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맹해야생보이차연구소(구청도한인병원) 원문보기 글쓴이: 아이굄(호암)
3. 대련의 차문화
동북 지역은 일본과 한국의 영향으로 일찍이 경제에 눈을 떴다.
주민들 역시 진취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서 근면하고 모험적이다.
그러다 보니, 부유한 사람들이 많고 생활도 넉넉한 편이다.
그러나, 문화면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특히 차문화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중국에서 보이차로 작은 이름을 얻다 보니, 중국 전역의 상인들로부터 초청을 받는다.
이 지역도 작년부터 한 번 와 달라고 여러차례 요청을 받던 곳이다.
초대는 감사하지만, 워낙 넓은 중국이라 이렇게 직접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시간이 빡빡한 일정이라 동북의 다른 지역에 계시는 상인들은 모두 대련으로 와 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가까이는 심양부터 멀리는 치치하얼서도 오셔서 정말 고마웠다.
작년부터 인터넷으로 보이차를 팔았는데, 그를 기화로 전화를 주고 받게 되어 알게된 분들이 많다.
또, 대련에서 불러주신 분은 올해 봄에 필자가 남나산 고수차를 대신 사 드렸던 분이다.
대부분 차가 생업이고, 하얼빈서 오신 한 분은 보이차 매니어였다.
말하기 쉬워 동북 3성에서 왔다고 하지만, 사실 그 거리는 장난이 아니다.
기차로 심양까지는 약 5시간, 장춘까지는 약 9시간, 하얼빈까지는 12시간, 치치하얼은 15 시간이 넘는다.
기차로 20시간 이상 걸리는 내몽고분들께는 차마 여기까지 오시라고 못 하고, 필자가 직접 찾아 뵙기로 했다.
여러 사람을 수고롭게 하기 보다는 필자 혼자 고생 좀 하는 것이 예의인 것 같았다.
외국에서 온 차선생 한 사람을 만나려고 이 먼 거리를 달려와 준 그들.
가슴 속에서 감격이 벅차 올랐다.
장소는 대련의 한 차 도매상가였다.
대련역 뒤편에 따차이스창(大菜市場, 야채시장)이 있다.
그 중에서도 따미스창(大米市場, 쌀시장) 2층에 있는 차도매상가였다.
대련이라는 도시 규모에 비해서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다.
부근에 도매시장이 한 곳 더 있지만, 비슷한 크기이다.
차는 한국에서의 품차 다회처럼 진행했다.
점심으로 훠궈를 먹었더니, 포만감으로 차맛에 둔감해진다.
오후 2시로 약속을 했으나, 2시 30분이 되어서야 겨우 품차가 시작되었다.
중국어가 서툰 필자인지라 맘껏 표현하지 못해서 너무나 답답했는데, 듣는 저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더구나 차에 관한 자부심이 얼마나 강한 차인들인가?
이들 중에는 이 지역에서는 내로라하는 이론가도 있고, 차를 가르쳐 온 지 40년이 넘는 차선생님도 있다.
그래도, 묵묵히 들어주는 태도에 더욱 열을 올렸다.
한국에서는 이론을 중시하지만, 중국에서는 실제를 중요시한다.
차에 관한 이론이란 것이 대개 책으로 만들어지는데, 차의 현실을 정확하게 쓴 책이 거의 없다.
20세기 중후반에 나온 책을 보면, 차에 대해서 쓴 것이라기보다는 특정 차창의 홍보물 같은 성격이 강하다.
보이차 관련된 책이 유명해지자, 아예 보이차 판매 쪽으로 직업을 바꾼 사례도 더러 있는 지경이다.
동북이라 광조우나 상하이의 차 상인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긴, 북경 상인들 중에서도 보이차를 아는 사람이 극이 드문데, 대련에서야...
생차, 숙차 그리고 악퇴차를 설명해 나갔다.
맹해 주변의 지도를 활용해서 현장감을 더욱 살렸다.
봄에 맹해를 방문한 분이 계셔서 편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다들 미각은 아주 예리했다.
평생 차를 마셔와서 그럴 것이다.
전원이 대엽종과 소엽종을 구분했고, 고수차와 타이띠차도 정확히 가려냈다.
춘차, 곡화차, 우수차 그리고 동차를 품했는데, 정확히 전달이 된 것 같았다.
사실 이 지역은 중국의 대부분 지역처럼 악퇴차가 위주이다.
흔히 포장지에 숙차라고 적힌 것인데, 정확한 이름은 악퇴차이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보이차는 아니고 녹차로 만든 짝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중국의 현실상 어쩔 수 없다.
진정한 보이차는 생산량이 극히 적고 그나마 대부분 외국으로 수출이 된다.
남은 극소량도 중국의 일부 특권층이나 부유층들이 가로채기 때문에 실제로 시장에 유통되기는 어렵다.
비록 진실은 아닐지라도, 차를 좋아하는 대다수의 중국 대중들을 위해서는 녹차로 만들어진 악퇴차(‘숙차’라고 표기된 것)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 악퇴차도 마셔보면 나름대로 마실만하다.
맹해나 린창 쪽에는 재배차 중에서도 비교적 수령이 오래되고(40년 전후) 대엽종이 있어서 반드시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런 나무들이 햇수를 묵어가고, 농민들 의식이 성숙되어 비료와 농약을 자제한다면 고수차와 비견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올해 맹해를 다녀간 대련의 한 상인이 말을 거든다.
자신이 고수차를 사려고 봄에 맹해를 갔는데, 단 한 줌의 샘플도 구할 수가 없었던 고충을 말했다.
결국 필자를 소개 받아서 남나산에서 7킬로그램을 샀던 영웅담을 들려준다.
이것이 현실이다.
가짜 보이차야 지천이지만, 진짜 보이차는 이렇듯 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가 활황이 되면서 부자들이 생겨나니 이 비싼 보이차에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난다.
이 외진 동북의 한 도시에 모여서 품차를 하는 이들도, 결국은 고수차를 속지 않고 좀더 확보했으면 하는 염원이 아니겠는가?
필자도 어쩌다 운이 좋아서 몇몇 동네를 돌면서 직접 수확을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많은 양을 만지는 것일 뿐, 실제로는 한 줌의 보이차도 건사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 차를 따기 전인, 늦가을에 이미 주문을 받는다.
주문 받은 물량도 다 채우기 힘든 판이다.
다회를 서둘러 마쳤다.
집단 상가인지라 문을 5시에 닫는단다.
상가 관리인이 오늘 찻자리를 벌인 가게 쥔장인지라 30분을 더 했다.
3시간 가량이니, 서로의 가슴을 열기엔 태부족이다.
후텁지근한 대련의 날씨는 더욱 이러한 갈증에 부채질 한다.
저녁 메뉴도 훠궈(火鍋)이다.
한여름에 그것도 점심과 저녁을 거푸 훠궈는 하는 것도 드문 일이다.
말이 나온 김에 훠궈란 요리에 대해서 간단히 쓴다.
말을 오래 타게 되면, 안장이 좋더라도 사타구니가 무사하기 어렵다.
안장 위에 생고기를 두툼하니 잘라서 얹으면 아무리 말을 오래 타도, 사타구니에 물집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저녁에는 이 고기를 칼로 잘라서, 끓는 물에 넣어서 익혀 먹는데 이것이 훠궈의 유래이다.
징기스칸이 유럽 원정할 때 이 방식을 처음 사용했다고 하여 징기스칸 요리라고도 불린다.
샤브샤브란 말은 중국어인데, 집어넣는다는 뜻이다.
스촨 사람들이 이 요리를 좋아하면서부터 아주 맵고 얼얼한 탕을 유행시키게 된다.
스촨성 성도인 청뚜(成都)에서는 겨울철 하루에 양 9만마리가 소비된다고 하니, 스촨성 사람들의 훠궈 기호 정도가 짐작이 간다.
우선 국물은 뼈를 고아서 쓰기도 하고, 생선 머리 혹은 한약재를 넣기도 한다.
그에 따라서 여러 훠궈 명칭이 나오는데, 가장 대중적인 것은 웬양궈(鴛鴦鍋)이다.
둥근 솥에 태극 모양의 칸지름을 하고, 한 쪽은 마라탕을 한 쪽에는 순한 맛의 탕을 넣는다.
마라(痲辣)의 마는 혀를 마비시킨다는 뜻이고 라는 맵다는 뜻이다.
마를 싫어하고 라를 좋아하는 필자는 가는 곳마다 라탕을 요구하지만, 한 번도 마가 들어가지 않은 탕을 받아 본 적은 없다.
이 국물에 먼저 채소 몇 가지로 맛을 내는데, 종류는 다양하다.
필자의 경우엔, 버섯으로는 목이버섯과 표고를 넣는다.
부추와 청경채도 넣는다.
배추의 흰 속을 넣어두면 맛이 시원해진다.
약간의 두부와 고구마 혹은 감자도 필요하다.
당면도 미리 넣어두면 좋다.
당면은 중국어로는 뻔스(粉絲)라고 부른다.
조개류와 새우 등도 넣으면 국물 맛이 깊어진다.
이렇게 국물에 맛이 점차 진해지면, 고기를 넣어 먹는데 양고기가 일품이다.
양고기 중에서도 앞다리 살이 맛있다.
돼지고기를 쓴다면 오겹살(五花肉)이 좋다.
쇠고기는 일반적으로 잘 먹지 않는데, 일본인이나 한국인들이 많은 도시에 가면 비육우가 나오므로 먹을 수 있다.
대부분 지방에서는 쇠고기로 국물 내는데 쓰거나, 사람보다는 가축 사료로 쓴다.
쇠고기가 가격이 싼 탓도 있지만 질기기 때문에 환영을 못 받는다.
그러나, 최근에 북경을 중심으로 비육우 붐이 일어서 쇠고기도 더 이상 싸지만은 않다.
양고기에는 면양(綿羊, 털이 북실북실한)과 산양(염소)이 있다.
내몽고가 아니면 대개 산양이다.
물론 면양육이 비싸다.
마지막엔 국수나 수제비를 익혀서 먹는데, 이 때 국물을 마시면 정말 맛이 좋다.
술은 북경서 나오는 이과두주로 했다.
이과두주는 크게 58도와 62도가 있는데, 술이 약한 필자를 고려해서 58도짜리로 마셨다.
일적불음하는 필자이지만, 분위기가 너무 절박(?)하여, 필자도 맥주잔으로 2잔 했다.
중국 가서 절대 해서 안 될 것이 술 자랑이다.
여기선 맥주잔에 독주를 담아서 마시는데, 무조건 깐뻬이(乾杯)다.
이런 자리에선 괜한 객기를 부리지 말 일이다.
내일 아침 일찍 내몽고로 떠나기 때문에 9시가 조금 넘어서 민박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속옷을 빨아서 탈수기에 돌려서 방에 걸었다.
얼마나 더운지 에어컨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첫댓글 시간되면 함 따라가고픈 로망만 가득하네욤....좋은여행되시고 ...