴겨! 담배질두 금지여!
해진 : 방세두 선불로 냈는데 너무 빡빡한 거 아니에요?
할매 : 뭐시여?
해진 : (찔끔해서, 영칠에게 회피) 물기 꽉 짰냐? 먼지 한톨 없이 닦아라!
영칠 : (걸레 하나 팍 내밀고) 자기 방은 자기가 닦읍시다.
티격태격하며 각자 방으로 들어가는 해진과 영칠.
얼떨떨하던 나라, 얼른 할매에게 다가간다.
나라 : 할머니! 나한테 말두 안하구 이런 법이 어딨어?
할매 : 빈 방 묵혀서 장 담궈 먹을겨? 세놓구 돈 받는디 무신 법타령이여?
나라 : 내가 할머니 땜에 못살아 진짜! (짜증 털며 안방으로 가는)
할매 : (등에 대고) 눈꼴 시리믄 사내 하나 물어서 시집을 가든가!
19. 폐버스 앞 ( 저녁 ) -N2
버스 지붕에 매달린 갓등. 그 불빛 아래서 보디 연습 계속하는 태호와 종구.
웃통을 벗은 태호, 머리에 손깍지 끼고 종구의 펀치를 견딘다.
타격이 들어올 때마다 움찔! 이를 악물고 버티는 태호. 종구도 오랜 만에 땀을 흘린다.
종구 : 마지막!!
일격을 지르는 종구. 겨우 참아낸 태호, 깍지 풀다가 갑자기 울컥 올라온다. 한쪽 구석에 가서 토하는 태호.
종구 : 첫날이라 살살 두드린 거다. 가서 파스 붙이고 자라.
버스로 들어가는 종구를 어이없게 쳐다보는 태호.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한다.
20. 골목 일각 ( 저녁 ) -N2
비를 피하며 뛰어오는 태호. 그러다 뭔가 시선에 걸린다. 되돌아와서 골목 안을 본다.
예전에 나라가 노상방뇨(?)했던 구석자리. 누군가 알록달록한 우산을 쓰고 앉아 있다.
다가가는 태호. 짐작대로 나라였다.
태호 : 여기서 뭐해요?
나라 : (모종삽을 든 채 돌아보는) 어? 그쪽은 웬일이에요?
쪼그려 앉은 나라 앞에 맨 흙으로 꾸며진 화단이 보인다. 이름없는 들꽃들이 올망졸망 피어 있는 나라 만의 작은 꽃밭.
태호 : (그제야 지난 일 떠오르며) ...꽃밭이었구나. 난 또 노상방뇨... (멈칫)
나라 : (찡그리는) 뭐라구요?
태호 : (얼버무리며) 아뇨. 그냥 혼잣말이에요.
나라 : (흥, 하더니 다시 화단을 매만지는)
태호 : 앞으로 잘 부탁해요. 어쨌든 집주인이신데.
나라 : 할머니 잔소리 들어야 되는 신세는 그쪽이나 저나 똑같아요.
태호 : (웃고) 이런 데서 제대로 자라겠어요? 화분에 옮겨 심어야지.
나라 : (낙수가 지나갈 물길 만들며) 길에서 핀 꽃은 여기가 고향이에요. 사람 보기 좋자구 옮겨 심으면 얘들두 스트레스 받거든요.
미소로 물끄러미 보는 태호.
고개 들어 위를 보는 나라, 아무래도 빗발이 거세다.
옆에 쪼그려 앉는 태호. 나라, 쳐다보면
태호 : 이대로 두면 홍수 나겠는데... (우산 가리키며) 이리 줘봐요.
나라 : ...?
태호, 나라에게 우산을 받아 꽃밭 위를 살포시 가려준다.
태호, 일어나며.
태호 : 가죠. 뛰어가면 금방이니까.
일어나는 나라, 잠시 태호를 보다 뛰어간다. 뒤따라 뛰는 태호.
화단 위에 예쁘게 기울어져 있는 우산.
21. 거리 일각 ( 저녁 ) -N2
비가 쏟아지는 거리. 나란히 뛰어오는 태호와 나라.
두 사람,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다. 잠시 숨을 고른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
태호, 재킷을 벗어 나라를 가려준다. 무심코 시선이 마주친다. 멋쩍은 눈빛, 어색한 미소.
파란 불이 바뀌자 다시 뛰어가는 태호와 나라. 그 모습 길게 보이고.
22. 식당 / 쪽방 ( 밤 ) -N2
비는 그치고 처마에서 낙숫물이 떨어진다.
두 사람이 겨우 누울 만한 공간에 옷걸이, 달력, 얇은 이불 두 채, 물컵 뿐.
해진, 하품하면서 태호의 등과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있다. 수건으로 젖은 머리 터는 태호.
해진 : 뭔 일이야? 물에 빠진 생쥐 꼴로...
태호 : (조금 전 떠올리며 미소) ...꽃밭 구경하느라구.
해진 : (뜨악한) 꽃밭같은 소리하네. 바깥 분위기가 험해졌어. 당분간 배중사나 그쪽 패거리한테 납작 엎드려 지내.
태호 : (옷을 내리고 끙, 신음하며 눕는다. 천장을 보다가) 박스 깔고 잘 때는 매트리스가 천국같더니... 지붕있는 방에 누우니까
여기가 딴 세상이네.
해진 : (옆에 누우며)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잖어. 나중엔 어떻게 이런 방에서 둘이 잤나 싶을걸?
태호 : (곰곰히 생각하다) ...곽흥삼은 어떤 집에 살아?
해진 : 그 인간, 집 없어.
태호 : (고개 돌려 보는) ...?
해진 : 명색이 노숙자 두목이라고 집같은 거 안샀대. 세영 호텔 꼭대기층을 아예 전세 내고 거기서 지내.
태호 : (표정) ...
23. 펜트하우스 ( 밤 ) -N2
낡은 LP를 턴테이블에 올려놓는 손. 흥삼이다.
LP가 돌고, 바늘을 얹자 흘러나오는 ‘들장미’. 지긋이 눈 감고 감상하는 흥삼.
사마귀가 지폐를 추려 하드 케이스에 담더니 일어난다.
사마귀 : 김의원한테 다녀 오겠습니다.
흥삼 : 보좌관도 얼마 찔러 줘.
사마귀 : 따로 챙겼습니다.
끄덕이는 흥삼, 갔다 오라고 손짓. 사마귀, 목례하고 방을 나간다.
볼륨을 키우는 흥삼, 창가로 간다. 발 아래 펼쳐진 야경을 묵묵히 내려다보는 흥삼.
그의 욕망과 야심을 비추듯 깜박이는 도시의 불빛.
24. 식당 / 쪽방 ( 밤 ) -N2
앞 씬의 야경이 다른 불빛으로 이어진다. 손바닥만한 창문으로 보이는 불빛.
어두운 방에 누운 태호, 물끄러미 그 빛을 바라본다. 옆에서 코 골며 자는 해진.
태호, 천천히 허공에 주먹을 뻗는다. 접었다가 다시 뻗고... 누운 채로 가만히 펀치 연습을 하는 태호.
25. 식당 / 안채 ( 아침 ) -D3
마당에 서서 몸을 푸는 태호. 삭신이 쑤시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주전자 들고 안방에서 나오는 잠옷 차림의 나라, 하품하다가 태호 보자 화들짝 놀란다.
어색하게 눈인사하는 태호.
나라, 새초롬히 인사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피식 웃는 태호, 스트레칭 시작하는.
26. 편집화면 -D3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는 종구, 밖을 내다본다.
태호가 땅을 파서 철제빔을 심고, 거기 샌드백을 매달았다. 종구와 시선 마주치자 싱긋 웃는 태호.
경쾌한 음악이 시작되고.
/ 식당 안채. 영칠이 조회장을 부축하고 들어선다. 앞장서는 해진, 쪽방 문을 짜잔~하고 열어 보인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웅크린 조회장, 말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김샌 표정으로 서로를 보는 해진과 영칠.
/ 지하철역 입구. 어깨띠를 한 정사장 부하들이 노숙자 걸인들을 끌어내고 있다.
길 건너 차 안에서 지켜보던 배중사, 울컥해서 나서려는데 악어가 고개를 젓는다.
뒷좌석을 돌아보면 심각한 표정에 잠긴 독사.
/ 폐차장. 미트를 낀 종구가 태호의 펀치를 받아준다.
빈 틈이 생기면 머리며 복부를 공격하는 종구. 태호, 약이 올라 파고들지만 여지없이 반격당한다.
비지땀을 흘리는 태호와 종구 모습에서 음악 잦아들며...
27. 폐차장 ( 낮 ) -D3
휴식 시간. 버스 바퀴에 기대앉아 쉬는 종구.
태호가 안에서 생수병을 갖고 나온다.
종구 : 술은?
태호 : 다 떨어졌던데요. 요번 세트만 끝내구 할매식당 가서 드시죠.
종구 : (입맛 다시며 물을 마시는) ...
태호 : (흘끔 보더니) 근데 그 클럽에... 서마담이라는 여자 말이에요.
종구 : (돌아보는) ...?
태호 : 형님하구 무슨 사이에요?
종구 : (피식) 나는 거지구, 걔는 마담이지.
태호 : 전에 보니까... 형님 걱정을 많이 하던데요.
종구 : 동정하는 거야. 지 주제도 모르고... (문득 표정) 오늘이 말일이냐?
태호 : 아뇨. 27일이요.
종구 : (잠시 생각하다가 털어버리듯 일어나는) 후딱 끝내고 술 먹으러 가자.
태호 : (일어나서 마주 서는) 전 형님이 바람 피우는 줄 알았어요.
종구 : (미트를 끼다가 보는) 뭐?
태호 : 형수님하구 따님 사진 봤거든요. 근데 따님이 정말 귀엽더라구요. 예전 사진같던데 지금은... (하다가 멈칫) ...?
종구 : (표정 굳은) 너 좀 맞아야겠다.
태호 : 네...?!
폭풍 연타를 퍼붓는 종구. 태호, 뒤로 밀리며 흠씬 두들겨 맞는다.
28. 할매 식당 ( 오후 ) -D3
종구, 글라스에 소주를 따라서 마신다. 앞을 보면, 코에 솜을 틀어막은 태호, 부루퉁한 표정으로 찌개를 퍼먹는다.
살짝 미안해지는 종구, 술잔을 채워서 내민다.
종구 : 마셔라.
태호 : (대꾸없이 밥만 먹는)
종구 : 삐졌냐? (대답없자) 사내 새끼가 그런 걸로 삐지고 그럼 못쓴다.
태호 : (발끈) 기분 상했다고 제자 두들겨 패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크크크... 웃는 종구. 카운터에서 돈 세던 할매가 그런 종구를 ‘어랍쇼?’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종구 웃음에 더 짜증이 솟는 태호, 소주 글라스를 단숨에 비운다.
종구가 술병 잡으려는데, 탁 뺏어서 술을 따라주는 태호.
종구, 웃음기 여전한 표정으로 보다가.
종구 : 집에는 연락 안하냐? 부모님한테 전화 한통은 넣어 드려야지.
태호 : 서로 사적인 거 묻지 맙시다. 형님도 대답하기 싫으니까 제 코피 터뜨린 거잖아요.
종구 : (가만히 보다가 태호가 따라준 술잔 비우고) ...은지다.
태호 : (고개 들어 보는) ...?
종구 : 내 딸내미 이름, 류은지... 12년 전에 잃어버렸어, 걔가 중2때. (술을 따르는) 빵에 가서 한바퀴 돌구 나왔는데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더라.
태호 : 그럼 형수님은...
종구 : 그건 더 옛날 얘기구... 난소암이었나? 이젠 뼛가루를 어디에 뿌렸는지 기억두 안나.
우울한 낯으로 술잔 기울이는 종구. 물끄러미 지켜보는 태호.
태호 : 교통사고로 아버지 돌아가시구... 얼마 안가 재혼을 하셨어요.
종구 : ...?
태호 : 새아버지란 인간, 예비역 대령이었는데 자식들을 훈련병처럼 굴리더라구요. 몇년 뺑뺑이 돌다가 수능 친 다음날
탈영해버렸어요. (고개 숙이고 밥을 떠먹는) 어머닌... 잘 지내구 계실 겁니다. 저두 그럭저럭 살아 왔으니까...
종구 : (지긋이 보다가) ...너, 딴 놈은 몰라두 배중사 그 새낀 꼭 제껴라.
태호 : 네?
종구 : 짬밥 출신이잖어, 중사나 대령이나.
피식 웃는 태호. 종구도 씨익 웃는다.
그때 TV에서 흘러 나오는 뉴스.
앵커 : 한중그룹 윤일중 회장이 4박 5일간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오늘 귀국 했습니다.
TV로 시선 향하는 태호. 자료 화면에서 출국장 나오는 윤회장과 수행원 모습이 보인다.
앵커 : 그룹의 차세대 경영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이번 출장에 앞서,
윤회장은 부인이자 한중문화재단 이사장인 조선희 여사의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른 바 있습니다.
태호 : (정민 생각에 표정 굳는) ...
29. 윤회장 저택 / 서재 ( 저녁 ) -N3
돋보기 안경을 낀 윤회장, 서류를 검토 중이다. 노크 소리 나고 정민이 들어선다.
정민 : 피곤하실텐데, 일찍 주무세요. 비행기에서두 내내 일하셨다면서요?
윤회장 : 더 늙으면 하고 싶어도 못해. (서류에서 시선 들고) 짐은 다 옮겼니?
정민 : 정리도 끝냈어요. 올케들이 신경 많이 써주던 걸요? (소파에 앉는) 족보에두 없는 시누이가 이뻐서 그런 건 아닐 테구...
시아버지가 무섭긴 무서운가봐요.
윤회장 : 모나게 굴지 말고 네 편 만들어라. 현명하고 참한 애들이라 너하구 말이 통할 게다.
정민 : (쓴웃음) 큰올케는 다 된 밥에 코 빠질까봐 초조한 거 같아요. 문화재단 이사장, 자기가 물려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다 이거죠.
윤회장 : 정민이 너한테 재단일 맡길 생각 없다.
정민 : 저두 안해요. 그런 따분한 일...
윤회장 : 대신... 내일부터 기획 전략실로 출근해.
정민 : (표정) 네?
윤회장 : 최이사한테 언질은 해뒀다. 실무는 거기 실장 지시받으면 될 게야. 강세훈이라고... 젊고 똘똘한 녀석이야.
정민 : (세훈 이름 나오자 멈칫, 이내 표정 고치고) 제가 아빠 가까이서 일하면... 오빠들한테 눈에 가시가 될 텐데요.
윤회장 : 그러라구 데려오는 거다. 눈에 백태 낀 녀석들, 좀 깜빡이라구.
정민 : (그 말에 표정) 아빤... 딸이 필요한 게 아니었네요.
윤회장 : (가만히 보는) ...
정민 : 유능한 측근 하나 더 심어둔다, 본심은 그거였어요. 그렇죠?
윤회장 : 네가 유능한지 어떤지 아직 본 적은 없다만... (돋보기를 벗고) 기대만큼 못하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봐야겠지.
정민 : (서러운 감정 누르고 겨우 미소) 열심히 해야겠네요. 좌천당하지 않으려면...
윤회장 : (표정없이 보는) ...
30. 한중그룹 / 엘리베이터홀 ( 아침 ) -D4
세련된 오피스룩의 정민, 당찬 걸음으로 걸어온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세훈을 발견하고 표정.
세훈도 고개 돌리다 정민을 본다. 불편한 시선이 오가는 두 사람, 나란히 서서 층수 표시를 본다.
정민 : 나... 기전실로 발령났어요.
세훈 : (건조한) 들었어요. 축하해요.
정민 : 나한테... 아직 화난 거에요?
세훈 : ...
정민 : 세훈씨.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시선 주지 않고 들어서는 세훈.
정민이 쳐다본다. 버튼 누르고 기다리는 세훈.
세훈 : 안탈 겁니까?
정민 : (잠시 보다가 엘리베이터에 타는)
31. 엘리베이터 안 -D4
정민과 세훈, 둘만 타고 있다. 위잉... 가벼운 소음. 어색한 둘의 침묵이 이어지고.
정민 : 이따 저녁 같이 해요.
세훈 : 오늘은 안됩니다. 최이사님 모시고 중요한 미팅에 가야 돼요.
정민 : 점심은요?
세훈 : 한중 경제연구소랑 정례 오찬 겸 세미나가 있습니다.
정민 : 내 얘기... 안들어줄 생각이에요?
세훈 : 들어야 됩니까?
정민 : 사과든 변명이든... 기회는 줘야죠.
세훈 : 그럴 생각 없는데요.
정민 : (세훈 향해 서는) 강세훈씨!
세훈 : (똑바로 응시하는) 부모 얼굴도 모르는 핏덩이가 캐나다로 입양됐습니다. 양부모가 사업에 실패해서 접시 닦아가며
대학공부했구요. 내가 자란 과정, 내가 받은 상처... 난 정민씨한테 모두 털어놨습니다. 근데 정민씨는 그러지 않았잖아요.
정민, 갑자기 비상정지 버튼을 누른다. 덜컹, 멈추는 엘리베이터.
놀라서 보는 세훈. 정민, 와락 세훈을 포옹한다.
정민 : 나, 원래 제멋대로구 나 잘난 맛에 살아요. 그래서 내 옆에 아무도 없어요.
세훈 : (뜻밖인) 정민씨?
정민 : (떨리는) 미안해요... 이제부터 나에 대한 모든 거, 같이 나눌게요. 그러니까... 도와줘요, 세훈씨. 내 옆에 있어줘요...
묵묵히 보던 세훈, 정민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더욱 깊게 안기는 정민.
애틋한 두 사람의 포옹이 길게 이어지고...
32. 전당포 안 -D4
1부의 전당포. 방범창 너머에서 기다리는 태호.
주인이 금고에서 반지함을 찾아내더니 창구로 돌아온다.
반지함을 열고 내용물을 확인하는 태호.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의 광채.
태호, 정민의 기억에 착잡해지고...
33. 더 클럽 앞 ( 저녁 ) -N4
차가 멈추자 종업원이 달려 나온다. 차문 열어주면 최이사(50대 초반, 한중그룹)가 내리고 반대편에서 내리는 남자는 세훈이다.
손바닥만한 ‘더 클럽’ 명판을 보더니 표정이 까칠해지는 세훈.
세훈 : 여긴... 술집 아닙니까?
최이사 : (태연하게) 들어가지. 소개시켜줄 사람들이 있어.
앞장 서는 최이사. 내키지 않는 세훈, 그 뒤를 따르고.
34. 더 클럽 / 내실 -N4
문이 열리고, 최이사와 세훈이 들어선다.
상석에 앉은 문차관과 낮게 얘기 나누던 흥삼, 반색하며 일어난다.
흥삼 : 어이구! 어려운 걸음 하셨습니다, 이사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최이사 : (흥삼에게 가볍게 끄덕하고, 공손히) 늦어서 죄송합니다, 차관님.
문차관 : 나두 막 왔어요. 어여 앉으시우.
최이사 : 이번에 기획전략실 맡게된 강세훈 실장입니다. (세훈에게) 인사 드리지. 국토교통부 문기환 차관님일세.
세훈 : (마지 못해 허리 굽혀 인사하는) ...
문차관 : 윤회장이 수혈받았다는 젊은 피가 바로 자네였구먼. 최이사,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최이사 : (웃으며) 왜 이러십니까? 맘 편하게 술 한잔하러 온 사람한테...
(흥삼 가리키고) 이쪽은 새서울 희망연대 곽흥삼 회장일세. 앞으로 우리 사업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분이야.
세훈 : (탐탁치 않은 표정인데) ...
흥삼 : (먼저 손을 내밀고) 곽흥삼이라구 합니다.
세훈 : (잠시 있다가 손을 내미는) ...강세훈입니다.
흥삼 : (힘있게 악수하며, 의미있는 눈빛으로) 승진, 축하드립니다. 강실장님.
세훈 : (불편한 눈빛) ...
35. 거리 / 전화부스 안 ( 저녁 ) -N4
손에 든 반지함을 내려다보는 태호, 잠시 망설이다가 주머니에 넣는다. 수화기 들고 버튼을 누른다.
신호음이 떨어지는 순간, 긴장하는 태호. 그러나...
안내멘트 : (소리)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국번이거나 결번이오니 다시 한번 확인 해주시기 바랍니다.
의아한 태호, 후크 내렸다가 다시 번호를 누른다. 신호 떨어지고...
안내멘트 : (소리)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국번이거나...
딸칵, 수화기 내려놓는 태호. 정민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답답한 기분으로 부스를 나서던 태호, 흠칫 굳는다. 바로 옆 차도에 신호대기 중인 차. 그 안에 정사장과 떡대가 앉아 있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는 태호. 정사장, 태호 뒷모습을 흘끔 쳐다본다.
태호,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다. 갸웃해서 쳐다보는 정사장.
그때 신호 바뀌고 차가 출발한다.
잠시 후... 고개 돌리는 태호. 정사장의 차가 저만치 가고 있다.
불안한 태호, 서둘러 다른 방향으로 멀어진다.
36. 더 클럽 / 내실 -N4
취기 오른 문차관, 늘씬한 아가씨를 끼고 히히덕거린다. 못마땅하게 보는 세훈.
미주는 조용히 흥삼과 최이사의 술시중을 들고 있다.
최이사 : 김의원님이 늦으시는군.
흥삼 : 일 얘기는 더 하실 거 없습니다. 상임위는 저하고 의원님이 조율 끝냈고, 행정처리야 저기 차관님이 계시잖습니까?
이사님은 오늘 편안하게 즐기시면 됩니다. (세훈을 돌아보고) 우리 실장님두요.
세훈 : (마뜩치 않게 보는) ...
미주 : (눈치 빠르게 세훈에게 술 따라주며) 부담갖지 마세요. 여긴 회원제 클럽이라 남의 눈같은 거,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세훈 : (흥삼과 미주를 무시하고) 이사님.
최이사 : (잔을 들다가 보는) ...?
세훈 : 미래도시 개발 프로젝트는 한중건설, 특히 회장님께서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사업입니다.
이런 식으로 밀실에서 담합하는 걸 아시면...
최이사 : (표정) 담합이라니... 말 가려서 해, 강실장.
세훈 : (지지않는) 최대한 가려서 하는 중입니다.
최이사 : (언성 높아지는) 뭐가 어째?
문차관 : (취기에 찌푸리며 보는) 거기 뭐야? 술맛 달아나게.
흥삼 : (호기롭게 웃으며)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잔을 들며) 자, 다같이 건배 하시죠. 미래도시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출발을 위하여!
흥삼이 리드하자 차관은 게걸대며 건배, 최이사는 헛기침하고 술을 마신다.
술잔에 손도 대지 않는 세훈, 흥삼을 까칠하게 보는.
흥삼 : (은근한 투로) 우리 실장님, 외모도 깎아 놓으셨는데... 사고방식도 반듯하시네. 앞으로 많이 도와 주십시오.
세훈 : (더 말 섞기 싫은, 일어난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최이사 : (꿈틀) 이거 봐, 강실장!
세훈, 못들은 척, 돌아서는데 문이 열리고 김의원이 들어선다.
문차관 : 여어~ 김의원~
김의원 : 이런... 벌써 고주망태가 된 게야?
흥삼 : (반색하며 일어나는) 오셨습니까, 의원님?
김의원 : 곽회장, 여전히 신수가 훤하시구만. (뒤를 향해) 들어오시게.
흥삼 : ...?
김의원 뒤에서 나타나는 남자는... 정사장이다! 표정 얼어붙는 흥삼.
정사장 : 의원님, 요래 높으신 분들이 계신 줄 알았으모 안올 걸 그랬심더. (흥삼을 보며) 지가 낄 자리가 아이지 말입니더.
흥삼 : (안색 변하는, 김의원 노려보면) ...
김의원 : (태연하게, 정사장 향해) 사업이나 정치나 사람이 밑천 아니요? 이런 자리에서 안면 터놓으면 두루두루 좋을 거에요.
정사장 : 그캐도 우리 최이사님은 구면이라 반갑네예.
최이사 : (악수하며, 친근한) 안그래도 정사장님 안오시나 기다리던 중입니다.
흥삼 : (최이사도 알아? 놀라는) ...!
정사장 : (굽신하며 악수하는) 하이고, 송구스러버라... (허리 펴고, 흥삼을 보는) 술 한잔 얻어묵을 수 있을라나, 내같은 불청객도?
흥삼 : (표정 관리하며) 후래자삼배... 석 잔은 드셔야죠.
정사장 : 우짜노, 곽회장? 내는 더 묵고 시픈데?
흥삼 : ...!!
번들거리는 눈빛의 정사장.
흥삼, 파르르... 미간이 떨리고, 세훈도 대체 무슨 상황인지...
37. 더 클럽 앞 ( 밤 ) -N4
술에 취한 문차관, 김의원등이 여자를 하나씩 끼고 클럽을 나선다. 변죽좋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정사장.
서로 손 흔들고 ‘잘가게’ ‘살펴가’ 떠들고 차에 오르는 甲들.
배웅나온 흥삼과 미주, 차가 출발할 때마다 예의상 목례.
최이사, 차에 오르는데 세훈은 타지 않는다.
세훈 : 저는... 택시 타고 가겠습니다.
탐탁치 않는 눈빛으로 일별하는 최이사.
최이사의 차가 떠나면 세훈, 흥삼을 흘끔 돌아보고 말없이 택시를 잡아탄다. 멀어지는 택시를 보는 흥삼의 표정.
그때, 느긋한 걸음으로 흥삼에게 다가오는 정.
정사장 : (차들이 사라진 거리를 보며) 곽회장 니, 김의원 절마가 무슨 당 소속인지 아나? 캐쉬당이다, 캐쉬당!
약을 칠라모 듬뿍 쳤어야제, 와? 걸배이 자슥들이 수금이 안되가 액수가 모지랐나?
흥삼 : (꾹 참고) ...한수 배웠습니다. 다음에 참고하죠.
정사장 : 다음? (코웃음) 다음같은 소리하구 자빠졌네. 니, 죽 쒀가 개준다카는 말 아나?
니 덕분에 술도 잘 얻어묵고, 미래도시 사업도 이바구 자알~ 풀렸다. 참말로 고맙데이.
흥삼 : (이를 악물고) ...살펴 가십시오.
정사장 : 하모~ (떡대가 문 열어주자 차에 오르려다, 미주를 보는) 아따, 가스나... 찰지게 빠졌네. 너거 회장이 잘해주나?
미주 : (표정) ...!
정사장 : (크크 혼자 웃더니 차에 오르고) 참, 쪼매만 기다려라. 한중그룹이랑 계약서에 도장부터 쾅 찍고, 그 인주 마르기 전에...
(웃음 위로 눈매 날카로워지며) ...흥삼이 니, 대가리 찍어 주꾸마.
흥삼 : (냉랭한 미소) 너무 짖지 마세요. 겁먹은 개새끼나 그렇게 짖어대는 겁니다.
꿈틀! 노려보는 정사장. 차창 올라가고, 정사장 차가 떠난다.
미소가 사라지고, 표정 일그러지는 흥삼, 저벅저벅 차로 향한다.
사마귀 : (얼른 따라 붙으며) 제가 모시겠습니다.
흥삼 : (무시하고, 운전석에 오르는)
미주 : (돌아보는 사마귀에게) 내가 따라 갈께.
서둘러 조수석에 타는 미주.
흥삼, 누가 타든 말든 관심없이 악셀을 힘껏 밟는다. 타이어 소리내며 급출발.
38. 달리는 차 안 ( 밤 ) -N4
차 안에 크게 틀어놓은 ‘들장미’.
핸들을 움켜쥔 흥삼, 분노를 폭발시키듯 악셀을 밟는다. 속도에 몸이 짓눌리는 듯 두려운 미주.
전방에 추락주의 표지판! 미주, 흠칫 놀라 흥삼을 본다.
광기에 휩싸인 흥삼, 더욱 힘껏 밟는다. 점점 올라가는 속도계. 합창곡도 고조되고...
미주 : (가드레일이 보이는 순간) 회장님!
순간, 급브레이크 밟는 흥삼. 끼이익!! 스키드마크 남기며 길게 미끄러지는 차. 가드레일과 충돌 직전에 멈춘다.
하얗게 질린 미주, 흥삼을 본다. 분노의 여운이 남은 눈빛으로 어둠을 응시하는 흥삼.
39. 국도 일각 ( 밤 ) -N4
멀리서 한가롭게 오가는 차들의 불빛. 그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주, 돌아본다.
앞유리와 보닛 위에 길게 드러 누워있는 흥삼,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으로 밤하늘을 보고 있다.
미주 : (다가와서) 돌아 가셔야죠.
흥삼 : ...미주야.
미주 : 네.
흥삼 : 너, 왜 안도망치냐? 내가 지긋지긋할 텐데.
미주 : (농으로 받는) 기회만 노리고 있어요.
흥삼 : 단념해라. 기다려봤자 류씨, 안온다.
미주 : (표정) ...!
흥삼 : 그럴 마음이었으면, 12년 전 그때... 너하고 같이 기차 탔을 거다.
미주 : (주고받기 싫은 화제, 심드렁한 척) 기억도 안나요. 그런 옛날 얘기...
흥삼 : (물끄러미 보는) ...
미주 : (말 돌리며) 정사장 문제는 어떻게 하실 거에요?
흥삼 : 문제? (코웃음치더니 차에서 내려오는) 그따위 버러지는 고민거리도 안돼.
(살기가 떠오르며) 어떻게 밟아 주느냐... 그것만 정하면 되는 거야. (그 눈빛으로 미주를 돌아보는) ...도망치지 마라.
미주 : (두렵지만 애써 담담히) 그럴 생각, 없어요.
흥삼 : (가늠하듯 보는) ...
40. 부둣가 ( 아침 ) -D5
일순 분위기 바뀌며 열리는 화면. 굉음과 함께 크레인 와이어가 올라온다.
인양 현장을 지켜보는 경찰관과 소방대원들. 한쪽에선 뉴스 카메라가 촬영 준비 중.
잠시 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민수의 사체가 실려있는 태호의 차!
41. 식당 / 쪽방 안 ( 아침 ) -D5
비좁은 방에 둘러 앉은 태호와 해진, 영칠. 손대지 않은 죽그릇을 물리는 조회장.
해진 : 욕쟁이 할머니가 알면 난리나요. 귀가 너덜거리게 욕 얻어먹구 끓여 온 죽인데... 그러지 말구 한술 뜨세요, 회장님.
조회장 : (기운없는) 괜찮습니다...
영칠 : 죽맛이 별론가? (한수저 떠먹는) 맛있는데?
해진 : (뒤통수 갈기는) 그게 주둥이에 들어가냐, 임마!
영칠 : 아, 씨이... 진짜!!
태호 : 회장님. 뭐라도 드시고 기운을 차리셔야죠.
조회장 : 그러지들 마세요. 저, 회장 아니라니까요. 공연히 폐만 끼치고... (일행에게 고개 숙여가며) 죄송하게 됐습니다.
태호 : (안스럽게 보는) ...
42. 거리 일각 ( 낮 ) -D5
나란히 걸어오는 태호와 해진, 영칠.
해진 : 노친네, 저러다 앉은 자리에서 말라죽는 거 아닌가 몰라.
영칠 : (불쑥) 한약을 좀 지어다 드릴까요?
태호 : (쳐다보는) ...?
영칠 : 저희 집이 한의원하거든요. 아버지한테 말하믄 한재 지어주실 텐데.
태호 : (뜻밖인) 한의원?
해진 : 이 자식, 순 나이롱 노숙자거든. 대학원 싫다, 취직도 싫다, 부모 간섭도 받기 싫으니까 길바닥으로 뛰쳐 나온 놈이야, 이거.
영칠 : 저두 저만의 후리함이 있거든요? 60년대엔 이런 스타일을 히피라고...
해진 : (말 자르는) 시끄러. 곡기두 사양하는 양반이 한약은 입에 대겠냐? 암튼 피붙이도 아니구, 태호씨나 우린 할 만큼 했어.
회장님 일은 이제 신경 끄자구.
태호 : (잠시 보다가) ...난 폐차장 들렀다 갈게.
해진 : 요즘도 두들겨 맞어? 다른 선생 구해볼까?
태호 : (웃는) 한대씩 받아칠 때두 있어.
휘파람 불며 놀라는 해진, 화이팅하라고 주먹 쥐어 보인다.
손 흔들고 돌아서는 태호. 몇 걸음 걷는데... 인도 옆에 멈추는 세단. 차창 내려가고 운전석의 사마귀가 쳐다본다.
뜻밖의 등장에 긴장하는 태호.
43. 펜트 하우스 / 복도 -D5
엘리베이터 열리고 사마귀, 뒤이어 태호가 내린다.
정면에 바로 보이는 펜트하우스 출입문. 여기가 곽흥삼의 성채인가. 표정 단단히 추스르고 복도를 걸어가는 태호.
44. 펜트하우스 -D5
사마귀와 태호가 들어선다. 한쪽에서 퍼팅 연습하는 흥삼, 태호쪽은 돌아보지 않은 채 집중하고 있다.
태호, 실내를 둘러본다. 응접용 소파 세트. 그 너머엔 업무용 책상.
한쪽에 홈바가 있고, 다른 쪽엔 책장(그 뒤에 금고가 숨겨진)이 보인다.
곽의 공간을 흥미롭게 둘러보는 태호.
데굴데굴 굴러간 공이 홀컵에 들어간다. 흥삼, 퍼터를 사마귀에게 건네주고 다가온다.
흥삼 : (장갑 벗으며) 골프 좀 치나?
태호 : ...안칩니다.
흥삼 : 왜? 물주들하고 작전 짜려면 라운딩도 한번씩 나가고 그래야지.
태호 : 맑은 공기가 체질에 안맞아서요. 매연에 찌든 도시가 편합니다.
흥삼 : (피식) 앉아라.
태호 : (흥삼이 앉자 그 건너편에 앉는) ...
흥삼 : 그날 내가 보낸 선물은 안받았더구만. 서마담같은 여자, 사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선물인데.
태호 : 죽다 살아난 놈이 여자까지 탐낼 정신 있습니까? 마음만 받았습니다.
흥삼 : (흐흥~ 미소로 보는) 지내보니까 어때? 이 바닥, 살 만하냐?
태호 :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루하루... 최대한 버티는 중이구요.
흥삼 : 입에 발린 말은 못하는 놈이구나. 너처럼 솔직한 놈들이 대부분 이기적이지. 내 속은 편하지만 상대가 피곤해지거든.
태호 :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흥삼 : 생각보단 배짱 있구만. 벌써 잠수탔을 거라구 생각했는데.
태호 : 제가요?
흥삼 : (그 표정에) 너, 뉴스 아직 못봤구나?
태호 : (더욱 의아해지는) ...?
45. 폐버스 ( 낮 ) -D5
지직거리는 휴대용 TV화면에 뉴스가 나오고 있다. 군용 침대에 기대앉아 뉴스를 보는 종구.
부둣가에서 차량 끌어올리는 장면이 나오고.
기자 : 오늘 인양된 차량은 두 달 전, 대동바이오 주가 조작 혐의를 받고 잠적한 용의자 장모씨의 소유로 밝혀졌습니다.
(시트로 덮어 씌운 사체가 구급차에 실리는 장면) 경찰은 조수석에서 발견된 사체의 신분증이 장모씨의 공범,
박모씨 것이라고 밝혔으며, 보다 정확한 신원확인을 위해 국과수에 익사자 정밀부검을 의뢰했습니다.
물끄러미 뉴스를 보던 종구, 시계를 본다. 그리고 창밖을 본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 태호가 연습하러 오지 않고 있다.
46. 펜트하우스 -D5
얼어붙은 태호, 앞 씬과 이어지는 뉴스 화면을 지켜본다.
기자 :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주가 조작에 연루된 용의자들 간의 다툼이 결국 살인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달아난 주범 장모씨를 체포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입니다.
TV를 끄는 흥삼, 태호를 본다. 하얗게 질린 태호, 손 끝이 부들부들 떨린다.
소리없이 혀를 차는 흥삼, 일어나서 홈바로 간다.
사마귀가 한발 나서지만, 직접 하겠다는 듯 손을 내젓는 흥삼, 양주병과 잔을 가져와서 태호에게 따라준다.
떨리는 손으로 단숨에 마시는 태호.
흥삼 : 경찰은 수갑 짤랑거리구, 정사장은 회칼 휘두르고... 태호 너, 어디로 숨을래?
태호 : (노려보는) 숨을 데나 있습니까?
흥삼 : (냉소) ...없지. 정사장, 끈덕진 늙은이다. 니 모가지 따기 전에는 절대 포기 안해.
그렇다고 경찰 수사망에 정사장이 걸릴까? 천만에. 결국 살인으로 엮이는 건 너야.
태호 : (목이 탄다, 급히 술을 따라서 마시는) ...
흥삼 : (가만히 응시하다가, 목소리 낮추는) 기왕 궁지에 몰린 거, 고양이 한 번 물어볼래?
태호 : (표정) ...?
흥삼 : (사마귀에게) 갖구 와.
사마귀가 태호 앞에 상자를 놓고 열어보인다. 시커먼 러시아제권총!
흥삼 : 정만출이를 제껴. 너 사는 길은... 그 수 밖에 없다.
태호 : (충격) ...!!
흥삼 : 선빵 날리지 않으면 당하는 거다. 그게 이 바닥 생리야. 어차피... 정사장 대신 살인 누명까지 썼는데, 안될 거 없잖아.
태호 : (충격을 수습하고 보는) 그래서... 회장님이 얻는 건 뭡니까?
흥삼 : (미소) 글쎄... 사업상 약간의 이익? 장태호, 이건 나보다 너한테 수지 맞는 장사야.
어딜 가서 뭘 하든, 정만출 손아귀부터 벗어나야지, 안 그래?
벌떡 일어나는 태호. 흠칫, 안주머니에 손이 들어가는 사마귀. 태연하게 올려다보는 흥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보는 태호.
태호 : 짜장면 그릇에 남은 단무지 훔쳐 먹으려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손에 피 묻힐 각오였으면 애초에 서울역, 오지도 않았어요.
(결연히) 이 총은... 못본 걸로 하겠습니다.
흥삼 : (쓰게 웃는) 그럼 너... 내 돈 50억은 어떻게 할래?
태호 : ...!!
흥삼 : 정사장 물린 돈까지 합치면 120억... 감당할 수 있겠냐?
태호 : ...협박하는 겁니까?
흥삼 : 지름길이 있는데 돌아가지 말란 소리야. (일순 살벌해지는 눈빛) 일주일 안에 50억 만들어오던가, 아니면 정만출이 파묻어.
태호 : (창백하게 보다가 돌아서는) ....
47. 펜트하우스 / 복도 -D5
휘청거리며 걸어나오는 태호. 사마귀가 배웅 겸 감시를 위해 뒤따라 나온다.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상납금 가방을 들고 내리는 독사와 악어, 멈칫! 다가오는 태호를 본다.
악어 : 월라려? 너 시방 여기서 뭐하는겨?
태호 : (흘끔 보는)
악어 : 뭔디 큰성님 안방까지 들락거리냐고? 기껏 서열 7위 주제에!
태호 : (무시하고 엘리베이터로 가는)
악어 : (불끈해서) 근디 저 잡눔의 시키가...
독사 : 냅둬라.
악어 : 성님!
독사 : (싸늘하게 사마귀 노려보는) 우리같은 뱁새가 뭘 알겠냐? 이게 다 큰 형님의 큰 뜻인데.
사마귀 : 가방이나 주시죠.
독사 : (꿈틀, 참고 노려보는) 오늘도 수금이 시원치 않아. 정사장 패거리, 계속 설치게 두고 보실 건가?
사마귀 : (가방을 받고) 저두 모릅니다. 큰형님의 큰 뜻이니까요.
독사 : ...!
악어에게도 가방을 받은 사마귀,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허... 열받는 악어. 독사 얼굴에도 서서히 분노가 끓어 오르고.
그때, 독사의 핸드폰이 울린다. 번호 보더니 놀라는 독사.
48. 일식집 / 내실 -D5
긴장한 독사와 악어가 앉아 있다. 그 맞은 편에 느긋하게 앉은 사내는... 정사장이다.
정사장 : (다정한) 세월 좋았을 땐 다같이 어울려가 술도 묵고, 내가 따로 용돈도 찔러 주고... 내는 너거들 안밉다.
흥삼이 글마가 까라믄 까야지, 우야겠노? (짐짓 한숨) 동네가 이래 숭악해진 게 따지고보믄 다 글마 욕심 때문인기라.
독사 : ...그래서요?
정사장 : (살기 번득이며) 흥삼이 꿀 빨던 시절도 다 지나갔다. 내가 글마 유기농 비료로 만들어가 서울역 가로수에다 뿌릴 기다.
독사 : (표정) ...!
정사장 : (은근한 눈빛으로) 그래되모 누구든 남은 꿀통 껴안아야 될 거 아이가? 너거들 요새 개밥에 도토리 신세라카든데...
악어 : 뭐 그정도는 아니구유, 큰성님헌티 쪼깨 서운한 것은...
독사 : (말 끊으며) 닥쳐.
악어 : (억울한) 성님.
독사 : (정에게) 됐수다. 이만 일어납니다.
정사장 : (일어나는 독사를 올려다보며) 독사야. 기회는 따끈할 때 먹는 기라. 식으모 아무리 삼키고 싶어도 몬한데이.
독사 : 세상 모르고 깝치고 다닐 때, 양아치들 잘못 건드려 죽을 뻔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칼침을 수십방 맞아가며 절 구해준 분이
큰형님입니다. 아무리 무정하고 무심해도, 전 큰형님 배신 안합니다.
정사장 : (비아냥) 옛정이 떠올라가 부른 긴데... 여엉~ 말귀가 안통하네?
독사 : (문득 떠오르는) 저두 옛날 의리 생각해서 하나만 귀뜸해 드리죠.
정사장 : ...?
독사 :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사장님이 애타게 찾고 있는 그 놈 말입니다. 장태호...
정사장 : (표정 일변하는) ...!!
49. 지하 주차장 -D5
쭈볏거리며 나타나는 해진, 차를 찾는다. 빵! 짧게 울리는 클랙션. 해진, 황급히 다가간다.
차창 내려가면 드러나는 얼굴은... 흥삼이다.
흥삼 : 장태호랑 함께 지낸다고?
해진 : (긴장해서 횡설수설) 예, 어떻게 보면 동업자라구 할 수 있는데, 아니 그렇다구 뭐 대단한 사업은 아니구요...
그때 사마귀가 차에서 내린다. 안주머니에 손 넣는 사마귀를 보고 허걱! 겁먹는 해진.
그러나... 사마귀가 꺼낸 것은 돈봉투.
흥삼 : 한눈 팔지 말고 잘 감시해.
해진 : 가.. 감시요?
흥삼 : 어디로 튀거나, 이상한 조짐 있으면 바로 연락하구.
사마귀 : (봉투에 적힌 번호 가리키며) 이 번호로 전화하면 제가 받을 겁니다.
해진 : (얼떨떨해서 받고) 근데... 그 친구는 무슨 일로...
차창 올리는 흥삼. 사마귀, 다시 차에 오르고 해진 옆으로 지나쳐가는 차.
해진, 봉투를 확인한다. 제법 두둑한 지폐. 누가 볼까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해진.
50. 교외 간이역 / 대합실 - 폐버스 ( 교차화면 ) -D5
승객도 별로 없는, 작고 낡은 간이역 대합실.
작은 가방을 든 미주가 들어선다. 곧장 매표 창구로 다가가는 미주.
미주 : 3시 반, 속초행 두 장이요.
열차표 두 장을 받은 미주, 의자에 앉는다. 시계를 본다. 아직 2시 밖에 되지 않았다.
시각표 위에 날자를 보는 미주. ‘#월 31일’이다.
D5/ 폐버스 안.
때가 꾀죄죄한 달력, ‘#월 31일’에 시선이 고정된 종구, 씁쓸한 표정이고...
D5/ 시간경과.
대합실에 사람들이 들어설 때마다 돌아보는 미주. 기다리는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손에 든 열차표 두 장을 만지작거리는 미주, 맞은 편의 빈 의자를 본다. 예전 일이 떠오르는...
과D/ 12년 전.
앳된 느낌이지만 화장을 한 미주(18세)가 초조한 표정으로 기차를 기다린다.
그 앞에 쓰윽 나타나는 그림자, 종구(30대).
미주 : (놀랐다가 환해지며 일어나는) 아저씨! 와줄 거라구 믿었어요!
종구 : (착잡한) ...잡으러 온 거야.
미주 : (멈칫) ...?
종구 : 흥삼이가 오겠다는 거, 대신 왔다. 너, 험한 꼴 당할까봐.
미주 : (실망, 충격이었다가 겨우 가다듬고) 그냥 도망쳐요, 우리!
(종구의 손을 덥석 잡고) 아무데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면 되잖아요, 네?
종구 : 그 다음엔 어떡할래?
미주 : 네?
종구 : 평생 도망치면서 살래? 언제 잡힐까, 마음 졸여가면서?
미주 : 아저씨...
종구 : (슬픈 눈빛으로) 미주야... 우린... 도망칠 데가 없어.
미주 : (눈물이 고이고) ...
D5/ 현재.
열차가 막 출발한 뒤, 텅빈 대합실. 체념한 듯 티켓을 찢는 미주, 일어나서 대합실을 나간다.
D5/ 폐버스.
부욱! 달력을 찢어 버리는 종구, 씁쓸하고 괴롭다. 그때 밖에서 팡팡! 샌드백 두들기는 소리.
51. 폐차장 ( 오후 ) -D5
잡념을 털어내기 위해 미친 듯이 샌드백 두들기는 태호.
버스에서 내려서는 종구, 미트를 끼우며 다가온다.
종구 : 모래 푸대 백날 쳐봐야 헛거다. 되받아치지 않거든.
태호 : (헉헉대며 보는) ...
종구 : (미트를 팡팡 두드리고) 지각 1분에 한 대, 여섯 시간 늦었으니까... (계산하다 포기) 암튼 열나 맞는 거다.
대꾸없이 자세 잡고 다가서는 태호.
팡팡! 미트에 꽂히는 태호의 주먹. 종구, 받아주다가 빈 틈 파고들어 공격한다.
미트에 맞으면서도 앞으로 밀고 나가는 태호.
/ 시간경과.
녹초가 된 태호, 이제는 종구 공격에 뒤로 밀리고 있다.
종구 : (미트로 치며) 복부! 머리!! 뭐해? 비었잖아!
태호 : (맞으면서 계속 뒷걸음질)
종구 : (멈추고 보는) ...너 지금 뭐하냐? 지루박이야, 차차차야?
태호 : (땀을 닦고) 오늘은... 이만 하죠.
종구 : 얼씨구.
태호 : (벗어놓은 재킷을 집어드는) ...
종구 : (보다가) ...태호야.
태호 : (돌아보는) ...
종구 : 바깥 일은 잊어 버려. 거기서 니가 누구였든, 뭘 하다 왔든... 지금은 그냥 서울역에 흔해 빠진 노숙자니까.
태호 : 저 때문에... 선배가 죽었습니다.
종구 : 누구 때문에 죽는 사람은 없어. 자책두 자꾸 하면 습관된다.
태호 : 남의 일이면 저두 그렇게 말할 겁니다.
종구 : 남의 일? 넌... 내가 이러구 사는 게 해피해 보이냐? (쓴웃음) 아무튼... 니 일이니까, 니가 살아남을 생각부터 해.
물끄러미 보는 태호. 돌아서는 종구, 휘적휘적 버스에 올라간다.
자기 생각에 괴로운 태호, 샌드백을 힘껏 때리고.
52. 달리는 차 안 ( 낮 ) -D5
뒷좌석의 정사장, 노기등등해서 중얼거리는.
정사장 : 등잔 밑이 어둡다꼬, 엎어지모 코 앞에 있는 놈을 엉뚱한 데서 찾았데이.
(조수석의 떡대 뒤통수 갈기는) 자슥아! 니한테 하는 말이다!
떡대 : 죄송합니다.
정사장 : (찌푸리며 뒷좌석에 기대는) 곽흥삼이... 속셈 빤하제. 장태호 글마 데불고 주식 장난 쳐볼까 잔대가리 굴리고 있을 기다.
떡대 : 서울역부터 이 잡듯 뒤질까요?
정사장 : 지 발로 걸어올 낀데, 멀라고 사서 고생하노?
떡대 : ...?
정사장 : 물고기밥 된 즈그 선배한테 마지막 인사는 안하겠나...
53. 장례식장 / 로비 ( 저녁 ) -N5
정복 경찰 몇이 드나드는 문상객을 지켜본다.
근조 화환을 양쪽에 들고 나타나는 사내들, 태호와 해진! 모자를 눌러쓰고 화환으로 몸을 가린 채 경찰의 눈을 피해 이동한다.
해진 : (속삭이는) 위험하다구 했잖아. 보나마나 경찰 깔려있을 거라구.
태호 : 따라오라고 한 적 없어.
해진 : (뜨끔) 명색이 매니전데, 모른 척 할 수 있나...
태호 : (흘끔 빈소 확인하고 멈추는)
해진 : (휑한 빈소 앞 풍경에) 아무리 망해 먹었다구, 화환 하나 없이 썰렁하냐...
(놓을 자리를 보는 시늉, 화환으로 가려주며) 얼른 갔다와.
54. 장례식장 / 빈소 -N5
민수의 영정 앞에 서는 태호, 목이 메인다.
구석 자리에 웅크린 민수의 아내, 친정 언니의 위로 받으며 흐느끼고... 친정 오빠인 듯한 사내가 문상객을 맞는다.
모자를 벗고, 영정에 절하는 태호.
한번 절하고, 두 번째... 차마 일어나지 못하는 태호, 엎드린 채 울음을 삼킨다. 눈물이 툭툭 떨어진다.
영정 속의 민수는 웃고 있다.
55. 장례식장 / 뒷문 ( 저녁 ) -N5
눈시울이 붉어진 태호, 아까처럼 해진과 함께 화환을 들고 나온다. 한쪽에 치워놓고 한숨 돌리는데... 멈칫! 굳는다.
비릿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떡대와 사내들.
떡대 : 어이구, 자식... 오래 걸리네. 들어가는 거 보구 한참 기다렸구만.
태호 : (긴장하는) ...
떡대 : 니 장례식에 쓸 화환도 갖구 오지 그랬냐?
순간, 뛰쳐 나가는 태호와 해진. 떡대와 부하들, 해진은 필요없고, 태호를 쫓아 달린다.
화단 하나를 훌쩍 뛰어 넘는 태호. 그때 숨어있던 떡대 부하가 다리를 걸어 넘어 뜨린다.
부리나케 달리던 해진, 안전하다 싶어 멈추고 돌아본다. 놀라는 해진.
떡대 부하들에게 끌려가는 태호, 차에 실리는 모습.
56. 달리는 차 안 ( 저녁 ) -N5
뒷좌석, 태호 양쪽에 압박하며 앉아있는 떡대 부하들.
떡대 : (조수석에서 돌아보는) 분하냐? 억울해?
태호 : (노려보는) ...
떡대 : (코웃음) 니가 뛰어봤자 벼룩이지, 서울역에 짱 박혀 있으면 우리가 못찾을 줄 알았어?
태호 : (멈칫, 내 소재를 알고 있다니) ...!
떡대 : 놀라긴... 짜식. 니가 곽흥삼 똘마니 된 것두 다 알어, 임마! 어차피 그 거지 새끼도 박살나게 돼 있거든.
태호 : (암담해지며 고개 떨구는) ...
떡대 : 인상 펴라. (기분 좋아 흥얼거리며, 앞을 보는) 진작에 뒈졌어야 될 놈이 몇 달 보너스로 살았다구 생각해.
신호 대기에 멈추는 차.
고개 숙인 태호, 곁눈으로 옆을 살핀다. 육중한 덩치들의 압박...
태호, 순간 팔꿈치로 한 놈의 턱을 찍는다. 그와 동시에 몸을 빼면서 잠금 장치 젖힌다.
‘잡아!’ 소리치는 떡대. 태호의 다리 잡으려는 부하들.
태호, 힘껏 발길질하며 차도 위로 몸을 굴린다. 재빨리 쫓아 내리는 떡대와 부하들.
신호 바뀌고 차들이 출발한다. 태호, 저만치에 속도 내는 트럭으로 달린다. 이를 갈며 쫓아오는 떡대와 부하들.
태호, 죽을 힘으로 달려 짐칸에 매달린다. 뒷덜미 잡으려다 간발의 차이로 놓치는 떡대.
태호를 실은 트럭이 멀어지고.
57. 식당 / 쪽방 ( 밤 ) -N5
허겁지겁 들어서는 태호, 불도 켜지 않은 채 스포츠백에 옷가지를 쑤셔 넣고 반지함도 소중하게 챙긴다.
정사장이 알게 된 이상, 서울역 생활은 끝이라는 판단.
58. 식당 / 안채 ( 밤 ) -N5
쪽방을 나서는 태호, 흠칫 놀란다. 옆방에서 나오던 조회장도 놀라고...
어딘가로 떠나려는 듯, 가방을 들고 있는 조회장.
조회장 : (당황하며) ...못본 척 해줘요. 부탁이우.
태호 : 가실 데도 없는 분이... 어쩌시려구요?
조회장 : 계속 있어봐야 나같은 늙은이, 괜히 짐만 되고...
태호 : 회... (장님, 하려다) 어르신, 그러지 마세요. 다들 걱정하구 있습니다.
조회장 : 고맙게 생각해요. 내 잊지 않으리다.
태호 : 어르신!
쓸쓸한 미소 짓고 돌아서는 조회장. 태호, 차마 붙잡지 못하고 바라보는데...
문가에서 돌아보는 조회장.
조회장 : (태호의 가방을 보며) 잘 생각했수. 하루라도 빨리 이 바닥, 벗어나야지요.
나야 너무 늙어서 어림없지만... 젊은이는 아직 기회가 남았잖아요. 그렇지요?
태호 : ...
조회장, 기침을 쿨럭대며 문을 나선다.
스포츠백을 내려다보는 태호, 망설인다. 그러다 표정에 결심이 떠오르는.
59. 펜트하우스 ( 밤 ) -N5
‘들장미’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소파에 묵묵히 앉아있는 흥삼. 그 앞에 서 있는 사마귀.
사마귀 : 정사장 애들이... 벌써 처리했을 겁니다.
흥삼 : (일말의 아쉬움) ...운이 나쁜 녀석이군.
노크 소리. 사마귀가 문으로 간다.
눈 감고 생각에 잠기는 흥삼. 이제 정사장을 어떻게 제거해야 하나... 고민중.
문득 기척에 눈 뜨는 흥삼, 놀란다. 눈 앞에 멀쩡하게 서 있는 태호.
태호 : 정사장...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흥삼 : (놀랐던 표정이 호기심으로 바뀌는) ...
태호 :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가늠하듯 응시하는 흥삼. 형형한 눈빛으로 마주 보는 태호. 두 사람의 표정이 엇갈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