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a a a a a a c c c c c d e e e e e g h i i i i i i i I I l l m m n n n n n n n n n o o o o p p q r r s t t t t t u u u u u. 이것은 네덜란드의 한 천문학자가 1656년 <토성의 달에 관한 새로운 관측>이란 논문에 써넣은 수수께끼 같은 글자들이다.
3년 후, 그 천문학자는 이 암호 같은 글자들의 비밀을 밝혔다. 그가 <토성의 체계, 토성의 기이한 현상의 원인에 관하여>에 공개한 내용은 “Annulo cingitur, tenui, plano, nusquam cobaerente, ad eclipticam inclinato.” 즉 “그것은 황도 쪽으로 기운 납작하고 얇은 고리로 둘러싸여 있고, 그 고리는 어디에도 닿아 있지 않다”란 뜻의 라틴어 문장이었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1629년 4월 14일, 네덜란드의 외교관이자 시인이며 학자인 콘스탄테인 하위헌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이하 하위헌스로 표기)의 아버지는 르네 데카르트를 집으로 초대하곤 했다. 덕분에 데카르트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가끔 있었던 하위헌스는 언젠가는 모든 자연 현상을 설명하게 될 날이 올 거라 믿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하위헌스는 기계 만지는 일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자식이 최상의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기를 원했던 아버지는 하위헌스가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가정교사를 두어 개인교습을 받게 했다. 하위헌스는 1645년 레이던 대학에 들어가 법학과 수학을 배웠고, 2년 후 브레다로 옮겨 학업을 마쳤다.
하위헌스는 갈릴레이가 관측했던 토성에 관심이 많았다. 1610년, 자기가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하던 갈릴레이는 토성에 ‘귀’가 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두 해 뒤 다시 관측했을 때는 귀가 보이지 않았다. 토성의 이런 변화를 갈릴레이는 설명하지 못했다. 관측 시기에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더 큰 문제는 망원경의 성능에 있었다. 하위헌스는 망원경의 성능을 개선하면 토성의 모습을 좀 더 정확히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더욱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 이를 위해 하위헌스가 만난 사람 가운데 렌즈를 가는 철학자 스피노자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배율이 50배쯤 되는 망원경을 제작해 토성의 고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관측을 계속한 그는 1655년 3월25일, 자신이 관측한 것이 그저 고리가 아니라 위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위성을 라틴어로 ‘사투르니 루나’ 즉 ‘토성의 위성’이라고 불렀다. 이 위성의 오늘날 이름인 '타이탄'은 후에 영국의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이 붙인 것이다.
자신이 관측한 것을 남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라틴어 철자를 뒤섞어 발표한 것은 당장은 확실치 않지만 나중에라도 분명한 사실로 밝혀졌을 때, 자신이 가장 먼저 발견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훗날 하위헌스는 자기보다 앞선 관측자들이 더 좋은 렌즈가 달린 커다란 망원경을 쓰고 있었다면 자기가 본 것과 똑같은 것을 보았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후로도 망원경 성능을 높이는 작업을 계속해 후대인들의 관측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위헌스는 망원경뿐만 아니라 시계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 대목에서도 우리는 갈릴레이를 만난다. 갈릴레이는 진자의 길이가 같으면 진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진폭과 상관없이 일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해 하위헌스는 1656년 진자시계를 발명했고, 이듬해 특허를 얻었다. 그가 만든 시계는 이전의 그 어떤 시계들 보다 정확했다. 유럽 전역의 과학자들이 그가 발명한 시계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실험과학의 정확성도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하위헌스는 이론적인 연구에 매달렸다. 그는 1673년 <시계 진동>이라는 책을 발표했다. 그는 이 책에서 진동 중심, 원심력, 구심력 등 역학과 관련된 여러 법칙들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한 이론적인 연구 중, 가장 중요하고도 유명한 것은 아마도 광학에 관한 연구일 것이다. 1675년 영국의 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빛이 입자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빛을 발하는 이 입자들은 다른 물체들과 똑같은 원리로 움직인다고 했다. 하위헌스는 뉴턴을 존경하기는 했지만, 빛이 입자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하위헌스는 1678년 <빛에 관한 논고>(출간은 1690년)에서 빛의 파동설을 제기했다.
그는 “빛은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에테르라는 매질 속에서 마치 물결처럼 전달되는 파동”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턴은 하위헌스와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명망 있는 과학자였다. 하위헌스가 1675년에 쓴 글이 25년이 지난 후에야 출간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위헌스의 파동설은 100년 넘게 뉴턴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초 영국의 토머스 영의 실험 덕분에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 빛과 관련된 현상 중에는 파동설로만 설명되는 것도 있고, 입자설로만 설명되는 것도 있음이 밝혀졌다. 이를 두고 윌리엄 브래그라는 영국의 물리학자는 “빛은 월, 수, 금에는 파동으로 행동하고, 화, 목, 토에는 입자로 행동하며, 일요일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하위헌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1695년 세상을 뜰 때까지 늘 연구에 열중했다. 주변에 함께 과학을 토론할 사람들이 없음을 한탄하며, 여러 학자들과 끊임없이 서신을 주고받았다.
17세기의 다른 과학자들과 달리 그는 철학에도 신학에도 관심이 없었다. 영국 왕립 학회와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회원이었던 그는 언제나 과학만을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내 조국이고, 과학은 내 종교이다”
2004년 7월 1일, 미국과 유럽 공동의 우주탐사선이 토성 궤도에 진입했다. 이 탐사선의 이름은 카시니-하위헌스 호였다. 탐사선은 토성의 위성 타이탄의 대기에 진입해 착륙할 때까지 수집한 자료들을 지구로 보내왔다.
우리말로 읽을 수 있는 하위헌스 전기는 아직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이 글에서 다룬 내용과 관련해서는 다음 책들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위헌스와 뉴턴 등이 살았던 시대에 관해서는, <과학과 근대 세계>(화이트헤드 지음, 서광사)를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17세기를 천재들의 세기라고 부른다. <발견자들>(부어스틴 지음, 범양사출판부) 1권 제 1부에는 시간 측정과 시계를 둘러싼 역사적인 사실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물론 하위헌스에 관한 언급도 나온다. 빛과 관련해서는 빛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빛 이야기>(벤 보버 지음, 웅진지식하우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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