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산줄기는 금남호남정맥과, 호남정맥를 이룬다. 호남정맥은 화순의 국사봉 바람재에 이르러 큰줄기는 광양의 백운산으로 흘러가고 작은 줄기는 해남기맥을 이룬다. 해남기맥은 흑석산 밤재에 이르러 영산강과 계곡천의 경계를 이루는 영계기기맥을 이루고, 밤재에서 뻗어내린 한 줄기는 서기산을 거쳐 갈두산, 땅끝으로 달린다. 서기산에서 시작한 한줄기는 자고개, 성산을 거쳐 계곡천과 옥천천의 경계를 이루는 계옥 기기맥을 이룬다. 또 흑석산의 한줄기는 덕정리를 바라보며 낮은 산줄기를 이룬다. 이 산줄기는 기기맥이 아닐지라도 엄연한 산줄기다. 방춘천과 계곡천을 구분 짓는 산줄기인 탓이다. 계곡천은 영계기기맥과 해남기맥, 계옥기기맥, 흑석산에서 뻗어내린 덕정리로 향한 낮은 산줄기의 울타리 안에서 발원한다. 큰 물줄기는 흑석산의 당산리 뒷편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강절리, 선진리, 장소리, 법곡리 각 마을의 골짜기에서 유입된 물과 함께 말삼정 미륵바위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굽이쳐 흘러 성진리, 반계리, 덕정리의 좁은 골짜기에서 유입된 물과 합류, 둔주포를 지나 영암호로 유입한다. 옥천천의 하류와는 이웃이다. 발원지의 샘은 큰 물줄기의 이름난 샘이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계곡천의 이름난 샘은 없다.
낮지만 산줄기다
방춘리, 여수리, 사정리, 가학리, 잠두리 만년계곡에서 흐르는 하천은 계곡면의 하천일 뿐 계곡천과는 별개의 하천이다. 각 마을의 천(川)을 자세하게 보면 그들 나름대로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방춘천과 계곡천을 구별해보자. 등고선이 있는 지도를 펴보아도 방춘천과 계곡천의 경계를 구별하기 어렵다. 지도에는 온통 논으로 이뤄져 있어 현장을 답사하지 않고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현장을 답사해봐도 육안으로 식별하기 쉽지 않다. 원래는 방춘리 청량사 뒷편의 봉우리에서 뻗어내린 낮은 산줄기는 논으로 개간 되기 전 반계리 대운,반계, 조산, 덕정리의 낮은 산줄기로 연결됐다. 청량사에서 덕정리에 이르는 일자형 농로는 낮은 산줄기였는데 그 산줄기를 따라 농로를 만들고 방춘리천과 계곡천의 경계와는 관계없이 인위적으로 구분하게 되었던 것이다. 비가 내리면 일자형 농로의 고저에 따라 방춘리천과 계곡천의 빗물은 흘러간다. 자세히 보면 산은 물을 가른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산 자신은 물을 가르는 고개다. 산줄기가 물을 가른다는 교훈을 일깨우는 단어임에 틀림이 없다. 인위적으로 일자형의 농로에 수로를 만들어 좌우로 물줄기를 돌려 물을 흘러가게 하였을 뿐 자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방춘리, 여수리, 사정리, 가학리, 잠두리 만년계곡의 천의 경계는 어디인가.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따라 구분해보면 각 하천의 경계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계곡의 젖줄 계곡천
1914년 군·면 통합계획에 따라 청계면과 비곡면의 이름을 따서 계곡면이라 하였다. 이름을 명명하였던 사람이 아마도 청계면 사람이어서 비곡면 보다는 청계의 계를 먼저 따 계곡이라 하였을까. 아니면 산골짜기가 한자어가 계곡이어서 순간 스치는 영감에 청계면의 계를 따서 계곡이라 하였을까.
계곡천의 북쪽 울타리에서 흐르는 물은 말삼정 계곡을 거쳐 남쪽 울타리의 물과 합류한다.비곡면 사람이 명명하였다면 곡계(谷溪)였을 것이다. 말삼정 계곡은 계곡천, 계곡면과는 썩 어울리는 말이다. 단연코 계곡천 1경이라 하면 말삼정 미륵바위 계곡의 계월(溪月)일 것이다. 말삼정 계곡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계곡천의 청류(淸流), 동쪽 산등성이에 달이 뜨면 , 달빛은 계곡에 어우러진다. 말삼정의 미륵은 잔잔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이 계곡을 중심으로 계곡의 북쪽뜰과 남쪽뜰로 나눠진다. 계곡천의 북쪽 울타리는 계곡의 북쪽뜰을 적시고, 계곡천의 남쪽 울타리는 계곡의 남쪽들을 풍족하게 한다. 금호방조제의 물막이 사업으로 인하여 계곡뜰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는데 방춘리, 여수리, 사정리, 가학리, 잠두리 만년계곡에서 이루어진 하천들과 계곡천의 혜택을 받는다. 단연코 계곡천 제일의 맛이라면 진양주일 것이다. 계곡(溪谷)과는 썩 어울리는 명주다. 계곡천이 내린 맛의 결정이다. 계곡천은 해남의 북쪽뜰 계곡의 젖줄임에 틀림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